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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사람들, 사람들

'김용옥'이라는 '실패'

by 격암(강국진) 2010.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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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옥은 아마도 해방이후 지식인 중에 가장 큰 방송노출을 경험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적이 있다. 물론 김용옥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인기가 있으니 그렇게 된것이라고 하겠지만 이유야 어찌되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김용옥은 그야말로 국민의 스승으로서 공중파 방송을 통해 온국민을 교육시키고 있다는 인상을 줄 정도였다. 

 

김용옥과 실패라는 말에 따옴표를 쓴 이유는 이 말의 의미를 잘 되새겨 보기 위함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김용옥 개인에 대해서 -원론적으로는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실패와 성공을 따지거나 더 많은 일을 잘했어야 하는데 왜 그렇게 못했냐고 따질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열심히 살았고 지금도 열심히 살고 있다. 그가 구세주처럼 한국을 구원했어야 하는데 왜 못했냐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며 무책임한 것이다. 

 

성공이건 실패건 뭔가를 따지는 데 개인으로서의 김용옥을 말할 수 없다면 그건 사회로서 모두로서의 성공과 실패 즉 대한민국의 성공과 실패를 따져야 할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김용옥이란 표지를 붙이는 것은 그것이 김용옥이란 개인이 중대하게 관여한 사회의 일면이기 때문이지 개인 김용옥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이기 때문은 아니다. 

 

성공과 실패도 그렇다. 모든 일은 성공과 실패 둘다이다. 기준에 따라 보는 관점과 측면에 따라 성공과 실패는 다 갈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하는 말을 들이대는 이유는 현 한국사회의 정신적 혼란때문이다. 한마디로 한국사회는 상식, 정체성, 기준이 되는 가치관, 철학, 문화 이름이 뭐가 되건 모두를 묶어주고 통일시킬 사고의 틀을 결여하고 있다. 

 

도올은 이런 사고의 틀을 제시하려고 노력했고 많은 사람의 주목도 받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이명박 정부의 출현이 보여주듯이 성공이라고만은 하기 어려운 것같다. 국민통합적 사고의 틀은 결여된 채로 남아있다. 사람들은 이리저리 지역적, 계급적 잣대로 세상을 나눠서 비난하고 세력을 결집하고 하려고 노력하는 것같지만 그것들은 온전한 혼란이 아니면 국민의 일부가 국민의 다른 일부를 싸워 이기겠다는 소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온전한 혼란이 되고 마는 것은 현대철학이고 현대한국의 인문학의 현실이다. 서구의 철학자들의 철학이 그 자체로 의미가 없고 그 사람들이 대단한 사람이 아닌것이 아니라 문제는 그들이 현대한국에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설득력있고 보통 비전공자들도 공감할수 있게 제시할수 있는가가 인문학계의 과제일 것이다. 그 과제는 과제의 어려움때문이건 인문학전공자들의 무능때문이건 혹은 그둘다때문이건 실패하고 있는 것같다. 

 

그럼 현실정치판이나 진보주의자들은 어떤가. 신문방송은 믿을만한 정보의 원천이 아니기는 하지만 메디어가 전해주는 그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그들도 세상을 통합할 시각을 가지고 있다기 보다는 세상에 선을 그어 이쪽선의 사람들이 당하는 것은 저쪽선의 사람들 탓이라고 말하는 분쟁의 시각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못하는 것같다. 그게 아니면 대책없는 낭만주의 처럼보인다. 정말 국민 전부에게 통할 만한 시각은 없는 것같다. 

 

도올은 그런 걸시도했다. 어떤 의미로 꼴사납게 시도했다. 도올의 뒤에서 도올의 무슨 주석이  틀렸네, 무슨 방면에 대해서는 도올보다 내가 더 많이 알고 있네, 도올은 이러저러해서 부족하네라고 도올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사실 부끄러운줄 알아야 한다. 

 

세상을 자잘하게 나누고 전공과목으로 파고들어가면 끝없는 세부사항이 나온다. 문제는 그런 세부사항으로 전체를 이어주는 시각, 국민적 통합의 시각이 만들어 지지 않는다는데 있다. 오늘날 전문화때문에 세상에는 너무나도 방대한 지식이 존재하므로 누군가가 세상전체를 통합하는 사상을 구축하려고 하면 바로 꼴사나운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적어도 그런 사상이 공감을 받아 학파가 만들어지고 동료학자들이 그 커다란 사상의 가지 사이사이를 사실들로 채워주고 자잘한 조정을 하기전에는 그렇다. 

 

어떤 새로운 생각도 대개 처음 내놓을때는 터무니없고 꼴사나운 것이다. 그렇게 꼴사나운 모습이 되는 것이 두려운 사람들은 종종 남이 만들어 놓은 틀안에서 지금 존재하는 틀안에서 한구석을 열심히 파면서 근엄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작은 것을 이야기하면서 수준이 높네 낮네하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진실은 그들은 용기가 없으며 실상은 시스템의 작은 단순 기술자일 뿐이고 진정한 의미의 지성은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에 가깝다. 

 

나는 도올을 옹호해주면서 왜 김용옥이라는 실패라는 제목을 가지고 이야기를 진행할까. 앞에서 말한대로 도올이 제대로된 새로운 틀을 제공하지 못했건 아니면 국민들이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건 우리는 새로운 국민통합적 사고의 틀을 정착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도올이 결여한게 하나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것은 함석헌이라던가 장일순이라던가 심지어 유시민같은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 변화를 꾀한 지성 대부분이 가진 문제다. 그건 그들이 과학적 합리주의에 철저한 과학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건 작은 문제가 아니다. 서양철학사에서 수학자 혹은 과학자를 제외하고는 말이 거의 되질 않는다.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당연하고 많은 유명한 철학자들이 실재로는 과학자였다. 칸트도 젊은시절엔 뉴톤역학에 대한 논문을 쓰던 사람이었고 데카르트는 카테시안 좌표계라는 말에 이름을 남긴 수학자다. 현대로 오면 과학과 철학이 분리되지만 그만큼 과학이 철학에 미치는 영향력은 강대해 져서 거의 철학이 과학에 의해 대체되는 것같은 느낌을 줄 정도다. 프로이드는 자신을 과학자로 여겼고 진화론, 양자역학, 상대성이론은 어떤 철학이론보다 인류에게 커다란 철학적 영향력을 발휘했다. 

 

김용옥이 존경하는 화이트헤드는 나이가 들기전까지는 수학교수로 일하다가 나이가 들어서야 미국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철학자의 길을 걸었다. 그는 당시로서는 최신의 과학이었던 양자론과 상대성이론에 정통해 있었으며 수성의 세차현상이 일반상대성이론을 확증시켜주던 현장에서 다른 과학자들과 같이 자연과학적 법칙의 신비가 주는 감동을 만끽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한국의 인문학자들의 실패를 말했다고 해서 한국의 과학자들은 인문학 계열의 사람들보다 뛰어나다고 말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실상은 그 반대에 가깝다. 대부분의 이공계 사람들이 철학적으로 백지에 가까워서 단순 기술자로만 존재할뿐 거의 아무런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인문학자들이 절름발이라면 과학자들도 그 이상으로 절름발이였다. 

 

과학자로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한 사람이 누가 있는가? 황우석? 정재승? 그들이 어떤 철학적 영향력을 발휘했나? 본인들이 그걸 추구하지 않더라도 황우석이 환호를 받았던 이유는 산업으로서의 과학이 대중에게 호소력을 가졌기 때문이고 정재승이 인기작가로 알려져있지만 과학을 사소한 흥미의 대상, 서커스같은 오락거리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즉 철학없는 과학이다. 

 

그런데 과학자가 아닌 철학자나 사상가들은 뭐가 문제일까? 이들은 그들의 주장의 본뜻이 그게 아닐때에도 대중에게 계몽주의에 반대하는 낭만주의로밖에는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때로 이들은 그저 반문명주의로 받아들여진다. 실제로도 낭만주의나 반문명주의에 머물러 있는 사람도 아주 많은 것도 사실인것 같다. 

 

이들이 말하는 메시지는 대중에게 전달될때 대개 과거로의 무조건적인 회귀나 자연으로의 도피, 귀농 그런 것으로만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낭만주의는 21세기에 전혀 통하지 않는다. 세계가 이미 엄청나게 복잡하기 때문에 그런 사고방식은 즉각적인 문제를 일으킨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한국의 여러 사상가들이 모두 낭만주의자라고 말하는게 아니다. 다만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만큼 과학에 정통한 사상가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주로 문학과 상징을 말한다. 노장이나 종교를 말한다. 그들은 컴퓨터나 물리학이나 경제학을 이야기하고 싶을때도 있지만 그쪽으로 오면 아무래도 잠시 머물뿐이다. 그리고 서둘러 거기서 벗어난다. 도올이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대해 방송에서 이야기한 걸 가지고 비판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같다. 도올은 과학자가 아니므로 그가 말하는 과학적 지식은 그가 말하는 논점에서는 충분히 옳거나 비판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도 세상에 잡다한 지식만 많은 작은 지식인들이 달려들어 공격하기는 좋은 목표가 되고 만다. 

 

장일순이 시작한 한살림운동도 오늘날에 와보면 결코 성공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한살림운동을 시작할때 그들이 생각한 것을 보면 상당히 정확한 시대를 앞서가는 생각이었지만 그건 역시 금방 낭만주의가 되어버릴수 밖에 없었다. 합리주의의 힘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주축을 이루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효율이 떨어지고 만다. 

 

한국에는 이제 종교가 번성한다. 사이비종교들이다. 그들은 인간의 마음을 더 넓게 만들어주는게 아니라 마취시키고 종국에는 더 비참하게 만드는 마약같은 약처럼 작용하는 치료제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더더욱 합리주의에서 멀어져가는 것같다. 이건 결국 전체주의, 파시즘의 전조다. 아니 이미 파시즘은 우리나라에서 시작되었던가? 

 

이 세상에는 너무 무지해서 책도 안읽고 생각도 안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책을 읽고 생각하는 사람이 문제가 없느냐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들은 이제 다시 작은 사고의 틈에 빠져 세부사항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그리고 도올이 시도했던 것같은 것을 시도하는 것을 멸시하고 비웃음을 날린다. 방해하기조차한다. 한국 인문학에는 진정한 인문학이 없고 인문학 오타쿠만 남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자신의 머리를 쓴다는 점에서는 전혀 지성적이지 않는 사람들이 지식만 잔뜩얻어서 세상을 어지럽히는데 앞장선다. 

 

그리고 세상은 온통 난리법석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고개를 들어 세상을 둘러보지 않는다. 다 자기 코앞만 볼뿐이다. 우리가 설악산에 와있다라는 말같은 소리를 들으면 관심도 없거나 무슨 소리야 여기는 소나무 밑인데라거나 들국화옆이라며 끝없는 지식과 권위를 추구할 뿐이다. 

 

국민통합이 가능한 사고의 틀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것은 계몽주의와 낭만주의를 넘어선 곳에 있다는 것을 다수의 사람들이 공감하고 그에 힘을 기울이게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렇지 못할때 미래는 어둡기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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