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생명, 뇌, 자아

세상은 프라이어로 이뤄졌다라는 말의 결과

by 격암(강국진) 2012. 3. 26.
반응형
%이글을 포함한 뇌에 대한 고민이라는 글들은 재미없습니다. 매끄럽지도 않습니다. 다른 글들도 그렇긴 하지만 이글들은 특히 생각을 자유롭게 글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몇가지의 생각끝에 나는 인간정신을 포함한 생명현상을 이해하는 것의 핵심은 생명을, 따라서 뇌나 인간정신을 확률함수로 혹은 프라이어로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것은 세상은 물질로 이뤄졌다 (뉴튼역학) 고 하는 것이나 세상은 도형으로 이뤄졌다거나 (유클리드기하학) 세상은 종으로 이뤄졌다 (다윈 진화학) 하는 것과 마찬가지 정신에 있는 것이다. 이것은 완전히 새롭지도 않고 아직은 그 유용성이 뭔지도 확실치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말의 결과를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할 것같다. 


만물은 프라이어로 이뤄졌다. 


우리가 이것이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것이 상당한 시간동안 존재를 유지하기 때문에 그것을 인식할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존재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지키는 능력을 크고 작게 지니고 있다. 존재를 뭘로 부터 지키는가. 그 존재를 둘러싼 환경이 가지는, 온세상이 가지는 불확실성으로 부터다. 불확실성은 모든 것을 섞어버리고, 인식할수 없게 변화시켜버린다. 그래서 우리들 살아있는 인간도 결국 죽으면 부패하고 분자로 원자로 나뉘어져서 세상과 섞여지게 되는 것이다. 애초에 우리몸의 원자들은 저기 먼 우주에서 온 원자들로 이뤄진 것이다. 


존재를 지키는 능력은 그래서 세상의 불확실성과 싸우는 능력이다. 불확실성과 싸운다는 것은 현재를 인식하고 미래를 예측하고 적절하게 자신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칼이 날아오는 것을 우리가 보면 우리는 그것을 피해야 한다. 그 칼이 우리를 죽일 것을 예측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는 몸을 수그려서 칼을 피한다. 그것에 실패하면 우리는 죽어서 흩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인식하는 문제는 단순히 거기에 있는 것을 본다라는 일방통행적이고 단순한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무한히 반복되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우리가 보는 것사이의 관계가 있다. 우리는 우리가 경험한 것을 토대로 우리가 아는 만큼 세상을 불수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세상을 본다는 행위의 결과다. 즉 경험 혹은 관찰과 우리의 지식 혹은 세상에 대한 이론은 서로 상보적으로 얽혀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세상의 불확실성 이라고 부르는 것의 일부로 남아있다. 이러한 것때문에 세상은 우리가 예측한대로만 변화하지 않는다. 즉 세상은 불확실하고 확률적이다. 


존재를 유지하는 것은 계속된 경험축적의 과정을 진행시키고 있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것자체가 하나의 경험이다. 우리 동네에서 지진이 일어난 적이 없다라는 경험은 지진에 대한 기대치를 한없이 낮춘다. 즉 경험은 우리가 세상에 대해 가지는 기대치를 바꾼다. 이 기대치가 바로 베이지언 확률이론에서 프라이어라고 불리는 확률분포다. 경험축적의 과정은 확률분포의 변화과정이다. 


결국 경험이라고 하는 것은 프라이어와 외부로부터의 감각신호의 결합을 통한 인식과정을 의미하는 것이고 프라이어의 변환을 말한다. 존재를 유지하는 것 특히 우리가 생명이라고 부르는 것의 핵심은 이런 의미에서 프라이어다. 프라이어가 유지변환되고 프라이어가 인식을 가능하게 만든다. 


세상은 프라이어로 만들어졌다라는 말의 결과


이런 말의 결과는 뭘까. 우리는 추상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구체적인 수학적 상징으로 대체했다. 확률함수라는 것은 수학적 표현이니까. 예를 들어 인간정신이란 무엇일까, 인간정신은 어떻게 변화하는가라는 질문은 추상적이며 애매하다. 그러나 확률함수란 무엇일까, 그것은 어떻게 변화하는가라는 질문은 훨씬 더 구체적이다. 그러므로 인간정신은 프라이어다라고 말을 하는 순간 우리는 인간정신을 우리가 이해하고 분석할수 있는 대상으로 만든 것이다. 


신경과학계의 유명한 프로젝트중에 블루브레인 프로젝트라는게 있다. 그것은 뇌를 컴퓨터안에 그대로 재현한다는 프로젝트로 이 프로젝트의 기본적 발상은 뇌는 신경망이라는 것이다. 즉 수많은 신경세포와 그들의 연결을 컴퓨터에서 가상적으로 재현하면 우리가 인간의 뇌를 재현하는 것이라는 믿음이다.


인간정신이 프라이어라는 것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접근이다. 이걸 확률방식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확률방식으로 인간을 재현한다면 그것은 한 인간의 내부에 있는 프라이어를 찾아내고 그것이 변해가는 방정식을 찾아내는 것이 된다. 


극단적으로 말해보면 이렇다. 당신이 맛있는 케익을 본다. 당신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블루브레인 프로젝트의 철학은 당신안에 존재하는 화학적, 신경과학적 반응들을 흉내내서 이것을 알려고한다. 케익을 보면 당신의 머리는 그것을 먹고 싶다고 느끼게 하는 홀몬의 영향을 받고 그것이 어떤 임계점을 넘어가면 당신이 케익을 먹는 쪽으로 행동하게 된다는 식이다. 확률방식의 철학은 그냥 당신의 과거행동을 통해서 당신이 케익을 볼때 어떻게 행동하더라는 확률분포를 구하려고 한다. 당신의 행동은 이 확률분포 즉 프라이어에 의해 결정된다. 


땅의 넓이나 건물의 높이를 재는 것처럼 확률분포의 크기는 보통 엔트로피라는 양으로 측정되어진다. 엔트로피가 큰 확률분포는 가능한 결과가 다양한 확률분포다. 예를 들어 확률분포가 매우 뾰족해서 무조건 어떤 한가지 일만 일어난다면 엔트로피는 0이다. 

 

인간정신이 프라이어라면 우리는 인간정신의 엔트로피를 계산할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보고 인식하고 행동하는 세계의 크기를 측정한다. 인간정신뿐이겠는가 벌레에서 동물도 다 프라이어고 엔트로피 측정의 대상이다. 결국 원리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벌레에서 어린아이 그리고 어른에 이르기까지 참선하는 스님에서 깡패, 대학교수에 이르기까지 아프리카 토인에서 서양인, 동양인에 이르기 까지 정신적 세계의 크기를 수학적 양으로 측정할수 있다. 


핵심적인 질문은 프라이어가 경험에 의해서 어떻게 수정되는가 하는 것이다. 그 법칙에 어떤 일반성이 있다면 그것은 만유인식의 법칙이라고 불러야 할까?  우리는 인간정신의 급작스런 변화를 목격하고는 한다. 청소년기의 방황도 그렇고 문화적 급변도 그렇다.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는 프라이어 동역학으로 기술되어야 할 것이다. 진화의 과정자체가 그렇게 해석되어야 할지 모른다. 진화는 무작위한 시도와 적자생존의 결과로 이뤄난다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행동하는 가운데 즉 프라이어 동역학에 따라 변화해 가는 가운데 일어나는 결과로 재해석 될수 있을지 모른다. 물론 획득성질은 유전되지 않는다라는 기본과학적 성질에 대한 것을 어떻게 설명할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긴 할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개체가 아니라 집단의 문화적 변화까지 포함한다면 설명할수 있지 않을까. 


프라이어 동역학의 법칙을 찾아낸다면 그다음에 우리는 인간의 감각신호와 비슷한 신호를 잡아내는 로봇을 만들어 낼수 있을 것이고 그 로봇의 머리에 그 법칙에 따라 프라이어를 수정해 가는 프로그램을 설치할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창조의 핵심은 어떤 편한 로봇을 만들어 내는게 아니라 인간정신의 본질 혹은 인간정신중 우리가 이해할수 있는 부분이 뭔지를 이해하는 것에 있을 것이다. 


이런 연구프로그램이 성공적으로 이뤄질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세계에 대해 우리가 가지는 태도를 바꾸게 될것이다. 우린 행동하고 인식하는 것을 보다 깊은 차원에서 이야기하게 될것이다. 예를 들어 인간은 끝없이 질문을 던지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와 같은 말은 인간은 프라이어를 확장해 나가려는 동역학을 따른다는 말과 함께 생각해야 한다. 인간사회의 유지와 변화 역시 프라이어 동역학 차원에서 다시 생각해야 할것이다. 


20세기이래 우리는 인간이 자유롭지 않다는 이론에 크게 경동해 왔다. 인간은 원숭이를 진화시킨 진화력의 지배를 받으며 (진화론) 인간은 경제적 조건에 의해 만들어지며 (막시즘) 인간은 무의식에 의해 지배받는다 (프로이드). 우리의 선택을 조종하는 것은 무엇인가. 애초에 자유의지란 존재하는가 같은 질문은 20세기 내내 반복되었다. 이러한 법칙성에 대한 깨달음은 그것이 수학적 엄밀성을 띄지 않아도 이미 우리의 존재, 우리의 행동에 대해 가지는 우리의 생각을 크게 바꿔서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정신을 바꾸기 때문이다. 


만약 만유인식의 법칙같은 것을 찾아낼수 있고 우리가 수학적으로 엄밀한 프라이어 동역학을 만들어 낸다면  그것은 궁극적으로 인간사회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꿀 힘을 가지게 될것이며 그것은 그것자체가 하나의 패러다임 변화가 될것이다. 


맺는 말


이글을 읽는 분은 이런 과학 프로젝트가 지금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라고 생각하지는 말기 바란다. 그렇지 않다. 이것은 그저 내 생각의 흐름일 뿐이고 결국 이런 프로젝트가 실제로 가능한지, 하게 될런지는 불확실한 것이다. 문제는 그 가치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강할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반응형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