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설들/마음이 평화로운 남자

마음이 평화로운 남자

by 격암(강국진) 2013. 1. 28.

마음이 평화로운 남자.

 

1. 반드시 20년후에 죽는 남자

 

옛날 어느 마을에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이 살던 마을의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 위대함의 계시를 받고는 했습니다. 어느 그들은 자기 안의 위대함과 만났고 계시에 따라 그들의 삶을 시작하고는 했습니다

 

소년도 매일 같이 밤하늘의 별들이 바뀌어 가는 것을 보면서 자기 안에 있는 위대함이 깨어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하루 하루가 지나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저 시시하고 재미없는 시간만 갔습니다. 다른 소년들과 소녀들은 계시를 받고 있었지만 소년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소년은 실망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소년은 자기 안에는 위대함따위는 있지 않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조금씩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혹은 점점 자라났고 소년은 그만큼 정신적으로 약해져 갔습니다. 그래도 소년은 자기 안에 있는 위대함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기다리는 일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드디어 마침내 소년이 20살이 되는 날이 되었습니다. 소년은 자신의 생일을 매우 슬픈 마음으로 맞이했습니다. 그는 드디어 20살이 되어 성인이라 불리울 나이가 되었지만 위대함은 아직도 그를 찾아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소년은 마침내 위대함을 기다리기를 포기했습니다. 자기에게는 재능도 위대한 운명도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무의미한 자신의 인생에 실망한 소년은 어두운 굴로 들어갔습니다. 소년은 아무도 보고 싶지 않았고 안에서 죽기로 했습니다. 굴의 깊숙한 곳에 도달한 소년은 목을 매달 줄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줄을 목에 걸었습니다. 이제 한발만 내딛으면 세상과는 마지막이 것이었습니다. 소년의 삶은 제대로 시작해 보지도 못한채 끝나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잠깐 망설였습니다. 생에 대한 미련이 조금은 남았던 것일까요? 하지만 마침내 죽기로 결심하고 소년은 올라선 바위 위에서 한발을 앞으로 내딛었습니다

 

그때 악마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위대함의 비밀을 알고 있니?”

 

소년은 뒤로 물러섰습니다. 기다림에 지쳐서 죽기로 결심한 순간 소년에게도 마침내 뭔가가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악마의 것처럼 무서운 목소리였습니다.

 

네가 위대해 지기 위해서는 나와 계약을 해야 한다.”

 

악마와의 계약이라. 소년은 이미 악마와의 계약따위에는 좋은 일이 없다는 것정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악마가 공짜로 뭔가를 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소년은 물었습니다

 

악마와 계약을 해야 하는 것이죠?”

 

그건 네가 죽음을 두려워 하기 때문이지.”

 

하지만 나는 방금 죽으려고 하던 참이었습니다.”

 

바로 그거야. 너는 위대함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하다가 마침내 자포자기하고 죽으려고 했지만 실은 위대함이 너를 찾지 않은 것은 네가 항상 죽는 것을 두려워 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네가 안에 가득 있었기 때문이고 네가 안에 위대함이 있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따라 있을 것을 100% 믿지 않았기 때문이지. 

 

위대해 지기 위해서는 생각이 많아서는 안돼. 결과가 이럴까 저럴까를 생각해서는 안돼. 오직 하나의 맞는 생각, 하나의 생각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지. 생각이 너무 많았던 거야. 이걸 지금할까, 해야만 하는 것일까, 내가 있을까, 다음에 수도 있지 않을까, 다른 하면 어떨까같은, 그런 생각들로 마음을 가득 채웠던 것이지.

 

그런데 네가 마침내 죽기로 결심한 순간, 막연한 희망에 기대면서 복권이 당첨되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살기를 그만두고, 보잘 것없는 너를 자신으로 받아들일 것을 결심한 순간, 너는 이제 더이상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게된 것이지. 죽기로 결심했으니까. 죽음이 결정되었으니까. 우리는 결정된 것에 대해서는 두려워 하지 않는다. 오직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만 두려워하지. 그리고 한순간이지만 네가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게 되자 마침내 너의 위대함이 나타난거야. ”

 

나의 위대함이란게 뭐죠?”

 

바보같으니. 바로 나지 뭐겠어. 내가 바로 너의 위대함이다. 내가 바로 네가 계속 기다렸고 너와 항상 같이 있었지만 너의 두려움때문에 네가 만날 없었던 위대함이지. 너는 너의 위대함이 천사나 신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기를 바랬겠지만 실은 모든 위대함은 악마다. 너는 나와 계약을 하고 위대해 수도 있고, 나를 무시하고 그대로 죽던지, 아니면 평생 위대함따위는 다시 만나지 못한 쓸쓸하게 길게 살아갈 수도 있겠지. 이건 너의 선택이다.”

 

계약을 한다는 것은 뭔가요?”

 

너의 경우는 이거다. 너는 나와 약속을 해야 한다. 바로 20년후의 생일이 되는 아침 0시가 되면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지. 악마와 계약을 이상 너는 절대로 피할 없는 죽음을 만나게 될것이다.”

 

소년은 어쩐지 일이 우습다고 생각했습니다. 죽으려고 하던 사람을 세워놓고 20년후에 죽이겠다고 하는 악마를 만나다니

 

그래서 댓가로 내가 받는 것은 뭐죠?”

 

댓가? 그런 따로 없다. 위대함과의 계약 자체가 댓가다.”

 

그러니까 계약을 하지 않으면 나는 20 이상 있을지도 모르는데 계약을 하면 20년후에 반드시 죽는 다는 것이죠. 그런 계약을 하는데도 아무 댓가도 없다구요? 악마는 보통 그런 계약을 하면 부자로 만들어 준다던가 나라를 준다던가 하는거 아닌가요? 당신은 형편없는 악마로군요.”

 

이것봐. 너는 나와 계약을 하지 않으면 분명히 20년이 아니라 80년도 살지도 몰라. 하지만 사실은 5분후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사실이지. 사실 너는 나를 만나기 직전에만 해도 죽으려고 하지 않았나. 이미 나때문에 살아났다고. 내가 요구하는 것은 확실성이다. 너는 20 후에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지. 나와 계약을 하면 후에 죽지도 않지만 전에도 죽지 않는다.”

 

소년은 마침내 계약이 가지고 있는 이득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계약에 따르면 소년은 절대로 20년동안은 죽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는 위대하다고 없을 것같았습니다. 아마도 죽지 않음으로 인해 뭔가 위대한 일을 있게 되는 모양이라고 소년은 생각했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어쩐지 알것 같군요. 당신의 이름은 확실성이예요.”

 

악마는 말없이 웃기만 했습니다.

 

좋아요. 계약하죠.”

 

악마는 순간 연기가 사라지듯 사라졌습니다. 뒤로 메아리가 치듯 소리가 들렸습니다

 

명심해라. 20년이다.”

 

소년은 그렇게 해서 반드시 20년후에 죽는 남자가 되었습니다

 

 

2. 삶에 집중하기

 

남자는 자리에 서서 자기에게 무슨 변화가 일어날까 하고 기다렸습니다. 악마와 계약을 했으니 날개라도 생기거나 뿔이라도 생기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었습니다. 남자는 목에 걸린 줄을 쳐다보면서 생각했습니다.

 

나는 무슨일이 있어도 20년후에 죽는다고 했으니 목을 매달아도 죽지 않게 된걸까? 그렇다면 한번 뛰어볼까?”

 

그러나 남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만뒀습니다. 악마는 20 후에 죽는다고 말했을 목이나 다리가 부러지지 않는다던가 아프지 않다고는 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악마와의 계약은 조심해야 했습니다. 악마는 반드시 자기가 말한 것만을 지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동굴을 나와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살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위대함과 만났지만 도대체 그게 무슨 위대함인지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위대함과 만나기 전에 그는 위대함과 만난다는 것은 뭔가 대단한 일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만난 자신의 위대함이라는 것은 고작해야 20년후면 정확히 죽는다는 뿐이었습니다. 만약 그가 초라한 자신의 운명을 알고 차라리 당장 죽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계약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치피 죽기로 했던 그는 계약을 하지 않는다면 위대함과 계약한다는 어떤 결과를 줄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을 것이 뻔했습니다. 후회할 것이 뻔했습니다. 그는 얼마되지 않아 다시 죽으려고 할지도 몰랐습니다. 그만큼 무의미한 삶은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기에 그는 악마를 그냥 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계약을 했다고 해도 자신은 자신의 위대함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악마와 계약했으므로 절대로 20년후에 죽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는 , 그것 하나 만이 확실할 뿐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남자는 20년후에 죽게 된다는 것에 익숙해져서 이상 그것을 생각하지 않게되었습니다. 처음에는 20년후의 일이긴 하지만 죽음을 예약했다는 생각에 꺼림직한 느낌도 있었고 의심나는 것도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20년후의 죽음은 마치 돌을 던지면 바닥으로 떨어지듯이 세상에 당연히 일어나야할 자연의 법칙과 같은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그것없이는 아무런 운명도 그에게 없다는 것이 스스로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가 만난 악마와 20년후의 죽음을 믿었고 일단 믿음이 확신이 되자 운명적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졌습니다.  악마가 옳았습니다. 인간은 결정된 것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두려움은 다른 방법이 있을수도 있다는 불확실성을 믿을 때나 존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40살에 죽는 남자라는 것이 이제는 너무 당연하게 느껴졌습니다

 

남자는 한동안 위대한 운명의 진정한 효과를 기다리기는 했지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이제 그저 보통 사람처럼 살기로 했습니다. 아무일도 하지 않으면서 기다릴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할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는 세상을 여행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돈도 용기도 없었습니다. 그는 공부를 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격증을 따는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 공부를 마칠 무렵이면 자신은 이제 몇년 날이 남지 않을 것을 알았습니다

 

남자는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이봐. 사실 내가 원하는 것은 도서관에 있는 책들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몇권의 책을 이해하는 것이지. 물론 내가 오랜 동안 공부해서 자격증을 딴다면 그걸로 돈도 벌고 자랑도 있을거고, 혼자 공부한다면 아무도 내가 공부를 했는지 안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자격증을 보여줄 시간도 얼마 남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람.”

 

세상에 존재하는 이런 저런 형식을 모두 맞춰주기에는 남자에게 시간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런 형식들이란 아직도 낭비할 많은 시간이 남았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들만이 지킬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처럼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에게 그건 무리였습니다.  

 

고향을 떠나고 그가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고 떠나는 남자는 미래가 두려웠습니다. 그냥 고향에 머물러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남자는 자신이 고생을 할지는 몰라도 20년간은 죽지는 않을거라는 말에 힘을 얻었습니다. 남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몇권을 샀습니다. 그리고 오직 혼자서 책들만을 읽으며 공부할 것을 결심하고 마침내 자신의 여행을 떠났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몰랐지만 한가지는 확실했습니다. 그는 20년뒤에야 죽을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전도 아니고 뒤도 아니었습니다. 

 

여행은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재미있었습니다. 남자는 밤이면 책을 읽고 낮이면 길을 걸으면서 생각에 잠겼습니다. 위험한 여행은 때때로 내일이라도 당장 남자의 목숨을 빼앗아 것같았지만 악마와의 계약 덕분인지 남자는 결국 그럭저럭 살아났습니다. 해보기 전에 두려워하던 어려운 일들은 실제로 일이 일어나 버리면 그저 해야할 일이 되버릴 뿐이었습니다. 그것이 고생해서 모아놓은 돈을 한번에 날리는 것이든, 체면이 없어지고 스스로에게 실망하게 되는 일이든, 정말로 소중하게 생각하던 물건을 잃어버리는 것이든 일이 일어나고, 실망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럭저럭 살아가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럭저럭이라고, 재미있었다고 말하지만 물론 여행이 고달프지 않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도 쉽지는 않은 일이긴 하지만 남자는 여행의 방향을 틀어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 유혹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어쩐지 바람은 고향으로 불지 않았습니다. 남자는 억지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남자는 마음이 이끄는대로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여행은 남자에게 내일이라도 떠날것처럼 사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어떤 것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너무 많이 가지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여행이란 항상 내일이라도 길을 떠나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나 많은 것을 이리저리 가지려고 했다가는 제일 중요한 것을 오히려 잃어버릴 있습니다. 마차라도 구하면 많은 짐을 옮길 수도 있을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결국 짐이 많아지면 제일 소중한 것이 그런 짐들 밑에 깔려 있다가 잊혀져 버리는 일이 벌어지기 마련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많은 것을 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중요하지 않은 것은 항상 다시 구할 있기 마련이었습니다. 남자는 항상 몸을 가볍게 하고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신경써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내일이라도 떠날 것처럼 살다보니 남자와는 달리 곳에서 정착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때가 많았습니다. 그들은 뭐든지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거라면서 산처럼 물건을 쌓아놓고 살았습니다. 자기가 가진 물건의 산이 크다고 자랑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물건의 산속에서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실종되거나 망가지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의 장소에서만 사는 것은 장소의 가치를 모르는 것이며, 누구나 원하던 원하지 않던 언젠가는 여행을 하게 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때가 오면 그들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그리고 가장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것이었습니다

 

3. 자유롭고 완벽한

 

여행을 계속할 수록 남자에게는 점점 수도승같은 진지한 분위기가 생겨났습니다. 그는 점점 자신의 운명과 삶의 방식에 대해 확신하게 되었고 40살까지만 계속되는 그의 삶에 충실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여행을 하다가 도착한 마을에서 그는 한명의 여자를 만났습니다. 남자는 그녀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남자는 여자에게 자신이 만난 악마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럼 당신은 아무거나 하면서 자유롭게 사는 건가요? 40살이 되어 운명적으로 죽을 때까지?”

 

그의 자유로운 여행을 부러워 하는 그녀는 물었습니다

 

내가 자유롭냐고요? 글쎄요.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습니다. 언젠가 군대에 들어가기로 결정된 남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일주일후면 군대에 들어가기로 되어있었는데요. 군대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매우 자유로워진 것같은 표정이었습니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이 이제 그에게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죠. 마찬가지 이유입니다만 저는 남보다 빨리 죽을 것이며 언제 죽을 것인지 정확히 알기 때문에 걱정하는 것이 적고 그만큼 자유롭다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유라는게 뭔지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유란 뭐든지 하는 , 선택의 자유가 많은 것을 말하는 것이죠. 그게 좋은 것이고. 그런데 저는 여행을 하면서, 짐을 줄이면서 살면서, 내게 정말로 중요한 것들이 뭔가, 40살이 되기전에 해둬야 하는 것이 뭔가 하는 일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것들을 사랑합니다. 세상에 사랑하는 것이 있는 사람은 자유롭지 않은 법이죠. 자유란 관점의 문제입니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게 되어서 여자만 생각하게 된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남자는 구속되고 부자유스럽게 것으로 보일 것입니다. 남자의 의지는 여자에 의해 왜곡되어 결정된다고 생각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남자는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생각하겠죠. 자신은 자신의 선택과 의지에 따라 살고 있다고 생각 것입니다. "

 

“40살이 되기전에 하기로 결심한 것이 뭔가요?”

 

여자는 물었습니다.

 

내가 하기로 결심한 것은 이런 것들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표현하면서 . 내가 죽고 나면 그러지 못할테니까요. 내가 읽기로 책들을 읽을 . 저는 몇권의 책만 골랐습니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몇권의 책만은 정말로 이해할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 저는 세상을 전부 수는 없을 것입니다만 그래도 세상이 넓다는 것을 느껴보고 죽고 싶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재미있다고 생각한 일을 뒤로 미루지 말고 것입니다. 저는 자주 웃고 노래하고 것입니다. 저는 가능하면 20년은 행복하게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40살이 되었을 많은 추억이 있기를 바랍니다.”

 

남자는 그녀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기로 약속한대로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몸을 가볍게하고 여행을 다니는 그가, 무엇보다 40살이 되면 죽는 그가, 누군가에게 좋은 신랑감이 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고백하지 않고 떠나는 것은 자신이 스스로에게 약속한 것과는 달랐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그녀는 남자의 사랑을 받아들였습니다. 둘은 이제 부부가 되었고 아이도 태어났습니다. 그들은 여행하는 가족이 되어 세상을 여행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시간은 흘렀습니다. 20살때는 길게만 보이던 20년도 점점 짧아지고 있었습니다. 40살이 되면 죽는 남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시선이 점점 자기의 주변에 머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자신이 언제 죽을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10년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10년짜리 계획을 세웁니다. 자신에게 일주일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일주일짜리 계획을 세웁니다. 만약 자신에게 하루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면 사람들은 세상에 있는 대부분의 일은 이제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것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좋아하는 음식을 한번 먹어볼 수는 있을지 모릅니다만 시장선거에 나가서 당선되어 좋은 마을을 만들어 보겠다는 계획이나 두꺼운 책을 펴면서 그걸 이해하고 말리라는 계획을 세우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들과는 달리 40살이 되면 죽는 남자는 처음부터 진정한 자기 자신과 자기의 주변에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그랬습니다

 

남자는 많은 것이 자기에게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그에게 있어서 유명해 진다거나 돈을 번다거나 하는 야망은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서 상당히 멀리 있는 것으로 살아있을 시간이 얼마 없는 사람에게는 소용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것이나 자기를 둘러싼 가족들이나 이웃, 가까운 친구들이 지내는 것에 비하면 그런 것들은 의미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자기가 언제 죽을지 모르고 막연히 오래 오래 후에 죽을거라고 생각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남자는 자신의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가장 중요한 것부터 챙기는데에 썼습니다. 그는 너무 많은 것을 그저 외워두려고 하기보다는 하나라도 자기의 머리로 이해할 있기를 바랬습니다. 죽음의 운명이 코앞에 느껴질수록 모든 시간을 의미있게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는 언제 죽는지 모르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관대하다는 평을 받고는 했습니다. 남자는 많은 것에 그다지 애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격식을 차리는 일이나 세상의 관습따위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항상 뭐가 가장 소중한 것일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시간이 얼마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살았던 결과 놀랍게도 그는 매우 지혜롭고 관대한 남자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그는 가지게 것의 대부분을 나눠주었지만 그의 이러한 행동은 그에게 많은 것이 생겨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조용히 자신의 삶을 살고자 했지만 그는 주목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가 40살이 되는 해가 되었습니다. 남자는 매우 성공한 사람으로, 그의 가족들은 물론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스스로가 뒤돌아 보았을 자신의 삶에 대해 매우 만족했습니다. 그것은 남보다 길지는 않을 몰라도 자유롭고 완벽한 삶이었습니다

 

남자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40살에 죽는 것이 나의 위대함인가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돌아보면 결국 나는 40살에 죽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고서야 진정한 나의 삶을 시작하기 시작했고, 이제 삶은 끝나려고 한다. 나는 내가 40살에 죽게 것이 매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완벽한 삶을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사랑하고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가 40살에 죽는 남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생일이 다가오자 많은 사람들이 와서 그에게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모두 그의 삶이 얼마나 부러운 것이며 완벽한 것이었는가에 대해 칭찬의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는 모두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을 다시 느끼고 행복감에 젖었습니다. 그리고 부인과 자식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 그의 죽음을 아쉬워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위로의 말을 던졌습니다

 

드디어 생일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는 자신의 소망에 따라 혼자서 동굴로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사실 이미 결정된 죽음이었기에 그는 죽음을 준비하는 일에 약간 지쳐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시간은 홀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끝마치고 싶었습니다.

 

20살의 생일때처럼 조용하고 어두운 동굴속에서 40번째의 생일을 맞으면서 그는 생각했습니다.

 

나의 위대한 악마여. 여기 약속한 날이 되었다. 나는 너에게 감사한다. 네가 위대함은 나의 삶을 완벽하게 만들었다. 기꺼이 목숨을 포기할테니 나를 데려가다오.”

 

생일날이 되고 사람들이 동굴로 찾아갔을때 동굴에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20살에 악마를 만난 남자는 신비스럽게도 시체조차도 남기지 않고 죽었던 것입니다. 그는 여러번 다른 사람은 해낼 없을 같은 일을 해내는 용기와 능력을 보인 적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의 죽음에 시체가 없다는 사실은 그를 더더욱 신비한 인물로, 전설의 인물로 남게 만들었습니다

 

4. 부조리한

 

남자는 어둠 속을 정신없이 뛰었습니다. 그는 어찌 할바를 몰랐습니다. 그는 그가 20년전에 악마를 만나서 계약을 것을 한번도 의심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계약대로 40살이 되는 죽을 것을 절대로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정이 지나고 몇시간이 지나도 그는 죽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남자의 삶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죽지 않았으니 좋은 일이 아니냐고 할지 모릅니다만 그건 그런 일일 없었습니다. 40살에 죽는다는 것은 사람에게 너무도 성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절대로 확신했고 그가 20년간 살아온 많은 일들은 나는 40살에 죽는다는 것을 당연시 하는 생각위에 세워진 것이었습니다

 

그가 생각을 확신하는 만큼 그는 다른 사람과 달랐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다른 사람과 다른 만큼 그는 생각에 절대적 중요성을 주었던 것입니다. 그가 많은 일에서 용감하고 너그러웠던 것도, 놀라운 힘을 냈던 것도 그가 반드시 40살에 죽을 것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느새 그것은 그가 특별한 인간인 이유가 되었고 그의 위대한 운명을 말해주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40살이 되었을 죽지 않는다고 해서 별일 없다는 듯이 안죽네 라고 히죽거리나 농담을 수는 없었습니다. 좋아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뛰었습니다. 아무도 몰래 동굴을 빠져나와서 마을을 벗어났습니다. 가족들이며 친구들 생각이 나기도 했지만 자기가 그들앞에 나타나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은 남자는 이제 어떤 것도 알지 못한다고 느꼈습니다. 자기가 누구인지도 수가 없었습니다.

 

남자는 정말로 고된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이전의 여행들이 쉬웠던 것도 아니고 그는 이제 많은 경험이 있기는 했습니다만 새로운 여행은 전과는 비할 없이 어려웠습니다.

 

이제 그에게는 목적지가 없었고, 왜가 없었습니다. 그는 심지어 살아야 하는 것인지 죽어야 하는 것인지도 수가 없었습니다. 20살때는 위대함이 없다는 이유로 구질구질하게 살지 말고 죽자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죽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죽을 수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건지, 자기가 뭐가 된건지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죽음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사람은 죽음도 결정할 없는 법입니다

 

그렇다고 그는 수도 없었습니다. 그는 이제 40살이 되기전에는 그토록 확신하던 많은 삶의 원칙들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이 의미가 없어보였기 때문에 뭔가를 열심히 한다던가 하는 일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그저 떠돌았습니다. 그는 삶과 죽음의 사이에 유령처럼 세상을 돌아 다녔습니다. 사실 그는 유령이었습니다. 자기가 누구인지 몰랐으며 그를 알던 모든 사람들이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제서야 그는 20살이 되었을 그가 했던 생각이 떠올렸습니다. 악마와의 계약은 하는 법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마을로 가서 작은 술집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술집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남자가 부지런하기는 하지만 매우 비사교적이라서 돈을 쓰거나 사람들과 잡담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습니다. 술집은 마을의 바깥쪽 끝에 있었고 눈에도 잘띄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주인은 손님이 있거나 없거나 돈을 벌거나 벌지 않거나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인은  사교적인 일에 시간을 쓰지 않았고 돈도 거의 쓰지 않았기 때문에 술집은 계속 운영될 수가 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느 눈이 오는 겨울 날이었습니다. 손님이라고는 명뿐이었는데 그들은 술집안에 있는 작은 모닥불 앞에 모여서 크림을 넣은 뜨거운 술을 마셨습니다. 이런 날에는 일도 없을 것이므로 그들은 여유롭게 이야기나 하면서 하루를 보낼 생각이었습니다.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묘한 소리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술집주인이 남자는 가게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술을 마시던 남자가 좋은 아들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야기는 이미 마을 사람이 안들어 적이 없는 유명한 이야기였지만 자신은 다른 사람들보다 상황을 자세히 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는 대충 이랬습니다. 예전에 아들이 없었던 남자가 있었습니다. 남자는 항상 아들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생기지 않았던 남자는 신에게 아주 커다란 황소를 바쳤습니다. 그는 황소를 사기 위해 오랜 동안 일해야 했고 아주 길을 여행해야 했지만 힘들어 하거나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그는 황소를 바치고 신에게 기도했습니다. 그때문인지 그의 부인은 임신을 했고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태어난 것을 기뻐하는 행복한 시간은 길지 않았습니다. 남자는 악당에게 죽임을 당했던 것입니다. 어렵게 태어난 아이는 일찌감치 아버지없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삶도 무척이나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좋은 아들이었던 아이는 아버지의 복수를 하겠다는 생각을 잊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온갖 어려움을 겪은 끝에 드디어 악당에게 복수를 했습니다. 복수가 끝난 이제 청년이 아이도 힘이 다해서 죽고 말았습니다

 

이야기를 하던 술꾼은 자신은 황소를 실제로 적이 있다면서 황소가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고 구하기 어려운 것이었나에 대해 떠들어 댔습니다. 이야기를 듣던 다른 술꾼이 자기도 이야기는 알지만 끝이 다르다고 말했습니다. 청년은 죽은 아니라 세상을 돌아보겠다면서 모험을 떠났다는 것이었습니다. 술꾼은 한동안 서로 자기 말이 옳다고 티격태격하다가 점점 크게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조용히 있던 세번째 술꾼이 말했습니다.

 

이것봐. 그렇게 떠들 필요없어. 이야기라면 나보다 잘아는 사람이 없다구. 이야기는 떠들어대서는 안되지만 이렇게 두면 둘이서 싸울 것같으니 말해 주지. 청년은 마을을 떠났네. 하지만 모험을 하겠다던가 그런게 아니라 아주 슬픈 표정으로 마을을 떠났지.”

 

술꾼은 마지막 술꾼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문제는 말이야. 착한 아들의 이야기가 거짓이었다는 있어. 아들은 죽은 사람의 아들이 아니고 사람의 아내가 바람을 피워서 태어난 아이였던 거지. 사실 우리가 말하는 아버지는 아이가 너무 어렸을 죽었기 때문에 아이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없었어. 그러나 자신을 태어나게 하기 위해 고생을 하던 아버지의 이야기는 어린 아이에게 감동적인 이야기였고 희망이었지. 전설같은 이야기는 자기가 특별하다는 느낌을 자기가 의미있게 태어났다는 기분을 주었던 거야. 아이는 사는게 힘들어서 여러번 자포자기하고 싶었지만 자기에게 희망을 걸었던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 복수를 포기할 없다는 마음을 버리지 못했어. 그리고 결심이 아이를 지켜주고 길러냈지. 바람을 피웠지만 죽은 남편의 복수를 하고 싶었던 엄마는 복수가 끝나기 전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그리고 착한 아들은 온갖 고생을 하면서도 참고 노력한 끝에 복수를 했지. 하지만 자신에 대한 진실을 알고 나자 어쩔줄을 몰라하더군. 마을 사람들은 지금 그러는 것처럼 그때도 청년을 영웅으로 여겼지만 그는 진실을 참아낼 수가 없었어. 그래서 마을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지.”

 

그렇다면 사람들은 이야기를 모르는 거지?” 첫번째 술꾼이 말했습니다

 

멋진 영웅의 이야기가 아닌가. 사람들은 멋진 이야기를 망치고 싶지 않은거야. 죽은 아버지도 착한 아들도 모욕하고 싶지 않은 거지. 나도 진실을 알지만 대개 말하지는 않지. 오늘은 친한 친구인 자네 둘이서 쓸데없이 싸우려고 하는 것같아서 말해준거지. 자네들도 이런 이야기는 어디가서 하지말게.”

 

눈과 바람이 문을 흔들었습니다. 어느새 움직이지 않고 이야기를 듣고 있던 술집주인은 명의 술꾼이 돈을 남기고 떠난 후에도 오랜 동안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남자는 이야기를 통해서 자기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했지만 어떤 결정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 인생을 하나의 이야기라고 끝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악마가 말했던 것처럼 깊이 생각하지도 못하면서 많이만 생각하는 사람은 결국 아무 것도 수가 없기 마련입니다. 뒤에 뒤에 뒤에를 생각하다보면 사람은 결국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아주 미래의 언젠가 죽을 바로 그날을 위해 산다는 식으로 생각이 흘러가기 쉽고 결국 해야 할지 수가 없어지기 마련입니다. 그건 마치 앞으로 1억걸음이나 1조걸음쯤 걸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길을 출발하기가 엄두가 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년의 인생은 시작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모든 이야기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끝이 있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는 좋은 이야기라던가 비극적인 이야기라던가 하는 말을 수가 있습니다. 끝을 모르는 이야기는 써내려 수도 뭐라고 수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악당을 무찌르고 행복하게 살았다라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난다면 그것은 좋은 이야기가 되지만 악당의 복수를 하겠다고 몰려온 악당의 친구들이 마을 사람들을 모두 죽이거나 마을에서 쫒아냈다고 한다면 결과도 모르고 악당을 건드린 사람은 어리석은 짓을 것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영웅의 이야기가 영웅의 거룩한 죽음으로 끝나는 이유는 살아남은 영웅은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되고 스스로가 만든 신화, 이제 많은 사람에게 중요한 신화를 깨뜨리곤 뿐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한마디로 어처구니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림에는 테두리가 있고, 이야기에는 시작과 끝이 있지만 인생에는 끝이 정해져 있지 않고 따라서 지금 나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는 일이 나중이 되면 아주 좋은 일이 수도 있으며 반대도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년은 자신의 삶을 시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악마가 나타나서 소년의 인생은 40살까지라고 정해주었을 소년은 비로소 제대로 인생을 살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소년에게는 용기가 생겼고 일이 생겼습니다. 인생에 분명한 테두리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비로소 소년은 여행을 시작할 있었습니다. 다른 소년 소녀들은 모든 것을 보다 쉽게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의 여행을 보다 쉽게 출발할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의 소년은 계시를 쉽고 빠르게 받았던 다른 소년 소녀가 부러웠습니다. 

 

남자는 지금도 아무것도 믿지 못한 진정한 믿음의 대상을 찾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소년이 옳았던 건지, 뭐든지 쉽게 믿고 여행을 출발시킨 그들이 옳았던 것인지는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도 그들의 믿음에 대해 댓가를 치룰 것이기 때문입니다. 악마와 계약을 하고 어른이 소년은 40살에서 끝나는 멋진 한편의 이야기를 그의 삶으로 써내렸습니다. 소년의 노력덕분인지 아니면 운이 좋은 것인지 그것은 그야말로 완벽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므로 40살이 넘어서 살아남게 되자 남자는 어떻게 해야 할지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속았던 착한 아들처럼 그도 속은 느낌이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완벽한 이야기를 만들었는데 이제 이야기는 모두 헛소리가 되고만 느낌이었습니다. 스스로가 확실히 40살에 죽을 것을 알고 있던 때의 그는 마치 몸에 신이나 악마의 힘이 깃든 것처럼 힘이 넘쳤습니다. 그는 힘을 사랑했고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그는 해야 할지 항상 알고 있었습니다. 한순간 한순간을 보람차게 의미있게 보냈습니다. 40살의 생일에 살아남은 그는 이제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힘은 오해와 거짓말과 착각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그저 약하고 불안하고 뭘해야 할지 수가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루하루가 지겨웠고 그렇게 시간을 낭비해 버린 것에 대해 초조해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들을 앞에 두고 있었으므로 40살에 죽지 않았던 남자는 적어도 생각을 해야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뭘할지 모르는 머리로 돌아가서 쓸모없는 인간으로 수는 없었습니다

 

마침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는 알았지만 남자는 여전히 답이 없었습니다. 삶은 부조리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체를 보려고 하면 끝이 없어서 아무것도 수가 없고 앞만 보면서 산다는 것은 눈을 감고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제 뭘해야 하는 것일까를 생각하는 중년의 남자에게는 이렇다할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평범하게 남들이 하는 것처럼 서로가 서로를 흉내내면서 이렇다할 삶의 목적따위는 없이 그렇게 살면 되는 것일까? 아니면 그렇게 살면 안되는 것일까? 어떤 쪽이든 확신은 들지 않았습니다. 손님이 없는 술집은 아주 조용했습니다. 윙윙거리는 바람소리와 나무가 타닥이며 타는 소리만이 가끔씩 고요함을 깨곤 뿐이었습니다.

 

5. 삶의 긍정

 

봄이 왔습니다. 술집 바깥쪽에 있는 창고를 아침부터 정리하던 남자는 창고 구석에 쌓여있던 옥수수부대가 약간 상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작년에는 옥수수가 유난히 비쌌습니다. 비싸서 구하기 어렵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남자는 옥수수 요리가 유난히 먹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는 사람이 많이 사면 옥수수를 싸게 주겠다고 했을 남자는 옥수수를 많이 사서 창고에 비축해 뒀습니다. 때는 쌓여있는 옥수수를 보면서 이제 내년 여름까지 먹을 옥수수를 가지게 되었다고 뿌듯한 느낌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정은 변했습니다. 너무 옥수수를 많이 먹었던 탓인지 겨울 중간쯤이 되자, 남자는 옥수수를 먹으면 배가 아프곤 했습니다. 남자는 옥수수를 먹기가 싫어졌습니다. 그래서 생각보다 훨씬 옥수수를 먹지 못했고 이렇게 창고에서 썩어가기까지 하게 된것입니다.

 

남자는 들었던 옥수수 부대를 한심한 마음으로 쳐다보다가 자리에 내려놓았습니다. 이제 아까운 옥수수를 어떻게 해야 할지 수가 없었습니다. 남자는 창고에서 나와 아침 산책을 하기로 했습니다.

 

아침공기는 상쾌했습니다. 향기로운 바람은 앞으로 본격적으로 다가올 계절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풀들이며 나무들은 모두 아침햇살을 받아서 반짝이고 있었고 봄기운을 받아서 인지 눈에 보인다고 싶을 만큼 쑥쑥 자라고 있었습니다. 자라고 있는 것은 나무나 풀뿐이 아니었습니다. 동네의 어린 아이들이 놀고 있는 것을 보면 걷지도 못하던 아이가 어느새 힘차게 마을길을 뛰고 있는 것을 발견할 때가 있었습니다

 

남자는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계획을 세우지만 계획이란 것에는 대개 문제가 있다. 계획은 기본적으로 지금의 나와 나중의 나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라는게 마치 삼각형이나 원처럼 고정되어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20년짜리 인생계획을 세워서 산다고 하지만 지금의 내가 계획을 좋아한다고 해도 20년후의 내가 계획을 좋아할지 안할지 어떻게 알겠는가. 결국 내가 뭘하건 20년짜리 계획의 결과는 20 후의 내가 받게 될터인데 내가 힘들게 계획하고 노력한 것이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내가 창고에 가지고 있는 옥수수처럼 20년후의 나에게는 골치덩어리이거나 부담이 되는 족쇄가 되고 말지 어떻게 것인가.”

 

저기 마을을 뛰노는 아이들은 나름대로 꿈이란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른들은 종종 성실하고 착한 아이들은 꿈을 이루기 위해 모든 어려움을 참고 노력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사실 알고 있는 것은 부정확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다. 심지어 어른도 빵집주인이 된다던가, 학자가 된다던가, 군인이 된다던가 하는 것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모든 빵집 주인과 모든 학자와 모든 군인은 사실 다른 삶을 살기 때문이다. 또한 군인으로 산다는 사실이 사는 것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일은 아닐 수도 있다. 아이는 군인이 될까 학자가 될까를 고민하지만 실제로 그에게 제일 필요하고 중요한것은 어떤 직업을 가질까 하는 것보다 어떤 가족을 가지게 될것인가, 어느 마을에서 살게 것인가, 어떤 종교를 믿거나 어떤 책을 읽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게 것인가가 중요할 수도 있다

 

학자로 살기로 결심했다고 한들 학자도 학자로 산다는 것에 대해 모르는데 아이들이 꿈을 꾸고 그걸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는 뭘까. 예를 들어 3살짜리 아이가 꿈을 꾸고 꿈을 고정하고 평생 꿈을 위해 노력하기로 한다면 어른들은 대개 잘한다고 칭찬 수는 없을 것이다. 3살짜리의 꿈이란 집처럼 커다란 솜사탕을 만들겠다거나 이야기 책에 나오는 마술사가 되겠다고 하는 것일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어른들 마음에 들지 않는 꿈을 말한다면 어른들은 먼저 꿈을 고정시키기 전에 세상에 대해 배우라고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13살짜리나 23살짜리의 인간은 대개 세상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말일까? 33살이나 43이면 안다는 말인가? 나이가 들어도 우리는 우리의 무지만을 깨닫게 되지 않던가? 그런데 확신을 가지고 꿈을 추구한다는 것을 무엇일까? 우리가 알았다는 것인가

 

우리는 스스로 어느 순간 우리를 닫아 걸어버리고 작고 좁은 인간으로 살기로 결심하는 것이 아닐까. 자기가 생각한 계획과 현실이 달라도 끝없이 그런 것은 무시하면서, 사는 원래 이런거라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고정된 인간이 영원히 변하지 않고 그렇게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마침내 그렇게 고정시켜둔 가상의 내가, 현실과 다른 것을 무시할 없게되었을 우리는 물질적으로건 정신적으로건 파산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숲에는 풀이나 나무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벌레며 동물이 있었습니다. 땅에는 지렁이가 있었고 사마귀나 딱정벌레같은 벌레도 있었습니다. 나무 위에서는 다람쥐가 뛰어다녔고 여러가지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어딘가 근처에는 사슴이나 오소리도 산다는 것을 남자는 알고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여러가지 것들이 있다. 사람도 그렇다. 우리는 두려움때문에 혹은 능력의 한계때문에 이런 저런 다른 이유로 스스로를 고정시키거나 고정되어서 산다. 우리는 지렁이가 되거나 다람쥐가 되거나 독수리가 된다. 물론 지렁이는 지렁이의 행복이 있을 것이고 다람쥐는 다람쥐의 행복이 있으며 독수리는 독수리의 행복이 있을 것이다. 삶을 긍정하는 한가지 방식은 주변을 둘러보거나 위를 바라보면 끝이 없다면서 자기를 자기로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다. 말은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말이기는 하지만 뜻이 분명하지가 않다. 나를 나로 받아들인다는게 뭘까? 가난뱅이는 가난뱅이로 평생 살테고 변하지 않을테니 가난뱅이인것에 만족해야 한다는 것일까, 인기없는 아이는 영원이 인기가 없을테니 인기있는 사람을 부러워하지 말고 그냥 자기 자신에 만족해야 한다는 것일까? 구두를 만드는 사람은 자기가 구두를 만든다는 것에 만족하면서 사는 것이고 학자는 자기가 좋은 학자라는 것에 만족하면서 사는 것이며 군인은 자기가 좋은 군인이라는 것에 만족하면서 사는 것일까. 그게 삶을 긍정하고 행복해 지는,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문제의 해답일까.” 

 

이런 식으로 자기를 긍정하는 것은 해답이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말고 다른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답이 된다는 느낌조차 있었습니다. 마치 신포도의 우화처럼 세상을 쳐다보면서 저거 소용없는거야, 내가 가진게 최고지라고 자화자찬하면서 살라는 것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지렁이는 다람쥐나 독수리가 되면 뭐해, 역시 땅속이 좋아라고 말할 있으며 말도 틀리지는 않겠지만 그것은 진정한 삶의 긍정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말고 온세상을 부정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세상에 대한 사랑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맞지 않는다면 가능할 있는 것은 다람쥐나 독수리가 되고 싶어하는 지렁이뿐 인것같았습니다. 이것은 나는 틀려, 나는 좋은 뭔가가 되고 싶어라고 말하면서 계속 자기를 채찍질 하는 삶이었습니다. 남자에게는 이것도 옳은 것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항상 산에 가면 행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지금 당장 여기에서 삶을 긍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영원히 행복할 없을 것이기때문입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결국 항상 다음번 산을 향해 떠납니다. 그는 결국 남을 부러워하다 죽을 것입니다. 결국 어떤 생각도 이것이 맞으면 저것이 틀리고 저것이 맞으면 이것이 틀리다는 식의 생각에서 벗어나고 있질 못했습니다

 

지렁이건 다람쥐건 독수리건 여기 내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믿을 , 그게 고정되어 존재한다고 생각할 , 이게 맞으면 저게 틀리고 저게 맞으면 이게 틀리다는 생각을 , 우리는 나와 내가 아닌것 과의 싸움을 피할 수가 없다. 우리는 숲과 싸워서 이기려고 하고, 세상과 싸워서 이기려고 하고, 남과 비교하고 경쟁하여 이기려고 한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한다. 그렇게 하는데 모든 시간을 쓰거나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신이나 그것을 방해하는 누군가를 비난하는데 모든 시간을 쓴다

 

이렇게 겉으로 어떻게 보이건 우리는 사실상 대부분의 세상으로 부터 잘라져 나와서 작은 세상을 산다. 세상과 접촉하면서 생기는 , 나를 긍정하기 위해 타인을 부정하는 것이나 타인이 긍정적으로 보이므로 내가 부정되는 , 모두가 싫기 때문이다. 우리는 금방 작은 구멍속의 벌레처럼 살게 된다. 우리는 우리가 보는 것을 감당할 있을 만큼의 세계만 보고, 공존할 있는 것을 감당할 있는 만큼의 세계와만 공존하면서 산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는 그게 한없이 작다.  우리는 세계의 대부분과 공존 수가 없다.”

 

남자는 숲을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변화라던가 나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삶을 긍정하고 행복해 진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 생각했습니다

 

6. 마음의 평화

 

남자는 짚신벌레의 꿈을 꾸었습니다. 현미경을 통해 보여지는 짚신벌레는 반투명한 막으로 둘러쌓여있는 주머니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살아서 움직였습니다만 또한 바깥의 것들을 안으로 집어넣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반투명해 보이는 막은 점점 투명해 지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짚신벌레는 애매하게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짚신벌레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짚신벌레의 안쪽이고 바깥쪽인지 알수 없게 변했습니다. 급기야 짚신벌레는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남자는 눈을 떳습니다. 바깥에는 차가운 겨울 바람이 불고 있었고 남자는 앞에서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더이상 같지 않았던 손님이 술집안으로 들어섰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남자는 문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던 것이었습니다.

 

술집 안으로 들어 손님은 천천히 술을 마시다가 문쪽을 바라보고는 다시 술을 시켰습니다. 그는 마치 가고 싶어하지 않지만 밖에는 없다고 갈등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세번째로 술을 시킨 손님은 주인에게 어릴 그가 키우던 개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개는 뭐든지 땅에 있는 것을 먹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우리집 주변에는 해로운 물질을 많이 다루는 공장이 있었는데 거기서는 먹으면 죽을 수도 있는 것들이 많이 있었죠. 결국 걱정하던 대로 개는 먹어서는 안되는 것을 먹고 죽고 말았습니다. 저는 개를 정말 좋아했지만 그렇게 죽는 것을 보니 개를 미워하는 것인지 좋아하는 것인지 수가 없더군요. 그렇게도 열심히 아무거나 마구 먹지 말라고 훈련을 시켰는데 결국 바보같은 개는 그렇게 죽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나는 마음이 아팟죠. 그리고 뭔가를 알려주려고 노력하는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개가 미워지기도 했습니다. 내가 개를 사랑하는 마음만큼 그렇게 죽어서 나를 외롭고 가슴아프게 하는 개가 밉기도 했습니다.”

 

주인은 손님의 말을 말없이 들었습니다.

 

혹시 착한 아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 마을 사람들은 아는 이야기라던데. 옆의 마을 사람들도 알고 말하더군요. 속아서 자기 아버지도 아닌 사람의 복수를 했던 이야기라면 아주 유명해서 마을 사람들 중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제가 착한 아들이라고 하면 믿겠습니까? 제가 착한 아들입니다. 진짜로 착한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어머니를 십년이나 혼자 살게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착한 아들이라고 불려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걱정하고 사랑합니다. 어머니 만큼은 아니더라도 마을도 마을에 사는 사람들도 사랑하죠. 마을을 떠나서 어떻게 보더라도 마을보다 살기좋은 마을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항상 마을에서 살고 싶어 했고 돌아오고 싶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동시에 마을이 밉고 어머니가 밉기도 겁니다. 무섭기도 했습니다. 마을에 돌아오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취급할지 모르겠습니다. 나를 놀림감으로 취급할지도 모르죠. 그러나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내가 마을에, 어머니에게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랬냐고 물을 수도 있겠죠. 어머니는 뭔가 말하겠지만 어머니 입에서 나오는 답이 저를 납득시킬 있을 것같지 않았습니다. 저는 돌아옴으로서 마을과 어머니를 미워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게 두렵습니다. 믿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마음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저는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사람에게 평화를 찾는 방법을 물었습니다. 하지만 만족할 만한 답은 찾지 못한채 마을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지금도 이렇게 여기에 있는것이 잘하는 것인지 아닌지 몰라서 서성이고 있는 겁니다.”

 

주인 말을 다듣고 잠시 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이윽고 말했습니다.

 

손님이 나에게 질문에 대한 답을 기대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분명히 말하거니와 실제로도 저는 손님의 마음에 평화를 답은 알고 있지 못합니다. 다만 손님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제가 고민하던 질문이 생각이 나서 몇마디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습니다

 

그것은 바로 확실한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문제를 생각해 보면 쉽게 세상에 확실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떤 의미에서 확실한 것이 없다는 문장이 무슨 뜻인지도 확실하지는 않지요. 예를 들어 봅시다. 우리가 누군가가 사람을 죽이는 것을 봤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범인인지 확실히 아는 것일까요? 그런데 이런 말은 우리가 본것이 사실이라는 것이 확실하다는 가정이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누군가가 살인을 했다는 증거는 우리가 그것을 봤다는 것인데 그것이 확실한 증거가 된다는 것은 다시 말해 우리가 뭔가를 봤다면 그것은 확실하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어떤 것이 확실한 이유를 대면 우리는 이유는  확실한가를 다시 물을 있을 것입니다. 이유나 증거가 확실하냐고 물으면 우리는 같은 것을 계속합니다. 그러면 결국 어딘가에서, 우리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당연해 보이는 어딘가에서, 우리는 어떤 것은 확실하다고 그냥 믿어버린 것이 됩니다. 만약 우리가 당연해 보이니까 확실한거라고 증거없이 그냥 믿어버리는 것을 확실한 것이라고 부른다면 몰라도 이런 의미에서 확실한 것이란 없습니다. 우리는 결국 어딘가에 무지의 벽을 세우고 바깥으로는 나가지 않는 것입니다. 너무도 익숙해서 거기에 뭐가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 곳에 우리의 벽이 서있는 것입니다

 

모든 이야기에는 시작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초원의 건너편에 사는 야만족들은 길가는 사람을 사냥하고 죽인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야만족들을 죽이거나 멀리하는 것은 선한 일이 됩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야만족들이 그렇게 하는가, 우리가 예전에도 지금에도 야만족들에게 어떤 짓을 해왔던가에 대해 생각하고 어떤 이유를 찾게 된다면 이야기는 전혀 다르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호랑이 굴에 찾아가서 호랑이가 나를 공격한다고 호랑이는 나쁜 동물이니 죽여도 된다고 수는 없겠지요. 실은 공격하고 위협하는 것은 애초에 우리 쪽이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것의 핵심은 야만족에 대한 진실도 호랑이에 대한 진실도 아닙니다. 다만 우리는 항상 한계를 가진 존재이며 우리가 그것을 의식하건 의식하지 못하건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어디에 있는가의 문제일 어딘가에 무지와 한계의 벽이란게 서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확실하다고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믿는 벽들이고 우리가 믿는 확실성들에 근거를 마련해 주는 벽들입니다

 

우리가 어떤 질문에 대해 답을 찾을 없다면 그것은 우리가 질문의 답을 찾을 없을 만큼 똑똑하지 못하기 때문 일수도 있지만 애초에 질문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른들은 대부분 잊기마련이지만 어린 시절에 일기를 사람들은 종종 어린 시절의 자기가 가진 고민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이거 아니면 저거라면서 예를 들어 두개의 답을 가지고 우왕좌왕합니다. 이쪽을 택해도 저쪽을 택해도 답이 아니라고 느끼기에 좌절하고 맙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청소년기의 좌절에서 벗어나는 것은 종종 질문의 답을 찾았다기 보다는 질문이 잘못된 문맥에 서있다는 것을 알게되기 때문입니다. 질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자기 인생을 둘러싼 벽을 확장했기 때문입니다. 뭐뭐뭐하면 반드시 뭐뭐뭐다라는 섣부른 믿음이 사라지고 나면, 그래서 그게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느끼면 이제는 스스로 자기가 자기의 고민을 봐도 뭐가 고민이었던건지 이해가 안가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아이는 확신을 통해서 이제는 있지도 않는 벽을 세우고 환각을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는 단순히 아이가 틀렸다고 말하고 어른이 정답을 말해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아이가 가진 벽을 보면서 자신은 스스로 무지의 벽따위는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른은 아이의 질문이 유치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자신의 인생을 고민하는 어른의 질문도 마찬가지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믿는 것에 대해 이야기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의 벽을 어디에 세울 것인가, 벽을 허물 것인가 것인가는 자신이 결정해야 문제입니다

 

누구나 한계를 가진 존재이며 어떤 의미에서 짚신벌레가 바삭거리는 토스트의 맛같은 것은 모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무지합니다. 다만 우리가 가진 무지의 벽이 만드는 공간이 넓어지면 질수록 많은 것들이 안에서 평화롭게 공존할 있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가 뭔가를 강렬하게 믿어서 우리를 작게 하면 수록 대답할 없는 질문은 늘어가고 우리는 공포에 빠져서 경쟁하고 투쟁하게 되는 같습니다. 예를 들어 나라고 하는 것이 몸뚱아리라고 생각하는 것을 굳게 믿으면 믿을 수록 내가 아닌 것을 지배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왼팔이 오른팔과 경쟁해야 한다거나 두려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내가 아닌, 나의 무지의 바깥쪽에 있는 것에 대해서는 공포를 느낍니다. 초원의 건너편에 있는 야만인에게 공포를 느끼듯이 말입니다. 우리가 유령을 믿을 유령은 실재가 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확신이 만들어 내는 만질 있는 실재입니다. "

 

착한 아들은 한동안 문제를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제가 당신께 배운다면 제가 가진 벽이 뭔지, 그게 근거없는 것인지 배울 있겠습니까?” 착한 아들은 말했습니다.

 

저는 이미 가르칠 없다고 말했습니다. 가르치는게 아닙니다. 만약 제게 뭔가를 배운다면 그건 당신이 저를 믿는다는 것이 됩니다. 말하자면 그것이 뭐가 되었건 나라는 권위, 나를 벽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건 문제없다라고 하면 문제없는 것으로 믿겠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도 한가지 선택은 수있지만 그건 결국 하나의 불안한 벽일 뿐입니다. 별로 좋은 선택이 못됩니다. 저는 영원히 당신 옆에 있을게 아니지 않습니까. 믿을 것인지에 대한 자신의 답은 자신이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가르칠 없다는 대답에 착한 아들은 실망을 하는 것같았습니다.  주인은 계속 해서 말했습니다.

 

손님이 저에게 배우겠다고 하지만 저는 이런 것을 바로 착한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을 만나고서 한가지 놀라운 일이 저에게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제가 느낀 것을 이야기의 주인공에게 말해 것이죠. 저는 사실 아주 오랜동안 다른 사람에게 의견같은 것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머리 속에 생각은 있었지만 의견이 있을 때도 바깥으로 꺼내어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문제를 생각하기 바빠서 였는지, 마음에도 평화가 없었던 탓인지, 뭔가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입을 열어 의견을 말하는 행동을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걱정이 많은 젊은이를 만난 것이죠. 그리고 젊은이에게 저는 의견을 저답지 않게 길게 말했습니다. 처음 만난 젊은이가 걱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전히 누군가를 걱정하고 행동한다는 사실이 제게는 매우 놀랍고 새삼스럽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것이 바로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몰랐던 것이고 오늘 당신에게 배운 것입니다.”

 

착한 아들은 말을 듣자 기뻣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제가 말을 믿을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제가 앞으로 괜찮을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주인은 물었습니다.

 

과거에 일어났던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결국 아직도 어머니를 걱정하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습니다.”

 

당신은 여전히 누군가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럼 당신은 괜찮을 겁니다. 사람이 누군가를 걱정하는 사람은 괜찮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걱정하는 우리는 괜찮을 겁니다.”

 

착한 아들은 마음이 편해진 웃었습니다. 굉장히 오랜만의 웃음이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