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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쓰고 읽기

독서를 하는 이유 한가지

by 격암(강국진) 2013.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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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3.4

책을 읽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물론 여러 정보를 배우고 익히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아령들기를 하는 것처럼 그저 정신적인 훈련을 위해서 이기도 하며 저자와의 대화를 하면서 인생을 생각하고 외로움이나 따분함을 달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독서를 하는 것에는 중요한 한가지 이유, 특히 아이들을 위해 중요한 한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세상을 바라보는 문맥을 배우고 익히며 자신이 어떤 이야기 속에 있는가를 깨우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스토리텔링의 능력을 배우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 이러한 것은 물론 스스로 사색을 하거나 다른 사람과의 직접대면같은 방법으로도 익힐 수 있는 것이며 어떤 경우에는 그것이 더욱 효율적이지만 아무래도 우리가 혼자서 배우거나 모든 사람과 만나서 장시간 이야기하고 생각하고 배우고 하는 것이 언제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스토리텔링은 무슨 능력일까.

 

스토리 텔링의 능력이란 건 어떤 사안에 대한 여러가지 정보가 있을 때 그것중의 무엇을 강조할 것인가. 무엇들이 어떤 순서로 연결되는가를 보여주는 문맥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다. 이런 능력이 떨어지면 뭔가를 잘 설명을 못한다. 

 

예를 들어 영화를 봤다거나 산에 놀러갔다왔다고 하자. 그럴때 그 영화 어땠어라던가, 산에 놀러간건 재미있었어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쓸데 없이 설명이 길어지거나 지나치게 설명이 짧아지는 경우에 우리는 그런 아이는 스토리텔링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답이 처음부터 모든 자잘한 사실들을 모두 나열하는 방식이거나 그저 재미있었어라고 한마디하고 그만 하는 경우라면 그렇다는 것이다.

 

스토리 텔링의 능력이 현실에서 어떤 문제를 주는 가를 설명하자면 이런 대화를 생각해 보는게 좋을 것이다. 여기 두 아이가 2층 옥상에 있다. 한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말하기를 

 

'네가 용기가 있다면 여기서 뛰어내려봐' 라고 한다.

 

이런 말은 별거 아니지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어떤 '문맥'속에 몰아넣는가를 보여준다. 이 짧은 말은 2층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은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가정하고 만들어 졌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이것은 사실일 것이다. 반드시 뛰어서 뭘 해야 할 이유가 있는데 뛰지 못하는 사람보다는 뛰는 사람이 더 용기있다고 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전제조건없이 그저 2층에서 뛰는 사람은 뛰지 않는 사람보다 더 용감하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남들을 설득하고 선동하는 이런 종류의 말들에 걸려든다. 그렇게 하는 게 용기있는 것같아서 쓸데없이 2층에서 뛰어내리다가 다치는 어리석은 아이가 될지 모른다. 친구의 선동에 넘어간 아이에게 부족한 능력이 무얼까. 그것이 바로 스토리텔링의 능력이다. 주어진 상황을 어떤 문맥, 어떤 각도에서 봐야 하는가에 대해 능력이 부족하면 남들이 던져주는 문맥과 시각에 지배당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런 것은 반드시 한쪽이 한쪽을 선동하는 식으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더 흔히 일어나는 것은 상호간에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윗동네에서는 남자다움을 보이기 위해서 욕을 입에달고 다니고 사소한 실수라도 주먹을 날리고 보는 것이, 심지어 깨진 병이라도 날리는 것이 당연하고 원래 그런 일 즉 상식이 되는데 아랫동네에서는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 되고 만다. 윗동네에 사는 아이들은 서로 서로 한종류의 문맥을 강조하는 말들을 서로에게 던지면서 서로가 서로를 선동하고 있으며 그것이 너무나 당연한 나머지 이것이 그저 가능한 한가지의 문맥이라는 생각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유일한 문맥인 것이다.

 

그러므로 2층에서 뛰는 것이 용감한 일이라는 선동에 넘어가서 옥상에서 뛰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서 나는 저런 어리석은 아이가 아니라고 너무 쉽고 빠르게 이야기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우리는 사실 대개 우리의 상식이라는 그물속에서 갇혀서 남들이 뛰니까 나도 뛰면서 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길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을 상상도 할수 없는 사람도 공중목욕탕에 가면 나체로 걸어다니면서 아무런 부끄럼을 느끼지 못하는 일같은게 일어나는 것이다. 그것은 벗은 것은 마찬가지인데 여기는 목욕탕이고 목욕탕에서는 원래 그렇게 해도 괜찮다라는 문맥을 믿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나는 그 문맥이 틀렸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유일한 문맥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그런 문화에 낳선 서양사람들은 공중목욕탕에서 나체로 돌아다니는 것에 질겁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는 아이가 귀엽다고 머리를 쓰다듬는 일이 많은데 어떤 곳에가면 그런 행위는 아동에 대한 성적인 행동으로 여겨서 난리가 나기도 한다. 우리는 과연 '어리석은 아이'가 아니라고 자신만만할수 있을까? 우리는 말하자면 남의 이야기속에 빠져서 가상세계를 살아간다. 아니라고 할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거나 적어도 거의 없다.  

 

책과 스토리텔링

 

책이란 특히 대부분의 쓸만한 책, 좋은 책이란 사실들의 단순 나열이 아니고 사실들을 선택하고 선택된 순서로 나열해서 하나의 스토리나 문맥을 만들어 내서 제시하는 것이다. 두꺼운 책을 읽고 그 소감을 생각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자잘한 지식들을 외우고 시험보는 것을 강조하는 공공교육에서는 그점이 애매하지만 말이다. 덕분에 요즘은 그저 자잘한 퀴즈형 문제의 답만 잔뜩 알고 있는 바보가 세상에 아주 많다. 

 

우리는 종종 그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그것들이 그럴 듯한 이야기라는 것을 배우는데서 멈추지만 진짜 독서는 그 이상을 포함할수 있고 포함해야 한다. 책이란 아무리 길게쓰고 자세히 써도 하나의 감옥이다. 문자로 써서 제한 된 길이로 써지는 책이란 결국 제한된 문맥, 제한된 이야기를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숨겨진 이야기가 항상있다. 완전한 독서라는게 있다면 그것은 독자가 그 책의 문맥을 넘어서서 저자가 하지 않은 이야기까지 보는 것이다. 그 책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을때 독자는 그 책을 읽기전보다 더 넓은 시야를 가지게 되었을수는 있어도 결국 그 책의 저자가 던진 그물에 빠져있는 상황이 되었기는 마찬가지다. 그 문맥을 절대로 믿고 결국 모든 이야기는 경계가 있고 한계가 있는 문맥을 던진다는 사실을 잊게 되기 쉽다. 

 

예를 들어 전두환 시절에 살았던 한 서민이 삼청교육대에 잘못끌려가서는 인생이 망쳐지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자. 그럴때 전두환 정권은 그저 악을 상징하는 곳일 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두환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자. 독재를 정당화하고 삼청교육대같은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그럴듯하게 보이게 하는 사실들을 보여준 다음에 전두환이 그렇게 하기로 하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악은 전혀 다른 곳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되고 그 이유는 이야기에 항상 시작과 끝같은 테두리가 있기 때문이다. 서민의 이야기에서는 그저 저기 전두환정권이라는 정권이 있다라는 식으로 대충 묘사된 부분이 있고 전두환을 묘사할때면 그 결정의 대상이 되는 국민 사회가 있다라는 식으로 대충묘사된 부분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삼청교육대의 피해자가 된 서민의 이야기에만 빠져든 사람이나 전두환 개인에 대한 드라마에 빠져든 사람중에서 그런 이야기의 테두리 너머를 바라볼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전부 이야기의 감옥 속에 빠져든 것이다. 그래서 그 이야기가 제시하는 문맥으로만 세상을 본다. 갑자기 서민들은 모두 천사로 보이거나 악마로 보이고, 정치가들이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분노를 느끼게 만드는 피해자가 그저 떠들 이야기도 아닌 이야기를 떠들어 대는 철부지로 보이게 되기도 한다. 

 

독서를 하는 이유는 그 이야기를 배우고 종국에는 그 이야기를 초월해서 넘어서기 위한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우리에게는 스토리텔링의 능력이 생긴다. 남의 이야기에 쉽사리 빠지지 않는 자신만의 시각이라는게 생긴다. 

 

맺는 말

 

현대의 교육에서 가장 부족해 지기 쉬운 것이 바로 이 스토리텔링의 능력이다. 왜냐면 우리는 데이터 과다의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 많은 것이 빠른 판단을 요하면서도 너무나 많은 조각난 정보와 함께 주어진다. 

 

그런데 입학시험이란 기본적으로 정부가 정한 어떤 문맥을 따르는 교과서에 나온 문맥을 누가 가장 잘 외웠나를 보는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자신만의 이야기나 문맥을 개발한다는 쪽으로는 오히려 반대의 입장에 있다. 따라서 입시가 과열되어 일찌감치 입시교육에 빠져들면 애초에 교육에 스토리텔링의 부분이란게 있지도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여기 한권의 역사책이 있다고 하자.  수학책이나 과학책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스토리텔링의 능력을 기를 수 있는 질문이란 그 책안에 뭐가 있는가를 묻는게 아니라 그 교과서의 저자는 왜 그런 것을 거기에 그런식으로 썼을까를 묻고 답하는 것이다. 큰 틀에서 보면 이런 것을 묻고 답하는 것이 공부에 큰 도움이 되지만 대개 그런 식의 질문은 잊어버리고 있는거나 잘외우는게 시험점수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그저 상호연관성이 없는 자잘한 지식으로 분해해서 머리에 집어넣으려고 한다. 그런 사람은 스토리텔링의 능력을 기를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종종 입시공부도 그다지 성공적이 아니다. 

 

권장도서가 있으면 요즘에는 그것을 요약한 요약본들도 많다. 그런데 요약본은 원본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적 작가가 긴 시간을 들여서 만들어 낸 이야기를 누군가가 자기 맘대로 잘라내서 문맥을 재구성한 것을 읽으면 그것은 원래의 작가의 이야기를 읽는게 아니라 요약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다. 그러므로 배우는 것도 다르다. 고호의 그림을 조잡하게 흉내낸 그림을 집에다 걸어놓고서 고호의 그림을 날마다 감상한다고 말하는 것이나 비슷하다. 

 

예전에는 책을 백번 읽으면 그 뜻이 저절로 나타난다라는 말을 하곤 했다. 책이 귀하던 시절에는 백번까지는 아니더라도 읽었던 책을 여러번 읽는 일도 종종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책을 안읽었으면 안읽었지 같은 책을 여러번 읽는 법은 거의 없다. 무엇보다 책이 흔하다. 우리는 항상 다음책으로 넘어간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남이 봐도, 스스로 생각해도 그 책을 진짜로 소화하고, 그 이야기 감옥을 탈출한것이 아니라는게 문제다. 작가가 펼쳐놓은 이야기 감옥을 탈출하기는 커녕 그 안에 제대로 들어가지도 않은 것이다. 그래서는 도움이 받는데 문제가 없을 수 없다. 

 

책읽기를 권장하는 이야기는 흔하다. 따지고 보면 책도 수단일 뿐이니 어찌되었건 책읽기 자체가 목적이 될수는 없고 책읽기의 목적을 생각하면서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는 책을 읽는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가 요즘은 대개 잊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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