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4.9.
홍길주는 1786년에 태어나 1841년까지 살았던 조선말기의 선비다. 그의 형은 연천 홍석주로 글로 이름높았으며 높은 관직을 거친 사람이고 그의 동생은 정조의 사위인 홍현주다. 홍길주를 소개하면서 그의 형과 동생을 이야기 하는 이유는 정작 홍길주 그 자신은 일찌감치 과거보기를 포기하고 대단한 관직을 거치지 않은 채 평생 자신의 사색속에서 살다가 간 선비이기 때문이다. 조금씩 읽던 태학산문선의 상상의 정원을 다 읽은 김에 그에 대해 여기에 몇마디 남겨둘까 한다.
솔직히 말해 나는 이 책을 깊은 흥미를 가지고 읽기는 했으나 그것은 그 내용에서 깊은 감명을 받은 탓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가 살았던 조선말기에 홍길주가 있었다라는 사실을 기억해 두기위해, 홍길주에게 일종의 경의를 보내고 조선말엽의 시대를 조금 더 느껴보기 위해 책을 읽었다.
조선말엽은 널리 알려져 있듯이 권문세족이 법위에 군림하고 특권층인 양반의 숫자는 날로 늘어났던 시기다. 그러니 홍길주의 시대만 해도 여러가지 민란이 나서 나라가 시끄러운 일이 많았다고 한다. 유교적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던 조선건국의 뜻은 이미 이런 저런 부패속에서 사라지고 없어졌던 것이다.
애초에 양반은 대물림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양반이란 과거시험에 합격하는 사람이 3대에 걸쳐서 한번은 나와야 말할 수 있는 것으로 말하자면 양반의 자식이라고해서 당연히 양반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시험에 합격하면 주는 합격증같은 것이었다. 따라서 초기에는 양반의 숫자가 많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특권층인 양반의 숫자가 마구 늘어나서 세상의 인구분포가 거꾸로선 피라미드 모양을 가지게 되니 조선이 약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공부하는 사람인 양반이 많은 상황에서도 조선에 없었던 것은 정작 자아를 가지는 일이었다. 서양에서는 신을 뒤로 하고 내 눈으로 확인하고 이성을 따르겠다는 주체적 의식이 일어나는 동안 조선에서는 여전히 옛 성인의 말씀만 외우고 있었을 뿐 내가 없었던 것이다. 조선은 오히려 내 눈으로 세상을 보고 말하는 관점의 변화는 억누르는데 급급할 뿐이었다. 그러므로 말장난 속에서 개혁이 이뤄질 도리가 없고 나라는 망해 갈 수 밖에 없었다.
홍길주는 이런 시대를 살며 자발적으로 아웃사이더가 되기로 했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뛰어난 머리를 가졌지만 세상에서의 성공을 위해 다투지 않고 자기의 집에서 홀로 사색에 골몰했다. 그래서 그는 결국 중국의 성인을 모시는 태도를 버리는 경지에 이른다. 그가 쓴 글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책의 마지막에 있는 문장의 근원을 찾아서라는 글이었다. 여기서 그는 중원이라는 개념에 대해 말하며 결국 중원은 들어가기 쉽지 않지만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것이며 일단 중원에 가서 선다면 중국이니 조선이니 따질 것이 없다는 태도를 취한다. 그는 세상을 열린 책으로 비유하면서 세상을 직접보고 세상이라는 문장을 읽는 것이 바로 공부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그가 유학을 비판하거나 반대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는 고대의 성인들과 명인들을 인정하면서도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 직접 진리와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고 쓸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떤 의미로 우리도 공자가 되고 장자가 될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얼핏 조선을 지배했던 주자학이 아니라 양명학과도 비슷한 메세지를 던진다.
조선에 없었던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반역의 힘이 아닐까 한다. 고려가 부패했을때 조선을 세운 것처럼 조선이 부패했다면 새로운 힘으로 나라를 다시 세우자는 정신이 있어야 했을 것이고 그런 행동이나 결단력은 당연히 자기 자신의 판단을 중시하고 믿는 태도를 요구하게 된다. 즉 자기가 있어야 혁명이든 개혁이든 하게 된다는 것이다. 남의 이야기만 믿고 외우는 사람, 남의 권위에 기대어서 기생하려고 하는 사람은 그런 것을 할 수가 없다.
홍길주 역시 홀로 자기 몸을 세웠을 뿐 조선을 바꾸지는 못했다. 하지만 세상에 나가서 조명을 받았던 사람들은 더욱 그러해서 그저 세상의 이야기에 파뭍히느라 홍길주처럼 스스로 서는 정신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걸 생각하면 조선의 후인인 우리들은 그래도 홍길주가 있었다는 사실에 약간의 위안을 받는다. 그 자신은 당대의 사람들과는 의견이 통하지 않아 외롭게 살아야했겠지만 후손인 우리로서는 스스로 비굴해지고 작은 사람을 자처하는 사람들만 조선에 있었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지금의 한국도 상황이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다. 군권은 국가의 기본적 권리인데 전시작전권을 미국에서 받아 온다고 하면 반대를 하면서 광화문으로 쏟아져 나오고 한반도 평화정착이라는 것을 위해 노력하면 그것을 모두 종북 운운 하면서 어디까지 미국에만 기대려고 하는 사람들이 한국에 잔뜩 있다. 아직도 남의 권위에 기대어 살려고 하는 사람이 또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공자왈 맹자왈하면서 옛날 책을 외는데 진력하던 조선의 선비와 얼마나 다른가. 그들이 미국이나 일본이나 유럽을 말한다고 해도 차이는 표면적일 뿐이다. 빈부격차가 늘어가고 젊은 세대가 애를 키우지 못해 인구가 줄어갈 지경인 21세기 한국은 과연 조선의 패망을 제대로 공부한 것일까. 강남의 부동산 부자가 종부세를 내는 것에 대해 정부인사가 가슴에 대못이 박히는 것같다라고 말할수 있는 시대가 지금이다. 조선의 기득권자들이 그러하듯 지금의 기득권자들도 내가 왜 기득권자인가라고 말하는 것은 아닌가.
홍길주를 기록하기 위해 몇자 써 보았다.
'독서와 글쓰기 > 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루이스 레넌드의 메타피지컬클럽 1 : 홈스 (0) | 2013.10.05 |
---|---|
크리스토퍼 코흐의 의식의 탐구를 읽고 (0) | 2013.08.16 |
정민의 미쳐야 미친다를 읽고 (0) | 2012.11.30 |
박원순의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를 읽고 (0) | 2012.09.30 |
줄리언 바지니의 빅퀘스천을 읽고 (0) | 2012.05.0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