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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살고 싶은 마을

걷고 싶어지는 길의 비밀

by 격암(강국진) 2013. 10. 31.

사람이 하는 일중에 가장 보람있는 일은 아마 산책이 아닐까 한다. 독서도 좋은 것이지만 아무래도 굳이 따지자면 산책만은 못하다. 독서는 남과 하는 대화지만 산책은 자신과 하는 대화다. 남보다는 아무래도 내가 더 중하달까. 그래서인지 고금의 여러 사색가들은 산책하는 것을 버릇으로 삼았다. 칸트도 쇼펜하우어도 산책을 좋아했으며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도 자신의 책에서 보어를 포함한 여러사람과 했던 도보여행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길을 걷다보면 계속 걷고 싶어지는 길이 있는가 하면 왠지 걷는 것이 싫어지는 길이 있다. 그것은 반드시 풍광이 아름답지 않다거나 하는 단순한 이유는 아니다. 나는 그것을 집에서 가까운 여러 공원을 둘러보면서 느꼈다. 


일본에는 한국보다 훨씬 많은 공원들이 조성되어 있고 나는 한때 우리 집주변의 공원들을 순례다니곤 했다. 어디 관광책자에 나올만큼 크지는 않고 비슷하다면 비슷한 작은 공원들이지만 자세히 보면 다 달라서 이런 저런 공원구경을 하고 그곳을 걸어보는 것이 꽤 큰 즐거움이 되었던것이다. 


그런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공원을 걸어보면 왠지 차이가 있다. 삭막한 도시와 숲길을 걷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 아니라 이공원과 저공원이 다르다는 것이기 때문에 차이를 느끼면서도 나는 한동안 뭐가 차이를 만들어 내는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때로는 매우 조경에 많은 돈을 들인듯한 공원에 가서도 나는 이런 공원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투덜거리곤 했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길이 가지는 매력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곡선이었다. 잘 포장된 길이 중앙으로 쭉 뻣어있고 옆으로 예쁜 나무들이 심어져 있는 길은 재미가 없고 정이 가질 않는다. 물론 그런 곳도 으리으리하게 투자하여 멋지게 만들어 내면 처음에는 야 멋진데하는 소리가 나오지만 그 감동과 신기함이 사라지는 속력이 굉장히 빠르다. 


반면에 그 규모가 엄청나지 않더라도 약간 구불구불하게 길이 나있는 공원에 가면 나는 그 공원의 길을 수도 없이 걸었음에도 마치 저 휘어져 들어가는 곳을 지나가면 새로운 것을 볼것같은 느낌에 빠지며 시간이 지나고나면 그 공원의 이곳저곳을 훨씬 더 자세히 보고 많은 정을 들이게 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이런 현상의 뒤에는 인간 심리가 있지 않나 한다. 우리가 뭔가를 주목하고 신기하게 여기는 것은 그 안에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고, 다 알지 못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직진으로 된 길은 말하자면 몇걸음 걸은 것 만으로 앞으로 뭐가 나올지를 다 아는 것같은 느낌에 빠지게 만든다. 그것은 사각형을 하나 본것과 나무를 하나 본 것과의 차이다. 당신은 사각형이 어떻게 생겼는가를 오래 살피게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나무를 본다면 그 입과 가지의 구불구불한 것을 한번에 다 알 수는 없다. 그래서 당신은 그것을 자세히 살피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구부러진 길은 지금 내가 서있는 곳에 집중하게 만든다. 왜냐면 길이 구부러져서 내 눈앞에 먼곳이 다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직선으로 된 길은 먼 곳에 있는 것까지 다 한꺼번에 눈에 들어온다. 이래서는 나는 지금 내가 있는 곳에 집중하기 보다는 저기 멀리 보이는 어떤 신기한 것에 눈이 가기 쉽다. 그렇게 해서 나는 내 앞에 있는 꽃이라던가 나무라던가 돌같은 것은 대충보고 지나가게 되는 것이다. 대충보고 다 안다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에 결국 나는 쉽게 실증이 나고 정을 붙이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좀 먼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애플 컴퓨터의 제품들은 다 매우 단순하면서도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는데 그 비결도 곡선에 있다고 생각한다. 애플 제품들은 매우 단순한 모양을 가지고 있지만 그냥 단순한 사각형 판이거나 원인 경우가 없다. 그 제품을 보면 어디선가 곡선이 들어가고 선이 나온다. 그 곡선이 애플 제품을 질리지 않게 한다. 





나는 마을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오늘날 바둑판식으로 곧게 배치되어 있는 집들에 익숙하다. 자로 대고 지은듯한 아파트는 말할 것도 없다. 분명히 정해진 면적을 가장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한가지 방법은 그렇게 바둑판식으로 나누는 것일 것이다. 그것은 자동차들이 다니기 쉽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좀 조심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효율적이라는게 뭘까? 우리는 어떤 효율을 말하는 것일까? 


소위 모더니즘 건축은 옛날 장식같은 것을 뺀 단순한 구조를 말한다. 그러나 애플 컴퓨터가 보여주듯이 단순하다는 것이 정말로 사각형이나 원이 되는 것에 그치면 그런 건물은 멋이 없다. 멋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지 모르나 나는 그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것이 내가 공원에서 배운 것이다. 


내가 방문한 공원들 중에는 더 많은 돈을 들여서 만든 더 큰 공원도 우리 집앞의 공원보다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실제로 산책할 맛이 나지 않는다. 공원이 존재하는 한 이유가 산책이라면 곡선미를 생각하지 못한 공원들을 위해 쓴 돈은 돈낭비를 한셈이다. 


집을 생각해 봐도 그렇다. 들어가 오래 살아도 계속 신기하고 정이 가게 되는 집과 일주일만 살면 지겨워져서 집에 들어가기 싫은 집이 있다고 할때 이 두가지 차이가 어떻게 상관없는 일이 될수 있을까?


그런데도 우리는 직선으로 된 것만 잔뜩 만들어 우리를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 속에 빠지게 만든다. 구불구불한 시골길이나 숲길 혹은 오래된 마을의 골목길을 걷고 와서는 기분이 좋다고 기뻐하면서 효율성운운하면서 온통 뻔할뻔자로 직선으로만 그어놓은 환경속에서 살면서 나는 왜 스트레스를 받을까 하고 의구심을 가지는 것이다. 





나는 마을길은 지나치게 넓지 않고 구부러진 쪽이 좋다고 생각한다. 모두 지금 자기 서있는 곳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할때 그 마을은 갑자기 훨씬 더 흥미로운 것이 많이 채워져 있는 곳으로 보일 것이다. 욕심같아서는 아예 길이 좁디 좁고 미로처럼 되어 있는 것도 좋을 것같지만 현실적으로는 그 효율성이란 것과의 타협이 필요할 것이다. 


집도 그렇다. 집이 크건 작건 우리가 사는 집은 숨은 공간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집의 여기저기가 한눈에 모두 들어오는 것은 그렇게 좋은 장점만은 아니다. 일본주택전시장에 구경을 가면 일본사람들은 여기저기 틈새를 만들어 책장을 만든다거나 책상을 짜넣어 공부방을 만든다거나 아이들 놀이방이 되는 비밀의 방을 만들곤 한다. 같은 평수라도 40평 한층인것 보다는 20평2층인쪽이 재미가 있다. 효율성으로 보면 또 다른 이야기가 있을 수 있으나 그런 재미가 주택의 가치를 크게 올려준다고 나는 느낀다. 


우리는 요즘 아파트에 산다. 옛날식 집은 마당이 중앙에 있고 그것을 기억자나 우물정자로 둘러싸는 식이었다. 건물만이 집이 아니다. 중앙의 정원도 중요한 집의 일부로 그 집의 복잡성을 증가시킨다. 아주 간단해서 일직선 초가 한칸이라고 해도 초가에는 집 뒤가 있고 앞이 있다. 이렇게 옛집은 정줄곳이 많았다. 그러나 요즘 간단한 아파트는 참으로 정줄곳이라곤 없다. 그저 잠을 자기 위해 몸을 눕히는 곳이라는 의미정도다. 


구부러진 것은 아름답다. 길도 그렇고 집도 그렇다. 생각해 보니 사람도 그런 것 같다. 너무 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재미가 없다. 효율적이기만 한 사람은 재미가 없다. 괴상한 맛이 있고 모를 데가 있어야 매력이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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