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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명, 뇌, 자아

과학적 객관성과 마음의 이론

by 격암(강국진) 2014.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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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한 과학적 이론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은 객관적 존재를 다루는 것이다. 즉 나에게도 존재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 모두에게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뭐든지 그렇듯이 이런 객관성이란 것도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이런 실험을 생각해 보자. 태양을 오랬동안 쳐다보면 세상이 사라진다는 이론이다. 과학적 설명에 익숙한 우리는 이런 설명은 받아들이지 않겠지만 이 이론은 나름 재현성도 있다. 즉 누가 태양을 바라보건 태양을 오래 바라보면 세상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익숙한 설명은 이렇지 않다. 당신이 실제로 태양을 쳐다본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당신은 결국 당신의 눈을 망칠 것이다. 그래서 세상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것이 과학적 설명이다. 이 설명에 따르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세상은 변화가 없고,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당신의 눈이 태양의 효과로 멀어버리게 됨으로서 세상은 보이지 않게 된다. 

다른 예를 위해 아래의 뮬러 일루샤 환각현상을 생각해 보자. 두개의 긴 선의 길이가 같은데 우리는 눈에는 양쪽끝에 어떻게 짧은 선이 붙어 있는가에 따라 길이가 달라 보인다. 우리는 이것이 환각현상이라는 것을 아는데 알아도 그렇게 보인다. 오직 같은 길이의 자를 움직여 서로 비교해 보면서 우리는 이것이 환각이라는 것을 믿게 된다. 이 현상도 물론 재현성이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자로 길이를 비교한 후에도 한쪽 선이 길어보이고 내가 봐도 길어보이고 당신이 봐도 길어 보인다. 






여기서도 우리는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믿기 힘든 이론을 만들수 있다. 그 이론에 따르면 실제로 두 선의 길이는 다르며 자가 움직이는 동안에 자의 길이가 변한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이런 이론을 믿지 않는다. 이 이론은 정당화하기에 너무나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어서 환각현상이라는 현상에기반하여 온세상의 이론을 다 뒤집어야 한다. 

내가 이런 예를 나열 하는 것은 어떤 것이 객관적인가 아닌가 자체를 결정하는 것이 또한 이론의 일부라는 점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에 기반하여 이론을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뭐가 객관적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것도 이론이다. 이렇다고 할때 과학이론은 객관적인 세계에 대한 것이다라는 주장은 공허해 진다. 우리가 말하는 과학이론이란 어떤 기본적 이론을 이미 받아들인 상태에서 그 위에서 전개한 이론이기 때문에 그 객관성이 분명한 것이다. 물론 우리는 그 기본적 이론에서 쉽게 벗어날수 없고 벗어나서도 안된다. 그랬다가는 우리는 인간세상에서 미친 사람으로 등록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리적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좀 낯설고 아직 이론이 별로 없는 세상에서는 어떨까. 객관성이라는 것이 그리 쉽고 간단하게 정의되어 있을까. 마음에 대한 이론같은 것에서 말이다. 

오늘날 인류가 진지하게 연구 하는 질문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질문중의 하나는 뇌나 의식에 대한 객관적이고 수학적인 이론을 만들어 낼수 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수 많은 사람들이 뇌과학 분야나 심리학 분야에서 실험을 하고 있고 이론을 만든다. 엄청난 돈을 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이런 답에 그리 멀지는 않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뇌과학 이론이나 의식에 대한 이론은 생각처럼 진전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금새 좀비 논쟁같은 철학적 논쟁에 빨려들어가거나 뇌과학 이론에 대한 기초가 없다는 지적에 당황하게 된다. 우리는 이미 마음이나 뇌 의식에 대한 이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뇌에 대해서라면 이미 우리가 모르는 것은 거의 없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신경외과 의사같은 사람들도 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시작도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이론이 있다던가 없다던가 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은 혼동만 있으며 이론이 있다면 혹은 있을 예정이라면 그 이론이 어떤 효과를 줄것이며 어떤 조건하에서 가능한가를 이야기하는 쪽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즉 말이나 자동차가 있을때 혹은 나라나 경찰이 있을때 뭐뭐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그것의 본질내지 핵심 혹은 그 존재에 대한 필요충분조건을 찾으려는 질문을 하지 말고 뭐뭐는 어떤 효과를 가지고 어떤 일을 하는가, 뭐뭐는 어떤 때에 존재가능한가라는 뭐뭐의 존재에 대한 필요조건들을 이야기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설사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도 그정도가 지나치게 야심을 부리지 않는 목표가 아닐까? 

우선 마음에 대한 이론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가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것이 꼭 마음일 필요는 없다. 어떤 다른 존재가 있는데 그것이 이러저러하게 마음이 존재한다는 환각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이론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뉴튼의 중력법칙을 생각해 보자. 거기에는 중요한 두개의 존재가 등장한다. 하나는 질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하나는 질점들이 서로를 당기는 방식에 수학적으로 간단한 법칙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질점에는 부피도 없고 맛도 냄새도 촉감도 색깔도 없다. 물론 중력법칙도 마찬가지로 그런 것에 의존하지 않으며 질점이 가지는 오직하나의 성질인 질량에만 의존할 뿐이다. 

지금은 심리학자도 믿지 않지만 프로이드의 이드니 슈퍼에고니 하는 개념들도 한때는 매우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우리가 그런 개념들을 설정하고 그런 존재들이 서로 밀고 당기면서 우리의 마음을 조절한다는 이론이 그럴듯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세계에 그리도 많은 정신분석학자가 영업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뇌를 열어서 직접 많은 것을 관찰하는 지금 우리는 프로이드의 개념이 애매한 말장난 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사람들은 우리가 확실하다고 믿는 원자도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존재라는 것은 너무 쉽게 잊는다. 양자역학을 써야만 기술할수 있는 원자의 세계에서의 입자들은 유령처럼 그 위치를 정확히 묘사할수 없는 것이며 당연히 색이나 냄새같은 인간의 감각 이전의 존재다. 우리는 그런 것들이 존재한다고 믿지만 그 존재는 그 효과에 의해서 그렇게 믿어지는 것이지 탁자의 존재처럼 손발로 만져서 느껴지는 것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이드나 슈퍼에고는 존재하는 것일까 아닐까. 특히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일까 아닐까.

언젠가 마음의 이론이 만들어 진다면 그리고 그것이 온세상사람에게 받아들여질 정도로 성공적이라면 우리는 뭔가가 원자의 존재처럼 당연하게 객관적으로 존재하는것을 믿게 될것이다. 그러나 그게 무엇이든 실은 그 존재가 그렇게 당연한것은 아닐것이다. 원자처럼 말이다. 단지 그 존재를 믿으면 우리는 인간은 왜 이렇게 느끼고 행동하는가에 대해 지금보다 훨씬 더 간단하고 만족스러운 답을 알게 될 것이다. 아니 알았다고 느껴질 것이다. 

만족스러운 마음의 이론이 나오지 않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가진 형이상학적 이론 즉 과학이전의 이론이 그런 것의 출현을 허용하기에는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일지 모른다. 이것은 역설적인 가능성을 제시하는데 인간은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다가 인간 스스로의 형이상학을 재설계하고 그것을 믿어서 세상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보게 될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친 사람'의 정의도 좀 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마음의 이론의 효과에 대한 내 개인적인 의견은 이미 어느새 자연스레 위에 표현되었다. 나는 마음의 이론이건 의식의 이론이건 뇌의 이론이건 그것들이 결국 해야 하는 역할은 우리의 느낌과 결정과 행동에 대해 더 만족스러운 설명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과학을 이해함으로써 천둥번개에 대한 미신적인 두려움에서 벗어났다. 숲에사는 괴물에 대한 두려움에서도 벗어났다. 그러나 인간은 물론 아직도 많은 것을 두려워 한다. 우리는 다른 인간의 마음을 두려워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도 두려워 한다. 우리는 이런 저런 성격이란 신화를 만들어 내서 세상을 설명한다. 예를 들자면 나는 유혹에 약해, 검둥이는 게을러, 일본인은 야비해 뭐 여자들은 허영심이 많아, 이런 식의 인종적 민족적 성별적 차별들이다. 인간은 끔찍한 짓을 하고 윤리적으로 실패한다. 불행에 빠져서 좌절하며 죽음으로부터의 공포에 떨고 인생의 의미같은 철학적 문제앞에서 어쩔줄을 모른다. 서로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소위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들어 뻔한 재앙으로 달려간다. 

뉴튼의 이론이 수없이 많은 영적인 존재 혹은 유령을 없앴듯이 마음의 이론도 그런 일을 할수 있을 것이며 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 줄 것이며 인간들이 사는 방식을 홀로 사는 측면에서건 같이 사는 측면에서건 전혀 다른 수준으로 올려줄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오늘날의 과학기술문명이란 뉴튼시대 이래로 정교한 수학적 개념들을 만들고 쌓아올려서 만들어진 것이다. 즉 과학이 세상을 보는 눈을 다르게 만들었고 과학이 지금 존재하는 거대하고 정교한 시스템을 만들고 운영할 수 있게 만들었다. 훗날 마음의 이론이란게 등장하면 인간은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를 그 한심하게 원시적으로 살았던 시대로 추억할지 모른다. 인간이 함께 살고 서로를 믿고 자신을 믿는 방식이 전혀 다른 수준으로 올라갈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 시대가 언제 올까? 유감스런 일이지만 그건 아무도 확신 할수 없다. 그러나 나는 그다지 멀지 않은 장래가 아닐까 생각한다. 멀어도 일이백년안에.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이론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세계는 문명적 위기라고 부를 만한 것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원자폭탄이 득실대는 현대에 세계대전은 겪고 싶지 않을 것이고 대공황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마음에 대한 고민이 절실하다면 기술적 발전으로 데이터도 많이 쌓이고 있다면 멀지 않아 돌파구도 열리게 되는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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