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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쓰고 읽기

독서모임, 함께하는 공부에 대한 단상

by 격암(강국진) 2014. 6. 27.

2014.6.27

대학교에 다니던 시절, 나는 독서토론회라는 것을 친구들과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독서모임이란 것에 참석한 적이 없다. 그 주된 이유는 독서모임이란게 많지도 않기에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 하나일 것이고 내가 워낙 사교적으로 사람을 만나는데 시간을 많이 쓰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또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게다가 함께 하는 공부라는 건 원래 그리 쉽지가 않다. 

 

 

 

 

 

내가 생각하기에 독서모임이란 것은 사람과 책에 대한 것이다. 즉 그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서로 친분을 가지고 그 소통에서 즐거움이든 지식이든을 얻겠다는 것이 하나고 또 하나는 당연히 책에서 뭔가를 얻는데 있어서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 여러사람들이 함께 함으로서 효율을 높이겠다는 것이 하나일 것이다. 

 

책이나 공부를 매개로 하되 그 주요 목적이 친목에 있는 모임은 당연히 문제랄 것이 없다. 그런 모임은 기본적으로 즐거우면 된다. 우리는 쉬운 책이나 수필 한 편정도를 읽고 만나서 그걸 대화의 출발점으로 해서 즐거운 자유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읽는 것은 쉬우면 쉬울 수록 좋다. 그래야 자기 이야기를 더 할수 있다. 이런 모임의 이야기에는 무슨 결론이 나야할 이유도 없고 읽어간 것의 내용에 한정해야할 이유도 없다. 독서모임이라고 해놓고는 모임때마다 카페를 물색하거나 맛집을 물색하고 술집을 물색하여 먹고 마시는 것에 더 매력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아무려면 어떤가 즐겁게 한 시절 보내면 된다. 아마 이런 모임의 어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이 모임의 기본성격을 이해하고 욕심 안내고 모임의 성격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일 것이다. 사람이란게 여럿이 모이면 꼭 이런 저런 부질없는 생각으로 일을 만들고 욕심을 내서 즐거움을 망치는 사람이 있다.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예를 들어 지적 허영때문에 좀 더 어려운 책을 읽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허영은 참으로 피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사람들이 모이면 더 그렇다. 

 

그런데 모임의 목적이 좀 더 진지한 공부일 때 즉 어떤 책들을 공부한다던가 누군가의 이론을 공부하는 것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하나의 어려운 책을 읽거나 누군가의 이론을 공부한다는 것은 대개 그 자체가 하나의 연구다. 우리는 마치 세상에 없는 지식을 새로 만들어 내듯이 그들의 말의 의미를 발굴해 내야 한다. 

 

물론 공부중에는 암기과목 시험공부하듯이 그저 줄줄이 외우는 것이 주가 되는 공부도 있다. 어학공부같은 기술적인 지식을 공부하는 경우나 시험준비같은 것을 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외우는 것이 주고 그 의미의 해석에는 별로 이견이 있을 것이 없다. 나는 일단 이런 종류의 공부는 여기서 거론할 생각이 없다. 

 

이런 공부를 제외하면 책을 한권 읽는 것은 내가 연구소에서 어떤 연구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 연구를 하는 것과 그 본질에서 차이가 없고 따라서 공부모임이나 독서모임은 학계에서 말하는 소위 공동연구라고 불리는 것이 된다. 그런데 공동연구는 대개 피할 수 없기에 하게 되는 것이지 그리 간단히 성과를 낼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동연구가 꼭 필요한 때는 주어진 연구가 너무 방대해서 일을 나눠야 하거나, 주어진 연구가 여러가지 전문지식을 요구하는데 그걸 혼자서 다 가진 사람이 없어서 힘을 합쳐야 하는 경우다. 공동연구는 이런 필요에 의해서 하게 되는 것이지만 큰 단점도 있다. 사람들이 모여서 집단안에서 소통하고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많은 댓가를 치뤄야 한다. 

 

그러니까 비슷한 정도의 지식과 비슷한 배경지식을 가진 사람이 공동연구를 하면 돕는 것은 별로 없고 서로 발목을 잡기 일수다. 차라리 자기 혼자서 연구를 해서 정리를 하면 할 것을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된다. 내 경험으로 보면 문화적인 이유의 어려움도 있는 것같다. 유태인들은 한국인이나 일본인과 매우 다르다. 그들은 모여서 공부를 하고, 치열하게 논쟁하면서 답을 찾아가는 기술이 능하다. 

 

그러나 시험기간이 되면 조용한 곳에 가서 혼자 공부하는 한국인과 일본인은 이렇지 않다. 사실은 머릿속에서 이건지 저건지 여러가지를 생각하고 비교해야 할 사람이 서로 만나서 떠들고 불확실한 의견을 입밖으로 내뱉으면 이제 스스로 그걸 굳게 믿는다. 각자가 하루정도 공부하면 각자 더 훌룡한 의견을 낼 사람들이 모여서 떠들면서 답을 찾으면 훨씬 형편없는 의견을 싸워가면서 만들어 내거나 그것에도 실패하고 만다. 

 

만약 앞에서 말한 친목의 독서가 아니고 진지한 독서모임에 가서 의견을 나누고 싶으면 사람들은 모임이 있기전에 자신의 독서소감문을 작성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쓰다가 보면 자기의견에 핵심이 있는지 알게 된다. 자기의 의견과 감상을 글로 써보기 전에는 우리는 자기의 의견이 일관성이 있는 것인지, 뻔한 편견이 있는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 군더더기를 다 떼어내면 요점이랄게 뭐가 남는게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한다. 뒤죽박죽이 된 머리를 가지고 모여서 서로가 서로에게 더 큰 혼란을 일으키는 것은 쉬운 일이다. 

 

바람직하기로는 이렇게 작성된 소감문까지 서로 돌려읽고서 모임을 가지면 더욱 좋을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진짜 진지하게 공부를 하겠다고 하는 모임은 장난처럼 모여서 떠는 것과는 틀리다. 특히 책이 어렵다면 그 정도의 예비단계를 거치고 만나서 말로 의견을 나눠야 생산적인 모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까지 하는 독서모임은 거의 없다. 

 

공동연구는 첫째로 그 공동연구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는 좌장이 있어야 하고 둘째로 그 구성원들이 다양한 전문분야에서 각자의 지식으로 기여할 수 있으며 세째로 가능하면 작은 숫자의 사람들이 하는 경우에만 성공적일 수 있다. 뒤집어 말하면 비슷한 수십명의 사람들이 특별히 누군가가 의견을 정리하는 주도적 인물도 없는 가운데 어려운 책을 읽고 모여서 이러니 저러니 하고 떠들면 그들은 그 책에 대한 이해를 돕는게 아니라 오히려 책의 메세지를 지극히 평범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나서 자기가 그 책을 읽었다고 착각을 하게 만들기 쉽다. 

 

 

물론 그런 모임도 즐거울 수는 있지만 나는 지적인 측면에서 말하자면 오히려 피해를 입는다고 생각한다. 애매한 형태로나마 머릿속에 남아서 유익한 의견으로 발전해 가려고 하는 생각을 수 없이 많은 잡음이 들어간 의견으로 손상시키는 것이다.  그럴거면 차라리 책을 한번 더 읽는게 훨씬 더 바람직하다. 사람들은 모여서 의견을 나누면 정해진 시간안에 이건지 저건지 결론을 내려고 하고 말싸움에 이긴 사람이 옳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재치있는 말싸움에 이기는 사람이 반드시 가장 지적이고 가치있는 것을 아는 사람인 것은 아니다. 그 책을 아는 것과 그 책에 대한 퀴즈대회에서 성적이 좋은 것은 서로 다르다. 전문가가 몇년이나 연구하며 읽고서 제가 아는 것은 별로 없지만이라고 말하며 소개하는 책을 후다닥 읽어치우고 별거없구만 하고 말하는 사람들사이에 끼어있다면 우리는 거기서 도망나와야 한다. 

 

책이란 엄밀히 말해 어떤 것도 다 읽을 수가 없다. 자신이 알고 있는 바에 따라 그 책의 의미는 달라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저자도 알지 못하는 의미를 독자가 발견하게 되는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어려운 책들을 후다닥 읽고 서둘러 또다른 어려운 명저로 뛰어가는 사람, 올해는 그런 명저를 백권쯤 읽겠다고 하는 사람을 보면 나는 묻고 싶다. 다 읽었다는게 무슨 뜻인가. 많은 책들은 세계적인 기준에서 능력있고 경험있는 사람의 평생의 지혜를 한권에 녹여넣은 것이다. 뭘 알았다는 것인가. 

 

나를 포함해서 사람은 허영에 빠지기 쉽다. 혼자서는 천천히 조깅하는 속력으로 운동할 사람이 남과 함께 뛰면 갑자기 평소보다 배나 빨리 뛰면서 무리한 페이스로 뛰어가게 되는 일은 흔하다. 일단 할 수 있으니까. 그러다가 다들 죽도록 뛰게 되고 운동이 되는게 아니라 몸에 무리가 되는 수준이 되도 다들 웃는 낯으로 역시 뛰니까 좋아요, 다음번에는 더 빨리 뛰어볼까요라고 말하는 것은 나중에 보면 희극적인 장면이 된다. 거기서 빨리 뛰는 사람은 그 그룹에서는 대단한 사람으로 여겨질지 모르나 시간이 지나면 그게 다 허영이었고 시간낭비였으며 코메디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허영이라는 피하기 힘든 함정을 피하지 못하면 독서모임이란 것도 이렇게 되기 쉽다. 

 

여기도 정도문제가 있고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이름은 함께하는 공부고 독서모임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어떤 한 사람에게 나머지 멤버가 배우는 모임인 경우다. 이것은 서로 대화와 의견을 나누지만 기본적으로 강사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자기의 의견을 말하고 나머지는 그것을 배우는 모임이다. 분야별로 다른 멤버가 다른 주제에 대해서 강사의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다면 이것은 공동연구가 아니다. 그렇다면 위에서 내가 말한 문제는 별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공부하는 존재다. 우리 삶의 핵심은 공부인 것이다. 물론 공부가 뭘 말하는가에 따라 다른 문제지만 우리 삶의 핵심은 공부라고 표현될 수도 있다. 이런 문맥에서 말하자면 우리는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서 먹고  직장을 구하고 돈을 버는 것이지 돈을 벌기 위해서 먹기위해서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게 아니다. 

 

우리는 모두 행복해 지고 싶지만 행복이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애매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배우며 성장하고 그러는 가운데 행복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돈이 좋고 출세가 좋고 맛있는 것을 먹는 경험이 좋은 것도 따지고 보면 그게 다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좋은 것이다. 이런 것을 잊으면 나중에는 수단이 목적이 되어 돈벌고 출세하느라, 탐욕에 가까운 식욕이나 허영때문에 좋은 것을 느끼는 능력이 사라지고 말 수 있다. 그러게 되면 느끼는게 없고 배우는게 없으니 사는 게 의미가 없고 행복따위는 꿈꿀 수도 없다. 

 

즐겁게 한 세상 살기 위해, 더 잘 배우기 위해 우리는 이런 저런 모임을 이용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렇듯 조심스레 생각하지 않고 욕심안내고 그것을 하지 않는다면 뭘 얻기는 커녕 손해나 보기 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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