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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살고 싶은 마을

살기좋은 마을의 구조

by 격암(강국진) 2016. 5. 28.

얼마전에 농소마을의 사진들을 정리하다가 구조가 좋은 마을이란 어떤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나니 그것에 대해 몇마디 더 써두고 싶어진다. 


좋다라는 것은 어떤 기준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그 기준은 내가 누구인가라는 것에 따라 또 달라진다. 예를 들어 요즘은 집들이 바둑판 구조를 가지고 늘어서 있을 때가 많다. 그런 구조는 차량통행이 원활하고 토지의 활용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토지의 활용이 좋다는 말은 각각의 집이 네모난 공간을 최대한 크게 소유한다는 뜻이다. 빵을 잘라먹듯이 전체 토지를 손실없이 제일 잘 잘라서 소유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사실 이런 구조의 마을은 마치 거대한 캠핑장같다. 내가 캠핑할 자리에 아주 쉽게 갈 수 있으며 내 텐트를 칠 자리가 크고 넓기는 하지만 도무지 산책할 기분이 들지 않는 마을이다. 산책이 뭐가 중요하냐 결국 좋은 마을이란 내 집이 멋진 마을이 아닌가 하고 말하겠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잠시 멈춰야 한다. 그리고 물어야 한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 말을 왜하냐면 아주 많은 한국인들은 실상 집을 그저 드라큐라의 관처럼 들어가 잠이나 자는 장소로 밖에는 사용하지 않으며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긴 노동시간으로 집에 붙어 있는 시간 자체가 작지만 집에 있어도 집밖에 나가본다던가 집에서 뭔가를 한다는 생각은 없이 그저 잠을 자거나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볼 뿐이다. 시간이 있으면 나가서 술을 마시거나 음식점이나 카페에 간다. 이런 사람에게 좋은 집이나 좋은 마을이 의미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상황이 이런 것은 아니고 또 세상은 변하고 있다. 한국인들의 여가시간도 길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풍요속에 빈곤이 존재하여 사람들은 더 좋은 시간을 더 싸게 보내고 싶어하니 자기 집에서 그렇게 할 방법을 찾는다. 예를 들어 그저 물만 먹으면 가장 싸겠지만 비싼 커피숍에 가는 것보다 집에서 홈카페를 차려놓고 싸게 커피를 즐길 방법을 찾는 식이다. 또 나이가 들어서 은퇴한 사람들은 집이 단순히 잠만 자고 티브이나 보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 식이라면 은퇴자들은 하루 종일 잠이나 자고 티비나 봐야 할 판이니까 말이다. 요즘 인테리어나 리모델링에 관심이 늘어나는 이유 중하나는 집에서 더 좋은 시간을 가지겠다는 생각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제 집과 마을은 카페나 리조트의 호텔처럼 더 머무르고 싶은 공간이 되어야 한다. 제주도같은 곳에 가서 살지 않는다고 해도 집과 마을이 그런 분위기를 풍겨줄 수 있기를 우리는 점점 더 바라게 된다. 그렇다면 왜 산책하기 좋은 마을이 좋은 가는 분명하다. 마을의 길이 내 정원같다고 할 때 그 마을에 사는 기쁨은 아주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산 자락에 사는 사람들은 산이 가까운 것에 큰 기쁨을 누리지만 언제나 산자락이나 국립공원옆에 주택단지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정도는 아니더라도 우리 마을 자체가 공원같기를 우리는 바라게 된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다르게 표현하면 바로 산책하기 좋은 마을이 좋다라는 말이 되는 것이다. 


산책하기 좋은 마을이란 바둑판구조를 가진 마을이 아니다. 흥미로운 길들은 대개 곡선을 가지고 있다.  곡선으로 구부러진 길은 지금 있는 곳에 우리가 집중할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저 모퉁이를 돌면 어떤 풍경이 나올까 궁금하게 만들어 준다. 크고 널찍하게 바둑판으로 길을 만들고 집들도 널찍하게 토지를 차지한 주택단지는 집들이 아무리 멋져도 별로 산책하고 싶은 유혹이 느껴지지 않는다. 한눈에 마을 전체의 모습이 다들어 오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아무 신비함이 없달까. 좋은 구조를 가진 마을이란 전체를 볼 수 있는 전망을 가진 곳이 있어도 좋지만 대부분의 장소에서는 각각의 집들이 마치 숨겨진 비밀기지 같이 느껴져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집들이 너무 높아서는 안된다. 각각의 집들이 아늑하고 숨겨진 장소처럼 느껴지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집들이 답답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집에서 고개를 들어서 하늘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갇힌 것처럼 느낄 것이다. 


하늘이 보이는 것은 길의 폭이 얼마나 넓은지 집들이 얼마나 높은지 그리고 길들이 어떻게 뻗어있는지에 달려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구부러진 길이라면 길의 폭이 넓던가 아니면 집들이 나즈막한 집이어야 한다. 또한 담도 중요하다. 길가로 가까이에 서게 되는 담은 없던가 낮아야 갇힌 느낌이 나지 않을 것이다.  


마을에는 여기저기 앉을 수 있는 곳이 있는 것이 좋다. 우리는 걷다가 남의 집 대문앞에 있는 평상에 잠깐 앉아 보거나 작은 놀이기구 옆의 의자나 화단의 턱에 앉고 싶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설사 우리 자신이 앉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해도 그렇게 밖에 나와서 앉아 있는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혹은 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다면 그 마을에 사는 것이 훨씬 더 안정감있게 느껴질 것이다.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사는 것보다는 인사라도 한 번 나눈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이 좋다. 


전원주택을 짓는 주택단지들을 보면 엄청나게 큰 집들을 지어서는 각자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실 집들은 그보다 작아도 되고 마을 회관같이 공동의 공간이 있으면 훨씬 생활의 질이 올라갈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공동식당을 운영하는 타운하우스나 공동의 휴식공간이 있는 공동주택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각자의 집을 통해 개인적인 공간을 가지면서도 공동의 공간이 있어서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다면 소통도 진작되고 흥미있는 일도 많이 할 수 있을 것이며 운영하기에 따라 생활의 만족도도 크게 높아질 것이다. 


이런 것은 나의 괴상한 취향이랄 것은 없고 내가 보기엔 매우 상식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 상식은 우리들의 욕망에 의해 크게 부정당해왔다. 현실의 한국을 보면 높다란 아파트의 숲이 사방을 채우고 있거나 멋없이 바둑판식으로 토지를 나눠서 각자의 성을 만든 주택단지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된 이유중 하나는 부동산이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의미보다는 상품이라는 의미가 워낙 강조되었기 때문이다. 즉 배타적 소유만 강조되었다. 그러니까 공유하는 것은 되도록 분해해서 각자 소유하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공공의 삶을 파괴하는 것을 우리는 개발이라고 불러왔다. 그 결과 물론 좋아진 것도 있겠지만 한편으로 보면 닭장같은 곳에서 우굴거리면서 살게 되었다. 그리고 높아진 주거비를 내기 위해 또는 비싼 주택 융자를 갚기 위해 우리는 밤이고 낮이고 일터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면 역설적이게 집이 안 중요해 졌다. 집이란 그저 들어가 잠을 잔다는 의미밖에 없다. 


이래도 좋은 것일까? 어떤 게 좋은 집인지 어떤 게 좋은 마을인지를 고민한다는 것은 결국 우리는 누구인가를 고민하는 일이 된다. 우리는 역시 우리가 뭐하는 사람인지 계속 고민해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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