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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대학에 대하여

직업과 4차산업혁명

by 격암(강국진) 2016. 10. 9.

직업과 4차산업혁명

 

인공지능이며 4차산업혁명이야기가 나오면 사람들은 앞으로 어떤 직업이 없어질 것인가에 주로 주목 한다. 그래서 세상에는 사라지는 직업들이라는 제목의 리스트가 여러번 등장했는데 사람들은 사라지는 직업의 목록에 자신의 직업이 없으면 그나마 안심을 하는 것같다. 이런 식의 관점때문인지 직업의 미래에 대해 상대적으로 덜 이야기가 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직업의 전반적 의미다. 미래에도 이런 저런 일은 사람이 하게 될거라는 말이 그런 직업이 지금과 같은 형태로 남아 있게 될거라는 뜻은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모든 직업이 사라질 것이며 우리는 대개 지금의 관점에서는 자영업자나 프리랜서처럼 살게 될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 이유는 지극히 당연하며 이미 어느 정도 현실화 된 것이다. 아직도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에 불안해 하고 슬퍼하는 사람도 있으며 그런 불안은 당연히 자연스러운 것이기는 하지만 불안한 마음을 누르고 세상을 그냥 객관적으로 보면 요즘에는 애초에 그런게 있을 수가 없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는 10년후를 예측하지 못한다. 지금 전세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제품은 아마도 스마트폰일 것이다. 주가총액으로 미국증시에서 1등을 하는 기업 애플이 파는 제품이 바로 스마트폰이다. 그런데 그 아이폰 1세대가 나온 것이 2007년이며 삼성이 갤럭시를 내놓은 것은 2009년이었다. 지난 9년동안 세상은 크게 바뀌었고 스티브 잡스는 화려하게 활동하다가 죽었으며 그 스마트폰이 이미 더이상 새로운 것이 아니라서 새로운 산업을 찾아야 한다고 하는 판이다.

 

지금도 세상이 예측불가인데 추세로 보면 앞으로는 더 그럴 것이며 통상 4차산업혁명이라고 말해지는 망의 강화가 더 일어나면 어느 정도까지 미래가 예측불가능해질지도 예측이 안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지와 혹은 예측불가능성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혀야 한다. 이 말이야 말로 요즘 시대에 거듭나오는 말이다. 우리는 우리가 뭘 모르는지 모른다. 우리는 그런 상태에서 살아가는 법을 고민하고 익혀야 한다. 뭘 안다는 가정하에 최적화시킨 계획은 작게는 당신의 인생을 크게는 한 나라를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예측불가능성의 자명한 결론중의 하나는 누군가를 고용할 때 혹은 반대로 고용자와 누군가가 고용계약을 할 때 우리는 쉽게 30년짜리 계약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도대체 그게 무슨 뜻일지 알고 그런 계약을 하겠는가? 이 사람이 10년후에 회사에 무슨 쓸모가 있을지 알고 자리 보장을 해주겠으며 20년후에 이 회사가 있기나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회사가 나중에 주겠다는 혜택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시장과 사회로부터의 요구는 예측불가능하게 쏟아져 들어오니 생길 수 있는 최대 수요로 인력을 충원하면 그 예측이 틀리게 될 때 회사는 망할 것이고 그렇다고 최저 수요로 인력을 충원하면 세상으로부터의 요구에 답하지 못해서 모처럼의 좋은 기회가 날아가 버릴 것이다.

 

사실 4차산업혁명의 핵심은 사회의 모든 분야에 있어서의 요구들을 빠르게 파악하고 빠르게 해결하는 것이다. 트럭을 만드는 미국의 GE는 자신을 소프트웨어 회사라고 부른다고 한다. 스마트한 중장비는 자동차에 관련된 모든 상황을 중앙에 알리고 그에 맞춰서 관리하게 된다. 예를 들어 자동차에 문제가 생길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점검에 들어가는 것이고 이렇게 해서 공사가 차량고장으로 중단되는 일을 막아서 손실을 줄이는 것이다.

 

이것이 자동차의 미래만은 아닐 것은 뻔하다. 프로젝트 매니저가 새로운 프로젝트에 필요한 인력들을 그때 그때 충원하고 프로젝트가 끝나면 팀이 해산되는 일은 지금도 있지 않은가. 여기에 인공지능이 첨가되는 미래에는 어떤 식으로 세상이 돌아갈까? 이런 때에 고정된 자리에서 고정된 역할을 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점점 시대에 뒤진 사람이 되지 않을까?

 

세상이 빨리 변한다는 것은 통상 대학을 졸업하는 수준까지 교육을 받고 그 다음은 죽을 때까지 기본적으로 같은 직업활동을 지속적으로 한다는 패러다임이 깨져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지금도 사람들은 기업안에서 공부하는데 시간쓰는 일이 많지만 결국은 일을 하고 중간 중간에 다시 공부해서 자기 직업활동을 재조정하는 삶으로 가지 않을 수 없다. 직장과 교육을 병행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일만 하느라 자기 지식과 삶을 소모적으로 쓰면서 살 경우 얼마가지 않아 문제가 생긴다. 물론 그래서 이제까지도 회사가 인재를 들여와서 일은 안시키고 공부를 시키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유학까지 보내주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예측불가능성을 생각해보라. 회사가 뭐가 회사에 도움이 될지 알고 공부를 시킨다는 말인가. 설사 비싸더라도 그때 그때 필요한 인재를 고용할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우리는 꼭 필요한 여담을 해야한다. 바로 한국의 비정규직 이야기다. 한국에서는 비정규직을 능력이 부족하여 같은 일을 해도 돈을 훨씬 못받으며 직업적 안정성도 없는 불쌍한 사람들 정도로 여기고 있지만 이러한 사회적 인식은 한국에게 큰 피해만 입히고 있고 앞으로 더욱 그럴 것이다.

 

왜냐면 사실 그 반대여야 하고 앞으로는 더욱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의 임금수준이 당연히 정규직보다 더 높아야 한다. 회사는 어떤 직원을 정규직으로 가지기 위해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있다. 그리고 그 비용은 앞에서 말한대로 세상이 예측불가능해질 수록 날로 엄청나게 커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때 그때 필요할 때 고용하고 상대적으로 해고가 쉬운 비정규직은 임금수준이 높아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현재의 상황은 정규직을 가진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질 않는다. 왜냐면 회사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이라면 사력을 다해 정규직을 뽑지 않으려고 할 것이며 기존의 정규직원들은 점점 더 무슨 도둑놈처럼 취급받게 될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정규직이라는 노동시장이 열악하게 남아 있다는 것은 정규직에서 밀려나는 것을 곧 죽는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으로 만든다. 하나의 정규직을 그만두면 다시는 정규직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비정규직이 되니까 말이다. 정규직 급여가 아무리 낮아도 비정규직 급여가 그보다 더 적다면 무조건 회사에 매달려야 할 판이다. 회사는 오히려 거액을 지불하더라도 정규직에 있는 사람에게 퇴직을 권유한다. 이렇게해서 회사는 회사대로 효율이 안생기고 노동자도 드럽고 치사해도버티면서 살아야 하는 그런 상황으로 간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동안 사회는 더더욱 변해서 그 사람은 회사밖에서는 적응이 불가능한 사람으로 변하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임금의 적정수준이 어디인가라던가 직업과 관련된 보장제도들이 어느정도까지 잘되어 있는가와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시장논리가 전반적 임금수준이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차이를 만드는 것이지 누군가의 억지조정이 그렇게 하는게 아니라고 말할 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은 자유시장이라는 게 정말 있다는 환상에 빠져있다. 현실은 어떤 자연의 법칙같은 시장의 법칙이 만드는게 아니라 사람이 만든 게임의 법칙에 따라 생겨나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그 게임의 법칙이 결론적으로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월급수준이 낮은 사회를 만든다면 잘못된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큰 시장의 법칙때문에 망할 거라는 이야기다. 노동자와 기업이 서로의 발목을 잡는 동안 한국의 경쟁력이 떨어지면 다 같이 망하는거 아니겠는가. 다른 나라가 산업혁명으로 발전하는 동안 우리는 계속 농업사회유지해도 정말 상관없을까? 이런건 시장의 법칙이 아닌가?

 

프리랜서의 삶이란 지금 우리의 관점에서는 뿌리없이 떠도는 불안한 것으로 보이며 분명 그런 지적에는 현재의 시점에서 진실이 들어 있다. 하지만 과거를 돌아보면 현대인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묘한 것이다. 우리는 요즘 취업을 하는것에 익숙하지만 한때 사람들은 토지를 떠나 도시로 가서 취업을 하는 것을 바로 뿌리없이 떠도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 사람들은 미래에는 몇퍼센트의 사람만 농업에 종사하면 충분한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으며 농업이 가장 인기있는 직종이 되지는 못할거라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 자신을 산업혁명이전에 농사짓던 사람들처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농사짓는 것이 시대에 뒤졌다거나 지금 농사를 짓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직장을 가진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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