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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남에게 실망하기

by 격암(강국진) 2016. 10. 24.

16.10.24

우리는 때로 타인에게 실망한다. 친구에게 실망하고 가족에게 실망하고 정치가에게 실망하며 일반론적으로 한국인이라던가 일본인이라던가 미국인들에게 실망하며 나아가 아예 인간에게 실망이 들 때도 있다. 실망을 한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 그리고 해석에 따라 여러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가 타인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지독한 짓 중의 하나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에게도 지독한 짓이 된다. 

 

예를 들어 어떤 괜찮아 보이는 선생님이 있다고 하자. 그러면 그 선생님이 나를 괜찮게 평가해 주기를 우리는 바란다. 그런 평가가 나도 그리 나쁜 사람, 나쁜 학생은 아니라는 느낌을 가지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날 선생님이 만약 너는 참 안되겠구나 하는 표정을 나에게 지어 보인다던가 아예 흥분해서 너는 싹수가 틀렸다, 도저히 안되겠구나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어떤 기분이 들까.

 

따지고 보면 좋아하는 이성에서 친구나 선배나 부모나 선생님들에게 이런 경험을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아마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곰곰히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살면서 여러가지 일을 경험하게 되지만 그런 경험이 참으로 뼈아프고 슬픈 경험이었다는 것을, 아주 길게 영향을 주는 경험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오죽하면 옛 말에도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는 말이 있겠는가. 

 

사실 선비던 여자던 상관없다. 인간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고마워한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우리는 바로 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때문에 마음 졸이는 수 많은 사람들을 본다. 직장상사나 교수님이 그저 '여 이거 굉장히 좋은데'라고 한마디 해주면 갑자기 세상이 확 달라보이는 사람이 한둘이겠는가. 만냥 빚을 말한마디로 갚는다지만 그저 진심어리게 칭찬 한마디 한 것이 나의 엄청 큰 단점을 가려주고 반대로 생각없이 한마디 한 것이 평생의 적을 만들어 내기도 하는 이유는 우리가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말이다. 누군가에게 실망한다는 것은 너는 이제 중요하지 않으며 네가 뭘하든 나는 상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실망한다는 것은 비록 직접 말로 하지 않아도 언행에서 들어나는 법이고 이런 메세지를 상대방에게 퍼붓고 있는 것이다. 타인은 그 모습에서 상처입는다. 살다보면 기대치라는 것도 있는 법이고 평가를 하지 않을 수없는 상황에도 드는 법이라 그런 상황을 피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되도록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다. 

 

사실 우리의 평가란 우리의 생각이나 우리의 평가를 받는 사람들이 믿는 것보다 훨씬 정확성이 떨어진다. 우리는 누가 인재인지 알아볼 수 있다고 믿으며 어떤 사람들은 저 분이 나를 평가해 주셨으니 나는 괜찮은 사람일거야라고 생각하지만 인간의 삶은 워낙 예측 불가능하다. 미래를 예언한다는 측면에서 우리의 평가란 영 신통찮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본래 말수가 많지 않으신 분이셨고 남의 부탁은 들어주지만 다른 사람에게 난 당신에게 실망했소라고 말하지 않는 분이셨다. 그 덕분에 어머니는 굉장히 답답해 하셨고 사람이 냉정하게 맺고 끊는 것이 있어야 하며 차가운 말도 할 때는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었다. 하지만 덕분에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들인 나는 그 분이 사셨던 평생동안 한번도 난 너에게 실망했다는 표정을 본 적이 없다. 나는 그런 기억이 전혀 없다. 사실 사람이 어떻게 실망을 한 번도 안 할 수가 있겠는가. 그게 누구라 해도 부모는 실망하는 일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기대치라는 것이 있으니까. 그 분에게도 때로 내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분은 용케 그런 내색을 한 번도 하지 않으셨다. 

 

나이가 들어보니 그게 나에게는 굉장히 소중한 자산이며 내가 내 자식들에게는 결코 주지 못하는 선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그런 선물을 자식에게 주기에는 너무 자식과 가깝고 너무 보고 들은게 많으며 너무 시시비비를 따진다. 안 속는 것도 아니면서 자식의 속임수를 알아차릴 만큼 눈치도 좋다. 그러니 말로 안색으로 나의 실망을 폭로하게 되는 일이 많다. 

 

남에게 실망하는 일은 좋은 일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과나 미래에 상관없이 오직 모를 뿐이라는 말을 붙들고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미래는 모르는 것이다. 안다라고 하는 우리의 느낌은 거의 언제나 과장되어져 있다. 실망의 감정이 나와 타인에게 죄짓게 되는 일이 조금이라도 줄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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