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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 에세이들/철학이 있는 집

철학이 있는 집 4 : 기억과 의미가 있는 집

by 격암(강국진) 2017. 2. 14.


본 아이덴티티, 메멘토, 내 머리속의 지우개, 첫 키스만 50번째, 이터널 썬샤인, 럭키. 이 것들은 모두 기억에 문제가 생긴 주인공들을 가진 영화나 드라마다. 나라는 것은 어쩌면 나의 기억이라는 말과 거의 같은 말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기억상실을 주제로 하는 많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이것을 목격한다. 자기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나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들은 자기가 누구인지에 대해 혼란을 일으키고 자연히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 또 어떤 행위가 자기에게 해로운 것이고 어떤 행위가 자기에게 이로운 것인지를 알지 못 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의 기억이 무엇인지, 우리의 기억이 어떻게 보존되는지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집이 이런 측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즉 우리가 우리의 기억을 소홀히 다룸으로해서 우리 자신조차 상실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 측면에서 오늘날 집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기억을 보존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당연히 집뿐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사진이나 비디오를 찍을 수도 있으며 글쓰기와 독서도 기억을 보존하는 훌룡한 방법들이다. 우리는 글을 써서 그때 그때의 자기를 기록에 남길 수 있고 나중에라도 자기가 누구인지에 대해 혼돈스러울 때 그 글들로 돌아가서 다시 잃어버린 자기를 찾을 수 있다. 또 우리는 옛날에 읽었던 책들을 뒤적이면서 조용히 과거에 그 책들에 감동했었던 자기를 다시 돌아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억들은 대개 개인적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건물이나 동네 골목도 우리의 기억을 만들어 내고 보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특히 여러 사람의 공동의 기억일 때 그렇다. 오늘날의 젊은 한국인들은 불행하게도 고향이 없는 경우가 많지만 아직 고향이라고 말할 만한 것이 남아있는 행운아인 사람들은 태어나고 자라난 고향의 골목길을 걸을 때 많은 기억을 되살리게 된다. 적어도 그 고향에서 함께 살던 사람들에게 그 지역의 모습은 엄청난 의미가 있다.


한국 사회의 큰 불행중의 하나는 기억의 소중함이란 것을 오랜동안 잊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기억을 파괴함으로써 우리가 더 부자가 된다고 믿었다. 낡은 동네를 싹 밀어버리고 새로운 건물을 지으면 모두가 부자가 된다는 것이다. 공공의 소유를 줄이고 그것을 확실히 나눠서 각자 개인적으로 소유하면 우리는 모두 부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조금만 지나쳐도 내 뇌를 팔면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하는 식의 어리석은 생각이 된다. 뇌가 없으면 더이상 나는 내가 아니다. 그러니 돈을 번다고 해도 그건 내가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미 죽고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과거의 기억을 없애고 파괴할 때, 새로운 기억이 생길 수 있는 가능성들을 파괴할 때 우리는 우리의 중요한 자산들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공동체는 그 지역의 기억과 함께 살아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기억이 파괴될 때 우리는 우리의 특성, 우리와 지역공동체와의 연결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면에서는 부자가 될지라도 어떤 면으로는 점점 더 가난해 진다.


이것이 지나치게 되면 우리는 마치 사탕을 준다는 낯선 사람을 쫒아가는 어린 아이처럼 되게 된다. 나는 가족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가족은 또한 오랜 시간을 나와 보냈기 때문에 나를 더 신뢰하는 면이 있다. 이런 것들은 금전으로 쉽게 환산되는 것은 아니지만 당연히 큰 가치가 있는 것인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사탕하나에 가족을 잊어버린 아이의 미래는 어떻게 되겠는가? 잠시 잠깐은 사탕의 달콤함에 취하겠지만 그 아이는 금방 매우 고달픈 인생을 살게 되기 쉽다. 왜 그 아이의 인생이 고달플까? 그 아이는 다른 사람에게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혼자가 된 아이는 속기 쉽기 때문이다. 의미와 관계란 새롭게 만들어 질 수도 있지만 그 일은 절대 쉬운 것은 아니다. 그 아이는 이 점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현대에서 더 큰 보편적 시장을 추구하는 자본주의는 무서운 힘으로 과거의 기억과 새로운 기억의 가능성을 파괴하고 있다. 망의 시대는 기본적으로 풍요롭다. 엄청난 망은 언제나 우리가 원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값싸게 구해준다. 클릭 몇번이면 지구반대편에서 만들어진 물건이 나에게 배송되어져 온다. 향신료를 구하겠다고 콜롬부스에게 대상단을 꾸려주고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했었던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은 오늘날의 현실을 믿을 수가 없을 것이다이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쉽고 빠르게 구할 있다


그러나 인간들의 발명이 거듭해서 보여주듯이 강력하고 편하고 빠른 것은 좋은 것이면서 동시에 엄청 해로운 것이다. 망의 시대란 풍요롭고 편리한 것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우리의 정체성을 해체한다나의 정체성이란 결국 내가 세상과 가지는 관계들이고 내가 이 세상에서 맡고 있는 역할들이다그런데 빠른 정보기술은 우리의 관계들을 해체한다. 사회가 해체되고 가족이 해체된다. 왜냐면 그런 것들이 존재했던 첫번째 이유는 우리가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인데 망의 강력한 능력은 우리가 더이상 서로에게 의존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부모가 만들어 준 식사를 먹어 본 적이 없다면 가정의 맛이라는 기억이 생겨나질 않는다. 공부는 의례 학원에 가서 하는 것이고 놀이도 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이라기 보다는 의례 어떤 캠프에 참가하거나 어떤 패키지 상품의 스케줄에 따라 하는 것이 된다면 개인적인 기억이 생겨날 가능성은 줄어들게 된다.  그렇게 해서 부모와 자식은 모두 가족이라는 집단내에서 자기 역할을 잃어버리게 되고 서로가 서로의 의미를 알지 못하게 될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자기도 자기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게 된다. 


보편화, 평준화의 힘은 우리를 무력하게 만든다. 우리의 의미, 정체성, 직업은 모두 우리의 특수성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우리 주변의 불규칙한 지형적, 사회적 모습에 적응하면서 자신의 직업을 구하고 자신의 의미를 획득한다. 그런 것들이 모두 사라지고 당신이 그저 보편적이기만 하다면 당신은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니다당신이 만약 한국어 교사인데 전세계가 갑자기 영어만 쓴다면 당신의 직업은 쓸모가 없어질 것이다. 당신이 민속촌 직원인데 한국에 디즈니랜드나 라스베가스식 카지노만 가득하다면 그것도 마찬가지다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높은 실업률의 한가지 이유도 결국 한국이 보편화, 평준화됨으로해서 다양성이 축소됨으로 해서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 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해체되는 것은 사회적 관계나 개인의 정체성뿐만이 아니다. 집도 해체된다. 서양에는 커다란 성들이 많이 남아 있고 한국에도 부자 양반 가문의 커다란 수십칸짜리 집들이 남아 있다. 옛날에는  안에서 주인가족과 함께 하인이나 노비등 많은 사람들이 같이 살았다. 요즘에는 전만큼 부자가 없어서 그런 집들이 옛날 스타일로 잊혀지게 것이 아니다. 옛날에는 그런 집들은 존재할 이유가 있었다. 그것들은 일종의 하나의 작은 자급자족하는 공동체로서 존재했고 시장의 기능이 약했던 과거에는 그것이 생활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를 했다. 그것은 지금으로 말하자면 하나의 집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마을이었고 소비를 하는 동시에 생산을 하는 장소였다.  그리고 그러한 기능들은 많은 기억들을 생산해 내서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만들었다.


그런데 대저택의 기능은 해체되었다. 우리는 이제  파편들을 레스토랑이나 호텔에서 본다. 서양의 호텔이 가지는 모습은 바로 서구의 옛날 대저택에서 손님을 맞이하던 모습을 그대로 본딴 것이다. 오늘날에는 설사 성을 소유할 정도의 능력이 된다고 해도 그렇게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필요할 호텔을 빌리고 레스토랑을 빌리면 되기 때문이다. 대저택은 해체되고 그것이 하던 기능들은 소위 아웃소싱을 통해 바깥에서 구하게 것이다

 



스페인의

 

이러한 집의 기능의 해체는 앞으로도 더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가까운 미래에 적어도 우리 중의 일부에게는 집이란 그저 관만한 크기의 상자이며 그것은 그저 잠을 자고 일어나는 장소라는 의미밖에는 가지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해체의 궁극에서 우리는 전혀 아무런 기억도 발생시키지 않는 쓸쓸한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을 상상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것은 우리가 모든 것을 바깥에서 구매하여 소비하고 그것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생활이다. 즉 개인적인 인간관계가 발생하는 양이 한없이 작아진다. 집과 마을의 해체는 과거의 기억이 사라지는 것일 뿐만 아니라 생길 수도 있었던 기억들의 상실을 의미한다. 이런 방향으로의 변화가 계속 되면 우리는 한없이 위태로운 정체성을 가진 인간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자동차가 발명되었다고 해서 우리가 전혀 걷지 않는 것이 자명한 미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집의 해체가 일어나 왔고 앞으로도 더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은 우리의 운명을 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러한 문명의 독에 맞서 싸워야 하는 이유를 말하기 위한 것이다. 즉 우리는 집으로 하여금 관계와 기억을 만들어 내는 기능을 가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런 목적을 달성할 수가 있을까? 거기에는 여러가지 수단이 있을 것이고 내가 다른 곳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몇가지는 쉽게 나열 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집은 시간에 따라 나이를 먹고 변해가는 부분이 있는 것이 바람직 하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나무다. 나무 한그루 심었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집앞에 심어져 있는 나무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라날 나무는 집이 나이를 먹는 것을 측정해 주는 기준이 된다뿐만 아니라 집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집으로 만들어 준다. 크고 아름다운 느티나무 옆집이란 세상에 있는 무수히 똑같은 집중의 하나가 될 수 없다. 모든 나무는 서로 다르기 때문이고 나무가 성장할 옆에서 살았던 것이 우리이기 때문이다. 요즘 집에 대해 말할 자연 환경을 강조하는 일이 많은 우리는 자연을 우리의 정체성의 일부로 보는 일도 필요하다


또 남이 완벽하게 꾸며준 집은 좋지가 않다그보다는 적어도 집의 일부는 거주자가 바꾸고 꾸민 집이 좋다. 그런 집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거주자와 단단한 관계를 가지게 된다그런 일을 가족들이 함께 한다면 그것은 좋은 기억으로 남기도 할 것이다. 사실 요즘에는 사람들이 점점 더 나만의 집을 꾸미는데 주목하고 있다. 집구조의 부분적 변경이나 인테리어 변경을 통해 자기를 나타낼 있는 집을 만드는 것이다. 해체의 힘이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둘째로 우리는 집의 기능, 가정의 기능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금전적으로는 낭비처럼 보여도 말이다. 요즘에는 도시에 사는 사람도 텃밭을 가꾸는 사람이 꽤 많이 보인다. 도시 농업은 그런 농사가 더 수익이 남기 때문에 하는 것은 아니다. 생산물에 대한 신뢰 문제도 있지만 다른 무엇보다 도시 농업은 그런 농사를 짓는 행위가 우리의 심신에 좋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외식이 더 싸고 간편하다고 해도 집에서 같이 식사를 준비하고 먹는 행위는 의미를 가진다. 학원선생님이 더 잘 가르쳐 준다고 해도 부모에게 뭔가를 직접 배우는 일은 가족에게 새로운 기억을 남길 것이다. 마당이 있는 집은 당연히 그 집에 사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기억을 만들어 내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경제적인 제한을 받을 때 우리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거 공동체를 고려해 보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타운 하우스에서는 주거민들이 모여서 공동식당에서 같이 식사를 한다고 한다. 사람들이 같이 밥을 먹는 관계가 됨으로해서 그 타운 하우스의 밖과 안은 본격적으로 서로 다른 장소가 된다. 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상상하기에 따라서는 우리는 더 많은 일을 주거 공동체내에서 실시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는 데 이렇게 하는 것은 비록 시장의 기능을 쓰는 것보다 더 비싸고 불편할 수 있지만 도시농업이 그러하듯 그것만으로 반드시 경쟁력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이렇게 함으로 해서 어른들도 아이들도 특별한 기억을 가지게 될 것이다.


당연히 일단 이러한 기획을 마음에 둔다면 우리는 건물의 구조가 그것을 도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작은 도서관이 있다던가 공용 휴계실이 있다던가 같이 요리를 할 수 있는 큰 부엌이 있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이것은 단순히 크고 넓은 집이 좋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보존하기를 원하는 집의 기능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하고 그것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없이는 집은 매우 비현실적이 되어서 결국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는 마을이 있다. 우리가 일단 이런 집의 기억기능에 대해 주목하고 나면 우리의 시선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을 넘어서 바깥으로 나가게 된다. 바로 마을의 환경보존에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아파트 단지같은 현대적 건물이 들어서기 전에 있었던 마을은 시간과 싸우는 장소들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끊임없이 수리되면서 나이가 들고 따라서 기억을 축적하는 장소들이었다. 우리는 이런 마을들을 아끼고 보존해야 한다.


마을의 여러가지 것들은 기억을 가진다그런 예에는 길이 있다. 자주 걷는 길은 기억을 가진다. 특히 길이 구불구불하면 그렇다. 그런데 자동차에게 길을 빼앗기고 나면 길은 더이상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길은 평평해지고 넓어져서 가보고 싶은 곳이 되기보다는 그저 빠르게 지나칠 통로가 될뿐이다. 게다가 사람들이 걸어서 지나다니지 않으니까 상권도 사라진다. 골목끝에 있던 문방구며 구멍가게가 더이상 영업을 하지 않게 된다. 집앞에 종종 나와있던 평상들도 자동차에 밀려 대부분 사라졌다. 삭막한 도시 풍경에 지친 사람들이 자기가 나고 자란 골목이 아닌데도 가끔 보존되어 있는 골목길을 보면 뭔가가 충전되는 느낌을 받는 것은 기억이 없는 환경이 우리를 지치게 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옥마을의 골목길

 

전국 여기저기에서는 지금 마을 만들기 사업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박원순 시장의 추천하에 일이 진행되고 있고, 제주, 대전, 수원, 경기도등 여러곳에서 마을 만들기 사업이 자생적으로 또는 관의 주도하에 이뤄지고 있다


그렇다면 마을 만들기란게 뭘까. 수원시 마을만들기 추진단의 민완식단장은 마을 만들기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생활환경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며 궁극적인 목적은 주민들간의 소통을 통해 공동체를 복원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마을 만들기에 대해 문자 그대로 찬동하건 조금 다른 어감을 가지는 설명을 하건간에 공동체 복원과 생활환경개선이 마을 만들기의 공통된 특징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수 없을 것이다


요즘은 하천을 복원한다던가 재래시장을 활성화하려고 노력하는 일이 많다. 그런 복원도 관계와 기억의 차원에서 바람직한 것이다. 하천의 복원은 지역 시민들이 서로를 만나게 만든다. 천변의 길을 걸으면서 서로를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재래시장과 현대식 마트가 가장 다른 점은 바로 손님과 주인이 만난다는 것이다. 실질적 권한이 없어서 로보트나 다름없는 마트직원은 손님과 인간관계를 가지게 되지 않는다. 그러나 재래시장의 상인들은 손님들을 만나고 종종 단골손님도 만든다. 그들은 서로의 입장을 살필 있는 권한과 여유가 있다. 내가 어떤 마을에 단골식당이나 단골카페가 있다는 것은 마을이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만든다


전국적으로 마을만들기에 관심이 높아진 이유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각 지역단체가 그것없이는 더 이상 생존이 가능하지 않겠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중앙만 바라보면서  지역의 정체성을 지우는 개발만 계속해서는 인구는 계속 유출되고 종국에는 그 지역에 애정을 가진 진짜 지역민이 남지 않을 것이다. 결국 지역민들이 서로 소통하고 그 지역의 오래된 기억들을 기억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억들을 만들어 갈 때 그 지역은 살아남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특수성이 보존될 때 그 지역에 애착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더 많은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다. 이 것을 가능하게 하는 건축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폐쇄적인 아파트 단지 개발은 현실적인 이유로 인한 필요악일 수는 있어도 미래지향적인 해결책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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