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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대학에 대하여

인공지능의 시대에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이란 무엇인가 2

by 격암(강국진) 2017. 3. 7.

17.3.7

세번째로 말하고 싶은 것은 좀 역설적이지만 우리의 교육은 이미 너무 미래적이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개선한다는 의미에서는 오히려 과거로 돌아가는 교육이 미래의 교육이라는 표현이 가능할 것이다.

 

이것은 인간은 로보트처럼 조립되는 존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어떤 단계를 거쳐서 성장하는 생명이라는 이유때문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교육의 목표로서 어떤 완벽한 성인을 상상하거나 혹은 2-30년뒤의 미래인을 상상하면서 학생들을 교육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인간은 인간이 진화한 자연스런 환경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고 특히 아이는 아이가 자라는 자연스런 환경이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의 세계와, 특히 우리 앞에 펼쳐질 세계와는 매우 다르다.

 

이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30년전에서도 그렇지만 오늘날의 교육에서 눈에 띄는 것은 학생들의 인간관계가 매우 단순하다는 것이다. 물론 예외도 있겠지만 많은 학생들은 동급생을 만나고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 전부 인 것같다. 그들은 그들과 다양하게 나이가 차이나는 사람들과 만나고 있지 않다. 예를 들어 초등학생은 한두해 위의 선배부터 시작해서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그리고 일반 사회인들을 모두 다양하게 만나는 환경에서 자라나고 있지 못하다. 과연 이러한 환경에서 이들은 미래를 준비하고 인생을 깊이 이해할 수 있을까?

 

한국의 문화적 특성도 이러한 현실에 기여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은 물론 일본과 비교했을 때에도 워낙 나이와 학년별로 사람을 구별하는 관습이 있다. 실제로 일본에서 자라난 내 딸아이가 한국에서 방학을 보냈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일본아이들과 비교해서 한국아이들과 놀 때 차이가 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내 딸은 한국아이들은 지나치게 나이를 따져서 뭉치고 차별하더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사실 이러한 점은 양국의 아이들이 쓰는 언어만을 살펴도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는 호칭에서 이미 한학년 선배라고 해도 선배나 언니라는 말을 꼭 써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모욕당한 것으로 느끼지만 일본에서는 꼭 그렇지 않다. 영어를 쓰는 미국에서는 물론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칸막이들은 한국사람들이 소통하는데 문제를 만든다. 그런데 미래를 준비한다고 생각해 본다면 이런 현실만큼 안타까운 것도 없다. 사회생활을 해본 사람은 정보의 중요성을 느끼고 선후배의 관계나 직장 상사나 직장부하와의 인간관계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다양한 사람 그중에서도 나와 별로 나이가 차이나지 않는 선후배와 소통할 때 우리는 우리의 진로에 대한 중요한 정보들을 얻게 된다. 게다가 그런 관계가 고리로 고리로 이어져서 우리는 중요한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그런데 문화적인 이유로 또한 학교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서 학생들은 오랜동안 그저 동급생과 이야기하거나 선생님과 이야기하는데 그치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공동체적 생활의 문제는 다음번에 말할 미래 교육과 관련해서도 핵심적 중요성을 가진다. 

 

이러한 측면에서보면 과거보다도 오히려 오늘날이 더 나쁜 것같다. 과거 집성촌에서 자라난 아이들이나 이웃들이 소통하는 지역의 골목에서 아이들이 모여서 놀던 시절에 성장한 사람들은 그 지역의 아이들과 다양하게 만났었지만 오늘날의 아이들은 아주 일찍부터 입시공부에 빠져서 인간관계가 거의 없다시피하다. 이것은 그들의 사고를 경험없는 추상적인 내용만으로 채우는 결과를 만들 것이다. 그들은 보고 배울 상대를 만나야 한다. 아무리 훌룡한 사람에게 배운다고 해도 그 사람 하나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여러가지 연령차를 가지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소통하는 관계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은 단계적으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또한 아이들은 소박하고 단순한 환경에서 자랄 필요가 있다. 적어도 그것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아주 어린 나이에서부터 다수의 SNS친구들과 어울리며 지나치게 풍족한 물질과 지나치게 편리한 물건들에 둘러쌓여 살아서는 성장에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적어도 스마트기기나 인터넷 접속은 물론 자신의 방을 청소하거나 음식을 준비하는 일들을 누군가에게 의존하거나 간편하게 해결하는 것을 모두 제거한 환경을 경험해보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이런 것들은 일종의 캠핑 체험등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의자나 책상같이 자기가 쓸 물건을 스스로 만들어 보거나 급식에서 먹을 야채를 스스로 재배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렇게 현대가 아닌 것을 체험할 때 그들은 현대가 무엇인지도 알게 될 것이다.

 

한국은 어떻게 봐도 고성장기를 끝냈다. 어쩌면 지금의 어린 학생들은 해방이래 최초로 자신의 부모들보다 가난하게 살게 될 세대일 지도 모른다. 지금의 어린 학생들은 종종 부모의 크고 좋은 집에서 상당한 사교육비를 쓰고 여러가지 비싼 체험들을 하면서 성장했지만 그들이 나이가 들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순간부터 그들은 더  이상 그들의 수입으로는 그런 삶의 질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집은 너무 비싸고 취업은 어렵다. 학비며 주거비때문에 일찍부터 빚을 진다. 이미 젊은이들은 결혼도 안하고 애도 낳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일들을 자기 손으로 하는 능력을 기르고 단순한 속에서도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노하우를 배워둔다는 것이야 말로 미래를 위한 교육일 수 있다. 이것은 앞으로 가난해 질테니 미리 가난을 경험하라는 뜻이라기 보다는 자라나는 세대가 유지불가능한 사치에 익숙해 지지않도록 해주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제껏 말한 것과 합쳐서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의 모습의 핵심적인 부분을 말하고 싶다. 이를 위해 우리가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학교라는 시스템의 본질은 사실 미래 사회와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깊이 인식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여러가지 학교가 있지만 사실 그들의 본질적 부분은 다 똑같다. 즉 첫째로 그들은 국영수를 포함한 십수가지의 과목을 전문화하여 담당선생님에게 학생을 가르치도록 한다. 둘째로 그들은 기본적으로 다른 학생들과 경쟁관계에 있으며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해도 배움은 기본적으로 교사와 학생간의 문제가 된다. 이 점은 백년전에 미국의 철학자 존 듀이가 미국의 학교를 비판하기 위해 지적했던 것과 차이가 없다. 학교의 본질은 아주 오랬동안 똑같았다.

 

미래를 생각할 때 우리는 두가지의 질문을 자연스레 던질 수 있다. 이런 지식의 전문화는 옳은 것인가 그리고 설사 그것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과연 아주 오랜동안 상식이 되어버린 교과목들의 전통적 분류는 영원히 옳을 것인가?

 

미리 말해두자면 나는 지금의 학교가 가지는 커리큘럼이나 나름대로의 학습 노하우가 축적된 교육시스템을 완전히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그런 부분들을 최소한으로 축소하고 미래에는 학교가 학력증명서정도를 발급하는 수준으로 남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운전면허증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만으로는 누가 더 운전을 잘하는지 모른다. 최소한의 운전능력을 증명해 줄 뿐이다. 나는 학력증명서도 그런 것이 되는 것이 미래라고 생각한다. 미래에 우리는 그 이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전통적 교육을 축소하고 남는 공간속에 미래를 위한 교육을 채워넣어야 한다. 만약 그 두가지 교육이 지나치게 이질적이라 같은 기관안에 있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미래를 위한 교육이란 학교의 역할이 아니라 별도로 존재할 다른 기관의 역할이 되어야 할지 모른다.

 

지금의 학교교과목은 적어도 30년전과 본질적으로 조금도 다르지 않다. 심지어 내용조차도 그렇다. 30년전에 쓰던 참고서를 지금써도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다. 우리가 미래를 준비한다고 할 때 이런 것은 정말 무시해도 되는 것일까?

 

사실 이 문제는 이미 대학에서 심각해졌다. 세상에 융합학문들이 생겨나면서 학과간의 경계를 분명히 하는 태도가 어쩔 수 없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뇌과학을 공부해 보면 거기에는 생리학이나 화학뿐만 아니라 수학과 물리학, 컴퓨터 공학에서 기계공학에 이르기 까지 그야말로 등장하지 않는 지식이 없을 정도다.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가 뇌과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이 모든 과에서 제공하는 커리큘럼을 전부 다 수강하고 듣는다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우리가 그것을 하는 방법은 따라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들에서 시작해서 배움을 계속해 나가고 그러면서도 결국은 다른 사람들과의 협업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다. 아무리 배워도 다 배우는 날은 오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기관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런 기관은 미래를 각자 만들어 가는 작업장이며 그 기관은 단지 장소와 시설을 빌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에 그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관심있어 하는 분야에 대해 다양하고 자유롭게 모임을 만들고 경계를 가지지 않고 파고들어서 자기 나름대로 지식과 경력을 쌓아 나가야 한다. 

 

거기에서 중요한 것은 협동과 조직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을 조합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모두가 똑같은 것을 공부한다던가 학년별로 나뉘어져서 소통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조금씩 다른 것을 공부하고 연령별로 세대를 넘어 계속 소통을 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웹튠작가를 지망하는 어린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정보를 공유할 뿐만 아니라 자신과 다양하게 나이가 차이나는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학교바깥의 세계를 탐구해 나가고 현실 사회에서 통하는 것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지금 단계에서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분야에 대해 시간을 쓰는 정도가 지금의 교과목을 공부하는 만큼 커지는 것이 미래교육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러한 소통이 단순히 담장안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학계나 산업계의 최첨단에 까지 고리 고리로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에서는 거의 하는 사람이 없는 분야를 공부한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관계를 통해서 학생들은 실제 사회에서 자신의 진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고 학계나 산업계는 자신이 원하는 인재를 찾거나 키울 수 있는 수단을 가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스라엘의 히브루대학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 유태인들이 어떻게 학생을 키우는가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 서구인들은 대개 한국인보다 관계가 더 수평적이기는 하지만 유태인들의 관계는 더욱 그렇다. 세계적 명성을 가진 대학교수라고 할지라도 학부생이 수업시간에 수업내용에 대해서 불평을 하는데 거침이 없다. 기본적으로 유태인 학생들은 대학원생은 물론 더 어린 학생들이라도 한 명의 독립적 지성으로 취급받는다. 그렇게 해서 대학교수에서 초청연사 그리고 어린 학생에 이르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있을 때 언뜻 봐서는 누가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관계가 수평적이고 의견소통이 활발하다. 유태인들은 논쟁을 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어린 학생이라도 어떤 지적에 대해 지나치게 쉽게 수긍해 버리면 오히려 그러면 안된다고 지적을 받는다. 유태인 학생들은 국제학회같은 곳에서 가장 많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며 그런 유태인 학생들이 직업적으로 크게 성공을 거둔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내가 인상깊게 본 것은 거기서는 기본적으로 세대와 연령을 넘는 관계가 이어진다는 것이다. 학교 건물에 앉아서 30년전과 거의 같은 문제를 푸는 방법을 그저 열심히 외우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학과로 연령으로 나뉘어서 정보가 흐르지 않는다. 그 덕분에 사람들은 자신의 박스에 갇혀서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잘 모른다. 따라서 어린 학생들은 너무나 오랬동안 현실세계에 대한 환상속에 있게 되기 쉽다. 학교 바깥의 세상, 3년이나 5년 선배가 겪는 세상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고 그저 시키는 일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미래교육의 핵심은 민주적 교육이고 학교의 담장을 허무는 교육이다. 나는 적어도 상당기간동안 지금의 학교가 가르치는 것들의 가치는 유지되리라고 생각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떄문에 학교는 최소한의 지식을 교육하고 인증하는 기관으로 그 전통적 기능을 줄여야 한다. 그리고 학생들은 되도록 빨리 다양한 채널을 통해 학교밖의 사회와 접하고 미래를 찾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심에 둬야 할 것은 학생 스스로의 판단이고 인간관계의 고리를 통해 학생들이 여러가지 분야의 사람들과 공동체적 관계를 가지게 만드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한국의 많은 사람들은 한 명의 천재가 골방에서 열심히 공부하면 세상을 놀랠 업적을 만든다고 생각하는 것같지만 그런 일은 아주 특이한 경우일 뿐 대개 우리는 어떤 커뮤니티가 필요하다. 학교 담장을 넘어 사회까지 고리고리로 이어지는 여러 커뮤니티들을 건설하고 어린 학생들이 되도록 일찍 그런 커뮤니티 중의 한 둘에 참여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학생들이 미래 사회를 준비하는 가장 핵심적인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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