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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대학에 대하여

인공지능의 시대에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이란 무엇인가. 후기

by 격암(강국진) 2017. 3. 9.

17.3.9

인공지능 시대에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이란 무엇인가. 나는 어쩌다 보니 이 질문을 몇번에 걸쳐서 자꾸 묻게 되었다. 그 이유중 하나는 전에 오늘의 교육이라는 곳에서 원고를 청탁받은 적이 있는 것이고 또 최근 전북교육정책연구소의 직원을 만나서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 또 다른 하나다. 그래서 대화를 나누고 생각을 원고로 써서 정리를 했는데 몇일 지나고 나자 그것에 대해 조금 다르게 말해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내 원고에 대한 내 감상이랄까. 

 

인공지능의 발달이 그 중요한 한 축을 이루는 새로운 정보처리 시대는 통상 4차산업혁명의 시대라고도 불린다. 이러한 시대에 그래서 교육이란 어때야 한다는 것인가. 그 답은 굉장히 단순한 것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교육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교육의 기본이란 결국 교육이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이 핵심이다라는 사실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가르치고 사람이 사람에게 배운다는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이기도 하고 인공지능의 시대에 무슨 시대에 뒤진 이야기인가 하는 생각이 들수도 있다. 게다가 언뜻 듣기에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책을 읽고 인터넷 강의를 듣는 것도 교육이라고 생각한다면 교육의 기본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이라는 말은 틀리게 보일 수도 있다.

 

그걸 나는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가장 중요한 정보는 사람이 가지고 있으며 사람에 대한 것이고 이러한 점은 망의 발달로 정보가 폭발하는 시대에 훨씬 더 중요해 진다고 말이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책을 읽고 강의 동영상을 봐서 배울 수 있는 정보는 앞으로 점점 더 덜 중요해지고 올바른 사람을 만나서 얻는 정보가 압도적으로 중요해 지는 것이 인공지능과 4차산업혁명의 미래시대다. 

 

사실은 지금도 그렇다. 앞으로는 더 그렇게 된다는 것일 뿐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물리학을 전공하여 연구자의 길을 걷고자 한다고 하자. 당신은 물리학 교재들을 사고 수학교재를 사서 그 안의 지식을 공부해야 한다. 그것들은 중요하다. 하지만 실제로 연구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사실 그것들은 2차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다. 

 

세상에는 너무 많은 지식이 있다. 그러니까 당신이 혼자서 물리라는 것을 어느 정도 통달한 후에 어느날 연구소에 나타나 이제 내가 물리를 연구해 보겠소한다는 것은 어리석다. 당신은 당신의 흥미에 맞고 지금 연구자들의 세상에서 주목받는 연구를 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 사람에게서 정보를 얻는 것이 꼭 필요하다. 그들의 통찰력을 보고 배워야 한다. 핵폭탄 발사 스위치를 누르는 손가락은 그저 손가락일 뿐이지만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 마찬가지로 적절한 장소에서 적절하게 행한 공부가 큰 효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지 세상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면서 막연히 홀로 지식을 쌓는 것은 많은 경우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요즘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이 유행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것을 종종 단순히 돈만의 문제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 것같다. 물론 그것은 돈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그런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인맥이고 누구를 만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결국 정보가 특혜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 정보를 노력해서 얻었다고 생각하는 부자들은 자신들은 특혜를 받은 것이 아니라 열심히 정보를 찾아서 그 노력의 보답을 받았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밀착형 부패로 보이는 것이 그들에게는 개인적 노력으로 보이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과 부자들은 점점 더 한 나라에 살면서도 두개의 나라에 사는 것처럼 될 수 있다. 그것은 돈보다도 정보의 흐름때문에 그들이 누구를 만날 기회를 얼마나 더 가지는가 때문에 그렇게 될 수 있다. 

 

정보가 권력이고 가치다. 이건 언제나 그랬지만 앞으로는 더 그럴 것인데 그 이유는 정보가 수집되고 분석되기 쉬운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런 시대이기 때문에 나만 아는 정보, 나만 줄 수 있는 정보가 중요하다. 마치 물이 흔한 나라에서 물은 가치가 없듯이 모두가 쉽게 구할 수 있는 정보는 덜 중요해진다. 이 점을 다음과 같은 사실과 함께 생각해 보라. 지금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지식은 사실상 반세기전과 아무 차이가 없다. 30년전에 고등학교에서 배웠던 것이나 지금 배우는 것이나 그 본질적 지식수준은 거의 같다. 오늘날 단순히 학교나오는 것으로는 취직이 잘 안되는 핵심적 이유중 하나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망은 엄청난 정보를 실어나르고 있고 앞으로는 더 그럴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두가지 이유로 특정한 정보는 그 망을 따라 잘 흐르지 못한다. 하나는 그 정보가 너무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그런 정보는 유통시키는 것이 불법이다. 예를 들어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오르내리는 것은 정보에 따라서 그렇게 되는 것인데 내부 정보를 가지고 쉽게 돈을 버는 것을 허용할 리가 있는가. 보통의 정보가 너무 흔해져서 가치가 없을 때 당신은 오직 당신만이 가진 정보로 생계를 이어간다고 하자. 그런 귀한 정보를 망에다가 마구 흘릴 것같은가? 그 말은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정보를 구하는 동시에 필사적으로 자신의 정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런 시대일 수록 사람의 접촉이 더 중요하다. 중요한 거래는 항상 직접 하기 때문이다. 

 

두번째 이유도 있다. 어떤 것은 말로 전달이 안되고 억지로 그렇게 했을 경우 책임 질 수가 없다. 그래서 말을 할 수가 없다. 중요한 것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일 수록 세상의 불확실성과 책임의 중요성앞에서 입을 다물게 된다. 망을 통해 흐르는 정보는 대개 애매한 것을 확실하게 만든 것이거나 원래가 확실한 것이다. 당신의 몸무게 처럼 말이다. 그러나 당신이 어떤 그림을 보고 이 그림이 좋은지 나쁜지 감상을 말한다고 해보자. 당신의 느낌이란 말 이전의 것이다. 당신은 그걸 말로 구체화한다. 만약 당신이 뛰어난 말솜씨를 가졌다면 그것에 어느정도 성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평생 계속 떠든다고 해도 한 점의 그림을 보고 느낀 감정을 말이 대신 할 수도 없으려니와 당신의 글솜씨나 말솜씨가 나쁘다면 엄청난 왜곡도 생기게 된다. 그래서 미연방준비위원장 같은 사람은 엄청나게 말을 조심한다. 그가 사석에서 세계경제가 어떻다던가 금리가 좀 높다 낮다같은 말 한마디를 하면 그걸 사람들이 맘대로 해석해서 세계경제가 흔들거리기 때문이다. 그나 그녀는 내 진짜 의도는 그게 아니라고 마구 떠들 수도 있겠지만 그게 더 분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니 입닫고 살아야 한다. 

 

또한 듣는 사람의 문제도 있다. 말이란 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주어진 문맥안에서만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그래서 복잡한 말은 문맥을 빼고 들으면 해석이 엉망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설사 책을 많이 쓴 사람이라도 어떤 문제가 사회에 생기면 그 사람의 책 내용을 찾는게 아니라 그 사람에게 다시 묻는 것이다. 특정인의 특정문제에 대한 지금 이순간의 반응이라는 정보가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미리 알아낼 수는 없는 것이다.  정말로 알고 있다면 사람들은 묻지도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글이나 언어가 그 사람은 아니다. 어떤 위대한 교육자나 과학자가 있다고 할 때 그 사람들의 글을 읽고 그 사람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 걸로 그 사람들과 같아 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글을 읽는 것이 대면 접촉을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없다. 아인쉬타인을 옆방에있는 연구동료로 두고 있는 사람이 과학을 하는 것과 그의 논문만을 읽고 과학을 하는 사람이 같을 수는 없다.  

 

정보가 흐르지 않던 시절에는 그저 선진국에서는 흔한 책 한권만 읽었어도 한국에 있는 다른 사람이 모두 그걸 안 읽었다면 계몽의 중심에 설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중요한 사람이 될 수도 있었다. 그 책을 복사해서 전국에 보급하는 것이 세상을 좋게 하는 일이 된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우리는 물론 흔한 정보도 배우고 기초를 다져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아무 것도 안된다. 또 기초는 너무 광범위하다. 결국 이제는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뭔가를 제대로 배울 수 없다. 

 

이렇게까지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을 강조했지만 사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은 어렵고 이것이 언제나 올바른 정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나를 고민하고 슬프게 한다. 말하자면 사람을 만나지 않고는 좋은 교육은 있을 수 없는데 모든 만남이 좋은 배움의 기회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만남이 좋은 배움으로 이어지기에는 여러가지가 필요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만나는 당사자들이 공동체 정신을 가지고 서로에게 호의를 가지는 것이다. 즉 그 만남은 서로를 모두 이롭게 하는 것이며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될 일을 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만약 이러한 것이 없을 경우 예를 들어 학생들을 사회경험을 시키겠다고 회사와 연결시켜줬더니 회사는 어린 학생들을 마구 착취할 수 있는 공짜 노동력으로만 취급할 수도 있고 학생들도 회사나 만나는 사람의  의도나 입장을 이해하고 따라줘야 상호 이익이 될터인데 민폐만 잔뜩 입히는 꼴이 될 수 있다. 나는 최근에 특성화고등학교 학생이 회사에서 얼마간 근무한 끝에 자살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이런 뉴스를 들으면 마음이 무겁다. 

 

그래서 좋은 교육에는 좋은 사회가 필요하다. 일반론적 입장에서 어떤 좋은 정책을 펴도 사회가 썩어 있으면 그 결과가 오히려 하지 않은 것보다 나쁘게 나올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사회에 대해 비관적인 시각만 가지면서 학생들을 세상으로부터 분리만 하려고 한다면 그것이 장차 학생들을 더 곤란하게 만들 것이다. 요즘은 별로 쓸데도 없는 지식이나 기술만 가득하고 정작 세상에 대해서는 모르는 바보이며 나이만 들어버린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가 가지는 교육의 어려움이다. 

 

그래서 내가 말한 미래교육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너무나 많은 세부사항을 숙제로 남겨둔 탁상공론이다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기성세대가 다음 세대를 어떻게 대하고 그들과 어떤 협동을 해나가야 할 것인가하는 것은 내 손 바깥의 일이다. 나는 대통령도 재벌총수도 거대 연구소의 소장도 아니며 심지어 무슨 지역유지 같은 사람도 아니니까 말이다. 

 

설사 내가 그런 사람들 중 하나라고 하더라도 해야할 일이 참 많다. 우리는 더 많은 공동체 정신이 필요하다. 그 공동체 정신은 천재적 지도자만 있으면 나머지는 아무래도 좋다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소중하고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다는 정신이어야 한다. 이쯤 되면 그 일의 어려움에 질려서 내가 한 모든 말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다. 물론 그래도 우리는 희망을 가져야 할 것이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참 많다. 나는 평화로운 촛불집회를 하는 곳에 나가서 한국의 희망을 보았다. 그들은 온건한 선의에 가득차 있어 보였다. 나는 다만 내가 보고 듣고 배운 것을 토대로 불완전한 의견을 남긴다. 이것이 혹여 어딘가에서 적절하게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면 매우 기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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