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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우리가 어리석은 이유들

by 격암(강국진) 2017. 3. 12.

17.3.12

우리는 더 지혜로워지고 싶다. 하지만 스스로 지혜롭다고 느껴지지 않는데다가 세상은 어리석은 사람들로 가득차 있다. 왜 그럴까. 우리는 그것이 우리가 뭔가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맞는 이야기지만 사실 더 큰 이유는 우리는 알기는 충분하고도 넘치게 알고 있는데 그것을 스스로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자에 보면 "큰 길은 지극히 평탄한데 사람들은 흩어지기를 좋아한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말처럼 우리는 상식적이고 뻔한 답을 알고 있다. 예를 들어 4시간 공부한 사람이 2시간 공부한 사람보다 성적이 좋다라는 것은 상식이다. 물론 이 상식에는 불확실성이 있다. 어떤 사람이 1시간 공부한 것은 다른 사람이 10시간 공부한 것보다 더 효율적일 수 있고 타고난 바보나 천재도 있으며 만약 어떤 사람이 시험에 뭐가 나올지를 정확히 안다면 공부를 더 적게 한 사람이 성적이 더 좋게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인생은 불확실성으로 가득하다. 공부 열심히 했다고 반드시 성적이나 등수가 오르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것도 세상에는 많이 있다. 죽어라하고 어떤 과목을 공부했지만 알고보니 그 과목은 공부할 필요가 없었다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인생 낭비하는 것을 우리는 종종 겪는다. 인생은 돌아보면 낭비로 가득하다.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 근거하여 최대로 현명한 판단을 한다고 해도 그 결과가 반드시 좋으리라는 법은 없다. 열심히 수십년 일한 사람보다 매일 놀다가 로또를 샀더니 복권에 당첨되어 더 부자가 된 경우도 있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그렇다고 해서 로또에 인생을 거는 것이 현명하다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인생을 정답에 따라서만 사는 것도 어찌보면 정답이 아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인생은 불확실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정답에 따라 살면서도 자유로이 한 눈을 팔 필요도 있다. 비가 올 확률이 거의 없는 지역에 산다고 해도 일단 비가 내리기만 하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으로 집을 꾸민다면 그것도 어리석은 것이다. 일어나기 어려운 일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결국 한번은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답에 따라 사는 것은 힘들다. 사실 정답에 따르지 않고 사는 것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정답에 따라 살지 않고 다른 작은 꾀에 따라 사는 것은 심리적으로 덜 힘들다. 별로 노력하지 않고 고생하지 않아도 곧 좋은 결과가 있을거라는 환상에 차있는 동안은 힘이 들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정답에 따라 사는 것이 힘드니까 우리는 슬슬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고 뻔히 자기도 아는 사실을 애써 잊어버리려고 한다. 누군가의 집에서 비명소리가 들리고 그 집에서 피뭍은 칼을 들고 나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살인범일 확률이 매우 높다. 물론 그것이 사실이 아닌 경우도 있을 수는 있지만 우리는 일단 그 사람을 살인범으로 가정하고 행동하는 것이 지당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람을 살인범을 보고 싶지 않으면 애써 자기 최면을 건다. 저건 살인범이 아니라고 말이다. 

 

정답을 외면하는 우리의 모습은 종종 이와 닮아있다. 우리는 지름길을 찾고 좋은 생각을 해낸다. 정답대로 해도 되지 않을거라고, 어떤 믿기 어려운 쉬운 방법이 존재할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그리고 그 설득의 결과 심지어는 정답대로 하는 인간들은 참으로 어리석다는 말까지 하게 된다. 그리하여 차분한 눈으로 보면 누구의 눈에나 살인범을 보일 법한 사람을 살인범이 아니라고 믿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리석어지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어리석음의 가장 큰 근원은 우리의 약함이다. 인간은 유한하고 약해서 자꾸 핑게를 만들고 거짓말을 하고 스스로를 속인다. 그 정도는 종종 심해져서 실은 초등학생도 답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반대로 답하게 된다. 로버트 풀검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라는 책을 썼다. 이게 이럴 수 있는 것은 사실 우리는 상당부분 몰라서 어리석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는 것을 자꾸 왜곡하고 무시하기 때문에 어리석은 일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약하다. 그 약함에 대처하는 한가지 방법은 천천히 판단하는 것이다. 우리가 뭔가를 서둘러 결정하고 판단해 버리면 우리는 거짓된 선택을 하게 되기 쉽다. 우리의 약함때문에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 것이다. 그런데 어떤 질문이 있을 때 하루밤 지나서 다시 생각해 보면 고민할 것도 없는 경우가 많다. 사실은 순간적인 유혹이 우리에게 다른 선택도 있다는 어리석음을 주입했을 뿐 차분하게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 보면 그런 선택은 바보짓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기꾼 같은 판매원이 그럴 듯한 말로 우리를 유혹할 때도 그 순간만 지나서 되돌아보면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런 말도 안되는 유혹에 빠졌던 것이 신기할 정도다. 사기꾼이 노리는 것은 우리의 허영과 욕망이다. 그들은 그 부분을 키워서 우리를 우리 자신이 아니게 한다. 저를 뽑아주시면 여러분 모두에게 아파트 한채씩 드리겠습니다라고 하는 정치가가 있으면 그게 말이 안된다는 것을 알아도 우리는 유혹에 빠진다. 정말 그렇지 않을까하는 유혹에 말이다. 그리고 그런 유혹에 빠지기 시작하면 이제 상식과는 영영 안녕인 것이다. 

 

우리의 약함에 대처하는 또 한가지 방법은 글을 쓰는 것이다. 글이란 고정된 것이기 때문에 글을 쓰려고 하면 그 안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의 일관성이 필요하다. 첫 줄을 썼을 때의 나와 두번째 줄을 썼을 때의 나는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 안에 일관성을 찾아내면서 우리는 환상에서 우리를 지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약하다. 그래서 우리는 어리석다. 어떤 다른 방법을 쓴다고 해도 이것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다만 우리가 지나치게 어리석어지지 않도록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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