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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쥐와 벌

쥐와 벌 1. 악의 탄생

by 격암(강국진) 2017. 10. 4.

쥐와 벌 (쥐들의 제국)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이 현실의 누군가와 비슷하다면 그것은 우연입니다. 이 소설은 픽션입니다. 

 

1. 악의 탄생

 

쇼생크 탈출이란 영화가 있다. 그 영화속에서 한 부패한 교도소 소장은 죄수 중 하나인 주인공을 착취한다. 그러나 그 주인공은 교도소를 기적적으로 탈출하고 소장의 악의 제국은 무너지고 만다. 소장은 그를 잡으려고 경찰이 몰려오자 스스로에게 총을 쏴서 자살하고 만다. 

 

쥐는 언제나 하나의 권력시기가 끝나갈 때면 그 소장을 떠올리곤 했다. 시장의 임기가 끝나가는 지금, 그는 그 소장과 비슷한 처지에 있었다. 이제 그는 권력을 잃을 것이고 그의 몰락을 예감한 수 많은 적들이 그를 향해 달려 올 것이다. 어쩌면 지금이라도 저 문이 열리면 누군가가 들어와 쥐에게 체포영장을 내밀지도 몰랐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억눌러 두었던 두려움이 위장속에서 꿈틀댄다. 이제까지 사는 동안 위기는 이미 여러번 그에게 있었다. 그러나 쥐는 그 모든 위기를 돌파했다. 어떻게 그렇게 했던가? 결국 답은 언제나 같았다. 한 시기가 그 거짓으로 인해 몰락할 때 그 위기는 오직 더 큰 거짓말로 돌파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가 재벌이 되어 이 나라를 대대손손 움직이는 실세가 될 수 있다면 좋았다. 하지만 그건 정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돈이 필요했다. 서울시장을 몇년 하는 것정도로는 어림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그가 택할 수 있는 길은 오직 대통령이 되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코앞의 수사를 어떻게 피할까가 문제지만 크게 보면 결국 더 큰 권력을 가지고 더 많은 돈을 가지는 것만이 쥐가 갈 수 있는 길이었다. 그럴 수 없다면 그가 갈 수 있는 길은 오직 영화속에 나오는 부패한 교도소 소장의 길일 것이다. 

 

쥐가 지금 이 자리에 어떻게 서있게 되었을까? 세상사람들은 자신을 악이라고 말한다. 과거의 자신도 지금의 자신을 보면 분명 악이라고 말할 터였다. 자신이 악이라면 그 악은 어떻게 탄생했던 것일까? 

 

이따금 과거를 돌아볼 때마다 쥐는 언제나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던 그 결정적인 한 순간을 다시 떠올렸다. 그의 인생에 있어서 결정적이었던 그 순간은 그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갔던 순간도 아니었고 어렵게 취업한 후에 튀는 남자가 되어 회장님의 눈에 들게 되었던 그 순간도 아니었다. 그것은 심지어 그가 기적적으로 정치적으로 부활해서 서울시 시장 선거에 이긴 순간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야 말로 아주 작은 사건이었다. 설사 그 사건을 목격한 사람이 있었다고 해도 누구도 그 순간에 대해 특별한 느낌을 받을 수 없었을 만큼 그 사건은 대단치 않았다. 그러나 그 사건은 그에게는 거대한 깨달음과 같은 것이었고 그를 완전히 바꿔놓고 말았다.

 

지금도 본질적으로는 그렇지만 당시의 쥐는 여전히 연약하고 내성적이었다. 지금은 누구나 쥐를 가르켜 아주 꼼꼼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의 내성적인 측면은 그렇게 흔적으로 남았다. 단지 사람들은 이제 쥐가 본래 내성적이고 무서움이 많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한다. 지금은 사람들이 쥐가 약간만 얼굴을 굳혀도 두려움에 떤다. 그들에게는 튀어나온 쥐의 이빨이나 뾰족한 주둥이 그리고 떨리는 수염 모두가 공포의 대상이다. 실제로는 작고 초라한 쥐인데도 그들의 눈에는 쥐가 이제는 거대한 괴물로 보인다. 쥐는 자기 자신도 믿을 수 없는 행운에 의해 쥐에 대한 공포를 세상에 심는데 성공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것은 참으로 믿을 수가 없다. 그는 그저 운이 좋은 겁쟁이일 뿐이었는데 사람들은 그를 전혀 두려움이라고는 모르는 괴물로 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은 살이 피둥피둥 찐 그의 아들도 마찬가지여서 하루는 그 아들이 이렇게 물었다.

 

“아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아빠처럼 나를 무섭게 생각하게 만들 수 있을까?”

 

쥐는 그런 질문이 어이가 없었다. 쥐라고 해서 아들이 아빠를 깡패인듯이 말하는 것이 자랑스럽지는 않다. 그래서 쥐는 아들을 황당하다는 듯이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남에게 무시당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니던가. 그건 나름 중요한 질문이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그 질문에 쥐는 어떻게 답해야 했을까. 과거를 뒤지며 생각해 보니 쥐는 그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해야만 했을 것같다. 늙은 노파를 보거든 돌을 던져. 그리고 눈을 피하지 마. 그게 누가 되었든 꼼꼼하게, 단호하게 그리고 인정사정없이 눌러 버리야 하는 거야. 처음에는 물론 제일 약한 상대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지. 

 

과거의 쥐는 겁이 많았고 심지어 선량하기조차 했다. 쥐는 그저 그가 열심히 일하고 남에게 나쁜 짓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자신을 밟아버리지는 않을거라고 기대하는 정도였다. 사실 당시의 쥐는 다른 사람들이 그 커다란 발을 들어올리는 모습만 봐도 두려워서 꼬리를 말고 떨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그 부끄러운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 더욱 부끄러워서는 어둠 속에 숨었다. 쥐는 시궁창에서 태어난 보잘것없는 생명이었다. 쥐는 자신이 쥐인 것이 싫었다. 누구도 자기를 몰랐다. 그는 여전히 아무 것도 아닌 존재였다. 이웃도 가족도 세상도 그를 이리저리 밀어댈 뿐이었고 그는 흔들릴 뿐이었다. 그는 하루라도 빨리 세상에 우뚝 설 수 있는 떳떳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걸 위해서 그는 한 때 누구보다도 더 성실하고 착하게 살았다. 일도 열심히 하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 상식과 사회적 규칙들도 열심히 지켰다. 그런 의미에서는 그는 그 어떤 인간보다도 더 인간다웠다. 쥐로 태어나 인간을 지향한다는 것은 그의 삶 자체였다. 쥐는 오직 그날이 오기 만을 기다리며 비루한 하루 하루를 참고 견뎠다. 성공의 비결은 성실이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깨달음의 날이 왔다. 어느 날이었다. 쥐는 동사무소에 서류를 제출할 일이 있었다. 동사무소에 도착한 쥐는 대기하는 자리에 앉아서 호출을 기다렸다. 동사무소는 허름했지만 그가 입고 있던 옷은 훨씬 더 허름했다. 그의 얼굴은 너무 검었고 누가 봐도 그는 단순한 잡역부처럼 보였을 것이다. 공부에 알바에 불안정한 미래에 그는 초초했다. 그날도 이 일에 쓸 시간이 그렇게 많이 없었다. 하지만 동사무소의 직원은 매우 한가해 보였는데도 쥐를 한없이 기다리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가 쥐를 불렀다. 하지만 그는 쥐가 들고 온 서류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이 이게 뭐야! 다시 해 오세요!”

 

그는 서류를 밀쳐내 버렸다. 도대체 정확히 뭐가 잘못된 건지, 다른 곳을 다녀와야 한다면 어디를 어떻게 다녀와야 한다는 설명도 없었다. 쥐를 부르기 전에 그 직원은 빈둥거리면서 놀고 있었지만 일단 쥐와 얼굴을 마주보게 되자 그는 마치 너무나 바뻐서 쥐의 일을 제대로 처리할 시간이 없는 것처럼 굴었다. 그는 분명히 고의로 그렇게 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의 초라한 행색이 일을 이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조금 높은 사람이라도 등장하면 쩔쩔 맬 것이 분명한 그는 초라한 쥐 앞에서는 대단한 권력을 지닌 높은 관리인 것처럼 굴고 싶었을 것이다. 그게 아니면 그는 그저 누군가에게 무시당했던 일이 화가 나서 이번에는 쥐를 무시하는 것으로 화풀이를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어쨌건 그는 나도 누군가를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쥐가 당황해서 그에게 애걸하기를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 직원은 방문객에게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됐다. 하지만 불쌍한 쥐는 항의하는 것은 고사하고 물어야만 했을 질문도 제대로 물을 수가 없었다. 쥐는 단지 그 신경질적으로 밀쳐진 서류를 아주 빨개진 얼굴을 한 채 조심스레 집어들었을 뿐이었다. 그 떨리는 작은 손으로 서류를 들면서도 쥐는 눈을 내리 깔았다. 눈을 들어 직원을 보면 왠지 그 직원이 웃고 있을 것같았다. 둘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이라도 생긴다면 그는 이렇게 말할 것같았다. “나는 네가 누군지 알아. 이 천박한 쥐새끼야! 여기는 인간을 위한 곳이라고. 쥐는 시궁창으로 꺼져버려!” 쥐는 도망치듯 서둘러 동사무소를 나왔다.

 

동사무소를 나온 쥐는 아무 대책도 없이 터벅터벅 길을 걸었다. 쥐도 자신이 지금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서류를 내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판이었는데 뭘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고 그렇다고 다시 동사무소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만약 쥐가 돌아가서 “저 죄송하지만. 서류를 어떻게 고쳐야 한다는 건가요?”라고 정중하게 묻는다면 그는 그저 그 직원에게 자신을 다시 한번 모욕할 기회를 주게 될 뿐이었다. 쥐는 누군가가 이런 부당한 일을 당한 자신을 도와줬으면 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당연히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누가 쥐에게 시선이나 주겠는가? 쥐는 새삼 더 외로웠다. 동사무소 직원이 했던 말이 자꾸 귀에서 맴돌았다. 

 

“아이, 이게 뭐야! 다시해 오세요!”

 

그 말은 자꾸 반복되더니 결국 ‘아이’라는 말로 줄어들었다. 상대가 쥐가 아니었다면 그 직원은 ‘아이’라는 말은 쓰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라는 말은 아마 ‘아 이 쥐새끼’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아이’라는 말은 ‘아 이 멍청한 새끼’라는 말이었을 수도 있다. 그게 뭐건 쥐가 사람이었다면, 사람다운 대접을 받았다면 설사 같은 말을 한다고 해도 그 ‘아이’라는 말은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결국 너는 쥐일 뿐이야라고 외치고 있는 셈이었다. 쥐가 쥐인 것이 마치 무슨 해라도 끼친 것처럼 말이다. 

 

쥐는 이렇게 무력한 자신이 부끄러웠고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것같은 이 세상이 미웠다. 터벅터벅 길을 걸으며 동사무소에서 있었던 일을 한번 두번 되새길 때마다 그의 미움과 분노는 점점 더 늘어났다. 쥐가 인간이 되려고 얼마나 노력했던가. 쥐가 도대체 뭘 잘못했다는 말인가. 쥐로 태어난 나는 영원히 쥐라는 말인가. 쥐의 숨소리는 거칠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더이상 분노가 참을 수 없어질 정도로 차올랐을 때 쥐는 돌멩이 하나를 힘껏 던지고 말았다.

 

“아야!” 누군가가 비명을 터트렸다. 일은 터졌다. 머리가 허연 노파하나가 그 돌멩이에 머리를 맞았는지 머리를 감싸고 쥐가 서있는 방향을 쳐다보고 있었다. 쥐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이것은 분명 그의 잘못이었다. 쥐는 뭐라고 사과를 해야 할 것같았고 평상시의 쥐라면 서둘러 사과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쥐는 방금전까지 매우 분노한 상태였으므로 그냥 얼어붙고 말았다. 노파가 머리를 감싸쥔 손 밑으로 피가 흐르고 있는 것같았다. 어쩌면 눈을 맞았을 지도 모른다. 치료비를 달라고 할지도 모른다. 쥐는 정신이 아득해 지는 것같았다. 이제 이걸 어떻게 한담. 

 

쥐는 여전히 거칠게 숨을 쉬고 있었다. 하지만 꼬리는 이미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겉으로는 표시가 나지 않았지만 너무 놀란 쥐는 똥오줌을 지려버렸다. 놀란 가운데에도 쥐는 이러고 있는 자신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제 노파의 분노와 사람들의 비웃음이 쥐에게 쏟아질 판이었다. 어떻게 책임을 져야할 것인가. 노파가 사람들이라도 부르면 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난감하고 부끄러워서 쥐는 죽고 싶었다. 쥐는 왜 아직도 자신이 살아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똥오줌은 바지를 천천히 적시고 있었다. 얼굴은 무심하게 굳어져 있었지만 이 부끄러움만 피할 수 있다면 쥐는 정말 당장 죽어도 좋았다. 어차피 그다지 대단치도 않은 삶이었다. 쥐는 자신이 쥐라는 것이 너무 싫었다. 자신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쥐는 빠져나올 수 없는 덪에 걸려 있었다. 탈출구는 아무 곳에도 없는 것같았다. 이제 온 세상이 그에게 손가락질을 할 것이다. 천한 쥐는 이제 똥오줌도 못가리는 얼간이 쥐가 되는 것이다. 

 

그 때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노파가 고개를 돌렸던 것이다. 공포에 젖어 있기는 했지만 분노를 터뜨리고 있기도 했던 쥐의 눈빛은 아무래도 평상시와는 달랐던 것같다. 비명소리에도 불구하고 말없이 노파를 쳐다만 보는 쥐의 반응은 노파가 생각하는 겁쟁이 쥐의 그것과는 달랐다. 쥐는 완전히 무표정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노파는 생각했다. 

 

‘다른 사람에게 돌멩이를 던져놓고도 아무 죄책감이 없잖아. 이 쥐는 부끄럼도 양심도 없는 쥐일지 몰라. 아니 저 눈 빛좀 봐. 미친 쥐같지 않아? 이런 쥐라면 나를 물어 뜯을지도 모르지. 그냥 가야 겠어. 나는 이제 힘이 없어서 저런 작은 쥐라도 당할 수 없을지 몰라. 사람들을 불러도 저런 표정이라면 이건 다 거짓말이라고 외치겠지. 저렇게 아무 죄책감도 없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한다면 누가 나를 믿어주겠어? 사람들도 그게 사실이 아닐까하고 생각하겠지.’ 

 

노파는 고개를 돌리더니 그냥 가버렸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다가올 창피함에 죽고 싶었던 쥐는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믿을 수가 없었다. 쥐는 한동안 멍청히 그 자리에 서있었다. 

 

그 노파의 작은 오해가 쥐를 바꿨다. 쥐는 이제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쥐는 자신도 사람들을 두렵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두려움은 전염병처럼 퍼지는 것이다. 한 사람이 쥐를 두려워하면 두번째 사람은 더 쉽게 쥐를 두려워했다. 두 사람이 쥐를 두려워하면 이제 아주 많은 사람들이 쥐를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다. 쥐는 튀는 사람이 되는 쾌감을 알게 되었다. 두려운 존재로 보여지는 쾌감을 알게 되었다. 알고보니 삶이란 누가 누구를 두렵게 하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누가 망치가 되고 누가 모루가 되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은 가장 뻔뻔한 표정을 짓는 것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싶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를 두려워 하게 만들어야 한다. 

 

시작은 언제나 첫번째 사람에게 아주 뻔뻔한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쥐가 그 누구도 나를 어떻게 하지는 못한다는 표정을 더 완벽하게 지으면 지을 수록 사람들은 공포를 느꼈다. 상식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에 의구심을 품었다. 쥐의 이빨과 뾰족한 주둥이는 점점 더 거대하게 보이게 되었고 사람들은 곧 그를 괴물로 여겼다. 

 

물론 그 모든 일이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두가지가 그를 도왔다. 하나는 그가 다시 선량하고 부끄러움을 알며 죄를 인정하는 쥐로 돌아간다면 그는 다시 그 동사무소의 직원에게 무시당하는 그 순간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모두가 그를 천하고 약한 쥐로 여기던 순간으로 말이다. 쥐로서는 그렇게 되느니 차라리 죽는게 좋았다. 세상을 모두 망하게 하는 일이 있어도 쥐로서는 자신의 죄를 인정할 수 없었다. 똥오줌을 싸고 길에서 떨고 있던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아무리 무서운 순간이 생겨도 쥐는 사과하지 않았다. 아무리 미안한 순간이 생겨도 쥐는 사과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 

 

쥐는 탐욕스러웠고 무서움이 많았다. 이제 그는 자기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사람들은 쥐처럼 뻔뻔하고 용감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남의 것을 빼앗고 모두의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일을 하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꼈고 일이 잘못되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꼈다. 그들은 결국 바닥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쥐처럼 시궁창을 헤매다보면 이제 그곳으로는 돌아가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그러면 뻔뻔하고 용감해 질 수 있다. 그 시궁창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쥐를 그렇게 만들었다. 

 

또 하나는 쥐가 자신의 재능을 알게 된 것이었다. 쥐는 탐욕과 공포의 냄새를 잘맡았다. 그래서 그가 적당히 뻔뻔한 웃음을 지으면서 그들의 탐욕을 지적하고 그들에게 약간의 두려움을 느끼게 하면 그들은 곧 쥐의 말을 들었다. 따지고 보면 그들은 그저 약간의 핑게가 필요한 것뿐이었다. 저는 쥐가 두려워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 쥐는 보통쥐가 아닙니다. 그 쥐는 괴물이예요라고 말하면 어떤 나쁜 행동도 정당화 될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강요당했다는 핑게가 필요했으며 기꺼이 스스로가 겁쟁이라는 것을 인정했겠지만 사실은 그들 자신도 그들의 탐욕에 패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탐욕은 아닐지 모른다. 그들도 누군가에게 모욕을 당하고 억눌린 경험을 했던 사람들이었다. 쥐는 그저 그들에게 당신들도 세상에 그걸 갚아줄 수 있다고 말한 것 뿐이었다. 당신도 남들을 두렵게 할 수 있다라고 암시한 것뿐이었다. 그들도 해방이 필요했다. 세상에 넘쳐나는 인간에 대한 모욕은 쥐의 친구들을 양산했고 사람들로 하여금 쥐의 말에 귀기울이게 만들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쥐는 조금씩 거물이 되어갔다. 차차 알게 되었지만 큰 것이건 작은 것이건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은 너무나 간단한 일이었다. 너무나 간단하기에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못한다. 그냥 주인이 보고 있을 때 그것을 들고 나오면 된다. 몰래 들어가서 훔쳐오거나 주인이 보지 못할 때 들고 나와서는 안된다. 그것은 두려움을 뜻하기 때문이다. 쥐는 물건을 그냥 들고 나오면서 주인을 뻔뻔스럽게 쳐다본다. 쥐의 시선에는 조금의 두려움도 부끄러움도 없다. 오히려 미소를 머금고 있다. 그러면 주인은 당황한다. 보통의 도둑은 주인을 보면 당황한다. 하지만 이 쥐는 다르다. 남의 것을 들고 나가는 느낌이 없다. 마치 본래 이 물건이 자기 것인 것처럼 행동한다. 이제 주인은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쥐가 저렇게 당당한 것을 보니 경찰도 어쩌면 쥐편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쥐떼의 습격에라도 당한다면 경찰은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할지 모른다. 게다가 쥐에게 물리면 병에 걸려서 죽는다는 말이 생각이 난다. 이제 두려움은 공포가 되었다. 머뭇거리는 주인에게 쥐는 말한다. 

 

“다음번에 다른 가게에 갈 때는 주인도 같이가는게 어때요?”

 

그것은 마치 친구에게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것은 남의 물건을 가지고 이 물건의 값을 치루겠다는 말처럼 들리며 그것은 마치 요즘에는 남의 가게에 들어가서 물건을 훔치는 일이 당연한 일이 된 것처럼 들린다. 그러면 주인은 탐욕에 물든다. 남의 물건을 마음껏 훔칠 수 있다는 생각에 빠져들게 된다. 결국 그 주인은 멀쩡한 자기의 가게를 버리고 쥐도적단의 일원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쥐는 점점 더 많이 훔쳤고 그에 따라 쥐도적단의 규모는 점점 더 커졌다. 쥐를 따르는 사람들은 점점 더 쥐를 흉내내어 쥐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한때는 쥐가 인간이 되고 싶어서 안절부절했는데 이제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쥐가 되려고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쥐처럼 이빨이 크고 주둥이가 튀어나오지 못한 것을 유감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쥐같은 인간은 늘었다. 그리고 그렇게 커진 쥐떼는 도시를 점령했다. 쥐가 시장이 된 것이다. 

 

쥐가 사람들에게 약속한 것은 결국 하나였다. “남의 것을 훔칩시다. 그걸 다 써버립시다. 제가 시장이 된다면 어린 아이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다른 도시의 것이든 모두 훔쳐서 흥청망청쓰겠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하냐구요? 그냥 하면 됩니다. 아주 크게 훔치고 아주 뻔뻔하게 훔치면 사람들은 그 일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남들의 상상을 넘는 대담함과 뻔뻔함입니다. 그래도 항의하는 사람들은 눌러버리거나 우리의 한패가 되게 만들면 됩니다. 항의하는 사람들은 쥐떼의 일원이 되거나 쥐떼의 공격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남의 것을 훔칩시다. 당당히 훔칩시다!” 

 

도둑질을 하고 싶은 사람들, 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많았다. 한 청년은 아무 희망도 없던 그의 삶에 쥐가 희망이 되었다면서 감동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의 답은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도둑질을 하면 되는 것이죠. 저에게 살아갈 희망을 준 쥐에게 저는 정말 감사합니다! 쥐 각하는 저를 살려준 셈입니다!”

 

한 노인은 쥐를 응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훔치며 살면 간단한 걸 왜 사람들은 그렇게 답답하게 살았는지 몰라! 이놈들아 얼릉 얼릉 훔쳐! 부지런해야 잘 살지!”

 

쥐는 점점 자신감이 늘었다. 그는 이제 어린 아이를 만나면 공부 열심히 하고 성실히 살라는 말을 하기 조차 한다. 그는 이제 진정한 인간이란 어쩌면 쥐가 아닐까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 인간은 애초에 쥐였으며 쥐야 말로 진정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가 인간이 되고자 안절부절 애를 쓸 무렵 그는 그저 초라한 한마리의 쥐였을 뿐이었다. 그는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쥐였지만 그래도 결국 쥐는 그저 쥐일 뿐이었다. 이제 인간의 본성이야 말로 쥐라는 것을 깨달은 지금 상황은 반대가 되었다. 그는 가장 모범적인 인간이 된 것이다. 모든 인간은 가장 순수한 쥐인 그를 닮으려고 노력해야 마땅했다. 결국 인간은 쥐이기 때문이다. 가장 순수한 쥐란 가장 순수한 인간이다. 다른 인간들은 위선자들에 불과했다. 

 

이 모든 것은 그 동사무소 직원과 돌에 맞는 노파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결국 사람들은 그저 작은 핑게가 필요했다. 그들은 누군가가 맨앞에서 서서 쥐떼를 이끌어주기만 한다면 기꺼이 도둑이 되고 쥐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핑게가 필요하지 않았다면 쥐가 주는 공포는 그렇게까지 커지지는 못했을 것이고 쥐는 결국 시장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쥐가 주는 공포는 대부분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만들어 낸 것이었다. 작은 오해는 구르고 구르더니 거대한 오해가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악이라고 부를 것이다. 악은 결국 작은 두려움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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