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설들/나쁜 꿈

나쁜 꿈 : 25

by 격암(강국진) 2018. 10. 15.

나쁜 꿈

 

 

25. 어른은 아이를 살리기 위해 죽는다. 

 

이치하라 하야토는 시골 출신이었다. 그는 소학교 6학년 때의 일을 잊지 못한다. 그는 시험시간에 커닝을 했는데 새로 부임한 한 여선생님에게 이것을 들켰던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미네마츠 카에데였다. 문제는 그가 언제나 최고 성적이었던 우등생이었는 데다가 그 작은 마을에서 대단한 위세를 자랑하던 지역 유지의 자식이었다는 데에 있었다. 누구도 전교에서 가장 똑똑한 걸로 유명했던 하야토가 커닝을 하리라고는 믿지 않았고 그를 적발한 젊은 여선생님이 착각을 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치하라 집안의 위세를 아는 선생님들은 지나친 충성심으로 너도나도 자기가 하야토의 부모라도 되는 것처럼 미네마츠 선생을 조롱하는데 참여했다. 그들의 눈에는 이치하라 가문의 자랑이었으며 온갖 영광 뿐이었던 이 아이에게 오점을 남기려고 하는 미네마츠 선생은 보물이 귀한 것을 모르는 야만인에 불과했다. 하야토는 영광스럽게 커서 마을의 자랑이 될 것이 분명한 아이였던 것이다. 언젠가는 이 마을의 지도자가 될 아이였다. 하지만 성격이 급하고 그 마을의 상황을 잘 몰랐으며 사실은 우울증도 가지고 있었던 미네마츠 선생은 그런 조롱 끼 있는 반응에 화가 나서 교무실에서 다른 선생님들과 논쟁을 벌였다. 

 

교무실 안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그건 마치 교회 안에서 누군가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상에 더러운 물을 끼얹은 것과 비슷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하야토가 결백하다고 주장하던 한 선생님은 하야토를 돌아보면서 물었다.

 

너 컨닝 안 했지? 그렇잖아?

 

그 선생은 뜨거운 눈으로 하야토를 바라보았고 아직 소학교 6학년에 지나지 않았던 하야토는 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백점이 꼭 맞고 싶어서 커닝을 했다고 사실대로 말하면 그가 많은 사람을 실망시킬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의 교무실에서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엄청 흥분해 있었다. 하야토는 흥분한 선생님들이 무서웠다. 하야토는 진실이 그 선생님들을 더 화나게 만들 것이 두려웠다. 그리고 일단 한번 거짓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나자 그 거짓말을 뒤집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 되었다. 

 

하야토는 그렇게 한 번 거짓말을 한 걸로 미네마츠 선생님이 사직서를 쓰게 되는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교무실에서 웃음거리가 된 미네마츠 선생은 이 일로 학교를 그만둬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학교를 떠난 지 1년이 안되어 미네마츠 선생이 자살했다는 소식이 마을에 퍼졌다. 우울증이 도졌다는 것이다. 

 

하야토도 이 모든 일들이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의 거짓말이 한 선생의 인생을 바꿨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공포를 느꼈다. 그런 자책감보다 더욱 나쁜 것은 자기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결백을 믿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사람들은 그녀가 하야토를 커닝한 학생으로 몰았던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미네마츠 선생은 본래 이상한 사람이었다고 말하고는 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우울증 이야기를 하면서 어느새 미네마츠 선생은 애초에 채용되어서는 안 되었던 사람이 되고 말았다. 어쩌면 미네마츠 선생은 억울하게 학교를 떠나야 했던 것이 분해서 자살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미네마츠 선생의 죽음조차도 어린 이치하라 하야토의 결백을 의심하게 만들 수는 없었고 살아있는 하야토는 죽은 미네마츠 선생을 욕되게 만들고 있었다. 하야토의 입장에서는 온 마을 사람들이 미네마츠 선생에게 죄를 지고 있었고 그 책임은 자신이 져야 마땅한 것이 되고 있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에는 하야토는 마을 사람들과 학교와 집안의 기대가 괴롭기 짝이 없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웃는 얼굴로 어린 학생의 사소한 실수를 감당할 수 없는 죄악으로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 년 후 집안과 마을의 기대주로 대단한 사람이 될 거라 생각되었던 천재소년 하야토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무작정 그 마을을 떠났다. 그리고 다시 몇 년 후 자위대에 입대하여 군인이 되었다. 하야토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

 

나는 모텔의 침대위에서 깨어났다.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나를 깨운 것은 뉴스 소리였는데 칸나는 아카히로를 옆에 두고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티브이 화면 속에서는 또 거대한 불꽃이 보였다. 경찰서가 불타고 있었다. 누군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스스로를 극진제세교의 교도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한 경찰서에 또 불을 지른 것이다. 올 것이 온 것이다. 아키히로와 함께 나를 따라 도피한 칸나는 화면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도망가세요. 교사님. 다 잊고 도망가세요. 교사님은 충분히 하셨습니다. 아니 우리들은 충분히 했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교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세상은 모두가 구하는 것이지 우리가 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우리도 우리의 작은 행복을 지킬 권리가 있다고. 만약 교사님도 다른 분들과 똑같이 한다면 저도 교사님을 따를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칸나를 쳐다 보다가 나는 말없이 그 옆에 있던 아키히로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아키히로는 잠깐 버둥댔지만 곧 조용해졌다. 능력은 고통을 기반으로 자란다. 그리고 나는 정말 꽤 능력이 증가한 것 같다. 하야토와 사토를 떠올리자 나는 내 핏속으로 흐르는 덩어리 진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아키히로의 뇌가 느껴진다. 아키히로를 가두고 있는 벽이 느껴진다. 나는 한참을 아키히로를 안고 있다가 아이를 풀어주었다. 그리고 칸나에게 말했다.  

 

내가 전에 말했죠? 희망을 잃지 말라고. 미안한 일이지만 내 능력은 아직도 너무 미약하군요. 그래서 아키히로는 아직도 불편한 점이 남았을 겁니다. 

 

그때였다. 아키히로가 또렸한 음성으로 말했다. 

 

엄마. 

 

칸나는 깜짝 놀라서 아키히로를 돌아보았다. 아키히로는 평생 그녀를 엄마라고 불러 준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이따금 하면서 칸나를 아는 여자 대하듯 대했을 뿐이다. 칸나에게는 그것이 큰 상처였다. 그런데 이제 아키히로가 칸나를 보면서 또렷이 엄마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칸나에게 말했다.

 

칸나. 사는 겁니다. 알겠습니까? 아키히로와 사는 거예요. 아키히로는 해보지 못한 것이 너무 많습니다. 어른은 아이를 위해 죽습니다. 그리고 어른은 아이를 위해 살기도 하는 겁니다. 어른은 아이의 미래고 아이는 어른의 미래입니다. 

 

칸나는 아키히로를 안고 울었다. 일어서서 방문을 열고 나가는 나를 쳐다보는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나는 아키히로와 그를 안은 칸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닫혀진 문 뒤에서 칸나의 흐느낌이 폭발하듯이 커졌다. 내가 향하는 곳은 모텔의 옥상이었다. 

 

극진제세교는 이제 한 달 전과는 전혀 다른 곳이 되었다. 교안에서는 해방의 기운이 돌았다. 사람들은 쉽사리 흑백론에 빠져들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너그러워졌다. 계급을 강조하던 호칭이 순화되고 사람들은 이제 각자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종말론적 목표를 향해 가는 집중력으로 유지되던 공동체는 이제 공동체의 안에서도 밖에서도 같이 살아갈 길을 찾기 시작했다. 극진제세교의 사람들은 교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배신자라고 부르곤 했는데 이제는 그런 일도 줄어서 교도가 아닌 사람들과의 심리적 거리도 많이 줄어들었다. 다 같이 살아야 할 사람으로 서로를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완전할 수 없는 변화였다. 오랜 기간 쌓아온 불신과 원한은 다 사라질 수 없었다. 그런 변화에 격렬하게 반발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사토가 힘겹게 일을 막아서 보름정도는 아무 일도 없었지만 결국 거사가 미뤄진 보름 후에는 산발적으로 테러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경비가 심한 곳을 피해서 교도들이 경찰서나 시청 같은 곳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태는 마치 작은 둑이 거대한 홍수를 막고 있는 것과 같았다. 물은 연약한 둑을 터뜨리고 콸콸 흘러내리려고 했다. 그간에 모아두었던 거대한 불신은 도저히 이 연약한 둑으로는 막을 수가 없어 보였다. 증오와 불신을 터뜨리려고 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이런 식으로는 안된다면서 불평을 했다. 그들은 그 연약한 둑에 와서 둑을 보강하려고 하는 사람이기보다는 그 둑에 발길질을 하고 망치질을 하면서 이런 둑이 버틸 리가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좋은 뜻은 알겠지만이라는 말은 꼭 덧붙였다. 

 

급기야 몇 건의 사소한 공격소식이 들리더니 일본 NHK 방송국에 폭발물을 실은 차량이 돌진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NHK 방송국 건물이 크게 부서질 정도의 거대한 불꽃이 솟아올랐다고 한다. 그날로 극진제세교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었고 극진제세교의 사무실은 수색되었다. 수뇌부에 해당하는 나와 사토는 즉각 수배자가 되었다. 그건 어쩌면 조직의 입김일지도 몰랐다. 극진제세교를 막고 있는 나와 사토가 구속되면 극진제세교는 본격적으로 폭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나와 사토를 악의 우두머리로 여겼다. 

 

칸나는 사람을 믿고 가야한다는 나의 의견에 동조해 주었다. 하지만 하야토와 사토는 내 의견을 듣고 그건 불가능한 일이며 너무나 느린 길이라고 반대를 했었다. 그들은 의견이 달랐지만 이렇게든 저렇게든 세상을 바꾸는 일종의 강경책을 써야 한다는 점에서는 묘하게 일치하는 면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그런 대의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한목숨 내놓겠다는 결연함도 있었다. 우리들은 거의 매일 치열하게 논쟁을 벌였고 하야토와 사토는 때로 나를 용납할 수 없다고 크게 화를 내기도 했다. 

 

하야토는 전부터 한무리의 학생들과 친했는데 그 학생들에게 지금의 상황이 어떤 지를 되도록 투명하게 말하면서 그들과 치열한 대화를 하고는 했다. 하야토는 하나의 이야기를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퍼뜨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학생들의 어떤 질문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이야기하려고 했다. 그리고 누구나 하야토와 학생이 만든 그룹에 끼어들려고 하면 받아주겠다고 했다. 그 결과 하야토의 그룹은 점차로 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하야토의 이야기를 부정하는 사람과의 반목도 커졌다. 

 

사토는 그보다는 충성을 다할 사람들로 정보를 끌어모으고 그것을 결코 완전히 공개하지 않았다. 사토의 조직은 그 전모가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고 어떤 정보도 필요 이상으로 흐르지 않도록 했다. 나를 포함해서 누구도 누가 그 사토의 새로운 조직에 들어 있는지를 다 몰랐다. 심지어 그 조직에 있는 사람들도 서로를 다 몰랐고 서로가 하는 일을 다 몰랐다. 사토는 그럴 때만이 조직이 힘을 가진다고 믿었다. 실제로 사토의 조직은 일종의 감찰조직의 역할을 하면서 극진제세교 내의 정보를 사토에게 모아 주었다. 하야토의 모임을 지키는 힘이 이야기의 힘이라면 사토의 조직을 움직이는 힘은 리더에 대한 신뢰였다. 하지만 모두가 사토에게 신뢰를 가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토가 더 많은 비밀들을 만드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사토를 극진제세교의 배신자라고 부르는 사람도 생겼다. 

 

사토와 하야토는 서로를 잘 도와주면서 힘겹게 조직의 질서를 지켜내고 있었다. 사토는 공포와 권위를 통해서 그렇게 했고 하야토는 신뢰와 투명성을 가지고 그렇게 했다. 이 두 사람은 끝까지 나를 존중했다. 그래서 하야토는 정보를 퍼뜨리는데 한계가 있었고 사람들을 마구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야토의 이야기는 나때문에 두리뭉실해졌다. 사토도 최소한의 대화와 납득 없이 조직에 사람을 들이는 것을 제한하고 있었다. 사토의 조직은 나 때문에 느슨해졌고 최소한의 투명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토와 하야토가 나를 존중해 주는 것은 우선적으로 그들이 내가 극진제세교로 돌아온 것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내가 돌아와서 내부 사정을 알리지 않았더라면 전면적 테러 계획이 실행되는 것은 피할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것은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오히려 더 중요한 이유는 내가 사토와 하야토의 과거를 자세히 알지만 여전히 그들을 걱정하고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말을 뛰어넘어서 전달되기 마련이다. 

 

하야토와 사토 그리고 나는 종종 충돌했지만 그 충돌은 언제나 그들이 나에게 보이는 존중심으로 억제되었다. 하지만 어느 날 우리들간의 충돌이 극도로 심해지자 나는 그들에게 나의 생각을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가 옳고 누가 틀린지 누가 누구에게 이해될 수 있는지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게 가장 중요한 본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들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습니다. 저는 이미 여러분들을 포함한 많은 교도들의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 능력이란 그 이야기들을 잊지 못하는 것이죠. 솔직히 말하면 그 이야기들에 대해 제가 모두 납득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편으로는 여러분들의 비극과 슬픔과 상실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되다가도 한편으로는 왜 그런 선택들을 하고 스스로 자해를 하면서 사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되기도 했습니다. 저라면 그렇게 살지 않을 것 같으니까요. 때로는 정말 답답했습니다. 그런 경우에 제가 옳을까요 그들이 옳을까요? 또 우리가 언젠가는 서로를 정말 다 이해하는 날이 오기는 올까요? 그런 날은 아마 오지 않을 겁니다. 

 

인간은 남의 사정을 듣고 보고 그걸 다 이해할 수 없어도 어느정도는 그 입장을 이해하고 남의 감정을 공감합니다. 나라면 그렇게 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 아픔을 공감은 합니다. 우리는 분명히 공감능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공감능력이 유한한 것도 사실입니다. 백만 명이나 1억 명의 아픔에 대해 공감하는 것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그쯤 되면 그것은 직접적인 공감능력의 결과라기보다는 추상적 사상의 결과, 이성적 추론의 결과라고 봐야 합니다. 직접적인 이해는 불가능하며 내가 아는 몇 명, 몇십 명, 몇백 명을 수만 배 수백만 배로 확대해 해석한 결과라고 봐야 합니다. 

 

문제는 그런 판단이나 사고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 행위가 본래의 핵심적 공감능력을 억압하는 면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직접적 느낌이 사라지고 이성만 남게 되기 쉽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인간이 언어와 문자의 지배를 받게 된 이래 생겨난 본질적 비극일지 모릅니다. 우리는 타고난 동물적 감각을 희생해서 사회적 인간으로 재탄생한 것이니까요. 차를 타면 다리가 약해지듯이 언어와 문자의 지배가 너무 심해지면 우리는 인간으로서 타고난 공감 능력을 잃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일단 언어와 문자를 배운 인간은 그 힘을 초월해야 합니다. 말을 넘어서야 합니다.  

 

우리의 그 본능적 직관적 감각이 희생되기 시작하면 이제 우리의 이성도 빛을 잃기 시작합니다. 이성의 힘이란 본질적으로 언어와 문자의 힘인데 그것들은 대단하지만 결코 무한하지 않으며 무한하다고 해도 그 무한의 힘을 유한한 인간이 모두 제대로 쓸 수도 없으니까요. 테니스 선수가 테니스 치는 법에 대한 메뉴얼을 외워서 테니스를 잘 치는 것이 아니며 부모가 좋은 부모가 되는 지침들을 외워서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옳고 그른 것을 따지고 이해하고 이해받는 것에 집착하는 것이 우리를 반드시 좋은 세상에 살게 하지는 않습니다. 그것들도 정말 중요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주목해야 합니다. 내가 아직도 나인지 말입니다. 

 

세상에 대한 마지막 믿음과 사랑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이 말하는 현실론과 체념과 저주에 가득찬 사람들이 말하는 현실론은 엄청나게 다릅니다. 세상에는 이미 세상을 포기했으면서, 세상에는 희망이 없다고 믿으면서 세상을 구해 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이미 세상 사람들은 어리석고 구제불능이며 도덕적으로 타락하여 벌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라고 단언합니다. 그러면서도 이 세상을 고쳐볼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말하는 현실론이란 제 아무리 그럴듯하고 논리적으로 꼼꼼해도 따지고 보면 결국 세상을 벌주기 위해 말하는 핑계에 불과합니다. 인간에게 희망을 잃고 인간을 믿지 않게 된 순간 우리가 하는 말은 그게 어떻게 들리든 그저 세상을 벌주기 위한 핑계가 될 뿐입니다. 결국은 망하라는 겁니다. 사랑 없는 구원은 없으니까요. 

 

우리는 가장 먼 길이며 가장 불가능해 보이는 이 길이 사실은 가장 짧은 길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간을 믿지 않고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 길, 인간을 조종하고 그들의 결정을 우리가 대신하는 길은 때로 지름길같고 지혜로운 길 같지만 사실은 돌아가는 길이며 때로는 우리가 가고 싶은 방향과는 반대로 가는 길입니다. 가장 짧은 길, 핵심을 잃지 않는 길은 인간을 믿고 인간을 사랑하는 길이며, 그 이전에 자신을 믿고 자신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던 능력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인간 재생의 길입니다. 

 

물론 그 가장 짧은 길도 짧지 않지요. 댓가를 치르지 않고 갈 수 있는 길도 아닙니다. 너무나 힘든 길입니다. 내가 촛불을 끄고 줄에서 이탈하지 않아도 다른 누군가는 그렇게 할 것 같습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믿음을 배신할 것입니다. 때로는 그걸 막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게 가장 짧은 길이라는 것을 잊어버리면 우리가 치러야 할 희생은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늘어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런 유혹과 싸워야 합니다. 

 

저는 제가 아는 분들이 걱정이 되어서 교에 돌아왔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생각도 다르고 이해도 되지 않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서 돌아왔습니다. 어떤 때는 여러분들이 왜 이렇게 사는지 정말 화가 나기도 하고 납득이 안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제가 비록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더라도 그저 옆에만 있는 것으로도 상황이 어느 정도는 다르게 흘러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주로 그저 옆에 있고자 해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잊을 수 없었던 여러사람 중에서도 제가 가장 잊을 수 없었던 것은 저에게 웃음 한번 지어주지 않은 칸나의 아들 아키히로였습니다. 칸나가 죽거나 감옥에 가면 아키히로는 살 수가 없습니다. 칸나는 혼자서 감옥에 가느니 아키히로와 함께 죽겠다고 할지 모릅니다. 칸나는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의 삶에 대해 매우 민감하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칸나가 혼자서 죽는다면 아키히로가 너무 불쌍합니다. 아키히로는 발달장애가 있습니다. 아키히로는 말도 제대로 못 합니다. 아키히로는 엄마를 좋아하는데 그걸 제대로 표현을 못합니다. 아키히로는 사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운데도 그걸 잘 표현도 못합니다. 아키히로의 삶은 너무나 답답합니다. 자기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지도 잘 모릅니다. 

 

저는 어른입니다. 한명의 어른으로서 저는 아키히로를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세상에는 아키히로 말고도 많은 아이가 있고 제가 그들 모두에게 뭔가를 다 해줄 수는 없으니 제가 아키히로를 외면하지 못하겠다는 것은 위선이고 모순이지요. 그래도 저는 저와 인연이 되어 만난 아키히로가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아키히로를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왠지 아키히로가 죽는다던가 아키히로가 엄마 없이 세상에 혼자 버려진다고 생각하면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어른이니까요. 아키히로는 아이니까요. 어른은 아이를 위해 뭔가 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세상에서 뭔가를 받았던 어른은 그걸 돌려줘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어른은 아이를 살려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저는 아키히로를 살리고 싶어서 돌아왔습니다. 

 

그 마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물론 두 분에 대한 제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걱정하고 아끼는 마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저는 여러분들과 아키히로가 모두 다 무사하고 편안해 졌으면 좋겠습니다. 보다 자유롭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하나가 되는 날은 오지 않겠지만 좋은 친구로 남아서 서로의 감정에 공감하며 계속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아주 오래오래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내 말이 끝날 무렵에는 이미 방안의 뜨거웠던 흥분은 어느정도 식어 있었다. 하지만 하야토는 그 대화가 있고 나서 두 주가 못되어 죽었다. 

 

하야토는 방송국 방화가 일어났다는 말을 듣자마자 NHK 방송국 앞의 요요기 공원에 가서 몸에 신나를 붓고 불을 질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NHK 테러에서 죽은 교도들 중에는 그가 돌봐주던 학생도 하나 있었다고 한다. 하야토의 모임에 나오던 그 학생은 본래는 매우 내성적이고 조용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모임에 나와서 토론에 참여하면서 급격히 성격이 변했다. 그는 종종 하야토와 치열하게 논쟁을 했고 그러다가 모임을 뛰쳐나갔는데 그 후로 급진파가 되어 자살테러를 감행했다는 것이다. 문제의 NHK 테러에 참여한 사람 중의 하나였다. 하야토는 이 소식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앞으로 테러가 본격화되면 자신들의 다른 학생들도 어떻게든 더 많이 희생될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야토는 테러의 불을 끄기 위해 그런 일을 저질렀던 것이다. 하야토는 나를 만나지 않고 떠났다. 나를 만나면 저지당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극진제세교의 테러에 반대한다는 현수막을 걸고 하야토가 몸에 시너를 붓자 경찰과 기자들이 현장에 몰려왔다. 하야토는 모여든 기자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저는 오늘 테러를 저지른 극진제세교의 한 교도입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한 말씀을 드리려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오늘 죽으려고 합니다. 저같이 보잘것없는 사람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제 목소리가 여러분들에게 들리지 않겠지요. 저는 죽습니다. 하지만 저는 누굴 죽이기 위해 죽는 게 아닙니다. 저는 누구를 원망하기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해 보면 그것은 너무나 다행한 일입니다. 1년 전만 해도 저는 테러를 저지른 다른 극진제세교의 신도들처럼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누군가를 원망하기 때문에 죽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망하게 하기 위해 죽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는 살려고 죽습니다. 이제 저는 살리려고 죽습니다. 이제 저는 희망을 위해 죽습니다. 모든 극진제세교의 교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이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제 여러분들이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나름 힘들게 살았습니다만 어쩌면 여러분의 삶은 저의 삶보다 더 힘든 것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의 옆을 보면 그래도 누군가가 같이 할 것입니다. 그거면 된 거 아닐까요? 만약 그런 사람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가 손을 내밀어 주면 되지 않을까요. 우리는 완벽하지 않지만 손을 잡고 같이 걸으면 잘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여러분들이 세상과 인간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잃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더 이상의 테러를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극진제세교의 신도가 아닌 여러분들은 이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우리 모두가 테러를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너무 강하게 우리를 원망하지 않도록 해주셨으면 합니다. 우리를 그저 같은 시민으로 같은 인간으로 봐주셨으면 합니다. 여러분의 미움이 또 누군가를 자극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내가 안전하고 봐야겠다는 생각에서 하는 말과 행동이 차별이 되면 그 차별이 결국은 모두를 위험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그냥 모두 인간입니다. 여러분과 같이 살고자 하는 인간들입니다. 

 

이 말을 끝으로 하야토는 자기 몸에 불을 질렀다. 그날 저녁뉴스는 두 개의 뉴스를 함께 다뤘다. 하나는 극진제세교라는 사이비 종교가 NHK 방송국 건물에 방화를 시도하는 테러를 저질렀다는 뉴스였고 또 하나는 그 일이 있고 나서 6시간 후에 또 다른 극진제세교의 교도 하나가 테러에 반대한다고 주장하면서 분신자살을 했다는 뉴스였다. 경찰은 극진제세교에 대해 수색에 나섰고 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피신했다. 이 상황에서 나와 사토가 구속되는 것은 하야토의 죽음을 무의미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야토의 죽음은 테러가 무차별로 번지는 것을 막았고 시민들이 극진제세교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것도 막았다. 단 하나의 테러만 벌어져도 걷잡을 수 없이 계속 벌어질 것 같던 테러는 그 뒤로 일주일 동안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이번에는 도쿄 시청이 공격받는 테러가 있었고 다시 사토가 죽었다. 

 

사토는 극진제세교의 수뇌부로 지명 수배되었고 방송에도 나왔기 때문에 그가 총을 들고 동경 시청 앞에 등장해서 공포탄을 쏘자 금세 하야토 때보다 훨씬 더 많은 기자들이 몰려왔다. 그리고 그가 확성기를 들고 성명서를 읽기 시작하자 하야토 때를 생각하면서 기다렸던 방송국들이 그걸 생방송으로 내보내기 시작했다. 

 

시민 여러분. 저는 극진제세교의 사토 카즈마입니다. 저는 지난번에 죽은 하야토와 가까이 지냈습니다. 그리고 하야토가 죽을 때 읽었던 성명서를 듣고서 참으로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는 지난 오랜 세월 동안 실질적으로 극진제세교를 운영해 왔던 사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테러에 대해 깊은 책임이 있으며 하야토와 같은 사람이 저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그 일에 책임을 지려고 합니다. 이제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미루지 않고 제가 없으면 안된다고 말하거나 어떤 대의를 위해 다른 사람이 희생을 치르라고 말하지 않고 제가 먼저 책임을 지려고 합니다. 저의 죽음은 상당 부분 하야토와는 다릅니다. 하야토가 죽고 나서 생각해 보니 정말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람들의 마음에 절망과 미움을 심은 것은 저였습니다. 때로 저는 사람들을 위해서 제가 일하고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이제 돌아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저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을 살아갈 이유로 가지라고 사람들에게 권해온 것이었습니다. 저는 스스로 어떤 악마를 만들어 내고 그 악마를 미워하면 우리의 삶이 가치 있어진다고 말해왔었습니다. 그리고 그 미움이 많은 사람의 마음을 병들게 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정당한 법의 심판을 받는 것도 생각해 봤습니다만 지금의 상황은 극진 제세교의 중앙부가 모든 명령을 내리고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그냥 구속되거나 유언을 남기지 않고 죽는 것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기만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멋대로 저의 이름을 쓸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멋대로 제 뜻을 주장하고 저를 원하지 않는 영웅으로 만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여기 제 뜻을 분명히 남깁니다. 모든 극진제세교 여러분. 미움을 거둬주십시오. 불신을 거둬주십시오. 그리고 삽시다. 세상을 사랑하고 무엇보다 우리 자신을 사랑합시다. 이 세상은 살만한 곳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반드시 죽어야 한다면 우리도 하야토처럼 죽도록 합시다. 우리도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서 죽도록 하는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합시다. 

 

저는 최근에 하나의 아주 감동적인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찌보면 별말이 아닐 수도 있고 당연한 말일 수도 있습니다만 저로서는 아주 감동적인 말이었습니다. 그 말은 어른은 아이를 살리기 위해 죽어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죄가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제 생명이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못난 어른이라도 아이를 살리기 위해 죽을 수 있다면 그것은 너무나 기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극진제세교의 신도 여러분. 테러를 멈춰주십시오. 죽지 말고 살아주십시오. 이것을 테러의 끝으로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말을 끝으로 사토는 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쏘고 죽었다. 사토의 자살은 극진제세교의 테러보다도 더 크게 신문방송에서 다뤄졌다. 테러는 다시 한동안 일어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밤마다 거리에다 초를 켜고 평화를 애원했다. 평화를 위한 거리 콘서트가 열렸고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꽃을 나눠주고는 했다. 사람들은 과장하지 않고 솔직하게 서로에게 도움을 처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서로를 도왔다. 불안과 거짓은 물러나고 있었다. 슬픈 역사의 희생자들을 토대로 신뢰의 망은 느리지만 분명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테러 위기는 끝이 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했는데도 사토가 죽은지 일주일이 지난 후 이번에는 경찰서가 불탄 것이다. 내 귀에는 사람들의 한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간신히 유지되던 평화의 균형은 또 깨어졌다. 아직도 미움의 세계에서만 살 수 있다고 믿고, 그 세계가 자기에게 권력을 준다고 믿는 사람들은 미움과 불신을 끈질기게 외쳐대고 있었다. 그들은 경찰서를 불태운 불꽃으로 하야토와 사토의 죽음을 비웃고 있었다. 세상은 다시 어둠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온세상은 나를 찾고 있었다. 다시 온 세상이 이 세상을 끝장낼 것인지 아니면 이 세상을 이대로 둘 것인지를 나에게 결정하라고 하고 있었다. 나는 물론 도망갈 수 없었다. 경찰서가 불타던 순간 내 운명은 결정되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병원을 탈출한 순간부터 모든 것은 운명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내가 계속 잠들어 있었다면 나는 이런 입장에 서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잠들어 있을 수 없었고 결국은 이런 입장이 되었다. 잠든 사회는 결국 모두를 죽이지만 무엇보다 잠든 사회는 아이를 죽인다. 그것이 언제나 나를 다시 깨어나게 했다. 

 

나도 다른 선택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나의 능력은 하야토와 사토의 죽음을 경험할 때마다 크게 증가했다. 지금 다시 4번을 만난다면 아마 상황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래봐야 그것은 하나의 인간의 능력일 뿐이었다. 내가 저 모든 극진 제세교의 사람들의 마음을 다 알아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그것은 내가 목숨을 바친다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직 사람들이 스스로 서로를 돌아볼 때만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아카히로를 고쳐주고 칸나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이제 내 차례가 온 것이다. 옥상에 올라간 나는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내 위치를 말해주고 핸드폰에 내 유언이 있으니 이걸 방송해 주기를 부탁했다. 그리고 핸드폰의 동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여러분. 이렇게 이 자리에 서니 참 복잡한 마음이 듭니다. 우선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간 하야토상도 사토상도 말했듯이 이제 여러분은 사십시요. 누구도 저희를 따라 하지는 마십시오. 저는 낡은 시대의 마지막일 뿐입니다. 이제 앞으로는 누가 이런 길을 택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믿고 평화의 연대를 강하게 하면 이제 이런 일은 필요 없을 것입니다. 저는 저를 마지막으로 그런 시대가 오기를 바랍니다. 저는 오직 믿음을 위해 이 길을 택합니다. 앞으로도 세상에는 이런저런 풍파가 있을 것입니다만 그때는 손에 손을 잡은 평화의 연대를 믿고 대처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야토상과 사토상이 이미 모든 말을 다 하셨으니 저는 오직 한가지의 말만 강조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제 떠납니다. 그러니 남은 세상은 온전히 여러분의 것입니다. 주인의식을 가지십시오. 스스로를 조금 더 좋아하십시오. 우리가 정말 숨기기 어려운 것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고 남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진정으로 애정이 없을 때 세상은 그걸 알아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이 세상을 사랑할 때 그런 사람이 사라지면 사람들은 슬퍼합니다. 사람들은 미안해하고 빚진 기분이 듭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뭘 잃었는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여러분의 세상을 구하십시요. 앞으로도 여러 가지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문제가 없는 천국 같은 세상은 절대로 오지 않으니까요. 그때 이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의 세상입니다. 여러분들이 지켜나가셔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평화와 믿음의 대오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면 여러분들은 그걸 지키실 수 있을 겁니다. 좋은 세상은 좋은 법이나 좋은 경찰이 만드는 게 아닙니다. 오직 좋은 사람들이 만듭니다. 

 

나는 난간위로 올라가서 밑으로 몸을 던졌다. 내 몸은 어느 때보다 가볍게 느껴졌다. 나는 마치 풀잎이 떨어지듯 천천히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나는 언젠가 내가 하늘을 날 수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는 것을 기억했다. 그때에 비하면 나는 엄청나게 능력이 늘었을 것이다. 과연 내가 여기서 의지를 일으키면 하늘을 날게 되는 것일까? 

 

바닥이 점차로 다가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것은 눈부신 빛으로 변했다. 

 

 

 

 

 

'소설들 > 나쁜 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쁜 꿈 : 26 (끝)  (0) 2018.10.18
나쁜 꿈 : 23-24  (0) 2018.10.08
나쁜 꿈 : 21-22  (0) 2018.09.26
나쁜 꿈 : 18-20  (0) 2018.09.18
나쁜 꿈 : 15-17  (0) 2018.09.1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