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교육에 대하여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사노동을 가르쳐야 할 세가지 이유

by 격암(강국진) 2018. 11. 26.

일찌기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 존 듀이는 부엌일을 아이들에게 가르 치는 것을 교육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나도 내가 그런 걸 더 가르쳤으면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아이들에게 청소하고 빨래하고 요리하고 설거지 하는 것을 더 많이 가르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다만 내게도 변명거리가 있다. 노력도 부족했지만 그걸 자연히 가르치게 되는 환경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세탁기는 가사일을 줄이지 못한다는 주장이 있다. 물론 빨래를 세탁기가 해주기는 하지만 그 결과 우리는 할 필요가 없는 빨래를 전보다 훨씬 더 자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기술이 만들어 낸 도구들에는 모두 이런 역설이 있다. 우리는 물마시고 집에서 칼국수를 밀어서 먹으면 그것으로 행복했었는데 외식을 하고 편리하게 요리할 수 있는 상품들을 슈퍼에서 사들인다. 그 결과 우리가 더 편리하게 살게 되었냐고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여전히 우리는 온갖 가사일에 시달린다. 그 이유는 우리가 전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해야 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계란 후라이 하나면 감사했던 아침이 어떤 사람에게는 특정 브랜드의 씨리얼이나 오븐에서 잘 구운 토스트 같은 것으로 바뀌었다. 생활수준을 더 올리니까 돈도 더 쓰지만 일은 자꾸 더 생긴다. 오븐을 사고 맛있는 씨리얼을 찾아 헤맨다. 그냥 씨리얼이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문명화된 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첫째로 우리의 일상적 가사노동을 점점 더 사소하고 불필요한 것으로 느끼게 되었다. 문명화란 어떤 면에서 보면 우리가 집에서 직접 해왔던 가사노동을 남에게 시키는 일이 점점 늘어나는 일을 말한다. 외식도 없고 집에서 직접 옷을 만들어 입던 세상에서 외식이나 간편한 제품으로 편리하게 식사하고 옷은 당연히 사입는 세상이 되는 것이 문명화라는 것이다. 장보러 시장가던 시대에서 인터넷 주문을 하면 시장 본 것을 배달해 주는 세상이 되는 것을 보통 문명화라고 하지 않는가? 이 말은 우리가 가사노동을 나쁜 것,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기 쉬운 세상을 산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자동차가 나온다고 해서 걷는 일이 나쁘고 중요하지 않은 일이 아닌 것처럼 때로는 문명화에 역행하여 문명없이도 살 수 있게 되는 일은 중요한 일이다. 

 

둘째로 지적할 것은 요즘은 우리의 가사노동은 이제 오히려 쉽게 가르치기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기계가 없던 시절 빨래란 손으로 비누를 써서 하는 원시적인 것이었다. 요즘에 말하는 빨래란 빨래감을 세탁기에 넣고 스위치를 누르며 건조기를 돌리는 것을 말한다. 원시적인 방식으로 빨래를 하던 시절에는 당연히 할 일이 많아서 아이들에게 그 노동의 일부를 분담시키기도 쉬웠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기초적인 기술이므로 미래에도 그런 기술이 도움이 될거라고 우리는 생각할 수 있었다. 빨래를 빨래줄에서 걷는다던가 쉬운 빨래를 하게 한다던가 하는 작은 일들이 많이 있었다. 밥은 전기밥솥이 하지 않고 아궁이에 장작을 태워서 했으니 땔감을 가져오게 한다던가 불을 지켜보게 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작은 일들이 많았고 그 작은 일들을 하다보면 아이들은 자연히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되기 마련이었다.

 

요즘 아이들이 세탁기 돌리는 법을 배워야 할까? 한편으로는 그럴것 같지 않다. 왜냐면 20년쯤 후 그 아이들이 독자적으로 살게 될 무렵에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빨래를 할 것같기 때문이다. 소달구지를 쓸 때는 소를 돌보는 일이라도 아이들에게 분담시킬 수 있었지만 우리가 자동차를 쓰게 되면 아이들에게 분담시킬 것이 없어진다. 운전을 하거나 아니면 아예 아무 것도 안한다는 식이다.  그러니까 가사노동을 포함하여 인간이 살아가면서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이미 필요없어졌거나 미래에는 더 필요없을 것같다. 돈만 있으면 다 남이 해주니까 그렇다. 그러니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한 공부만 열심히 하면 다른 것을 배울 필요가 없고 그런 것은 모두 시간낭비처럼만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사노동을 가르쳐야 할 이유는 적어도 세가지는 된다. 첫째로, 이 모든 변화는 우리가 새로운 제품들을 소유하기 때문에 일어난 변화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가사노동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은 거꾸로 말하면 아이들에게 소유에 중독되게 만드는 일이다. 차가 없으면 걸어야 한다. 핸드폰이 없으면 직접 연락할 방법을 찾아야 하고 세탁기가 없으면 손으로 빨래를 해야 한다. 지금의 어른들은 보다 세상이 불편하던 시절에 성장하여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편해졌지만 요즘의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한 세상에 산다. 그거야 옛날 사람들도 마찬가지가 아니었는가. 문명은 언제나 발전해 왔다라는 주장도 있을 수 있지만 변화의 속력이 다른 것같다. 나와 내 부모님세대와의 격차는 내 자식과 나와의 격차보다는 훨씬 작다. 

 

우리는 아이들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소유에 중독되게 만들었다. 당연히 갖춰야 하는 것이 너무 많고 그래서 그것없이는 살기가 너무 어렵게 만들어 버렸다. 당연히 그것에는 돈도 많이 든다. 소유에 대한 중독이란 결국 소비에 대한 중독이다. 이건 말하자면 동네를 산책하는 것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데 1억짜리 고급외제차를 타지 않으면 사는 데 즐거움이 없는 사람으로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소비중독은 아이들이 앞으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을 어렵게 할 것이다. 특히 부모를 떠나서 독립하려고 할 때 삶의 질이 급감하는 것을 요즘 아이들은 느낀다. 자신의 수입으로는 자신이 누려왔던 것을 계속 누릴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소비중독을 벗어나는 첫걸음은 우선 몸을 움직여 기본적인 가사일을 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 모든 것이 없어도 예를 들어 무슨 유명 프랜차이즈의 음식따위를 먹지 않아도 스스로 만든 맛있는 식사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이들이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말이다. 

 

두번째는 가사노동이란 그 자체가 지능의 발달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사실 무미건조하게 종이위에 있는 글자들을 외우는 일보다는 설거지를 하고 계란후라이를 만드는 일이 더 지능을 요구할 때가 많다. 어른들은 종종 자신이 그것에 익숙해서 그게 그런 일이라는 것을 모를 뿐이다. 설거지를 하는 것은 그릇을 어떻게 씻고 그 그릇을 어떻게 쌓아두는 가에 따라 그 결과물이 많이 차이가 난다. 식당에서 설거지 알바를 하던 사람의 설거지를 보면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대단할 때가 있다. 계란 후라이를 만드는 것뿐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사실 학교의 어떤 화학실험이나 생물학 실험만큼이나 교육적이다. 불을 켜고 기름을 두르고 계란을 굽는 모든 일이 화학이고 생물학이며 물리학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이들을 비디오 화면이나 종이속 그림이나 보게 하면서 그게 진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잘못된 것이다. 라면을 끓이고 드립커피를 내리는 속에 과학이 있고 상식이 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사노동을 가르쳐야 할 세번째 이유는 가사노동은 지나치지 않은 경우에는 든든한 휴식의 기술이 되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이 필요로 하는 휴식은 종종 침대나 푹씬한 소파에 앉아서 늘어지는 것이 아니다. 육체노동과 단순노동이 날로 줄어드는 시대에 현대인들이 해야 하는 휴식이란 직장에서 하던 일과는 좀 다른 일을 하는 것이다. 집앞에 가서 6천원짜리 우동을 먹어도 맛이 좋을 수 있지만 직접 밀가루 반죽을 하고 밀대로 밀어서 우동면을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은 단순히 노동이 아니라 종종 휴식이 될 수 있다. 

 

나는 젊어서 우연히 기타코드를 몇개 배웠다. 그리고 때로 기타에 맞춰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그것이 내 평생에 큰 자산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노동이겠지만 그걸 일삼아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휴식이다. 가사노동도 마찬가지다. 직업과는 다른 일의 공간에 집중하고 거기서 삶의 질을 향상 시킬 방법을 찾는 일은 그 자체가 휴식이고 든든한 삶의 자산이 될 수 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특히 남성들에게 가사노동을 잘 안가르쳤다. 그래서 지금 노년을 맞이한 남자들이 고생하는 것을 나는 많이 본다. 그게 반드시 남자는 가사노동을 하는게 아니다라는 가부장적인 생각때문만은 아니다. 일찌기 배운 것이 없으니까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가사노동도 기술이다. 그걸 안하던 사람이 해보려고하면 훨씬 더 힘들다. 예를 들어 설거지만 해도 안하던 사람이 하려고 하면 몇배나 시간이 든다. 남자들도 요리를 배우고 인테리어에 관심을 가지고 옷에 관심을 가졌더라면 그들은 그 안에도 많은 일상의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물론 무엇이든 지나치면 다 노동이고 고생이지만 그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가사노동을 배우지 못한 남자도 고생이다. 그런 남자는 마치 지하철타는 법도 모르는데 서울에 살게 된 노인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처음에 말한 이유로 우리를 자꾸 가사노동으로 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그런 건 그만두고 돈이나 더 벌어서 더 많이 소비하라고 부추킨다. 광고들은 한결같이 xxx가 있는데 왜 그런 일을 하세요라고 외친다. 우리는 그런 유혹에 중독되는 것이 나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피해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심각한 것같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