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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냉전구도라는 유령

by 격암(강국진) 2019. 2. 27.

지금 북미 정상회담이 벌어지고 있다. 이걸로 한반도의 냉전구도가 해체될 것인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많은 기대가 부풀고 있고 그 부풀은 기대만큼이나 냉전구도가 끝날 것을 걱정하는 보수언론과 정치인들의 우려를 가장한 저주같은 말들이 쏟아지고 있다. 자유한국당의 나경원이 북미간 종전선언에 반대한다는 둥 하는 말을 하고 우리는 나라도 아니냐는 조선일보 사설이 나오는 것이 그 예들이다. 나 개인적으로는 아무쪼록 한반도에 존재한다는 이 냉전구도가 이번에야 말로 사라지게 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 냉전이란 보수 정치인들과 그 지지자들에게는 생생한 현실일지 몰라도 사실은 그 실체가 뭔지 알기 어려운 환상에 가깝다. 생각하면 할 수록 그것은 문학적 표현이나 환상에 가까운 것이다. 냉전의 전은 전쟁이다. 그러니까 냉전을 생생한 현실로 외치는 사람들은 우리가 북한과 전쟁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분명히 실제로 전투기와 탱크가 움직이는 전쟁은 아니니까 사람들은 냉전이니 스파이 전쟁이니 하는 식으로 다른 말을 쓴다. 하지만 아빠와 엄마의 전쟁이라는 문학적 표현이 아빠와 엄마가 총칼들고 죽이려고 한다는 뜻은 아니듯이 남한과 북한간의 냉전이라는 표현도 무심히 지나칠 것이 아니라 곰곰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애매하고 실체가 없는 유령같은 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실체도 없는 말에 얽매이며 살아야 할 것인가. 


보수신문들은 천안함이 북한에게 공격당했다고 말한다. 아니 그에 앞서서 아무리 아니라고 조사결과가 나와도 태극기부대 같은 보수 지지자들은 광주민주화운동이 북한군의 사주로 일어난 일이라고 믿는다. 간첩단 조작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사방에서 간첩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고 진보진영의 정치인들을 종종 종북이라고 부른다. 차마 간첩이라고는 부를 수 없어서 만든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북한과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영화 공작을 보면 인상깊은 장면이 나온다. 보수 정당의 국회의원들이 북한에 가서 북풍을 일으키기 위해 공격을 좀 해달라고 협상을 하는 것이다. 남한과 북한은 인도적 차원에서 구호물자를 주고 받은 역사도 있다. 이게 전쟁하고 있는 나라들끼리 할 수 있는 짓인가? 냉전은 서툰 쇼가 아닌가?


우리는 평화선언을 하건 안하건 전쟁중이 아니며 전쟁은 오늘날 공멸이기 때문에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미래가 아니다. 한국같이 경제가 발전된 나라가 자국영토에서 전쟁을 벌이겠다는 생각은 미친 짓이다. 서울에 미사일 몇발만 떨어지고 원전에 미사일 한발만 떨어져도 한국과 북한은 지옥으로 변할 것이다. 그 이후에 벌어질 반격과 혼란으로 최소 몇백만은 죽을 것이고 한국의 경제는 파괴될 것이다. 그 어떤 댓가도 그 전쟁의 피해를 보상할 수 없을 것이다. 이걸 생각하면 전쟁이라는 단어를 쉽게 꺼내는 사람들은 정말 물지도 못하면서 으르렁만 대는 개같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냉전이란 말도 애초에 공산진영과 자본주의 진영의 양대 진영간에서나 통하는 말이다. 그렇게 진영이 넓으면 국지전도 있고 영향력확대도 있으니 냉전이란 말이 현실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러니까 소련과 미국이 직접 전쟁을 안해도 양대진영간에는 크고 작은 싸움이 계속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냉전이라는 개념을 남한과 북한같은 두개의 나라나 더 나아가 어떤 두 사람 사이같은 작은 존재들에게 적용하면 점점 더 그것은 그저 문학적 표현에 지나지 않게 되고 실체가 없게 된다. 나는 우리 엄마와 냉전중이라는 것이 내가 엄마를 죽이겠다는 뜻이 아니지 않는가?


실체가 의심스러운 몇몇 공격을 제거하고 현실을 보면 북한은 그냥 남한 옆에 있는 나라다. 그 나라는 이미 반세기 이상 옆에 존재했기에 잠깐 있다가 없어질 나라가 아니다. 그래서 미국과 정상회담도 하는 것이다. 


세계적인 냉전구도가 붕괴된 후 한반도에만 남아서 전세계 유일의 분단상황을 유지시켜온 그 냉전이란 말은 사실 지독한 위선과 허구였다. 러시아와 중국에 자유왕래하는 오늘날, 중국물건으로 한국이 가득한 오늘날 무슨 공산주의와의 냉전인가. 이런 허구적 냉전상황을 유지시킨 것이 남한쪽만의 책임은 아니라고 해도 그게 누구책임이건 지금의 냉전구도는 시대에 뒤져도 한참 뒤진 허구고 유령이다. 이건 마치 21세기에 칠거죄악같은 걸 따지고 있는거나 마찬가지고 한여름에 난로찾고 있는거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그 환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지금도 광주민주화운동때 사진속에서  간첩과 북한군을 찾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자신들이 거의 정신병 발병수준의 상태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오늘의 북미회담은 이 환각과 병증을 없애고 본격적으로 치료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들을 만들어 내고 그들의 환각을 부추키는 사람들은 그만봤으면 싶다.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라는 괴물집단"따위의 말들을 국회의원이 하는 그런 일은 이제 사라질 때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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