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집에 대한 생각

한국집의 근본

by 격암(강국진) 2020. 6. 9.

20.6.9

우리는 여러가지 말을 같이 쓴다. 하지만 같은 단어를 쓴다고 해서 그 근본이나 본질이 같다고 보는 것에는 큰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친구는 프랜드가 아니고 아내는 와이프가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말하면 집은 하우스가 아니다. 한국집과 외국집은 다르다. 이런 차이를 지나치게 가볍게 무시하면 우리는 된장찌게와 케이크를 만드는 사람들이 모여서 '음식'은 이렇게 만드는 거라고 하면서 싸우는 꼴이 된다. 된장찌게에 설탕을 넣고, 맛이 이상해지면 설탕이 이상한게 아니라 애초에 된장을 왜 넣냐고 질문하게 되는 것이다. 

 

집은 한국 문화의 핵심이다. 오랜 세월 한국 사람들이 살아오면서 우리 생활에 맞춰서 집을 고친 것도 있고 거꾸로 집에 맞춰서 우리 생활을 맞춘 것도 있다. 순서야 어찌되건 집은 한국인과 거의 한 몸이 되다시피했다. 물론 이런 것은 신발도 옷도 음식도 노래도 필기구도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집은 인간이 소유한 것중 대개 가장 비싸고 큰 것이다. 휴지쓰듯이 하루 써보고 그 다음날에는 바꿀 수 없다. 집은 인간이 만든 것이지만 지어진 다음에는 인간이 어느 정도는 적응해야 하는 환경처럼 작동한다.

 

그러므로 다른 어떤 것보다 주거문화는 천천히 변하고 집은 한 나라의 문화가 저장되어지고 지켜지는 문화 보존소같은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지금 우리가 보는 많은 한옥들은 일제시대의 것인데 전주 한옥마을도 그렇고 서울의 북촌한옥도 그렇다. 서양식집을 짓는 일본사람들이 지배하는 일제시대에 개량된 것이기는 하지만 한옥마을이 만들어 진 것은 집이 그렇게 간단히 변할 수 없는 거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을 던져보자. 한국집에도 핵심이 있을까? 한국집이란 거의 다 사라지고 없는 한옥을 말하는 것인가? 한옥이라고 해도 기와집과 초가집은 서로 다른데 어느 쪽이 한국집인가? 벽이 황토벽이라야 한국집인가? 한지를 바른 창을 가지고 있어야 한국집인가? 기둥을 나무로 해야 한국집인가? 만약 한국집에 핵심이 있다면 한국문화의 핵심이 한국집이라고 했으므로 그 한국집의 핵심은 그야말로 한국문화의 핵심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그 핵심 하나가 한국인을 한국인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 게 있을까?

 

한국집의 핵심은 있다. 그건 온돌이다. 온돌은 거의 선사시대이래로 한반도에서 계속 쓰여진 한국의 고유문화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도 한국인에게 있어서 집다운 집이란 바닥난방이 있는 집을 말한다. 그래서 한국은 바닥난방이 안되는 집이 실질적으로 없다. 외국은 21세기들어서야 바닥난방의 보급이 차츰 확대되는 상황인데 한국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다던 한국전쟁 직후에 지은 집들에서도 바닥난방은 포기하지 않았다. 한국인이 생각하는 불쌍한 사람의 대표가 반찬을 한가지만 놓고 밥을 먹거나 찬바닥에서 불도 못때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 정도로 온돌은 우리 생활의 핵심에 있다.

 

온돌이 얼마나 깊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가는 끝없이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재미있는 예에는 아파트가 있다. 아파트는 전혀 한국집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제 한옥이 거의 사라진 지금 우리는 우리가 기본적으로 서양집에 살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한국집의 핵심이 뭔지 생각해 보고는 아파트도 결국 한국집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한국인이 한국적인 이유로 선택하고 발전시킨 주거다. 아파트의 핵심도 결국은 바닥난방이기 때문이다.

 

값싸게 실내온도를 끌어 올릴 수 있는 집이 바로 아파트다. 아파트는 양쪽 옆과 위 아래가 다른 집이기 때문에 열이 빠져나갈 부분이 작고 따라서 모든 집이 바닥난방을 하기 시작하면 난방비가 작게 들 수 밖에 없다. 이렇게 해서 한국인은 한국인답게 살 수 있는 집을 찾은 것이다. 한국인 답게 산다는 것은 겨울에도 실내에서 맨발로 지내고 바닥에 들어눕는가 하면 얇은 속옷만 입고 돌아다니기도 하는 삶을 말한다. 

 

서양인들이나 일본인들은 지금도 이렇게 살지 않는다. 독일도 일본도 겨울이면 21세기에도 집안이 추운게 당연하고 거의 외부에서와 같은 정도로 두꺼운 옷을 그냥 입고 산다. 너무 춥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익숙한 서양식 단독주택같은 곳에서도 약간의 난방비만 들이고 살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인은 그게 너무 불편하고 싫다. 그래서 처음지어진 양옥들이 버려지고 종국에는 아파트가 대세가 된 것이다. 예전에는 단열도 지금 같지 않았으니까 서양식 단독주택을 짓고 그 집을 전부 바닥난방을 하면 한국사람처럼 살기 위해서는 난방비가 너무 엄청나게 나온다. 그래서 방에는 바닥난방을 하면서도 거실에는 난로를 피우고는 했다. 하지만 그건 문제해결이 안된다. 애초에 방안에서 불을 피워서 온도를 올리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온돌은 우수한 문화지만 지금 이 글의 문맥에서는 온돌이 우수한 문화냐 아니냐는 핵심이 아니다. 온돌이 한국집의 핵심이고 한국집이 한국문화의 핵심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이걸 잊으면 한국집을 평가하고 말하는 것이 이상해 진다. 당신이 200kg쯤 나가는 엄청난 거구라고 하자. 그렇다면 옷을 살 때 꼭 기억해야 할 당신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그 거구일 것이다. 그 몸집이 하루 이틀에 줄어들 것도 아니니 작은 옷을 사서 몸을 거기에 맞춘다고 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 

 

한국문화는 온돌과 깊게 연결되어져 있다. 따라서 우리는 온돌을 포기하고 서양식집에 살기 어렵다. (우리가 서양집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서양집이 아니다.) 불가능은 없지만 그렇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한국문화가 바뀌어야 해서 마치 위에서 말한 초거구의 인물이 일단 옷은 작은 걸 구한 후 살을 빼서 옷에 몸을 맞춰보자는 꼴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대다수가 온돌을 포기하자고 하지는 않는다. 한국에서 집지으면서 바닥난방 꼭 필요하냐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거의 미친 사람이다. 

 

그러나 이런 광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서양사람의 눈으로 우리를 본다. 한국의 궁궐을 보라. 멋지다고 말하지만 사실 많이 망가져서 축소되기도 했거니와 그 건물이 그렇게 크질 않다. 베르사이유 궁전이나 파르테논 신전같은 건물을 보면 단층집에 규모도 작은 한국의 궁궐은 초라하고 가난한 한반도 문화를 보여주는 것같다. 심지어는 조선이 온돌때문에 망했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그런데 온돌이 뭔지 생각하고 세상을 보면 세상은 전혀 다르다. 저 멋진 베르사이유궁전은 난방을 못해서 얼어죽을 것처럼 추웠다. 한국의 집들이 건물이 작은 것은 그것이 온돌집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층집이 아닌 것도 마찬가지다. 온돌집은 불때는 아궁이가 바깥에 있고 바닥만 데워지니까 집이 작을 수록 따뜻한 집이 된다. 반면에 집안에서 연료를 태우는 난방은 집이 작으면 사람이 질식해서 죽게 된다. 온돌을 쓰던 조선의 건물들과 서양이나 일본의 옛집들을 층수나 건물크기로만 비교하는 것은 마치 현대의 스마트폰이 옛날의 거대한 진공관 라디오보다 작으니 초라하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온돌이 있는 집과 온돌이 없는 집은 둘 다 집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만큼 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건축학이라고 하면 그건 서양에서 도래한 학문을 말한다. 전문가라고 언론에 나오서 떠드는 사람들이 가우디를 말하고 미스 반 데어 로에를 말할 때 건축이란 이런거라고 말할 때 그들은 온돌문화가 없었던 나라에서 수천년간 지어온 집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한국인의 관점에서 보면 그런 학문이란 고기없는 스테이크다. 온돌을 잊는 순간 한국에게 집에 대한 이야기는 사이즈를 잊고 옷을 사는 거구의 남자 이야기처럼 된다.

 

나무 기둥에 기와가 있다고 한국집이 아니고 철근콘크리트로 지었다고 서양집이 아니다. 된장찌개를 뚝배기가 아니라 서양식 그릇에 담는다고 그게 서양음식이 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꼭 그런 식으로 집을 짓지는 않지만 한국인이라면 집을 짓는데 첫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어디에다 온돌을 깔까요?" 온돌이 곧 집이기 때문이다. 이걸 잊는 사람은 한국어 꼭 써야 하는지, 한국 음식 꼭 먹어야 하는지, 한국건물들 꼭 유지해야 하는지 하는 식으로 물으면서 한국문화를 싹 다 지워버리려는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한국 문화의 핵심이 한국집이고 한국집의 핵심이 온돌이다. 그 정체성은 한국문화에 깊게 새겨져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