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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권의 실패는 반복되는가.

by 격암(강국진) 2020. 9. 7.

20.9.7

나는 노무현과 문재인정권의 지지자이며 노무현 정권이 아주 좋은 성과를 올렸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분명 한가지에서 크게 실패했다. 그것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함으로써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이 왜 일어났을까? 경제에 실패해서? 외교에 실패해서? 개혁에 실패해서? 아니다. 노무현 정권의 한계는 거기에 있지 않다. 그리고 요즘보면 불행하게도 문재인 정권은 같은 실패를 반복하는 길을 가고 있는 것같다. 

 

문재인 정권은 노무현 정권과 마찬가지로 민주주의를 강조한다. 그런데 민주주의는 정권을 유지하는 충분한 이상이 될 수 없다. 독재가 옳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이 정권이 가져야 할 이상의 필요조건은 될 수 있지만 필요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민주주의나 상식을 외치는 것은 오직 박근혜 정권처럼 심각하게 그것을 해치는 반칙이 존재할 때만 한시적으로 큰 힘을 얻는다. 따라서 문재인 정권이 출범했을 때는 박근혜 정권의 실정에 대한 반발로 큰 힘을 발휘했지만 그것은 충분하지 않았다.

 

노무현 정권이 가장 힘을 받았던 때도 항상 노무현이 부당한 취급을 받았다고 느낄 때였다. 노무현이 부산에서 졌기 때문에 노무현은 대선후보가 될 수 있었다. 그가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되었는데도 민주당 내부에서 후단협이니 뭐니 하면서 부당한 짓을 하기에 사람들은 기꺼이 개혁당 같은 당을 따로 만들어서라도 노무현을 지지했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정부의 힘이 가장 강해보였던 때는 노무현을 부당하게 탄핵하려는 시도가 무산되고 열린우리당이 국회과반이상을 얻었을 때였다.  

 

위기는 항상 민주정권이 힘을 얻은 승리 이후에 왔다. 노무현 탄핵 실패의 후폭풍속에서 거대 여당을 만들어 줬던 이유는 국민이 선택한 노무현정권이 부당하게 위협받았기 때문이다. 이건 대선불복이었다. 그런데 거대 여당을 만들어줬으니 이제는 변명할 거리가 없어진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 되면 열린우리당이 청와대에 힘을 실어줘서 개혁을 진척시켜야 하는데 열린우리당은 오히려 청와대를 공격하는데 바빴다. 게다가 차기정권은 이미 자기 손에 있는 것처럼 당시의 여권 정치인들은 당내 유력 대선 후보가 되려고 하거나 유력한 구도를 고착화시키려는 당내 정치에만 바빴다. 그러다가 민주당은 버려지고 이명박이 당선된 것이다. 


지난번 총선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문재인 정권은 박근혜 정권의 실정으로 탄생했고 국민들은 이 정권에 충분한 힘을 주기 위해 거대 여당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도는 전임대통령들의 임기말 지지율에 비하면 상당히 높다. 이게 위기의 시작이다. 불행히도 민주정권은 두가지 실수를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하나는 공권력과 정권이 조롱당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민주만 외치다보니 그리고 사회에 기득권이 강하게 자리잡다 보니 극우세력을 포함해서, 지나친 요구를 하는 극단주의자들이 날뛰어도 통제를 못한다. 다수에 의해 소수가 억압되는 것도 나쁘지만 반대로 극소수때문에 다수가 희생당하는 것이 지나쳐지면 그것도 말이 안된다. 우리는 미투운동중에 지나친 말을 하는 페미니스트에게서도 이걸 보고, 각종 사이비 종교의 교주들의 행동에서도 이걸 보며, 지금 한창인 의사집단의 난동에서도 이걸 본다. 이들은 정당한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넘어 국가를 조롱하는 단계에 까지 가곤 한다. 타인의 감정과 이익에 대해서는 아무런 감수성이 없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이 국익을 크게 해치는 단계에 가도 정부가 그걸 통제 못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민주정권은 단호해 지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 결과 민주정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에 대한 역차별이 심해진다. 왜냐면 보수정권때 저랬다면 어떤 일을 겪었을지 기억하기 때문이다. 과연 전광훈같은 사람의 보석이 이렇게 오래 취소되지 않았을까? 아니 애초에 보석이 되기나했을까? 법과 질서를 지키는 사람이 손해보는 느낌이다. 일인당 몇천만원씩의 세금으로 치료받고 나와서 방역실패를 외치는 광화문집회 참가자들을 보라. 

 

또 다른 실수는 민주정권은 승리후에 그들의 지지자들과 소통이 끊어진다는 것이다. 마치 자기들이 잘나서 정권이 돌아간다는 것처럼. 선거가 끝나면 시민들과 대화가 끊어지는 것은 민주 정당이건 보수 정당이건 어느 정치가 집단에서나 있는 일이지만 민주정권의 경우 이것은 훨씬 더 큰 문제가 된다. 이 문제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예를 들어 이번 재난지원금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선별지급이냐 일괄지급이냐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있었고 전반적으로 말해 보수 지지층과 보수 정당은 선별지급을 말하고 민주당 지지층은 일괄 지급을 말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여기서 어느 쪽이 옳은지 어느 정도의 사람들이 정확히 어느 쪽을 주장하는가는 제쳐두자. 문제는 이것이 많은 국민적 관심을 끌었는데도 당정협의로 결론이 나버렸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건 소통이 충분했다는 느낌이 아니다. 

 

이낙연은 이일로 대통령이 못될 수도 있고 정권이 무너질 수도 있다. 과장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강조해서 정권을 잡은 집단이, 그걸 강조하느라 단호하게 공권력행사도 못하는 집단이, 문닫아 걸고 자기들끼리 결정해서 발표해 버려도 될만큼 지금 자기들이 확고한 기반에 서있다고 생각하는가? 노무현 정권이 정권재창출을 못한 결정적 이유는 열린우리당이 문을 닫아걸고 자기들끼리 싸우기 바빴기 때문이다. 거대여당을 탄생시킨 지지자들의 기분이 어떤지는 살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잡은 물고기라는 식으로. 

 

반복되는 민주정권의 두 가지 실수는 사실 한가지 근원에서 기인한다. 그것은 민주정권은 수단의 구체성, 이념의 구체성이 약하다는 것이다. 보수는 토론이 상대적으로 덜 필요하다. 살던대로 살자는것이기 때문이다. 진보는 때로는 지금 이대로는 안된다는 공감대밖에 없을 때가 있다. 지금 이대로가 아니면 대안이 뭔가? 대안은 지지각각일 수 있다. 부동산 정책은 어떤가. 교육은 어떤가. 국방은 어떤가. 외교는 어떤가. 중앙의 몇사람이 모여서 이게 당연하다고 밀어부치는 순간 민주정권의 지자자모임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할 수 있다. 

 

미래에 대한 보다 확고하고 구체적인 비전을 세우고, 할 수 있는 개혁을 성공시켜서 실적을 내야 민주정권은 계속 유지된다. 그렇지 못하면 금방 민주정권은 약해진다. 그런데 이 두가지는 모두 힘들다. 미래는 모르는 것이니 확실한 비전은 말하기가 쉽지 본래 어렵다. 게다가 개혁을 하고 그 결과까지 빨리 나오게 한다고? 사회기득권들이 마구 반항하는데 어떻게 일이 빨리 되겠는가? 문재인 정권은 사법 개혁과 한반도 평화정착을 그 핵심적 과제로 삼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런데 대법원장을 바꿔도 검찰총장을 바꿔도 법무부장관을 바꿔도 세상은 그리 바뀌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와 김정은을 만나기 위해 분주했지만 일은 자꾸 제자리로 돌아온다. 다행히 코로나 대처를 잘했고, 한류열풍같은 것이 불어서 현 정권은 큰 도움을 받고 있다. 그 일이 아니었으면 지난번 부동산 문제소동에서 보듯 문재인 정권도 노무현 정권처럼 무력화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정권이 살길은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국민 전체를 살피되 특히 자신들을 지지하는 지지자 그룹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소통에 아주 많은 에너지를 투입하는 것이다. 모든 국민의 소리를 들어야 하지만 보수와 진보 국민 모두의 목소리를 골고루 듣겠다는 바보같은 생각을 해서는 안되며 그렇다고 지금 내가 하는 말이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정권이라지만 이 정권을 탄생시킨 것은 촛불혁명이었다. 그런데 그 촛불혁명이 문재인이 주도한 것인가? 민주당이 주도했던가?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이 점을 잘 기억해야 한다. 촛불집회가 있던 초기만 해도 민주당도 박근혜 탄핵을 말하기 주저했다. 촛불혁명기간동안 정치인들은 사실상 뒤줄에 선 참가자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할 때 이 민주정권의 이념은 누가 알고 있는 것인가. 그게 민주당 국회의원인가? 그게 청와대인가?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민주정권은 자신의 지지자 집단을 집단 지성으로 여기고 그 집단을 하나의 씽크탱크라고 생각해야 한다. 자신이 국민을 이끈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자기도 그 집단지성의 일부일 뿐이라고 여겨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모든 국민을 이 집단지성의 일원으로 생각할 수 없다. 물론 모두가 한국인이니까 모든 국민의 여론조사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성은 그냥 한표를 행사하는데서가 아니라 소통하고 자기 의견을 개량하는데서 나온다. 그런데 파벌과 정치는 그걸 불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보수, 진보 모두를 다 하나의 집단지성으로 놓고 평균을 내면 별로 합리적이지 않은 결과가 나온다. 

 

민주정부가 저지르는 두가지 실수를 하다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전광훈같은 사람의 목소리는 정부에 가서 닿고 지지자들은 망각되는 것같은 일이 벌어진다. 전광훈이 집단지성의 일부인가? 극단주의자와 대화하고 타협하면 뭐가 좋아지나? 이건 정말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형식주의에 빠지면 극단주의자들의 목소리만 듣게 된다. 그리고는 그걸 중도라고 부르게 되기 쉽다.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와 한국 시민과의 중립을 따져서 나라를 반쯤 팔아먹는게 중도인가? 내가 최저임금이 시간당 천만원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면 내 의견과 현실의 중간쯤인 오백만원이 중도적인 의견인가? 중도가 뭔가. 

 

지지자집단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아이디어를 얻고 그들에게 설득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 내가 뭘 안다고 생각하지 말고 대중을 정치인의 마음으로 삼아야 한다. 이 말은 꼭 지지자들 사이에서 여론조사를 해서 꼭 그 결과대로 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 반대로 할 수도 있다. 문제는 납득이 갈 만큼 소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낙연은 오만해졌다. 나는 이낙연을 지지했는데 이번에 굉장히 실망했다.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벌써 망각한다. 몇조의 돈을 쓰는 일을 간단히 밀어부친다. 본래 지금은 모든 잠재적 대권후보가 검증을 받는 시기라고 생각했지만 이번 일로 이제 그에 대한 지지는 없던게 되었다. 

 

나는 노무현을 좋아한다. 그리고 보수와의 연합따위 좋아하지않는다. 하지만 노무현은 보수와의 연정을 말한 적이 있다. 그 일로 내가 노무현에 대해 실망했을까? 천만에. 노무현이 밀실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다 해서 결정 다해놓고 그 일을 밝혔으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반대할 만한 시간과 기회를 주면서 그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실제로 그 일은 없던 것이 되었다. 일을 하다보면 대중을 조작의 대상으로 보기 쉽기 때문에 국민을 바보취급하기 쉽지만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이야기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어떻게 발표되는가를 보면 애초에 이 문제에 대한 논의에 본래 누구를 끼워넣고 누구는 원천배제하려고 했는지 느낀다. 대화가 있었다고 해도 하는 척했을 뿐 결론은 이미 다른 곳에서 나와 있던 것이다. 이 문제는 분명 배신의 냄새가 짙다. 결과 이전에 이 배신의 냄새가 심각한 것이다. 이 배신이 미래에는 다른 어떤 문제에서 반복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선별지급 문제에 대해 이재명 경기지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그 휴유증이 아주 클 것이라고 경고했다. 분명히 해둘 것은 이건 반드시 이재명의 의견도 아니다. 이미 유시민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선별의 문제점을 말했다. 그들이 옳다. 그걸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라고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다행이지만 그걸 뼈져리게 모르고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권에 가득하다면 그 휴유증은 정말 클 것이다. 노무현 정권 최대의 실수가 반복되어질 정도로 클 수 있다. 그런 일은 입에 담기도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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