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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국가란 무엇인가

내가 전두환이나 박정희 미화를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

by 격암(강국진) 2021.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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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소위 보수층은 전두환이나 박정희를 미화하고는 한다. 하지만 나는 그걸 싫어하는데 그것은 단순히 그들이 누군가를 희생시켰다는 이유만은 아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그 보다 더 싫은게 있는데 그건 바로 일관성의 상실이다. 

 

어떤 정치든 정치는 거시적인 것이므로 희생자를 만든다. 어떤 법도 희생자를 만들지 않을 수는 없다. 애초에 사람마다의 사정이란 서로 다르고 비교하기 어려운 것인데 그걸 법조문으로 고정시켜놓고 옳니 그르니 해봐야 거기서 불공정한 문제가 하나도 생기지 않을 방법이 없다. 그나마 법은 여러 학자들이 상의하여 만드는 것인데 독재정치는 어떻겠는가? 독재자들은 종종 민족과 나라를 위해 이러저러한 일을 결단했다고 말한다. 즉 개인적인 욕심보다는 큰 공동체를 위해 희생자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결단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이야기를 믿지 않지만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해도 독재자는 한가지를 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마지막에는 나쁜 놈으로 남아야 한다. 그 독재자가 진짜 애국자라면 마지막에는 자신을 미화해서는 안된다. 나쁜 놈으로 남아야 한다. 잘못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안한 잘못까지 인정해야 한다. 왜냐면 끝없이 쿠데타와 독재가 반복되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며 발전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뭔가 시간이 걸려서 발전하고 있는데 힘있는 사람이 바뀔 때마다 그걸 전부 다 뒤집어 엎으면 그 사회가 발전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므로 독재는 설사 필요했다고 해도 예외적이고 일회성의 것이 되어야 한다. 피의 역사는 일회성이어야 하고 그걸 정당화해서는 안된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세종시대만큼 빛나는 때도 없다. 그리고 그 시기는 바로 세종의 아버지인 태종이 잔인하게 외척들을 무력화시킨 결과라는 말이 있다. 이 사실을 믿건 믿지 않건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 이야기가 옳다고 해도 태종은 나쁜 인간으로 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세종의 정치는 말이 안된다. 태종이 옳다면 뭐하러 학문을 논하고 한글을 만드는가. 그냥 힘으로 누르는 것이 옳은데. 

 

독재자가 스스로를 애국자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고 해도 그가 정말 애국자라면 그는 마지막에 나쁜 놈으로 남아야 한다. 그래야 새 시대가 열리기 때문이다. 독재자들은 애초에 애국자가 아니니 이런 말은 쓸데 없다고 할 사람들이 있겠지만 독재자는 사실 애국자 이어야 할 의무가 있다. 왜냐면 독재는 독단적 판단으로 여러 사람들을 아프게 했기 때문이다. 독재는 무고한 사람들을 감옥에 보낼 뿐만 아니라 심지어 죽게도 한다. 그들은 그걸 어떻게 정당화했는가?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가 아닌가? 

 

다른 사람들은 공동체를 위한 불쏘시게가 되라고 등을 떠밀어 놓고 세상이 바뀌고 나니까 이제는 자신을 위해 변명을 한다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특히 그것이 국가와 민족에게 해를 끼칠 것이 뻔한데? 그러니까 결국 피해자나 희생자는 다른 사람이나 하는 것이고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옳고 그름은 관점에 따라서 뒤집어 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세상에 객관은 전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독재는 옳지 않으니 비판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유효하다. 하지만 이 복잡한 세상에서 옳고 그름을 뒤집을 수 있다고 해도 일관성마저 던져 버리고 나면 그건 정당화할 수 없다. 그리고 정당화할 수 없는 것이 독재처럼 많은 사람의 피와 땀을 뽑아내는 행위라면 그건 욕을 먹어도 싸다. 

 

얼마전에는 노태우가 죽었다.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는 전두환을 오히려 남자답다며 더 높게 평가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지만 그는 아무리 욕을 해도 지나치지 않는 인물에 불과하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광주학살을 명령한 인간이 좋은 사람인척 까지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제와 회고록까지 발간하며 자신의 삶을 미화해서 피해자들을 아프게 하고 한국의 아픈 역사를 정당화하기까지 한다. 그의 나쁜 짓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스스로 자신이 양심이나 대의따위는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박정희는 총탄에 죽어서 자기 미화의 죄에서는 벗어났다. 하지만 그 죄는 그의 딸에 의해서 저질러 졌다. 만약 그들이 최소한의 정치적 양심이라도 있었다면 박정희를 영웅시해서는 안됐다. 박정희처럼 정치를 한다면 박정희 일가는 그 반대세력에 의해 전부 거지꼴이 되어야 한다. 죽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민주세력은 그런 정치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그런 일을 추진하지 않을 뿐이다. 그런데 독단적으로 그런 정치를 한 박정희 세력이 자신을 영웅화하고 정당화한다. 

 

언젠가 자신이 맨앞에서 나가서 죽을 각오가 없는 사람이 모두를 위해서라면서 남의 등을 떠미는 짓은 가장 나쁜 짓이다. 쿠데타는 드문일이지만 현실사회에서는 작은 규모로 그런 일이 많이 일어난다. 가정에서도 일어나고 회사에서도 일어나고 학교에서도 일어난다. 사람들은 교묘한 몇마디 말로 남에게 희생을 강요하지만 정작 자신이 그렇게 해야 할 때가 오면 외면하고 마는 것이다. 그런 상사, 그런 가장, 그런 교수들이야 말로 가장 혐오스러운 존재들이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독재를 미화하는 실패한 독재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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