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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메타버스와 객관성

by 격암(강국진) 2021.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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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31

요즘 메타버스가 뜨겁다고 한다. 사실 현실세계를 그대로 구현한 3D 세계에 대한 인기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예전에도 세컨드라이프 같은 것이 크게 주목받았던 적이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유튜버 미래채널 MyF가 하는 말을 듣다보니 기억 나는 것이 있어 다시 한번 적어 볼까 한다. 그것은 원근법과 객관성에 대한 이야기로 나는 이전에 원근법과 우리 시대의 신성모독이라는 글들에서 이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미래채널 MyF의 황준원은 가상 3D세계가 주목을 받고 있지만 꼭 3D 세계가 필요하냐고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에 대해 게임같은 곳에서는 재미때문에, 그리고 시뮬레이션의 경우에는 유용성때문에 3D가 좋지만 그 이외의 경우인 광고나 쇼핑같은 경우에는 오히려 지금의 2D씩 화면이 더 편리하지 않냐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는 이미 회화의 세계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인터넷 가상공간안에서도 이런 것이 꼭 일어난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 두가지를 연계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원근법이 등장하기 이전의 그림은 마치 2D 온라인 쇼핑 카탈로그처럼 우리가 묘사하려고 하는 대상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객관적으로 포함하고 있었다. 반면에 원근법이 들어간 그림은 세상을 하나의 개인에게 보이는대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원근법이 회화에 들어오기 이전에는 사람들은 원근법을 몰랐을까? 그건 마치 2천년전의 사람들은 저 멀리서 누가 나에게 걸어오면 그 사람이 점점 키가 커진다고 믿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생각이다. 옛날 사람도 멀리 있는 것은 작게 보이고 가까이 있는 것은 크게 보인다는 것을 당연히 알았다. 다만 그들은 뭔가를 기록함에 있어서 그런 주관적인 면은 중요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모두에게 객관적인 정보를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이 그들에게 상식이었다. 나에게 어떻게 보이는가가 중요한게 아니라 사물의 객관적인 존재형식이 중요하다. 

 

그런데 현대로 오면서 회화에서는 변화가 일어났다. 개인의 관점과 관찰한 결과를 그대로 적는 것이 중요시 된 것이다. 그래서 그림을 원근법을 가지고 그리는 것이 상식이 되었다. 하지만 이같은 변화는 모든 곳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다. 좋은 예가 위에서 보여준 상품 카탈로그같은 것이지만 다른 예에는 건축의 설계도같은 것이 있다. 건물의 설계도를 그릴 때에는 그것도 일종의 그림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원근법을 무시하고 사물 즉 건물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그림속에 담는다. 

 

이 객관성과 주관성의 문제는 처음에 소개한 3D 메타버스에서 반복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3D 세계가 더 첨단의 기술을 요구한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더 좋은 것으로 여기며, 당연한 미래로 여기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관점과 철학의 변화와 함께 생각해야 한다. 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3D 시뮬레이션으로 가지는 않는다. 그랬다면 그림도 이집트시절부터 원근법을 가지고 그려졌을 것이다.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가, 우리가 그림이든 컴퓨터 프로그램이든 거기서 어떤 정보를 보고자 하는가에 따라 2D냐 3D냐가 결정될 것이다. 

 

앞에서 한 말을 이러한 관점에서 다시 표현해 보면 우리는 두가지 결론에 이르게되는 것같다. 첫째는 대상에 대한 객관적 정보를 얻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종종 3D 세계란 거추장스럽기만 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많은 경우 그런 걸 원한다. 쇼핑을 할 때 물건들을 서로 비교해 보려고 한다고 하자. 그럴 때 우리는 뭘 원하는가? 우리가 객관적 정보를 원한다면 물건들이 이차원 카탈로그에서 나열되기를 원할 것이다. 

 

그런데 사실 어떤 물건의 경우에는 주관성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옷은 입어봐야 그 느낌을 알 때가 있다. 옷을 열벌을 늘어놓은 이차원 카탈로그 보다는 가상 3D공간에 존재하는 나의 복제품에게 그 옷을 입혀보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이다. 이럴 때는 3차원의 기술이 매력적일 것이다. 

 

이것은 두번째 결론으로 이어진다. 두번째 결론이란 생각과 철학의 변화없이 기술은 현실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지 않는다. 발전될 수 있는 것이 모두 발전되지는 않는다. 오직 사람들의 생각이 바뀔 때 그 일은 일어난다. 가상 3D 세계가 기술적으로 완벽해 질수록 우리는 주관성을 강조하는 세계로 더 깊이 들어갈 것이며 오직 그럴 때만이 이 가상 3D 세계는 더욱 발전할 것이다. 

 

주관성을 강조한다는 것은 이 세계가 객관적으로 어떤 곳인가를 덜 강조하고 이 세계가 나의 관점에서 어떻게 보이는가를 더 강조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정도의 문제일 뿐 물론 우리는 지금도 객관성과 주관성을 모두 중요하게 생각한다. 앞에서도 나는 원근법이 회화에서 보편화된 이후에도 객관적 정보를 표현하는 설계도 같은 그림들에서는 우리는 여전히 그것을 무시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그 정도라는 것이 역시 중요하다. 

 

세계는 물리적으로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관념적으로는 지금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매일 매일 신대륙이 발견되는 시대랄까. 그 결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객관적인 그림이란 점점 문제가 많아지고 있다. 그것은 마치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써놓은 백과사전같은 것이다. 요즘 세상에서는 그것은 너무 방대하고 복잡해서 누구도 그걸 다 볼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의 일부만 그려놓고 그걸 객관적이라고 부르는 것도 합리화하기 때로 어렵다. 내 오른쪽 엄지발가락에는 털이 13개가 있다는 사실은 이 세상에 대한 객관적 지식중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사실에는 사람들이 관심이 없다. 누가 이런 사실을 신문 방송에서 대서 특필한다면 사람들은 객관적 지식을 줘서 고맙다고 하기보다는 짜증을 낼 것이다. 즉 엄밀히 말해 조각난 객관성은 객관적이지 않다. 정보의 선택이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행위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지극히 복잡한 세계에서 객관적 지식에 매달리는 것은 때로 지독한 편협으로 우리를 이끈다. 도달하지 못한 객관성에 자신이 도달했다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사물의 객관적 형태, 가치를 논하는 것은 날로 복잡해 지는 세상에는 따지기 어렵거나 불가능해지고 있다. 그보다 중요해 보이는 것은 사람들이 그걸 주관적으로 어떻게 느끼고 믿는가 하는 점이다. 비트코인은 사기일 수 있다. 가까운 미래에 마치 마법처럼 사라지고 말 허상일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걸 믿는 동안에는 생상한 실체이며 그 실체를 환상이라고 무시하는 행위가 무서운 결과를 만들 수도 있다. 세상에 대한 객관적인 지식이란 많은 분야에서 점점 도달할 수 없는 것, 필요없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양자역학을 알지만 야구를 하면서 야구공의 궤적을 양자역학을 써서 예측하지는 않는다. 실용적 정보, 작동하는 지식이란 주관적으로 내 입장에서, 이 상황에서 작동하는 정보와 지식이다. 

 

이러한 생각의 변화가 가상 3D 세계가 번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예를 들어 가상의 자기 방을 꾸미고 싶다면 우리는 2D가 아니라 3D를 원한다. 내 방을 내가 원하는대로 꾸미겠다는 주관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가상의 도시를 만들어 살고 싶다면 우리는 거기서도 3D를 원할텐데 가상의 3D 도시 자체가 중요한게 아니라 '내가' 혹은 '우리가' 원하는대로 만든 도시라는 점이 중요하다. 사실 지금도 존재하는 3D 가상세계는 대체로 이런 식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지 현실세계를 그대로 복사해서 거기서 살라고 하는 세계가 아니다. 기술적 발전으로 그것이 가능해지더라도 매력적인 부분은 그것을 주관적으로 수정할 수 있는 점일 것이다. 자기가 만들었기 때문에 그 공간은 만족스러운 것이지 3D기 때문에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다.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의 추세로 볼 때 머지 않은 장래에 우리는 이 가상공간에 자기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 안에서 살게 되지 않을까? 그 세계의 건설에는 인공지능의 도움이 절대적일 것이다. 복잡한 가상세계를 만들고 구축하기 위해서는 프로그램의 도움이 필요한데 그걸 편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마치 매우 능력있고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듣는 비서같은 프로그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가상공간은 한 사람의 공간일 수도 있고 다수의 사람이 공동으로 만든 공간일 수도 있다. 마치 지금 블로그가 있고 인터넷 까페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미래의 기술이 첨가 된 가상공간속의 그것은 블로그나 인터넷 카페처럼 텍스트 기반으로 천편일률적인 것이 아니라 훨씬 더 많은 것이 창조된 세계일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는 또 다른 질문의 대상이지만 그 답의 뿌리는 이미 우리 주변에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카톡방같은 것이 보편화되지 않았는가? 과거에는 그것이 미래였다. 이제 미래에는 어떤 것이 나타날 것인가? 우리는 인터넷 공화국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시대에는 3D 가상 세계도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그게 아니라 그저 객관적 정보의 소통에만 몰두하는 상태라면 3D란 거추장스럽기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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