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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국가란 무엇인가

문화가 미래다.

by 격암(강국진) 2022. 5. 10.

22.5.10

오늘날 세계는 여러가지 문제를 겪고 있다. 그 중에서 기후위기나 경제위기같은 것은 여러 사람들의 지적을 받고 있지만 어쩌면 그 이상으로 중요한 문제인데도 별로 강조되지 않는 것도 있다. 그것은 사회적 분열의 위기다. 주기적이고 전대미문의 경제위기가 자꾸 벌어진다고 말하면서도 지금 인류문명은 발전만 하고 있는데 뭐가 문제냐고 할지 모르지만 생각해 보면 이 두가지 측면은 서로 깊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만약 인류문명이 안정되게 발전만하고 있다면 왜 우리는 여러가지 문제를 겪고 있을까?

 

인류문명의 위기는 그것이 너무도 크고 복잡해졌다는 것에서 온다. 많은 사람들은 다원화 사회니 다양한 의견이 넘치는 사회니 하면서 그런 복잡한 세계의 현실을 계속 미화한다. 그러니까 비록 사람들이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싸우고 있지만 그런 싸움은 건전한 것이며 그것이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이런 의견이 꼭 틀린 것만은 아니지만 그건 정도 문제다. 

 

일찌기 부족의 시대를 쓴 미셀 마페졸리는 현대인들은 중앙적 질서에 떨어져 나와 작은 집단으로 뭉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현대 사회는 마치 수많은 계곡을 가진 거대한 산맥과도 같아서 사람들은 각자의 계곡속으로 숨어들고 세상과의 접촉을 대개 잃게 된다. 그러다가 그들은 때로 그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집단행동을 벌이게 되는데 그들은 전체적으로 보면 소수에 불과하지만 사람들은 이미 모두 산산히 흩어져 각자의 삶속으로 숨어들어가 있기 때문에 소수의 집단행동도 전체 사회를 뒤흔들 힘을 가지게 된다. 우리는 이미 사이비 종교단체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을 목격했지만 문제는 그들뿐만이 아니다. 극단적 노조나 여성주의자들같이 소위 진보를 자칭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자칭 보수 애국 주의자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흑백론적으로 모든 투쟁과 다툼을 무익한 것으로 말할 수는 없다. 흔히 말하듯 그런 여러 의견들은 다 발전의 동력이 될 때도 있다. 하지만 역시 정도문제다. 세상은 날로 더 복잡해져만 가고 각자의 계곡은 더욱 깊어만 간다. 진화론을 부정하여 학교에서 가르치지 말라고 하고 지구는 평평하다고 믿으며 정부에서 주는 백신주사를 맞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의미있는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는 것도 발전이라고 한다면 언젠가 우리는 전쟁이나 질병으로 회복불가능한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사회의 복잡성이 임계점을 넘어 분열이 너무 심각해지면 문명이 붕괴하고 마는 것이다.  

 

여기서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일은 토론과 소통의 가치는 크지만 그것의 힘을 너무 과신해서도 안된다는 점이다. 특히 재판정에서 할 것같은 말싸움이 그렇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유사과학을 과학으로 맹신하는 병에 걸려있다. 그래서 그들은 마치 과학자들이 과학이론에 대해 검증하고 토론하듯 세상문제에 대해서도 치열하게 사실에 기반하여 논쟁하면 어떤 답이 나온다고만 믿는다. 그렇지 않다. 과학은 세상 모든 일이 아니라 과학적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몇가지 주제들에 대해서만 가능한 것이고 현실 사회의 문제들은 과학자들처럼 객관성을 가지고 마치 구경하듯 나의 영향력을 최소화하면서 관찰하는 방식으로 이해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낙태가 허용되어야 하는가라던가 올바른 복지정책은 어떤 것인가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우주가 끝날때까지 과학적으로 토론해도 결론이 나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사회문제에 대한 상대방의 의견에 대해서 '이러저러한 것은 이러저러하게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고, 미래에는 이러저러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는 종종 계산 불가능하다.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나라를 팔아먹고 돈을 버는 일을 하면 안된다고 화를 내겠지만 그게 왜 안되냐고 정색을 하면서 계속 질문을 던지면 논리적이고 과학적으로 그에 대해 반증을 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그렇다면 소통은 의미가 없고 토론도 의미가 없는가? 그렇지는 않다. 다만 그것들이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미리 여러가지 사회적 원칙에 대해 공감하는 같은 가치관을 상당히 공유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상대방을 부정하려고만 한다면 논리나 증거로 설득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문제는 한국에서 매우 심각하지만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문제다. 즉 세계 어느 나라나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그래서 내 개인적 느낌으로는 전세계의 정치가 대부분 엉망이다. 독재자가 아니면 얼치기 진보에게 휘둘리는 바보들에게 휘둘리는 일이 세계 어디나 일어난다. 미국도 일본도 중국도 러시아도 유럽도 예외가 아니다. 왜냐면 사회가 분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힘으로 통합하는게 답은 아니다. 복잡한 나라를 독제로 다스리면 러시아의 푸틴이나 중국의 시진핑처럼 턱없는 짓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리저리 말싸움만 잘하는 사람들이 서로 싸워서 연립정부를 만들고 대선에 이기는 것도 그다지 좋은 결과만 가져오지 않는다. 

 

그래도 지금의 한국을 지켜내는 것이 몇가지 있다. 공교육과 전통문화 그리고 강력한 미디어를 통해 판매되는 문화상품이다. 온 국민이 적어도 학교에서는 같은 내용을 공부한다는 것은 사회를 통합한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만약 온 나라가 홈스쿨링으로 아이를 키운다면 우리는 훨씬 더 커다란 사회적 분열을 경험할 것이다. 이것은 지난 몇년간 온라인 수업으로만 수업을 들었던 현실이 한국 그리고 세계에서 별로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왔을 거라는 것을 의미한다. 

 

두번째는 전통문화다. 한국인은 한국어를 하고 한국 전통 문화에 노출되어져 있다. 비슷한 음식을 먹고, 비슷한 예절을 따른다. 인생의 단계 단계는 이러저러하게 흘러간다는 것에 대해서 비슷한 관점을 가지고 있다. 이것들이 우리를 하나로 뭉치게 해준다. 이것들이 없었으면 물론 사회는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다. 이 말은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은 모두 사회적 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한국 문화라는 몸통이 튼튼하면 그들은 훌룡한 사회적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문화가 약해져서 진정으로 한국이 말그대로의 다문화가 된다면 한국은 그저 쓰레기통이 될 것이다. 중심질서를 가진 사회적 융합이 없어진 가운데 다들 자기가 옳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천은 아랍인이 살고 수원은 중국인이 살며 춘천은 이탈리아인이 사는 가운데 대판 싸운다고 하면 절대로 어떤 평화가 이룩되지 않는다. 일본인과 한국인은 서로 다른 나라에서 사는데도 아직도 싸우고 있지 않은가. 

 

세번째는 문화상품이다. 우리는 모두 같은 인기 영화나 인기 드라마나 인기 베스트셀러를 보고 읽는다. 이 공통의 경험이 우리로 하여금 서로가 완전히 타인이 되게 하지 않는다. 이는 한류열풍의 의미를 아주 크게 만든다.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자국의 영화나 드라마나 책을 소비하지 못한다. 적어도 그다지 인기가 없다. 이것은 그들의 사회적 통합을 지탱하는 뿌리 중의 하나가 외국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인들도 40년전쯤에는 온통 미국과 일본 컨텐츠만 소비했다. 그래서 BTS도 미국 드라마 프랜즈를 보고 영어를 배웠다고 말하지 않는가. 

 

하지만 여기도 여러가지 위험요소가 있다. 문화상품 소비도 요즘은 예전같지 않다. 세계를 지배하던 미국 문화 상품의 인기는 시들해졌다. 그렇다고 한국 문화가 그걸 대체할 수준인 것도 아니다. 나라마다 상황은 다르지만 대박 히트 드라마라는 것이 시청률 10%도 안되는 일이 흔하다. 한국도 이런 일이 벌어졌지만 사실 한국정도면 컨텐츠 소비가 매우 뜨거운 나라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마블 영화의 중요한 소비시장으로 한국을 꼽는 것이다. 인구 5천만의 나라에서 천만 관객영화가 매년 나오는 일은 전세계 어디에도 없는 수준이다. 

 

이제 몇가지 결론의 말들과 함께 이 글을 마치자. 첫째로는 더 많은 소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글을 얼핏보면 사회적 소통이 무용하다는 것처럼 들릴 수 있게 되어 있지만 그건 그저 반박하고 싸우기 위한 논쟁을 말하는 것이다. 같이 먹고 같이 웃고 우는 공통의 경험이 가지는 가치는 날로 증가하고 있다. 그게 힘들고 귀찮다고 해서 각자의 계곡에서 편하게 살다보면, 진짜로 소통은 불가능해져서 우리는 서로 외국인내지 외계인처럼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고 나면 아주 비싼 댓가를 치뤄야 할 것이다. 힘들지만 소통과 접촉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지금의 모든 세계적 문제의 뿌리에는 이 문제가 있다. 환경문제건 경제문제건 그걸 해결할 방법은 결국 연대한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지난 번 탄핵촛불집회로 나라를 구했다. 그건 소수의 사람들이 벌인 일이 아니라 모두가 나와서 나라를 나라답게 만든 일이었다. 5천만 인구의 나라에서 수백만이 거리로 나왔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그런 일들이 앞으로도 필요할 것이다. 

 

둘째로는 한국인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잘하고 있는 편이라는 것이다. 한류열풍은 뒤집어 말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지금 전세계가 한국에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산산히 찢어져서 야만의 정글로 돌아가려는 세계를 한국 드라마를 보고 kpop을 들으면서 지켜내고 있는 사람들이 세계에 많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 컨텐츠의 힘은 여전히 대단하지만 그 매력을 상당히 상실했다. 한국은 세계를 구하기에는 여전히 너무 약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세계에 한국말고 대단한 문화강국이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군사력이나 경제력으로 보아 한국은 그다지 대단하지 않다. 하지만 지금 세계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은 통합의 힘이고 그건 문화의 힘이다. 미국의 문화적 통합능력이 떨어져가는 가운데 한국은 부각되고 있다. 여기서 더 한국이 힘을 내면 한국은 누구나 인정하는 세계를 지탱하는 기둥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물론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세번째는 사이보그 1의 한계다. 나는 문자에 기반한 문화속에서 태어나고 만들어진 인간을 사이보그 1이라고 부른다. 이 사이보그 1은 지금의 현대문명의 복잡성을 감당하지 못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제트기 조종석앞의 침팬지처럼 변하고 있다. 사회적 통합을 지키고 만들어 가는데 있어서 인간의 노력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고 그것이 지금까지 말한 문화적 통합의 노력이다. 하지만 종국에는 그것만으로는 안될 것이다. 

 

결국에는 우리는 강력한 정보화사회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삶의 방식 즉 새로운 문화의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훨씬 더 많은 정보가 수집되고 분석되며 필요한 사람에게 효율적으로 공급되는 사회다. 그런 사회적 인프라에 대한 믿음 없이는 부질없는 가짜 뉴스와 사이비 종교의 창궐을  막을 수가 없을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소위 기자니 언론이니 하는 것들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한국 기자들만큼 엉터리인 사람들을 모른다. 국민들은 지난 30년간의 여러 정부들의 성적표도 제대로 모른다. 그냥 김대중이 북한에 돈을 퍼줫다고 하면 그런가 하고 생각하고 경제하면 보수라고 하면 그런가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천지다. 복지혜택을 받으면서 고마워하고는 표는 반대로 그 복지혜택을 없애자고 하는 사람에게 주는 유권자도 많다. 민영화니 합리화니 하고 말장난을 해서 헛깔리게 만들면 뭔지도 모르고 찬성하는 사람들도 많다. 오죽하면 지난 몇년간 포털의 뉴스편집이 자꾸 논쟁의 주제가 되었겠는가. 대통령이 해외순방으로 역사적인 모임에 참석해도 야당당대표가 자전거를 탔다는 걸 더 많이 보도하는 일도 벌어진다. 그래서 어떤 국민들은 한국의 위상이 올랐는지 내렸는지에 대해서 아무런 감이 없다. 

 

현실은 암울하고 가야할 길은 멀지만 이 분야에서도 한국은 잘하고 있는 편이다. 한국은 스마트폰 보급률도 아주 높고 인터넷 속력도 빠른 편에 속한다. 하지만 더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통신비는 낮추고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과 상품화에 투자해야 하고 전국을 온갖 센서로 뒤덮어야 한다. 디지털 지도도 더 정밀해 져야 물류자동화도 투자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런 사회적 변화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들이야 말로 잃어버린 부족이 되어 사회적 치명타를 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도 기술의 문제만은 아니다. 문화의 문제다. 이걸 위해서는 우리의 의식주도 바꿔야 할 것이다. 학교도 바꿔야 할 것이다. 산업화의 시대에 고속도로가 소중했듯 이 분야의 사회적 인프라구축과 기술발전이 더 빠르지 않으면 문명적 위기가 한국을 뒤흔들 것이다. 이미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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