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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대학에 대하여

명절에 만난 대학생들과 대학의 현실

by 격암(강국진) 2023. 1. 24.

23.1.24

명절이라서 친인척을 만나다 보니 한국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는 조카들과 그리고 회사에서 근무하는 형님과 이야기 할 일이 있었습니다. 얼마전에 대학의 몰락은 가장 짧게는 인구구조의 문제지만 좀 더 멀리 보면 연구와 교육기능을 모두 담당하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길게 보면 대학이 세속화된 것이 대학 몰락의 근본원인이며 결국 대학은 평준화되어야 한다고 저는 글을 썻지요. 그러고 나서 나눈 대화였는지라 몇몇 부분들은 알고는 있었지만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그 중에서 제가 다시 주목하게 된 것은 명문대 서열이 중요하지 않고 학과 이름이 중요하다는 현실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기업은 점점 더 인재를 데려다가 교육을 시켜서 장기간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당장 실무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미 어느 정도는 대학 평준화가 진행되어버린 상황이라는 것을 새삼 알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요즘은 서울대라도 합격했지만 등록을 하지 않는 경우가 30%에 이르며 연세대나 고려대는 이보다 더 높다고 합니다. 왜냐면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취업률인데 서울대라도 과가 좋지 않은 경우는 취업률이 50% 이하인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제일 취업이 잘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곳이 의대인데 그래서 의대의 경우는 서울대건 지방대건 무조건 학생들이 간다고 합니다. 이렇게 명문대라도 취업이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서강대 경제학과는 이번에 졸업생의 90%가 취업을 못했다라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서강대는 어엿한 명문대인데 인서울이니 뭐니 하며 노력하는 학생들이 보면 참 기가찰 노릇의 이야기였습니다. 지방이고 취업이 잘안되는 영문학과 같은 곳은 아예 과가 없어질 정도로 지원자가 적다고 하더군요. 

 

이런 대화 도중에 소프트웨어 계열로 대기업인 곳에서 일하시는 형님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요즘은 취업할 때 학벌이 중요하지 않고 실무능력만을 본다는 말을 하십니다. 이는 그 회사뿐만 아니라 요즘 취업의 보편적 정서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런 현실과 대학교육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니까 회사는 직원이 모든 걸 다 잘 알 필요가 없고 특정분야만 알면 일에 투입할 수 있는데 대학은 너무 두루 가르친다는 말입니다. 컴퓨터 분야의 이야기였지만 자동차 분야로 바꿔서 이야기해 봅시다. 자동차를 운전하는데는 자동차를 만드는 법을 알 필요가 없습니다. 운전을 잘하는게 제일 중요하지요. 그런데 자동차에 관련해서 뭘 할지 몰라서 두루 교육을 시키는 대학은 말하자면 자동차 정비에서 제조 관리 운전을 모두 가르치는 식이 된다는 겁니다. 그런 교육내용은 대다수가 대학원에 진학할 사람이 아니면 기업에서는 당장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옆에서 듣던 대학생 조카가 컴퓨터 분야의 상황을 이야기합니다. 요즘은 이런 현실때문에 학원광고가 늘었다고 합니다. 대학에 가지 않아도 소프트웨어나 인공지능 분야의 실무를 몇달이면 배울 수 있다고 해서 사람들을 모집하고 있으며 대학생인 자신의 입장에서 보면 몇달만에 저걸 배워서 저런 분야에 종사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학원의 과장광고라고 말합니다. 그 말은 물론 그 나름대로 옳은 말이지만 기업에서 관리직에 있는 형님의 말과는 분명 결이 다른 지적이었습니다. 회사가 실무를 강조하니 특정 분야의 기술만 가르치는 학원이 번창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사실 아직 그런 때가 오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 학원에 등록만 해서 단기간에 기능을 배우고 그걸로 취업을 차별없이 하는 때가 온다면 그거야 말로 대학의 종말일 겁니다.  대학입시가 근원적으로 존재의미를 잃게 되겠고 대학에 진학하려고 하는 사람의 수가 급감하겠죠. 지금 대학의 현실은 이런 상황과 같지는 않다고 해도 엄청 멀지도 않습니다. 예를 들어 인문계대학이나 지방대는 취업을 잘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가운데 예능 분야같은 곳은 학벌이 아니라 웹튠을 그린다던가 그림을 그려서 온라인에서 판다던가 하는 식으로 수입을 올리는 일이 많은 모양입니다. 그런건 대학교육과 상관이 없죠. 대학생인 조카중의 하나도 이미 어떤 중소기업에서 알바식으로 해서 프로그래밍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회사에 취직할 생각은 없다고 합니다. 이것도 어찌보면 대학 학벌이 필요없는 일자리인 셈입니다. 돌아보면 농사꾼이 되는데 꼭 대학졸업장이 필요없고 작가가 되는데 꼭 대학졸업장이 필요없지요. 취업만이 대학교육의 목표라면 대학교육의 필요성은 점점 약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의 세상에서는 고졸이라도 상관없는 일자리는 늘어나고 대졸자가 취업할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모든 것을 시대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말할 분도 계실 겁니다. 저도 그렇게 말해온 사람중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대학이 있건 없건 대한민국은 있어야겠지요. 그리고 개개인이 회사에 취업하는 문제와는 다른 좀 더 공적인 측면이 세상에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식량자급화의 논리에 따라 한국에서는 경작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냥 시장논리대로 두면 나라 바깥에 싼 쌀이 있기 때문에 쌀농사가 망할 것입니다. 그래서 세금같은 공공의 돈으로 농지를 유지하는 겁니다. 같은 필요성이 여러 분야에 존재합니다. 인문계열의 취업률이 좋지 않다는 것과 인문계열에서 연구하고 보존하는 지식들이 이 나라에 필요없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공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생명공학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생명공학과의 취업률이 좋지 않더군요. 왜냐면 연구직으로 가지 않으면 그런 지식이 당장 큰 의미가 없어서 일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수학분야의 노벨상이라는 필드상을 받는 사람이 나와도 수학과는 축배를 들 수 없을 겁니다. 취업논리로 과가 존폐 여부에 빠져 있는 것이 현실인데 필드상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다양한 분야의 연구소를 만들어서 취업논리가 그런 학과들을 고사시킬 수 없게 만드는 일이 필요합니다. 설사 낮은 월급이라도 상관없이 하고 싶은 공부를 장기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있어야 진짜 전문가들이 양성됩니다. 그게 선진국입니다. 고부가 가치 산업은 그런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학생들이 당장 먹고 사는 문제만 고민하도록 만드는 분위기가 너무 강합니다. 10년후 20년후에는 인재유출이 너무 심하고 전문가들이 부재하는 시대를 한국은 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는 정치의 문제이기도 한데 정치권이 너무 자본가와 기업가에게 휘둘리지 말고 그들과 타협하고 싸워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길게 보면 토양을 좋게 만드는 것은 농사를 위해 좋은 일인데 기업이 지금 한국의 상황을 너무 나쁜 쪽으로 몰고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기업의 이익만 중요하다는 생각에 빠지면 그게 결국 약탈이 됩니다. 게다가 그게 결국 기업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질 겁니다.  한국인의 높은 교육열이 결국 지금의 부유한 한국을 만드는 기본적 힘이었습니다. 그 교육열이 지금 벽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좌절하고 없어질지도 모르죠. 

 

모든 젊은이들이 다 좋은 직업을 가지는 시대는 없습니다. 40년전쯤에는 명문대 나오면 취업걱정없었다고 하지만 그때는 대학진학률 자체가 2-30% 밖에 안되던 시절입니다. 즉 대학에 못가는 사람이 엄청 많았습니다. 단지 학생수 자체가 지금의 몇배였죠. 그러니까 서울대 가기가 그때도 어렵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게다가 당시에는 최저임금이 아주 형편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대학졸업하지 않은 사람들의 임금은 지금보다도 더 형편없었습니다. 요즘은 알바하며 버티는 사람들도 있지만 알바는 20년전만 해도 전혀 생활비를 대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임금이 너무 형편없어서 대학생 중에 알바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직 과외만이 의미있는 알바비를 제공해 줄 수 있었죠.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미래에도 문제는 있을 것이고 살아갈 길을 찾지 못한 젊은이들의 방황은 힘들 겁니다. 다만 과거에서 부터 내려오는 관행이 만드는 착시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대학졸업장이 흔해졌는데 아직도 대학졸업장의 가치가 같을 걸로 생각하거나 대학의 사회적 위상이 달라졌는데 명문대 간판이면 어떻게 될거라는 생각이 대표적입니다.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지금은 취업의 시대가 끝나간다고들 말합니다. 그보다는 창업의 시대라는 겁니다. 이게 모두에게 적용될 수는 없는 말이겠지만 직장인에서 창업자로 발상을 바꾸면 적어도 몇가지는 변화하게 됩니다. 직장인은 그저 시험잘봐서 합격하면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하고 주는 월급 잘 받아서 죽을 때까지 일하며 살겠다는 겁니다. 직장이라는 테두리의 도움을 받겠다는 거죠.

 

창업자는 자기 만의 아이디어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게다가 경제관념도 달라져야 합니다. 직장인도 물론 돈계산을 하지만 더이상 현금의 흐름이 일정할 수 없는 것이 창업자니까요. 계속 투자를 하고 성과를 확인하면서 프로세스가 멈춰서지 않게 관리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햄버거 가게 사장이라도 금리니 부동산 가격이니 최저시급이니 하는 것에 신경써야 하는 이유입니다. 나를 보호해줄 회사라는 테두리가 따로 있는게 아니라 나 자신이 나를 보호해야 하니까요. 어떻게 말하면 좀 더 독립적인 인간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사회적 현실과 입시교육으로 더더욱 아이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입시현실은 극단적으로 동떨어져 있습니다. 이것이 대학이 가지는 폐해 입니다. 우리는 어느새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사서삼경 읽으며 과거공부하던 조선 말엽의 사람들과 비슷해 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관행이 만들어 내는 착시를 주의해야 합니다. 입시교육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지식을 주고 있는지 아니면 오히려 필요한 지식들로부터 격리를 시키고 있는 것인지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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