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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미움의 이유

by 격암(강국진) 2025. 5. 6.

살다보면 누군가가 미울 때가 있다. 그리고 미움을 받을 때도 있다. 그런데 이런 경우 우리는 한가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대개 우리의 미움을 합리화한다는 것이다. 즉 누군가가 미움받을 짓을 해서 미워하고 헤어지는게 아니라 그 사람과 헤어질 이유가 있으니까 그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다.

 

이런 사실이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자주 표현되는데 예를 들어 최근에 방영되었던 폭삭속았수다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가난한 화가인 남자친구에게 잔소리를 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늘 자기 남자친구의 가난을 비판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진짜 이유는 그 여자가 국수회사를 하는 부자집의 남자와 선을 봤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옛 남자친구를 버리고 새 남자에게 가고 싶은데 그러면 그녀가 나쁜 사람이 되고 만다. 따라서 그녀는 지금의 남자친구를 미워해야 할 이유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가난을 이유로 삼는다. 가난을 이유로 지금의 남자친구를 노력도 하지 않는 나쁜 남자로 만들어서 미워한다. 그리고 나서 헤어져야 그녀는 스스로 나쁜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나이가 좀 든 사람들은 생각해 보면 이런 류의 이야기를 스스로 경험하거나 보고 들은 적이 많을 것이다. 깨어진 우정, 깨어진 애정, 깨어진 결혼에서는 대개 서로에게 큰 상처를 주는 싸움이 존재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그 상처가 그 우정과 애정과 결혼을 망가뜨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이가 좀 더 들어서 곰곰히 상황을 생각해 보면 진짜 이유는 그것이 아니다. 그 상처들은 고의적으로 만들어 진 것일 때가 많다. 

 

우정이나 애정이 식었다고 하자. 그리고 그 관계가 이젠 부담스럽고 족쇄처럼 느껴진다고 하자. 불행한 일이지만 이 일이 두 사람에게 동시에 같은 정도로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면 우정이나 애정이 식은 사람은 서서히 자연스럽게 그 관계를 끊으려고 한다. 상대방에게 성의를 보이지 않고 사소한 일이지만 상대방을 무시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면서 상대방도 자신처럼 우정이나 애정이 식기를 바란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헤어질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사랑에 눈먼 사람은 그런 것을 잘 못느낀다. 그래서 여전히 사랑을 유지하는 사람은 섭섭하다가도 그런 것을 참는다. 아예 노골적으로 우리 당분간은 보지 말자고 하는 말을 들어도 이미 끝나 버린 관계에 희망이 있으며 오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쯤 되면 우정이든 애정이든 이 사랑은 짝사랑이 된 것이고 한 사람은 배신을 당한 셈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 대개 상처를 크게 주는 쪽은 먼저 사랑을 끝낸 사람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사람은 합리화를 잘하기 때문에 이들은 잔인한 말과 행동을 통해 그 관계를 끝내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생기는 죄책감을 없애기 위해서 상대방을 미워할 이유를 찾는다. 내가 이렇게 까지 하려고 하지는 않았는데 어쩔 수 없다는 이유를 만든다. 그리고 그들은 종종 진짜 끔찍한 일을 한다. 상대방이 영원히 잊을  수 없고 자신도 잊기 힘든 일을 말이다. 

 

또다른 드라마에 나오는 이야기지만 이런 이야기의 예를 들어 보자. 미국 드라마 트루 디텍티브에는 바람을 피워서 아내와 별거에 들어간 형사가 나온다. 바람을 피웠지만 아내에 대한 집착이 있었던 남편과 헤어지기 위해 형사의 아내는 그 형사의 파트너를 유혹하고 잔다. 자신의 아내가 자신의 파트너 동료와 잤다는 사실을 알면 자신의 남편은 회복불가능할만큼 상처를 입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기 남편에게 그 파트너와의 섹스가 좋았다는 말까지 한다. 그 형사는 물론 아주 깊은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착하고 성실한 것으로 나오는 여자가 왜 이렇게까지 할까? 복수를 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헤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드라마 속 이야기다. 그러나 세부 사항이 다르다고 해도 실제로 사람들은 이와 비슷한 일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좋게 헤어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때는 좋은 관계였는데 그냥 모르는 사람이 되는게 아니라 원수보다 더한 관계가 된다. 우정과 애정이 깊었을 수록 관계는 끊기 어렵고 그걸 끊어내겠다고 맘에도 없는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많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보면 우리가 한때 좋아했던 사람들은 다 이유가 있어서 좋아했던 것이고 다른 사람이라고 해서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우리 안에는 상대방과 상관없는 어떤 욕망과 이유가 존재하고 우리는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상대방을 상처준다. 그리고 물론 이유없이 상처받기도 한다. 그렇게 상처받으면 너무 억울하지만 살다보면 알게 된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관계에서 단절당한 사람도 언젠가는 관계를 단절하는 사람이 된다. 그러다 보면 누구도 미워하기 힘들다. 분하지만 결국 나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런 일들은 결혼이나 애정뿐만 아니라 우정이나 직업적인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물론 나이가 들고 성숙하면 우리는 이런 속박과 순환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자기 성찰에 힘쓰고, 운도 좋다면 말이다. 그러나 쉬운 일은 아니다. 인간은 홀로 살 수 없고 항상 누군가와 함께 살고 싶기 때문이다. 즉 사람이 살아있으면 관계는 만들어지고 사라진다. 집착과 오해와 맘에 없는 행동들이 생겨난다. 

 

그래서 우리가 계속 기억해 둬야 할 것이 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은 너무 힘들고, 전부가 아니라면 적어도 대부분 쓸모없는 일이다. 우리는 누군가가 나에게 못된 짓을 하거나 그 사람이 나를 미워하기 때문에 나도 그 사람을 미워한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에게 그러는 이유는 그냥 그 사람이 사람이라서다. 

 

사람은 짐승이 아니지만 결국 본바탕은 짐승이다. 그 짐승이 여러가지 관계를 가지고 공부해서 그 짐승 이상의 존재가 된 것이지만 그래도 우리 안에는 여전히 짐승과 어린애가 있다. 그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 짐승과 어린애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인간이란 유한한 존재다. 아기가 오줌을 싸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분노하지 않는다. 왜냐면 아기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그 아기가 자라서 어른이 되면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 이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설사 어른이라고 하더라도 그 아이같고 짐승같은 어떤 욕망이 누군가를 움직이는 때가 있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것이 자기합리화를 통해 나를 상처주는 일이 생기는 것은 불행한 일이지만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몇가지 있다. 첫째로는 다른 사람을 아기나 짐승처럼 생각해서는 안되지만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모두가 유한하고 우리 안에는 짐승과 아기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결국 이러니 저러니 말이 복잡하지만 많은 행동의 이유는 시시한 것이다. 다만 우리는 그 시시함을 초월할 기회가 있는 존재일 뿐이다. 

 

두번째는 어떤 합리화나 객관화로 남을 미워할 이유를 만들어 내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다. 나와 인연이 끝나고 나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을 미워할 이유는 없다. 이런 저런 이유란 크게 보면 다 헛소리다. 우리는 우리의 부모도 때로는 미워한다. 왜냐면 그 부모와의 관계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럴 때 객관적으로 말해서 우리 부모는 좋다던가 나쁘다던가 하는 것은 별로 핵심적인 것이 아니다. 미워해야 할 이유가 뭐건 부모를 미워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부모와 연을 끊고 살더라도 부모를 미워하지는 않는게 좋다. 부모같은 가까운 존재가 나와 함께 가까이 지낼 수 없을만큼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그래도 미움은 별 도움이 안된다. 

 

마지막으로는 남이 나를 미워할 정도로 집착하지는 않는 것이다. 모든 것은 끝이 있고 인연이 있다. 너무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것이며 내 모든 것을 바친 것이라고 하더라도 끝은 있을 수 있다. 내가 그렇듯이 상대방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유한하고 서로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 가지고 있는 욕망도 다르다. 이별은 꼭 누가 잘못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말해도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은 여전히 불행한 일이고 가슴아픈 일이다. 우리의 일부가 죽어버리는 일이다. 하지만 서로를 미워할 정도로 집착해서 더욱 더 불행한 이별로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 이별은 이별대로 하고 상처만 피차간에 말도 안되게 커질 수 있다. 그것은 더욱 더 불행한 일이다.  

 

집착하지 않는 것이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의 관계가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있으며 억압하고 있다면 우리는 변해야 한다. 물을 그리워하는 물고기에게 그러지 말라고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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