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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교육에 대하여

남자의 교육이 가장 엉터리다.

by 격암(강국진) 2025. 7. 1.

오늘날 시대는 우리가 근대라고 말하는 시대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으며 이것은 지금 AI의 발달로 인해 급격하게 가속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미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서는 해고되고 있는데 그 사람들은 상당 부분 중간관리자라는 말이 있다. AI같은 자동화기술의 발달로 조직의 중간에서 조직의 부속품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필요없어졌기 때문이다. 

 

이같은 현실은 우리가 막연히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해 왔던 교육에 대한 기초를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든다. 우리가 생각하는 교육이란 그 기본이 근대적인 것이며 근대적인 것이란 기계적이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의 학교는 거대한 조직의 부품으로서 오래 오래 변하지 않고 일할 노동자를 키워내기 위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학교는 전인교육따위는 거의 무시한다. 누구나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그것이 직업교육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같은 직업 교육의 개념이 이미 낡아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폐해가 극심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바로 남자의 교육이다. 같은 학교 교육을 받는다고 해도 사회 전체에 퍼져 있는 남자답다라는 개념이 남자의 교육을 더더욱 실패하게 만든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전통적으로 남자는 더욱 더 믿을 수 있는 부속품이 되도록 강하게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이는 남녀 차별의 폐해가 만든 면이 있다. 남자가 가정 바깥의 사회적 활동을 지배하던 과거에는 여성은 말하자면 애초에 조직의 믿을 수 있는 부품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받지 못했다. 단순하게 말하면 애초에 자격미달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역시 단순하게 말하자면 여자는 그저 아버지나 남편이나 아들같은 주변의 남자의 말을 따르면 된다는 사고가 세상에 만연했다. 반면에 남자는 어릴 때부터 쓸모있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교육을 받았다. 

 

그런데 그같은 사고의 결과는 이제는 낡고 시대착오적이라는 바로 그 부속품이 되는 교육을 남자에게 더더욱 강하게 시키는 것이다. 때문에 남자의 경우에는 현대를 살아가는 능력을 키울 기회가 더욱 적다. 현대를 살아가자면 끊임없이 주변을 관찰하고 새로운 변화에 맞춰서 자기를 바꿔가며 자기 자신의 서사와 감정에 대해서 보다 분명하게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치 군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조직의 명령은 질문하지 말아야 하고, 그 조직이 영원 불멸할 것처럼 생각하면서 조직의 바깥은 쳐다도 보지 않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또한 누구에게나 옳은 정답은 없는 만큼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알고 그것을 잘 표현해서 주변 사람들과 타협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주는 대로 먹고, 시키는 것은 뭐든지 하고, 윗사람에게 충성하다보면 나에게도 좋은 일이 있을거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이미 평생 직장의 개념은 사라졌고 큰 대기업에 들어가도 근속년수는 계속 짧아지고 있다. 이미 그런 것이 아니라면 다가올 미래에는 사람들은 계약에 기반한 프리랜서식의 삶을 살 것이다. 누구도 어떤 조직에 오래 머물지 않으며 필요에 따라 뭉쳐서 프로젝트를 할 뿐인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누구에게 충성하며, 누가 누굴 봐준다는 것인가. 다시 말하지만 정답은 없는 만큼 자기가 스스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많은 일을 하면서도 이뤄내고 싶은 것이 있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많은 돈이면 충분히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며, 어떤 사람은 삶의 질을 따지거나 자신의 이념적 지향점을 따지면서 유유자적하는 삶을 추구할 지도 모른다. 즉 각자가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다른 것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지 모두가 축구나 농구같은 같은 게임을 하는 세상에 사는 것이 아니다. 직장에서는 직장상사인 사람이 퇴근후 축구클럽에서는 나에게 축구 수업을 받는 학생일 수도 있는 것이 현대사회다. 고정되어 보편적인 정체성 따위는 이제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과거의 관행에 빠져서 부속품이 되는 교육을 계속 받는다. 이게 다 뭐에 쓰는지를 생각하지 말고 그저 시험을 보기 위해서 살라고 교육받는다. 이것은 모두의 문제다. 그런데 나는 더더욱 남자에게 이게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남자는 남자의 서사, 남자의 감정에 약하다. 자기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거나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시쓰는 남자나 소설쓰는 남자는 어떤 이미지 인가? 시쓰는 여자나 소설쓰는 여자보다 좋지 않다. 남자는 그런 일을 하는게 아니라는 것이 관행적인 남성의 이미지다. 이것은 단순히 남성 작가에게 한계를 만들어 내는 일이 될 뿐만 아니라 남자들 개인들이 다 문제를 가지게 만든다.

 

지금은 시쓰고, 소설쓰고, 일기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시대다. 그걸로 직업을 삼지않는다고 해도 그래야 자기가 뭘 원하는 지를 알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설득도 할 수 있다. 자기가 뭘 원하는지를 모르면 결국 엄마같은 혹은 직장 상사같은 누군가의 인형이 될 뿐이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해 본적도 없으니까 그냥 남이 하는대로, 남이 하라는대로 산다. 그런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정답이 없는 세상에서는 그러면 삶이 엉망이 된다. 그건 마치 내 주변에서 된장국 만드는 사람과 그라땅 만드는 사람, 스파게티 만드는 사람이 모두 그저 요리를 만들 때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조언을 던지는 것과 같다. 설사 나에게 조언을 주는 사람들이 모두 훌룡한 사람이고 각자가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걸 다 뒤섞으면 엉망이 될 뿐이며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건 나의 삶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 

 

이 말이 우리가 남과 상관없이 살 수 있다는 뜻이 아니고 우리가 조직이나 소속이 필요없다는 뜻은 아니다. 무엇보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답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 우리 안에는 이미 너무나 많은 남으로부터의 메시지가 들어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끝없이 자신을 되돌아 보면서 내가 왜 이걸 좋아하는지, 왜 이런 걸 하게 되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람보르기니 같은 고급차를 너무 가지고 싶어하는 남자는 곰곰히 자기를 되돌아보면 차를 좋아한다기 보다는 사실 그런 고급차로 친구를 사귈 수 있다거나 애인을 사귈 수 있다거나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일 수 있다. 우리는 자기 스스로와 대화하고 자기의 환경을 조금씩 바꾸면서 자기의 삶을 만들어 가야 한다. 나와 환경은 분명히 구분되지 않는다. 우리는 환경을 바꾸면서 나도 바꾸고 그러면서 점점 보다 만족스러운 삶으로 접근해 가려고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고 있다. 남자든 여자든 다 그렇다. 그런데 남자가 더더욱 그런 것같고 그것은 상당부분 남자답다라는 개념에 근거해서 어릴적부터 받은 교육받은 때문이다. 그래도 요즘은 전과는 좀 다르다. 예전에는 남자들은 그저 모였다하면 술 뿐이었고 제대로 잡담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건 그들이 내적으로 빈약하다는 증거다. 관심사가 좁고 철학적으로 빈곤하면 세상에서 뭘 봐도 별로 할말이 떠오르지 않고, 대화가 의미가 없다. 일은 그저 먹고 살려고 하는 것이고, 좋은 분위기는 술같은 약의 기운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런 것에 대해서 여자들이라고 해서 모두 예외가 되는 것은 아니고 개인차는 심하지만 남자가 더욱 심한 것같다. 

 

그리고 그 결과는 현실 사회의 무능으로 나타난다. 낡은 조직 논리가 약해질 수록 남자들의 문화나 남자들의 리더쉽이란 고리타분하고 현실적이지 않은 것이 된다.  우리는 중년 이상의 남성들에게서 이런 것을 종종 극명하게 본다. 무감각하고, 말도 못하며, 가정일도 못하고, 스스로를 돌보지도 못한다. 취미도 없고 철학도 없다. 회사라는 조직에서 나오고 나면 껍데기만 있는 것같아서 새로운 일을 할 수도 없다. 그들이 무능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다만 낡은 문화에 맞춰서 철저히 교육받았고 그래서 시대에 뒤쳐지게 된 것이다. 그들은 마치 전쟁터에서 돌아온 군인같다. 이제 전쟁은 없는데 전투에만 익숙해진 그들은 아무 쓸 모가 없고 외상성 장애같은 것이 남아서 화를 잘낸다. 

 

그래도 그들은 젊었을 적에 했던 것을 토대로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가족도 있고, 재산도 있고, 인맥도 있다. 그래도 그들은 그들나름대로의 삶을 살아서 뭔가를 성취한 세대다. 하지만 요즘 젊은 남자들은 아직 아무 것도 없다. 그리고 낡은 방식으로는 뭔가를 더이상 얻기 힘들다. 그런데도 여전히 어린 남자아이들은 과거의 남성상에 억눌려서 키워진다. 그들은 가족도, 재산도, 인맥도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채 나이가 들 가능성이 있다. 지금은 그런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낡은 교육의 가장 극심한 피해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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