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뭔가를 다른 사람에게서 받고 뭔가를 준다. 그런데 결국 우리가 제일 잘 아는 것은 자기 자신이고 남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법이라 이런 주고 받음은 시간이 지나면 계산이 서로 틀려지기 쉽다. 그러니까 우리는 소중한 것을 줬는데 그저 별거 아닌 것을 돌려 받는다고 여기기 쉬운 것이다. 그러므로 기억력이 좋고, 사리 분별을 잘 따지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쉽지 않다. 오히려 이건지 저건지 잘 구분못하는 사람이 그게 더 쉽다. 왜냐면 과거를 다 잊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그런 사람대로 고통받는다. 시야가 좁은 사람은 누가 사기꾼이고 누가 은인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누군가를 돌봐주었을 때는 우리가 어떤 것을 댓가로 해서 그렇게 했는지를 안다. 그러나 남이 어떻게 그렇게 했는 지는 모른다. 무엇보다 먼저 그것은 주관적이다. 즉 우리는 우리가 누군가를 마중 나가가 위해서 얼마나 귀찮은 과정을 겪었나라던가, 누군가에게 뭔가를 주기 위해서 뭘 포기했는지 그리고 그렇게 했을 때 얼마나 섭섭했는지를 안다. 그러나 남이 나에게 뭘 했을 때 그것이 어떤 주관적 댓가를 치룬 결과인지는 알 수가 없다. 이것은 모두가 손가락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우리가 생생히 느끼는 것은 내 손가락의 아픔이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가 날마다 밥을 해주면 어느새 밥을 하는 것이, 설거지를 하는 것이, 장을 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잊어버린다. 힘들다는 것은 알지만 날마다 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에게는 별로 힘든 일이 아닌 것같이 느껴진다. 그러므로 누가 날마다 그렇게 하고 있어도 그것에 대한 고마움은 사라지기 쉽다. 그래서 80대 노인이 된 어머니를 찾아가도 식사를 차려 내라고 하는 일에 익숙해 지고 어머니에게 가서 밥을 얻어먹고 와서도 찾아간 나는 착한 자식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자신이 손님을 받아서 밥을 할 때는 너무나 그것이 부담스럼지만 밥을 하는 일의 어려움은 남이 할 때는 사소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있다. 우리는 살면서 사람들에게 사소한 도움을 받는다. 그런데 그 사소한 도움을 누군가에게 줄 때는 그것이 그렇게까지 사소하지는 않다는 것을 우리는 느낀다. 무엇보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뜻이다. 관심이 없으면 우리 집에 먹을 것이 산처럼 쌓여 있고 그것을 누구에게 기꺼이 줄 수 있어도 어떤 사람이 굶어 죽는데 아무 일도 안한다. 우리의 관심은 귀한 것이다. 우리는 자기일도 바쁘고 몇몇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그 관심을 나눠주고 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관심을 주기가 어렵다. 그 사람이 말 그대로 죽건 말건 내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세상에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일일이 관심을 주면서 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사소한 도움도 사실은 그렇게 까지 사소하지 않다. 그리고 자동차같은 큰 기계도 나사 하나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을 수 있듯이 사소하게 느껴지는 어떤 도움이 실은 그 사람의 일에 있어서는 결정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그 사소하다는 도움을 사방에서 받는 사람은 모든 일이 술술 풀리지만 무관심의 대상인 사람은 하는 일마다 망가지고 멈춰서게 된다. 어떤 때는 사무실에 복사기가 어디 있는 지를 모르는 것이 문제를 일으킬 때도 있다.
게다가 객관적으로도 우리는 남의 도움이 의미하는 바를 다 알 수가 없다. 대표적인 사례는 부모 자식간의 일일 것이다. 어린 아이들은 부모가 하는 일을 다 이해할 수 없다. 그러니까 부모가 직장에 나가서 무슨 일을 해서 돈을 벌어서 자기들이 그 돈을 가지고 옷을 사고, 밥을 먹고, 학교에 다니는 지를 알 수 없다. 나는 인상적인 이야기를 하나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 진실여부는 잘 모르지만 그럴듯한 이야기고 이것이 내가 방금 말한 사례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기러기 아빠의 이야기다. 자기는 한국에서 일하면서 소득의 거의 다를 캐나다로 보내는 남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작은 원룸같은 데 살았다. 그렇게 아낀 돈으로 아이와 아내는 캐나다에서 살았는데 이 이야기의 끝은 아이의 원망으로 끝난다고 했다. 아이는 캐나다에서 그 좋다는 교육을 받으면서 다른 아이들의 아빠와는 달리 우리 아빠는 내 옆에 있어주지 않는다고 아빠를 원망했다는 거다. 즉 교육비를 벌기 위해 아빠가 한 일은 인식의 범위에 있지 않고 그저 자기 아이와 놀아준 아빠들이 멋져 보였던 것이다.
이런 사례가 부모 자식간에만 존재할 리가 없다. 우리의 시야는 좁고 남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무관심한 것도 있지만 사생활의 문제이기 때문에 가족이라고 해도 서로에 대해서 모두 아는게 아니다. 가족도 다 모르는데 타인이라면 말할것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이 정말 아무 관심없는 행동이었는지, 그 사람이 엄청난 희생을 한 끝에 그렇게 한 것이었는지 잘 모른다. 이걸 쉽게 수량화하는 것이 돈으로 그렇게 하는 것인데 내 경험에 따르면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것도 많지만 돈으로 따지는 일도 쉽지 않다. 내 백만원이 상대방의 백만원과 같은 경우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는 지가 간단하지만 이재용이나 일론 머스크의 백만원과 나의 백만원이 같은 의미가 있을 리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의 도움을 재평가하게 되는데 여기서 오해가 쉽게 생긴다. 나는 일전에 한 친척이 우리 집에 대해서 말하면서 우리 집을 엄청난 부자로 이야기하는 것에 놀란 적이 있다. 그 분은 우리 집 삼형제가 받는 월급을 실제보다 배는 높게 산정하면서 그러니 집에 돈이 넘쳐나지 않겠냐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런 식의 생각을 하면 우리 집에서 어떤 도움을 받아도 그걸 사소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걸 생각하니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는 그 집을 돕기 위해 우리 부모님이 매우 고생하셨다는 것을 나는 알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건 이런것이다.
그러니까 그저 스쳐지나가고 마는 관계가 아니고 주고 받음이 오래된 관계라면 이런 불균형은 쉽게 쌓인다. 한쪽은 모든 것을 다 바친 것같고 정작 돌려받은 것은 없는 것같은데 반대쪽도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다. 왜냐면 생각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생각의 폭이 다르고 종류가 다르며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들이 아주 힘들게 키운 자식들도 부모에게 아빠 엄마가 나에게 뭘 해줬냐는 말을 할 수가 있다. 왜냐면 자기들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모들은 모든 게 쉬워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물론 뭘 돌려받기 위해서 누구에게 뭘 해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람이라면 당신이 나에게 뭘 해줬냐는 말을 들었을 때 아무렇지도 않기는 힘들다.
마지막으로 말해 두고 싶은 것은 우리는 심지어 우리 자신에게 일어난 일도 다 모르는 유한한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의 기억이란 지극히 제한 된 것이라서 사람은 자신이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고 했었는지를 다 모른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도 불공평하다. 우리는 어떤 아픔이 겪어도 그 아픔이 사라지면 같은 일을 반복할 때가 많다. 그러다가 어느날 누군가가 지적하거나 스스로 과거를 뒤돌아 보면서 깨닫고 나면 나는 왜 그 모든 문제를 스스로 만들어 인생을 망쳤을까하는 생각에 괴로워할 수도 있다.
이런 일에 대한 해결책은 없다. 우리는 살면서 생각의 폭을 넓히고 사려 깊어 지기에 때로는 이런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이 꼭 일어나리라는 보장도 없고 사람이 바뀌는 것이 순식간에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뭔가 하나를 하면 이런 오해가 사라질 거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오해가 오해인지 자체도 알 수 없다. 우리가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는 날은 영영 오지 않을 것이다. 살인자에게도 나름의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지 않겠는가. 나도 세상을 전부 보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이 세상 전부를 보지 못하는 것을 원망 할 수도 없다. 때로는 친구나 자식같은 사람에게 자기 전부를 거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이 글에서 말한 일을 겪으면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우리는 다만 주고 받음의 현실이 이러한 것이라는 점을 기억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친구를 얻기가 힘이 들며 진짜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를 소중히 여겨야 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세상에 하나가 있기 힘들다. 나 스스로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러니 사는 것은 쓸쓸해지기 쉽다.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의 친구가 되어줘야 한다. 만약 내 인생이 쓸쓸하지 않다면 우리는 그걸 감사하게 여겨야 한다. 그건 상당부분 행운이지 당연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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