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케이팝데몬헌터스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지게 된다. 한국문화는 왜 인기가 있을까? 적어도 대장금이나 겨울소나타가 외국에서 인기를 얻은 이래로 수많은 사람들이 질문하고 답한 이 질문에 2025년 현재 우리는 더 좋은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문명적 위기
한국문화의 인기 원인이 단 하나 일리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 첫번째 원인을 무엇보다 한국이 아니라 한국 바깥에서 찾아야 한다. 지금 전세계는 문명적 위기에 빠져 있다. 환경위기와 자원위기가 아니라고 해도 코로나 위기도 전대 미문이었고 2008년부터 시작된 경제위기는 해결되었다기 보다는 점점 더 폭탄을 키우고 있다. 결국 엄청난 양의 돈을 살포해서 세계의 경제를 지켜가고 있고 그 빚을 갚을 가능성은 이미 예전에 사라진 듯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이 정말 근대와 자본주의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사람들은 적어도 백년전의 세계 대공황급의 위기가 닥쳐올 것같은 느낌을 받고 있다. 이 위기의 근저에는 확장과 소비의 증가를 추구하는 근대의 비전, 자본주의의 비전이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자리잡고 있다. 환경위기가 아니라고 해도 이제 세계에는 더 근대화시킬 중국같은 나라가 없다. 늘어난 생산성을 감당할 새로운 미개발국가를 만들어서 중국인이 고부가가치 산업을 하고 미국인처럼 소비하며 사는 미래를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지금 벌어지는 무역전쟁은 필연적인 결과인 것이다.
이런 현실은 인류가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개발하고 그걸 정착시켜야 하는 과제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걸 통해 전쟁이 없고 치안이 좋으며 사회적 질서가 지켜지는 세계, 풍요로운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 부분을 생각하면 한국인으로서는 그저 한국의 문제를 해결해온 한국의 역사라고 생각되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하나의 거대한 문화적 실험이었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한국의 특이성
핀란드나 아일랜드, 대만이나 싱가폴등 여러 다른 나라의 예도 들 수 있기는 하겠지만 한국은 제국주의의 과거 없이 가장 최근에 선진국이 된 드문 나라다. 현대사가 아니라 과거의 역사까지 돌아보면 그 차이는 더 크다. 한국인에게는 실질적으로 정복의 역사가 없다. 우리는 언제나 외적을 무찌르고 자기를 지키기를 원했을 뿐 일본을 병탄해서 영토를 넓히겠다는 식의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한마디로 정복으로 번영과 질서를 만들어 내는 나라가 아니었다.
물론 21세기에는 이미 다른 선진국들도 식민지 전쟁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칼로 흥한자는 칼로 망한다고 하는 말이 있다. 이는 누군가가 성공하면 그 성공의 수단과 공식에 중독되어 거기서 헤어나오기 힘든 것을 지적하는 말이다. 기존의 세계 선진국들은 대개 과거의 영광에 취해 있다. 스스로는 평화로운 민족이라고 계속 세뇌하는 일본인들도 결국은 메이지 유신에서 세계 대전으로 나아갔던 제국의 기억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그걸 제국주의라고 부르든 근대화 정신이라고 부르든 자본주의라고 부르든 기존의 선진국들은 근대화 이래 크게 부자가 되었던 나라들이고 사실 옛날로 갈 수록 그들의 영광은 더욱 더 빛난다.
그래서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나라들은 21세기 민주 공화국의 시대를 살면서도 대개 봉건 시대의 기사나 정복 군주를 미화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들에게 만족스러운 이야기란 제국시대에서처럼 정복하고 계몽하는 과거의 이야기다. 계몽과 정복은 다른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그 둘에는 공통점도 많다. 그것들은 내가 진리를 아니까 내가 아는 진리로 세계에 질서를 가져오겠다는 정서를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한국인이 아니라 외국인의 눈으로 한국을 봐야 한다. 무한 확장이 불가능한 시대에 한국은 가난한 나라들에게 중요한 모범이 되고 있다. 이 시대에는 제국주의가 불가능한데 선진국이 되고 싶다면 그들은 한국을 배우지 않을 수 없다. 부자 나라들에게도 한국은 중요한 데이터다. 그들의 문화적 메시지가 이미 50년은 낡은 것이 되어가는 처럼 느껴지고 사회적 질서가 무너지는 것처럼 느낄 때 정치 경제적으로도 상당히 성공했는데도 자기들과는 다른 경로를 따라서 지금에 도달한 나라가 한국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이 완벽하다거나 한국이 어려운 문제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고 한국인이라면 그런 이야기에 고개를 젓기 쉽다. 하지만 외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야기가 다르다.
제국주의적 관점에서 우리의 역사는 진취적이지 못한 역사지만 21세기 민주 공화국의 시선으로 보면 결국 한국의 문화는 예전부터 확장하고 정복하고 계몽하는 문화가 아니라 지금 있는 사람들이 조화를 이뤄서 함께 잘 살자는 문화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의 선비와 일본의 사무라이의 차이는 검술이 아니다. 일본은 정복전쟁을 통한 확장과 통일이 좋은 나라를 만드는 길이라고 믿었고 그 안에서 사무라이는 기본적으로 전사였지만 조선의 선비는 자기 수양이 무엇보다 근본이었다. 우리는 말로만 그런게 아니라 정말 예로부터 문화의 힘, 철학의 힘이 세상을 구한다고 믿었고 그렇게 살았다.
진짜 민주주의
한국의 컨텐츠가 가지는 특징 중의 하나는 그것이 강력한 대중 중심의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컨텐츠에서는 슈퍼맨같은 강력한 영웅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결함이 있지만 용기가 있는 다수의 시민들이다. 이것은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라 케이팝 문화에서도 그렇다.
사람들이 한국 컨텐츠에서 위안을 얻었다고 말한다고 한다. 지금 세계적으로 히트를 치고 있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주제도 결국은 완벽한 주인공이 악당을 무찌르는 이야기가 아니라 스스로를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이 문제를 만드니 자신을 사랑하고 긍정하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이같은 한국 컨텐츠의 특징은 한국의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 첫째로 그것은 대중이 중심이 되는 역사다. 한국은 영웅이 아니라 의병이 지켜왔고 시민이 지켜왔다. 조선시대의 임진왜란때부터 그랬고 독립군 시절부터 그랬으며 해방 이후의 현대사에서도 그랬다. 박근혜와 윤석렬을 탄핵한 것은 어떤 영웅적 지도자가 아니라 대중이다.
우리가 하니까 당연한 것 같지만 대통령을 탄핵하자고 백만명이 거리로 나와 평화시위하는 나라는 드물다. 그런 나라중에 선진국임을 말할 수 있는 나라는 정말 드물다. 한국의 문화는 보수와 민주로 분열되어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민주 지지 세력의 문화는 정말 민주적이다. 집단으로서 보통의 시민들이 모두 영웅이라는 것이 없으면, 일찌기 정규군이 아니라 의병이 이 나라를 지켜온 역사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을 한국은 하고 있다.
완성되지 않은 한류의 힘
한국을 제외한 다른 선진국의 네러티브는 이미 낡았다. 심지어 진보도 낡았는데 진보적 메시지라고 하지만 그 메시지는 반세기나 한세기가 된 메시지다. 따지자면 결국 근대화 혁명과 관련된 메시지다. 그러나 보니 문제 해결의 능력이 거의 없고 감동을 주지 못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PC주의 논쟁에 빠져들고 더 이상 인기를 얻지 못하는 것이 그걸 보여준다.
한국 컨텐츠는 유한한 인간들의 몸부림을 보여준다. 애초에 슈퍼 히어로도 아니지만 무빙같은 슈퍼 히어로 드라마도 따지고 보면 모두가 부족하고 약점이 많은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 다만 그런 사람들이 여럿이 모이면 따로 지도자가 있고 영웅이 특별나게 하나가 있어서가 아니라 집단의 힘으로 문제가 해결된다. 그래서 한국 문화의 핵심적 메시지는 평범한 사람에게도 희망이 있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지 모른다.
한국인이라면 한국이 지금에 이르기 까지 얼마나 많은 사회적 도전이 있었나를 안다. 해방이래로 경제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물론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것까지 모든 것이 도전이었고 아직도 이 땅에는 군사내란 같은 것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우리는 가난과 야만으로부터 그야말로 기어올라왔다.
그 모든 것과 싸우고 그걸 이겨내는 것은 한국의 문제였지만 결국 그것은 세계사적인 의미도 가지는 투쟁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근대 사상의 한계와 싸워오고 있었다. 우리는 그냥 사람사는 세상, 살만한 세상을 만들고자 버둥거렸는데 세계는 정말 21세기에도 그런게 가능한지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이것이 한류가 인기가 있는 근원적 배경이다. 세계인들은 절박하게 대안적 문화를 찾고 있다. 그래야 할만큰 세계는 위기 속에 있다. 한국 사람으로서는 우리가 그토록 대단한 일을 잘 해낼 수 있을 것같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있다. 그런 의무도 없다고 말할 수 있고 그런 일을 우리가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과대망상처럼 들릴 수도 있다.
나도 한국인의 힘만으로 그게 된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애초에 앞에서도 말했듯이 누가 대신해결해 주는 건 한국 문화 컨텐츠의 메시지가 아니다.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서 해결하는 것이다. 세계인의 네트웍이 해결하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든 한국 문화가 인기를 얻기가 훨씬 쉬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인들이 힘을 합치고 한국 정부가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면 한국의 정치적 사회적 중요성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커질 수 있다. 이것이 말도 안되는 상상이라고 생각한다면 BTS같은 한국가수가 빌보드 순위 알기를 우습게 하는 시대도 얼마전까지는 상상하기 힘들었다는 것을 기억하라. 한국은 중요한 나라다. 이미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그렇고 가능성으로 치자면 상상할 수도 없이 그렇게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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