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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본 미국 이스라엘

한국과 일본 생활의 역전

by 격암(강국진) 2025. 8. 23.

나는 20년 정도 전에 10년간 일본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다. 어느새 그때로부터 세월은 흘렀고 많은 것이 바뀌었는데, 한국이 그때의 일본 같아진 것도 많다면 일본이 그때의 한국 같아진 면도 있다. 그중에는 아주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최저임금의 문제다.

최저임금이 바꾸는 모든 것

20년 정도 전에는 한국에서는 과외를 하는 거 말고는 돈 되는 아르바이트라는 것이 거의 없었다. 2005년 한국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3,100원이었다. 그 정도로는 도저히 생활이 되지 않았고, 그래서 한국에서는 생활이 되는 취직이란 정규직을 의미했다. 비정규직은 지금도 힘들겠지만 그때는 더 힘들었다.

그런데 당시의 일본은 이와 매우 달랐다. 2005년 일본의 전국 평균 최저임금은 약 713엔으로, 당시 환율(약 1엔=10원)로 환산하면 약 7,130원 수준이었다. 알바 시급이 850엔씩 하곤 했다. 그래서 한국 사람인 당시의 나에게는 조금 신기한 일이 있었는데, 그건 사람들이 장기적으로 취직할 생각을 하지 않고 "안 되면 알바나 하지 뭐" 하는 태도로 살아가는 경우가 꽤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은 내가 보기엔 삶의 절박함을 크게 바꾼다. 일본은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들 교육에 한국인들만큼 돈과 시간을 쓰지 않는다. 많은 학생들은 그냥 "너 알아서 공부하라"는 식으로 큰다. 이걸 잘 보여주는 것이 일본의 부활동 문화다. 일본에서는 중고등학교 때 부활동을 매우 진지하게 해서, "내가 탁구부였다"는 말은 탁구를 꽤 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방과 후마다, 방학 때도 부활동을 하는데, 그렇게 해서 모두가 운동으로 나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경제적 여유가 만든 차이

일본은 1980년대에 이미 엄청나게 경제적으로 성공했고, 그 이후로 큰 성장이 없었다는 것이지 과거의 영광과 재산이 남아 있었다. 일본은 이미 20년 전에도 망해가는 부자집의 자식들 같은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저 살던 대로 살 수 있다고 막연히 생각하는 느낌이었다.

그에 비하면 1980년대 이래 큰 경제적 성장을 한 한국은 가난으로 다시 굴러 떨어질 것이 두려워서 사람들을 마구 채찍질하던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달까. 필사적으로 공부하고 일하지 않는 사람은 밥을 먹을 자격도 없다는 식의 분위기가 많았다.

2025년, 역전의 시작

그런데 2025년 현재 한일 간의 역전 현상이 보이고 있다. 한국은 계속 최저 시급이 오르더니 2025년 한국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10,030원으로, 일본의 전국 평균 최저임금 1,118엔(약 10,501원, 2025년 8월 기준 환율 1엔=9.39원 적용)을 거의 따라잡았다.

이제는 현금이 통장에 어느 정도 있다면 적당히 알바나 하면서도 상당 기간 버티며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분위기가 생겨나고 있다. 반면 일본에서는 요즘 시급이 오르지 않는 가운데 점점 물가가 오르고 있다. 2024년 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2.8% 상승했으며, 실질임금은 계속 감소하고 있다.

임계점을 넘으면

최저임금의 역전은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한일 관계의 근본적 전환을 알리는 신호다.

일본은 조금만 소득이 더 동결된 가운데 물가가 더 오르면, 예전의 한국처럼 알바로 먹고 살며 버티는 것이 불가능해질 것이다. 그러면 다수의 사람들이 갑자기 절박하게 행동하게 되고, 삶의 질은 크게 떨어질 것이다. 일본인들은 천천히 변해온 이제까지의 변화는 잘 못 느꼈겠지만, 어떤 임계선을 넘으면 갑자기 큰 차이를 느끼게 될 수 있다.

이는 마치 천천히 가난해지던 부자집에서 갑자기 집 바깥으로 쫓겨나는 상황과 비슷하다. 치안도 안 좋아지고 거리는 더러워지고 전에는 관리되던 사회 인프라가 갑자기 훨씬 더 방치될 것이다.

이미 시작된 정신적 역전

하지만 경제 지표보다 더 중요한 변화가 이미 일어나고 있다. 바로 정신적, 문화적 역전이다.

20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현실이 되었다. 일본 아이들이 K-POP 아이돌을 꿈꾸며 한국으로 연습생 생활을 하러 온다. 일본 방송에서 한국 프로듀서를 불러 일본 아이돌을 만들어달라고 한다. 일본 젊은이들이 한국 드라마를 보며 서울에서의 삶을 동경한다.

구매력평가(PPP) 기준 1인당 GDP는 이미 한국이 일본을 추월했다. 대기업 초봉도 한국이 더 높다. 엔터테인먼트에서 한국은 이미 일본을 압도한다. 이제 가수가 되려고 일본 아이들은 한국에 유학을 오고 싶어한다.

한국이 모델이 되는 시대

만약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우리는 10년 뒤에는 더 극적인 변화를 보게 될 수도 있다. 일본의 젊은이들이 공부를 하려고, 일을 하려고 한국으로 오는 시대 말이다.

일본의 정치가 중에는 "일본이 폭싹 망해야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깨어나기 위해서는 망하는 걸 경험해야 하며, 그 전에는 절대 일본이 바뀌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그런데 천천히 망할수록 다시 일어날 힘이 소진되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갈 거라는 우려도 있다.

일본이 만약 정치적, 경제적 격변을 겪는다면, 그들이 새삼 프랑스혁명이나 미국독립전쟁을 모델로 삼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이 그렇듯 한국의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모델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시간적으로도 가깝고, 문화적으로도 유사하며, 무엇보다 성공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무관심이 가져올 진짜 역전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변화는 한국인들이 일본에 무관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 일본 전문가는 "한국인들이 일본을 미워하는 것보다 무관심해지는 것이 무섭다"고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일본은 한국이 미워하는 나라라기보다는 점점 더 무관심해지고 있는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 일본은 그저 가까운 관광지일 뿐이다. 비즈니스의 중심도, 문화의 중심도, 혁신의 중심도 아니다.

이는 마치 수도권 사람들이 지방을 대하는 태도와 비슷하다. 미워하지 않는다. 그냥 무관심하고, 가끔 놀러가는 후진 지역으로 여길 뿐이다. 중요한 일은 수도권에서만 일어난다고 여기는 것처럼, 이제 동아시아의 중요한 일은 서울에서 일어난다고 여기는 시대가 오고 있다.

최저임금이 알려주는 미래

선진국 옆의 나라나 번화한 도시 옆의 시골은 일종의 제국과 식민지의 관계와 비슷한 관계를 가지게 되기 쉽다. 한국은 일본 옆의 나라였지만 이런 힘을 이겨냈다. 그리고 그 결과 이제 일본이 한국을 끌어들이는 힘과 한국이 일본을 끌어들이는 힘이 거의 비슷해졌다.

최저임금의 역전은 이 모든 변화의 상징이자 시작점이다. 알바로도 먹고 살 수 있느냐 없느냐는 그 사회의 여유와 절박함을 결정한다. 그리고 그것이 교육을, 문화를, 가치관을, 궁극적으로는 국가의 운명을 결정한다.

물론 여전히 일본의 국력이 한국보다 강하므로 이건 추세가 그렇다는 것이지 미래는 불확실한 것이다. 이런 걸 생각하면서 한국과 일본은 새로운 관계를 맺어서 함께 잘 사는 미래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급격한 추락을 목격할 가능성이 없지는 않고, 그것이 바로 지금 일어나는 일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지나고 보면 부자 일본이란, 나이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강대한 소련처럼 그저 과거의 추억으로 남을 수도 있다.

우리는 지금 그런 전환기를 지나고 있다. 그리고 그 전환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 바로 최저임금의 역전이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한 시간 일해서 받는 돈이 비슷해진다는 것은, 두 나라의 삶의 무게가 비슷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무게추는 반대 방향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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