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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좋은 사람이 판검사를 해야 할까?

by 격암(강국진) 2025. 9. 8.

저는 요몇년간 있었던 의사 대란부터 시작해서 판검사들이 일으키는 논란을 볼 때마다 비슷한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그들은 내놓고 그런 말을 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태도에서 나는 어떤 깊은 신념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이 굉장히 잘못되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신념이란 바로 이렇습니다.

 

내가 얼마나 공부를 잘하는 사람인데 이런 대접을 받나?

 

대학 입시가 인생을 결정한다는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불분명하지만 적어도 어떤 직종에서는 그것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의사고 판검사죠. 물론 의대간다고 모두 의사되지 않고 법대 간다고 다 판검사 되는 건 아니지만 다른 분야에 비해서는 훨씬 더 그렇습니다. 의사는 사실 의대 합격하면 의사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법대 합격했다고 판검사 되는 건 아니지만 그것도 결국 대학입시와 비슷한 책보고 시험 보는 일의 결과입니다. 이런 사례는 더 있을 테지만 그 사례들을 더 나열하는 것은 이후의 제가 말하는 것과는 별도의 일이므로 더 나열하지는 않겠습니다. 

 

여기서 질문이 생기게 됩니다. 

 

과연 그 시험이 훌룡한 결과를 만드는 걸까요?

 

그러니까 대학 시험 잘보고 학교 공부 잘하면 좋은 의사가 되고, 좋은 판검사가 되는 걸까요? 저는 이 점에 대해 지극히 회의적입니다. 물론 의사들이나 판검사들은 자신들은 본래 머리 좋고 재능이 좋은 사람이며 그걸 그 시험을 통해서 증명했고, 우리 같은 사람이 아니면 의료도 법률 서비스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거라고 주장할 겁니다. 그리고 저도 학교 성적이나 시험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 그런거 처럼 제일 시험 잘보는 사람일 필요가 있냐는 겁니다. 예를 들어 요즘이라면 학교 성적이 상위 10% 쯤 되는 사람은 의사가 되거나 판검사가 될 확률이 거의 없겠죠. 그런데 그런 사람이 의사가 되고 판검사가 되면 정말 지금의 의사나 판검사보다 훨씬 못할까요?

 

제가 지적하려고 하는 것은 사실 의사가 되고 판검사가 되는 것은 단순히 학교 시험 잘보는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필요해 보인다는 겁니다. 그런데 학교 성적만 강조하면 반대로 그 부분이 완전히 무시되겠죠. 실제로 참고할 사례가 없는 건 아닙니다. 30-40년 전에는 전교1등이면 의대가는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의사가 인기가 없었던 적은 없었겠지만 지금처럼 대학이름 상관없이 의대면 서울대 보다도 인기가 좋은게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할 때 과연 요즘 의대 졸업생들이 3-40년전의 의대 졸업생들보다 더 뛰어난 의사일까요? 

 

전 아닐 것같습니다. 예를 들어 의사는 당연히 체력이 좋아야 합니다. 사실 의사는 근무시간이 엄청 긴 직업이니까요. 수술하는 의사가 되려면 손재주도 좋아야 할 겁니다. 게다가 의사는 계속 환자를 봐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를 잘 다룰 필요도 있습니다. 즉 대인기피증 환자같은 사람이 의사가 되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전교1등 하는 학생은 정말 다 이런 사람일까요? 공부만 잘하지 손재주는 없고 사람만나는 것에 스트레스 받고 체력도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요? 

 

판검사는 당연히 세상을 잘 알아야 할 겁니다. 그러니까 판검사가 가져야 할 능력은 의사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잘 만나는 능력도 필요하지만 넓고 깊은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이 범죄를 저질러 봐야 그 범죄를 아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직간접적인 경험과 고민속에서 세상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는 사람이 사법의 칼날을 휘두를 수 있을까요? 게다가 그들의 권한이 막강한데 그들이 그런게 없으면 유혹은 또 얼마나 쉽게 되겠습니까. 판검사 부인만 잘 설득하면 마누라 잔소리에 휘둘릴 남자 판검사들이 엄청 많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윤석렬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런데 대학 시험 잘보고, 사법시험 잘보면 판검사 시켜주는 것이 정말 좋은 일일까요? 저는 성적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경쟁이 단일한 시험 위주로 심해지면 사람을 뽑는 과정이 오히려 자격이 없는 사람을 뽑는 게임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대학입시가 너무 성적위주로 심해지면 서울대 학생들은 뽑혀진 매국노일 수 있습니다. 의사나 판검사는 뽑혀진 바보들일 수 있습니다. 왜냐면 경쟁에 이기기 위해 다른 부분은 더욱 더 부족한 사람이 뽑히게 되니까요. 물론 의대나 법대는 그래서 우리가 교육을 하는거라고 주장할테지만 저는 그걸로 해결될 것같지 않습니다. 하나의 대학 시스템보다 더 큰 시스템에서 문제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본질적 문제는 직업과 교육간의 간격에 있습니다. 어떤 직업을 해보고 싶으면 간단하게 해보고 잘하면 더 많은 일을 하게 되는게 아니라 기초적인 교육과정을 길게 받고 시험에 통과해야 그걸 해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세상이 복잡해 지자 이 과정이 만드는 모순이 점점 심해지는 겁니다. 이상적으로는 직업들 간에 선호도가 없는게 좋을 겁니다. 그러니까 제가 원한다면 저도 프로축구선수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만 저같은 사람이 프로축구 선수가 되면 정말 사는게 괴롭겠죠. 좋아하지도 않고 잘 못하니까. 그러면 스스로 관두겠죠. 그런데 지금은 시켜보지도 않고, 해보지도 않고 일단 경쟁부터 높습니다. 예전보다 훨씬 더 그렇습니다. 이것은 피겨 스케이팅을 하면 무조건 월급이 엄청난 나라에서 전교1등이 무조건 피겨 스케이팅을 하는 바람에 국영수를 못하는 김연아는 일찌 감치 피겨를 포기하는 상황인 것같습니다. 40년전에도 그런 말이 있었습니다. 아인쉬타인이나 퀴리부인이 한국에 태어나면 대학입시에서 성공할 수 없다. 이 말은 그때 이후 점점 더 옳은 말이 되어 왔습니다. 

 

올바른 교육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간단히 답할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한국의 교육은 편향이 점점 더 심해져 왔습니다. 그 편향이란 결국 좋은 것만 시키겠다는 생각으로 아이를 가둬서 키우는 부모때문에 생겨난 겁니다. 예전에도 부모가 자식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했지만 요즘은 유치원때부터 자식을 만들듯이 계속 스케줄 관리를 합니다. 이에 비하면 3-40년전에는 그냥 풀어놓고 알아서 크라고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요즘 아이들은 계속 성적이 좋아야 한다, 경쟁에서 지면 안된다는 말만 반복해서 들었죠. 그리고 알아서 고민하고 클 여유가 없어졌습니다. 

 

이 차이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예전에는 아이들이 학교에 갇혀서 크지 않았습니다. 직접 좋아하는 책을 읽고, 직접 아이들과 골목에서 놀면서 시간을 보냈죠. 그러면서 세상을 보면서 컸다고 하면 요즘 아이들은 어딘가에 갇혀서 그 안의 것만 열심히 했습니다. 학교안, 학원안에서 크면서 바깥세상은 스마트폰을 통해 글로만 배웠죠. 예전에는 체험학습이나 해외여행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런것도 말하자면 어항속의 체험입니다. 예전에는 부모가 안도와주니까 아이들이 훨씬 더 막 자랐습니다. 혼자서 버스타고 멀리가기도 하고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 간다고 기차타고 멀리 가기도 했습니다. 라면도 끓이고 집안일도 도와야 했습니다. 말하자면 좁은 세상에라도 아이들이 방목형으로 자란게 예전이라면 요즘 아이들은 겉으로만 넓은 세상에 살뿐 가이드가 딸리 패키지 투어만 계속 하는 식으로 크는 겁니다. 

 

이런게 언제나 나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큰 결과 나쁜 것도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현실 사회와 동떨어지게 된다는 것이죠. 아이들은 이제 모두가 엘리트 코스만 걷습니다. 그래서 만약 그 코스에서 탈락하면 뭘 해야 할 지 정말 아무 대책이 없습니다. 게다가 나쁜 건 이런 경쟁의 승리자들도 그다지 좋은 형편에 처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말했지만 그들은 한편으로는 우승자지만 한편으로는 바보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어딘가 골방에서 연구에만 몰두하며 산다면 그나마 괜찮을지 모르지만 의사나 판검사처럼 사람을 계속 만나는 직업을 택하면 그 결과가 언제나 좋을 수는 없을 겁니다. 

 

우리는 그걸 바로 처음에 말한 의사나 판검사에게서 보게 됩니다. 실제로 스스로는 나 머리좋다고 자부심에 넘쳐나는 것이 보이는 그 의사며 판검사들이 미디어에 대고 인터뷰를 하는 걸 보면 혀를 차게 됩니다. 일단 옳고 그른 걸 떠나 자신의 세계에 갇혀서 자신의 단어가 세상에서 어떻게 해석될까에 대한 감이 전혀 없습니다. 그들은 좁은 세상에 갇혀서 그 바깥으로 나와 본 적이 없다는 티가 많이 납니다. 의사나 검사라는 타이틀을 내려놓으면 유치한 어린애만 남는 겁니다. 

 

지금의 교육은 실패했습니다. 저는 한국 교육은 매국노를 키우는 교육이고, 검증된 바보를 키우는 교육이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교육 안에 철학적 가치관적 깊이가 실종된 가운데 남은 것은 그저 시키는 대로 볼트나 너트나 조이는 단순 노무자 교육을 아주 잘 받은 사람들 뿐인 것같습니다. 그런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이 스스로를 인재로 여기는 것도 안타깝습니다. 교육을 개선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대로라면 마치 조선시대 유학교육이 통째로 무의미해 지는 것처럼 지금의 교육도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것같습니다. 요즘은 취업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아마 그걸 보장해 주는 다른 길이 생기면 학교 교육 그만두겠다는 사람이 많아질 겁니다. 돈과 시간의 낭비니까요. 

 

사회를 위해서도 안타깝지만 개인적으로도 잘못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도착할 곳은 그리 좋은 곳이 못됩니다.  윤석렬은 극단적인 경우지만 그 비슷하게 인생이 파탄날 겁니다. 왜냐면 초등학생같이 순진한 욕망을 가지고 나이가 30,40,50이 되도록 살면 딱 남좋은 일만 하는 바보가 되니까요. 더이상 엄마가 주는 밥먹고 아빠가 칭찬하면 기뻐하면 그만일 아이가 아닌데 지식만 알고 경쟁만 알뿐 고민도 좌절도 없이 큰 사람이 뭐가 되겠습니까. 그저 세상은 짐승같은 사람들이 서로 물고 뜯는 약육강식의 세상인데 그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도 그래야 한다는 공포만 가득할 겁니다. 본래 경쟁은 그런거니까요. 그런 생각으로 평생 살다가 짐승같은 상태에서 인생이 끝나는 거죠. 아마 제대로 내가 뭘 원하는지 생각해 본 적도 없었을 겁니다. 항상 바빴으니까. 자기 생활에서 벗어나 세상과 나 자신을 탐구하기엔 바빴으니까. 그런 사람들은 운좋은 경우가 아니면 약삭 빠른 사람들에게 얽매인 노예가 됩니다. 이런 저런 의무로 가득 채워져서 뭘 아주 바쁘게는 하고 심지어 칭찬도 받지만 결국 남좋은 일만 합니다. 이는 사회적으로는 물론 개인적으로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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