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번 올레길은 올레길 쇠소깍에서 시작해서 서귀포시까지 이어지는 10km 정도의 길이다. 지도상으로는 시내에 들어가기 전까지 내내 바닷길이지만 중간에는 나무로 터널처럼 되어 있는 꽤 긴 구간이 있어서 바닷길도 있다가 숲길도 있는 그런 산책길이라고 할 수 있다.
쇠소깍이라는 어색한 이름에서 쇠는 소를 의미하고 소는 웅덩이, 연못을 의미하며 깍은 작은 끝트머리같은 의미가 있다고 한다. 쇠소깍은 미니어처 그랜드캐년처럼 생겼다. 돌이 많은 제주지만 그 안에서도 나름 신기한 구조인데 돌이 깊게 물길로 파여서 흐르는 길을 만들었다. 그 길은 결국 바다와 만나는데 쇠소깍의 입구부분에 해당하는 곳은 물이 거의 없었지만 바다와 만나는 쪽에 가면 바닷물이 들어와 깊은 물이 채워져 있는 작은 협곡이 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계곡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작은 규모지만 그래도 충분히 인상적이다. 쇠소깍에서는 카누를 타거나 밧줄로 당겨서 태워주는 뗏목도 탈 수 있는데 나는 그걸 구경하다가 사공이 던져주는 귤도 하나 얻는 기쁨을 얻었다.




쇠소깍을 떠나 바닷길을 걷는다. 최근에는 아주 많이 본 재주의 바닷길이지만 그래도 상쾌하고 즐겁다. 돌이 많은 제주에는 여러 형태의 돌이 있어서 천지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소천지도 있다. 하지만 이름이 아예 없는 곳도 많은데 나는 그런 곳이 오히려 즐거웠다.


그 중의 하나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바다앞에 앉을 수 있었던 곳이다. 이곳은 따로 이름을 모르겠다. 서귀포시에 다 도달해서 작은 폭포같은 곳 앞에 있는데 언뜻 보면 해안으로 내려갈 수 없을 것같지만 실제로 해보면 계단을 따라 갈 수 있게 되어 있다. 덕분에 해변을 전세낸 것처럼 해안에 앉아서 있다가 올 수 있었다.
또 하나의 즐거운 놀라움은 소라의 성이라는 북카페였다. 사전정보가 없어서 지나가다가 그저 이런 곳이 있네 하고 우연히 들어가 본 곳이었는데 이곳은 서귀포시가 시민을 위해 만들어 놓은 북카페로 음료는 팔지 않는다. 다만 도서관처럼 책들이 있을 뿐이고 가져간 음료가 있다면 음료를 마실 수는 있다고 쓰여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도 잠시 쉬면서 생각에 잠기거나 스마트폰을 보거나 노트를 하거나 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내는 오랜만에 시집을 읽었다고 한다. 소라의 성은 창밖으로 해변이 보이는 멋진 북카페로 무료 개방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꼭 가봐야 할 곳이다. 아내는 그곳에서만 시간을 보내러 또 오고 싶다고 할 정도였다.

올레길의 끝에 도달하자. 우리는 파시랑이라는 가게에 들러서 팥빙수를 사먹었는데 정성스런 팥빙수이기는 하지만 인생 팥빙수라고 할 수는 없겠다. 사실 근래에 안동 하회마을 팥빙수에 빠져서 다른 팥빙수가 눈에 차질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달고 맛있었으며 아주머니도 친절했다. 제주는 귤인심도 좋아서 귤도 2개 얻었다.
파시랑을 지나면 이중섭거리가 나온다. 이곳에는 이중섭이 1년간 살았다는 초가가 보존되어 있다. 빠르게 지나친 이중섭거리지만 안중섭의 불운한 삶을 돌아보게 되어 가슴이 아팠다. 지나고 나면 이렇게 천재라고 여기저기 기념거리가 생겨날 화가인데 살아서는 참 불운하게 살았다. 살아서 좀 인정해 주면 안됐을까?
이중섭 거리를 직진하면 매일올레시장에 도달하게 된다. 이곳은 온갖 먹거리와 기념품을 파는 곳으로 내게는 그렇게 매력적이지는 않았지만 관광객들은 많았다. 우리는 시장을 둘러본 끝에 오메기떡을 샀다. 그 떡은 나중에 숙소에서 먹었는데 팥을 겉에 바른 것보다 새로 개발한 듯한 떡이 더 맛이 좋았다. 견과를 바른 떡, 흑임자를 바른 떡이 내 입맛에는 더 맛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제주의 떡은 맛있다. 값도 빵보다 싸다. 그래서 자주 사먹게 된다.
올레길 걷기를 끝내고 차를 세워든 쇠소깍으로 오는 버스를 기다린다. 늘상 느끼는 거지만 여행은 예상치 않은 것을 만나는 즐거움을 준다. 그리고 그것이 흔히 그 여행의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다. 귤을 선물받은 일이나 생각보다 좋았던 쇠소깍이나 소라의 성이나 이름없는 해변가의 시간처럼 말이다.
어쩌면 사는게 그럴 것이다. 여행을 하고 있건 그저 일상을 보내건 이러저러한 일이 있을 것이다라는 기대치 만으로는 무엇이든 그다지 재미있지 않다. 그래서 일정수준의 호기심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예기치 않은 것들이 펼쳐진다. 뭐 보나마나지 하는 생각을 하면 모든게 보나마나가 된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어떨까 하는 걱정도 든다. 하지만 이제까지는 지나고 나면 다행히 오늘도 잘 보냈다는 생각이 드는 날들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제주의 하루가 갔다.
'여행 > 키워드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제주 한달살기 8 : 엄마를 그리워하는 노인 (0) | 2025.10.23 |
|---|---|
| 제주 한달살기 7: 조난의 경험과 함덕의 감동 (0) | 2025.10.22 |
| 제주 한달살기 5 : 제주의 독립서점 (0) | 2025.10.20 |
| 제주 한달살기 4: 동문시장과 성산일출봉 (0) | 2025.10.19 |
| 제주 한달살기 3 : 제주의 하늘 (1) | 2025.10.1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