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드라마 다운튼 애비를 보고.
책을 읽다가 작가가 다운튼 애비라는 드라마를 언급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찾아 보게 된 다운튼 애비는 매우 재미있고 의미심장한 것이었으므로 그 소감을 여기에 적어 둔다.
이 드라마는 영국 요크셔 지방의 다운튼 저택에서 살고 있었던 그랜섬 백작가에 대한 이야기다. 2010년부터 2015년까지 6시즌으로 나뉘어 방영된 이 드라마와 그로 인해 생각나는 것들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하는 것은 무한정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 드라마가 과거에 대한 정확한 고증이라는 전제하에 말하자면 그것은 영국 사회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다만 한두가지 주제에 대해서만 말해 볼까 한다. 그중에서 중요한 것은 역시 사랑이다. 다운튼 애비는 여러가지 차이를 전제하고 말한다면 오늘날의 한국 드라마와 매우 닮아 있으며 그 중에서도 출생의 비밀과 신데렐라 이야기로 채워진 소위 막장드라마와 닮아 있다.
그 이유는 이것이 귀족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귀족 가문은 영지와 작위를 세습하면서 지키는 집안이다. 그런데 세습이란 삼성의 이재용사건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만약 귀족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영지를 균등하게 나눠주고 작위를 모두에게 준다면 넓은 영지는 몇대가 가지 않아 작은 땅으로 나뉘어져 사라질 것이고 작위는 너무 흔해져서 희소성이 없어지고 말 것이다.
그래서 상속은 상당부분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한 사람만 작위를 가지며 집안 재산의 대부분도 한 사람이 물려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집안이 몰락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에 관련된 사람들의 삶을 극단적으로 우연에 의존하는 것으로 만들고 동시에 사람들을 전통과 관습의 노예가 되게 만든다. 예를 들어 그저 한해 늦게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장자의 지위를 가지지 못한 동생은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다운튼 애비는 1912년 타이타닉호의 침몰로 그랜섬 백작이 후계자를 잃는 것에서 시작된다. 사실 그 후계자도 백작의 아들이 아니었다. 백작은 아들이 없었고 따라서 혈연관계에 의해서 가까운 친척의 아들이 후계자였었는데 그가 사고로 사망한 것이다. 백작부부는 그 후계자를 자신의 큰 딸인 메리와 결혼 시키려고했다. 친척이라고는 하지만 영지와 작위를 타인에게 그냥 줘버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가까운 친척과의 결혼을 통해서 백작이 죽고 난 후 딸의 재산과 사회적 지위를 지키려고 했던 것이다. 메리는 죽은 남자에게 별 애착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그랬던 후계자가 사고로 죽자. 이번에는 더더욱 멀고 먼 친척인 사람, 그것도 귀족생활을 해 온 사람이 아니라 중산층으로 살아온 사람이 후계자가 되고 만다. 이 드라마의 상당 부분은 이렇게 새로운 후계자가 된 매튜와 백작의 딸인 메리 사이의 사랑이야기로 채워진다.
이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여성 귀족들의 삶은 한마디로 결혼에 집중되어져 있다. 결혼이 인생의 성패를 좌우하므로 마치 한국의 입시생들이 대학입시 준비하듯 아주 어릴 때부터 결혼시장에 좋은 상품이 되기 위해서 모든 것을 한다. 그리고 그 이외의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데 물론 20세기 초반은 이런 현실이 변화하고 있는 때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랜섬 백작의 세째딸은 고용인이었던 운전사와 결혼을 하기도 한다.
그럼 남자귀족들은 다를 것인가. 그들의 삶에 있어서도 결혼은 아주 중요하며 그 주제를 피해나간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이 실용적인 능력은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귀족가문들간의 사교다. 귀족남자들의 삶이란 노는 것같으면서도 결국 귀족들끼리의 화합을 통해서 국가 전체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에 몰려 있다. 그러므로 언뜻 보면 화려하게 즐기기만 하는 것같지만 귀족남자들의 삶도 그런 사회적 질서속에 갇혀있기는 마찬가지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영업직이랄까. 결혼을 매개로 해서 영지를 지키고 계속 친분을 쌓아야 하는 사람이다. 드라마에서는 그랜섬 백작도 영지를 지키기 위해서 돈때문에 백작부인과 결혼한 것으로 나온다. 다만 결혼한 이후에 백작부인을 사랑하게 되었을 뿐이다.
나에게 다운튼 애비가 재미있었던 이유중의 하나는 이것이 한국 사회가 어떤 곳인가를 잘 보여주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주 하는 농담이 있다. 미국드라마에서는 형사는 수사를 하고 일본드라마에서는 형사는 교훈을 주며 한국드라마에서는 형사는 연애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류의 농담이 흔할 만큼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채우는 것은 사랑이야기다. 어떤 직업을 대상으로 하는 드라마를 만들어도 결국 사랑이 중심이 되는 일이 많아서 비아냥이 나올 정도이기는 하지만 그때문에 사실 사랑 이야기만큼은 한국드라마가 잘만든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작품마다 다르지만 전체적인 인상이 그렇다.
밝은 빛은 어둠도 깊게 한다던가. 사랑이야기가 흔하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불륜이야기가 흔하다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드라마에서는 불륜도 너무나 자주 나오는 소재다. 드라마로 본 한국은 사랑을 위해 목숨걸고 싸우는 곳이지만 결국 사랑에 배신당해서 인생이 망하기도 하는 그런 세상이다.
한국 드라마는 왜 이럴까? 한국 사람들이 유독 낭만적이라서? 아니다. 이런 한국드라마의 특징은 결국 한국사회가 아직도 영국의 20세기 초반같은 곳이라서 그렇다. 가문의 재산과 영향력의 세습이라는 구도가 작동하는 전근대적인 특징이 아직도 한국 사회에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남녀간의 사랑과 결혼이 가장 권력이 크게 요동치는 곳이라는 것을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불륜을 찬양하고 권장하는 사회는 존재하지 않겠지만 불륜이라는 주제에 한국 사회가 유독 민감하고 자주 골몰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불륜이란 결국 가족질서의 붕괴고 그 붕괴는 재산과 권력에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이것은 옳지 않다. 지금도 한국인들 대부분에게는 가문이란 별로 의미가 없다. 한국을 지배하는 실질적 귀족 가문들에게 중요한 주제일 뿐이다. 그러나 애초에 귀족사회란 귀족의 숫자가 다수인 사회가 아니라 귀족의 정서와 결정이 그 사회를 이끄는 사회다.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재벌가문 사람이 아니면서 결국 재벌가문의 상속문제에 대한 고민을 다루는 드라마만 계속 보고 있다.
영국 귀족 사회의 모습은 왜 이런 사회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경쟁력을 잃게 되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귀족사회속에서 경쟁력을 가진 인간이란 자본주의 사회속에서 말하는 경쟁력있는 인간과 상당히 다르다. 그런 식으로 영지를 운영해서 영지를 지켜나갈 수 있을리가 없다. 이것은 한국 사회의 재벌가문들에게 의미심장한 사실이 아닐까? 땅콩 회항으로 유명한 조현아나 이재용같은 재벌후계자들이 정말 기업을 지켜 갈 수 있을까? 그들이 가졌던 경쟁력이란 무엇인가? 다른 재벌가문과 친한거? 그걸로 세계속의 기업을 지켜갈 수 있는가?
다운튼 애비는 그렇다고 해서 귀족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드라마는 아니다. 여기에서 그랜섬 백작이나 그의 집사 카슨은 매우 보수적인 인물인 동시에 따뜻한 인간미를 가지고 있고 합리적인 사람들로 나오고 있다. 심지어 매우 심술궂은 사람으로 나오는 할머니 바이올렛도 드라마를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전통을 지키면서도 파격을 허용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현명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랜섬 백작은 드라마에서 자신을 가르켜 영지의 소유자라기 보다는 관리자라는 말을 한다. 그는 영지를 사랑하며 자신이 그것을 물려받은 대로 잘 관리하고 보존하다가 다음 대에게 물려주려고 할 뿐이라고 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집안에서 일하는 하인들은 물론이고 영지에서 소작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경제적 이득을 무시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 인물로 나온다. 그는 군림하는 자라기 보다는 계속 고민하고 일하는 사람이다. 드라마를 보다보면 가끔은 어이없게도 저렇게 백작을 하느니 단란한 가족을 가진 소작농이 되는게 더 행복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정도다.
백작이 사는 세계안에서 사람들은 여러가지 희노애락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애정과 보람을 가지고 살아간다.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영주는 놀고 먹는 사람이고 착취하는 사람이며 영지의 주민들은 피착취자라고 생각하게 되기 쉽다. 영주에게 와인을 따라주고 옷을 입혀주는 일이나 하는 하인은 무의미한 일만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백작과 집사 카슨은 말없이 혹은 때로 목소리를 높여서 자기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지켜가려는 자신들의 노력을 과소평가하지 말것을 주장한다. 오늘날의 관점으로는 무의미해 보이지만 다운튼 애비의 세계는 그 안의 질서속에서 사람들이 나름의 자부심을 가지고 자기가 할 일을 하면서 살 수있는 세계다. 아마도 드라마를 보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설사 백작으로 살지 못한다고 해도 그 다운튼 애비의 세계속에서 살고 싶다고 느낄 것이다.
우리가 다운튼 저택을 보면서 즉각적으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귀족의 생활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냐면 그것은 오늘날 고급 호텔의 형식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집사니 퍼스트 풋맨이니 하는 하인들은 호텔리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존재할 뿐이다.
과거의 것이 오늘날의 것과 같다고 말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비하일 수도 과도한 찬양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결코 과거의 것을 무의미한 헛소리로만 여길 수 없다는 것인데 왜냐면 현재의 것도 생각만큼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오늘날 호텔지배인으로서 직업적 자부심을 가진 사람을 보면 사람들은 그걸 당연하게 여길 것이다. 호텔은 종종 거대한 기업이고 그 안에서 높은 지위를 가지는 것은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과거 귀족가에서 집사로 일했던 사람들은 하인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해서 천한 것으로 여기게 되기 쉽다. 심지어 21세기 현대에서 진정 노예처럼 야근으로 찌들어 살면서도 과거의 시대에 하인으로 일했던 사람들은 하인이라는 이유때문에 하찮게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사실 현대 사회가 과장하고 있는 것처럼 현대가 천국은 아니다. 다만 우리는 현대사회의 패러다임에 중독되어 있을 뿐이다.
이런 드라마를 봤다고 해서 현대를 비하하고 과거를 찬양하기만 하는 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과거와 현재에 대해 찬반 양론을 논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지킬 것을 지키고 있는 시대, 지킬 것이 있는 시대에 대한 향수에는 나름의 설득력이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현대 사회는 어떻게 보면 모든 것을 파괴해서 사람들이 자기 삶에 대한 보람과 의미를 잃어버리게 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에게 현대 사회 속의 인간이란 그저 먹고 마시고 소비하는 그리고 더 많이 소비하는 사람을 질투한 나머지 불행하고 지킬 것이 없어서 엄청나게 외로운 존재일 뿐이 아닐까? 다운튼 애비는 과거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현대 사회의 과제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물론 그 이전에 무척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