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버닝을 보고
이창동 감독의 신작 버닝을 봤다. 2시간 반이 넘는 긴 영화이며 오락적 요소는 별로 없는 영화지만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관객을 잡는 힘이 있는 젊은이에 대한 영화였다. 내가 주는 평점은 5점 만점에 4점. 버닝에 대한 평이라기 보다는 보며 떠오른 생각들을 몇자 적어두기로 한다.
이 영화는 호불호가 크게 갈릴 수 밖에 없다. 오락용 영화에 질린 사람이라면 나름 참신하게 보겠지만 반대로 그런 걸 기대하고 간 사람에게는 이 영화는 매우 지루하고 따분할 수 있다. 일단 2시간 반이 넘는 길이의 영화이며 큰 액션도 나오지 않고 개그요소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면이 있다면 그것은 어색함이다. 마치 양복 정장을 입고서 짚신을 신은 것같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어색함이 본격적으로 미스테리가 전개되는 후반부까지 영화적 긴장감을 유지시킨다. 아마도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은 후반부의 미스테리나 결말에 많은 주목을 할 것같지만 나는 영화를 다보고 나서 되돌아 보니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아무 것도 없는 것같은 전반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의 주제를 내 나름대로 한마디로 표현해 보자면 그것은 아직 아무 것도 되지 못한 젊음이라고 해야 할 것같다. 돈이나 지위는 커녕 아직 추억도 연인도 가진 것이 없는 젊음은 대개 자기 부정에 빠지기 쉽고 사회적으로도 자기를 부정하라고 부추켜 진다. 왜냐면 여기서 저기로 나아가겠다는 야망이나 꿈은 모두 일단 자기 부정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곳은 내가 살 곳이 아니고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라는 젊은이의 마음가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현실적으로는 취준생이지만 작가를 꿈꿀 수도 있고, 현실적으로는 대단치 못한 일자리를 전전하지만 부유한 삶을 꿈꾸기도 한다. 어떻게는 모른다고 해도 적어도 지금과는 다른 삶을 꿈꾸는 것이 대개의 젊은이들이다.
거기서 바로 어색함이 나온다. 젊은이는 대개 찌질하다. 가진 게 없는데 꿈은 많으니 자꾸 찌질해 지기 쉬운 상황에 자기를 몰아넣는다. 유명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고, 성공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으며, 학식이 높거나 전문가적 소양이 높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다. 젊은 사람이란 종종 물리학에 대해 공식몇개 모르면서도 노벨상 수상자쯤 되는 학자들과 마치 동료나 친구라도 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을 꿈꾸는 물리학도나 밥먹을 돈도 부족하면서도 젊은 사업가들과 사업아이템에 대해서 토론을 벌이는 것을 꿈꾸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어쩌다 동경하던 곳에 끼어들면 물론 현실은 상상과는 대개 다르다. 대개의 사람은 혜성처럼 나타난 천재 과학자나 천재 사업가를 꿈꾸지만 현실은 훨씬 훨씬 더 찌질하다. 젊은이는 스스로의 찌질함과 부족함을 절감하게 된다.
유아인이 연기하는 유통회사 알바생 종수도 그의 어릴적 친구인 혜미 (전종서)도 찌질한 젊은이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를 만나 찌질한 청춘에 약간의 빛이 비추는 것같은 행복을 경험한다. 하지만 그 행복은 차츰 깨어지는데 그것은 또다른 의미에서 찌질한 벤(스티븐 연)때문이다. 벤은 어떻게 돈을 버는지 알 수 없지만 부유한 남자이고 진지한 삶보다는 즐기고 노는 삶을 추구하며 심장이 뛰는 것을 추구하는 남자다. 벤은 종수에게 심장을 뛰는 일을 하라고 조언한다.
언뜻 듣기에 요즘 시대에 흔한 건전한 조언처럼 들리는 벤의 조언들이지만 그러나 실은 벤은 다른 의미에서 불쌍한 남자다. 인생이 따분하기만한 사람인 것이다. 이런 세 사람이 만나는 영화가 바로 버닝이다.
신세대에게 기성세대란 찌꺼기를 남겨주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기성세대가 최선을 다해서 차지할 곳을 다 차지하고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버리고 나면 그제야 젊은이에게 차례가 돌아온다. 이러다보니 평화로운 시대가 지속되면 젊은이들의 삶은 가면 갈 수록 어려워진다. 혁명이 일어나고 격변이 일어나야 기성 시스템이 무너지고 신세대들에게도 기회가 많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평화롭게 기성시스템이 계속 굴러가는 식으로는 점점 더 젊은이들이 짊어질 짐이 커진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세계는 젊은이들에게 잔혹한 곳이다. 특히 한국이 그런 것같다. 젊은이들에게 꿈을 꾸라고 하기도 꾸지 말라고 하기도 어려운 곳이 요즘이다. 그런 현실을 생각하면서 이 영화를 보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삼성가문의 세습을 위해 나라가 흔들리도록 막대한 돈이 움직여도 법정은 세습따위는 있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최순실의 딸이나 조양화 대한항공 회장의 딸이 젊은이들에게 니들도 열심히 살지 그랬냐고 말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창동감독은 그런 사람들에게 젊은이들의 분노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초라해 보일 때가 있어도 그들의 삶의 진실성을 비웃지 말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