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와 글쓰기/책 이야기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를 읽고

격암(강국진) 2018. 5. 29. 19:24

2016년의 베스트 셀러였던 숨결이 바람될 때를 읽었다. 폴 칼라니티는 신경외과의사로 암을 선고 받고 사망한 사람이다. 이 책은 그가 죽고 난 후 그의 유고에 부인이 마지막 장을 더해서 완성한 것이다. 



이 책은 여러가지 방식으로 읽혀진다. 이 원고는 한 소년의 성장기이자 신경외과 레지던트의 생활기이기도 하고 문학과 철학과 종교에 대한 에세이이자 불치병을 앓은 사람의 투병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물론 마지막으로 이 책의 저자인 폴 칼라니티를 잃고 뒤에 남겨진 그의 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여러가지 것을 이 책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우리는 미국의 소도시에서 인도계 미국인 아이는 어떻게 성장하는지, 그가 의료와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매력을 느꼈는지, 자기 병에 대해서 그리고 의료 시스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의사는 치명적인 병에 걸렸을 때 어떤 선택들을 하는지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 그리 길지 않은 이 책은 따라서 읽을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으로 나는 추천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단 한가지의 사실이 내 마음에 가장 깊게 남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서 몇마디를 쓰는 것으로 이 책에 대한 소감을 삼고 싶다. 그것은 바로 저자가 이 책을 썼고 그것을 출판하고 싶어했으며 실제로 이렇게 책으로 남았다는 사실 자체다. 


어찌보면 사소해 보이는 이 사실은 곰곰히 생각하면 그렇게 사소하지 않다. 우선 칼라니티는 스탠퍼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영문학 석사까지 받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과거의 일로 그는 사망할 당시 이미 신경외과의사로 성공하기 위해 오랜 세월을 바쁘게 보낸 뒤였다. 글과는 멀리 떨어진 상태로 말이다. 


이 책에는 그가 신경외과 레지던트로 보낸 7년간의 세월이 얼마나 비인간적으로 바쁘고 힘든 시간이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일주일에 100시간 이상을 일해야 했고 수술을 할 때는 몇시간이고 서있어야 했으며 이때문에 차로 15분이 걸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면 차를 출발하지 못하고 운전대 앞에서 졸기도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니 그가 평소에 독서나 글쓰기에 시간을 썼을 것으로는 들리지 않는다. 실제로는 레지던트가 끝나가던 무렵에는 오히려 그의 결혼생활도 파탄나기 직전인 상태였다. 


즉 그는 우선은 그의 모든 시간을 의사가 되는 것에 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암투병을 해봤거나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종국적으로 사망할 정도로 나쁜 건강상태에서 책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지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은 본래 부족했고 많은 사람들이 이제 세상을 영영 떠날 그의 시간을 요구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누군가가 뇌수술을 위해서 파티를 떠난다고 하면 사람들은 이해할 테지만 내가 위에 올라가서 글을 써야 한다고 하면서 사람들을 뒤에 남긴다면 그 일은 이해받기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이 그의 인생에 남은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모든 나쁜 상황에도 불구하고 글을 썼고 그렇게 쓴 책이 꼭 출판되기를 바란다. 그는 이미 의사로서 여러 사람을 살렸고 논문도 썼지만 죽을 때가 되었을 때 그가 그의 곁에 두고 싶어한 것은 두가지였다. 하나는 가족이다. 아내와 부모님과 형제 그리고 무엇보다도 딸이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그 이상으로 그가 하고 싶어한 것은 바로 글을 써서 책을 남기는 일이었다. 


이 세상에는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이 여러가지가 있다. 화가는 그림으로 가수는 노래로 자신을 표현하고 과학자는 자신의 연구로 자기를 표현할 것이다. 그래서 삶이 얼마남지 않은 가수가 스스로를 오로지 노래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아마도 그런 사람은 죽을 때까지 무대에 서려고 하지 않을까?


칼라니티의 행동과 노력은 그 자체로 그가 다른 무엇보다 글이 인간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로서는 좋은 책 한권을 남기지 못하고 죽는다는 것은 마치 이 지구상에 그가 있었던 적이 없었던 것과 같이 느껴졌을 것이다. 그는 여러가지를 했지만 결국 죽음앞에서 두가지를 알게 된다. 그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고 그 자신을 글에 남기는 일이라는 것이다. 


칼라니티는 그렇게 쓰지 않았지만 그는 어쩌면 글 속에 자기를 남김으로 해서 죽음은 극복될 수 있다고 느꼈을지 모른다. 죽음이 가진 가장 무서운 점은 그것은 모든 가능성의 종말을 의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죽은 사람은 더이상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없다. 죽은 사람은 더 이상 수술을 할 수없고 교수를 할 수도 없으며 돈을 벌 수도 없고 자식을 만들 수도 없다. 


하지만 글이 남음으로써 그는 가능성을 남긴다. 그 글속의 칼라니티는 계속 뭔가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책은 국제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어 한국어로 번역이 되었다. 칼라니티는 자신의 책이 지구반대편에까지 이르러 누군가의 마음에 영향을 미칠 것은 몰랐을 것이다. 


자기를 표현하는 방법이 반드시 글이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이 뭔지, 그리고 삶이 뭔지에 대해 이 책은 그 존재자체가 뭔가를 말해주고 있는 것같다. 우리는 모든 가능성을 끝내고 싶지 않다. 자식이 남으면 그 자식이 어쩌면 미래를 만들 것이다. 책도 저자의 자식처럼 저자가 사망한 뒤에도 뭔가 일을 할 것이다. 


칼리니티는 다른 무엇보다 이런 행동을 통해서 그가 계속 고민해왔다는 죽음과 삶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는 씨앗을 뿌리고 가능성을 계속 만들어가지 않는 삶은 삶이 아니며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죽음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대부분 불치의 병에 걸려있지 않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전에라도 우리는 살아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언젠가 우리의 삶이 실은 죽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 않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