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와 글쓰기/책 이야기

튜가킨과 트루트의 은여우 길들이기를 읽고

격암(강국진) 2018. 7. 29. 14:30

18.7.29

1952년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서 드미트리 벨랴예프는 한가지 대담한 실험 계획을 세운다. 초기에는 니나 솔로키나가 실제로 이 실험을 진행했지만 1958년부터는 오늘날까지 이 실험의 실질적 책임자가 된 류드밀라 트루트가 이 실험을 진행했다. 그 실험은 야생인 은여우, 당시에 모피 산업을 위해 대량으로 길러지고 있기는 했지만 인간과 개처럼 집안에서 공존하지는 않았던 은여우를 길들일 수 있는지, 그것이 가능하다면 이 가축화는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알아 보는 실험이었다. 

 

 

많은 좋은 책들이 그러한 것처럼 이 책은 여러가지 매력적인 얼굴들을 가지고 있다. 애완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사진이 없는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귀여운 아기 여우들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웃게 될 것이다. 유전과학에 흥미가 있는 사람은 가축화와 관련된 과학지식을 읽으면서 흥미를 느끼게 될 것이며 20세기 후반의 소련이나 세계적 냉전 구도를 기술하는 부분에서는 이 책은 국제적 스파이물처럼도 읽을 수 있구나하고 느끼게 될지 모른다. 그것들이 다 좋았지만 내게 특히 좋았던 것은 이 책은 과학자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다시 돌아보게 해준다는 점이었다. 

 

이 책에 나오는 여러 장면들 중에서 드미트리가 류드밀라를 영입할 때를 평이하게 기술한 짧은 부분은 유달리 내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드미트리는 그의 친구인 동료 과학자 크루신스키를 통해서 그의 연구를 도와줄 대졸자를 찾는다. 그렇게 해서 드미트리는 은여우를 키울 류드밀라를 영입하게 된다. 나 자신이 대학원을 거쳐서 과학연구에 종사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 장면에서 씁슬한 미소를 짓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과학프로젝트가 정말 말도 안되게 어려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류드밀라가 대학원생이라면 말려야 할 실험실로 들어가고 있는 셈이었다. 

 

책은 이 은여우 가축화실험 이전에 길들이는 실험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모든 동물들이 길들이기에 성공한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의 얼룩말은 아프리카의 풍토에 강한 말이니까 아주 자연스런 가축화의 대상이었지만 결국 실패한 적이 있다. 게다가 여우는 1년에 한번 번식할 뿐이다. 새끼들 중에서 온순한 여우를 선별하여 다시 교배시키고 그걸 반복해 나가는 가운데 가축화된 은여우를 생산하겠다는 이 실험은 그 아이디어가 옳다고 해도 도대체 30년이 걸릴지 100년이 걸릴지 아니면 수천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사실 백년이라고 해도 진화의 스케일에서는 순간적인 기간이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한번 해보고 안되면 다른 걸 해볼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실험이 아니다. 거의 오늘부터 흙을 파서 손으로 이 산을 저쪽으로 옮깁시다는 식의 프로젝트다. 

 

이런 과학프로젝트에 참가하는 것은 경력적인 자살이 된다. 실패할 가능성이 엄청높고 성공해도 거기서 본인이 무언가를 얻을 가능성은 굉장히 낮다. 그래서 책에도 드미트리는 류드밀라에게 이 실험에 참여하는 일의 위험성에 대해서 충분히 경고했다고 나오지만 아뭏튼 류드밀라는 이 결정으로 그녀의 인생을 걸게 되었다. 1958년 이미 아이와 남편까지 있던 그녀는 모스크바에서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시베리아에 있는 과학연구단지 아카뎀 고로도크로 간다. 그리고는 남편이나 아이도 잘 만나지 못하는 생활을 하면서 여우를 키우는 사람이 된 것이다. 2016년 현재 83살이 된 류드밀라는 아직도 이 실험을 하고 있다. 이렇게 책으로 보면 근사하게 느껴 질지 모르지만 말하자면 실제로는 무슨 오지에 있는 농장 일꾼의 관리인으로 밤이고 낮이고 일하는 사람이 된 거나 마찬가지다.  1년에 한번 교배하는 여우들을 대대손손키워서 유전적 변화를 일으키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나는 컴퓨터가 느렸던 30년전쯤에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가지고 연구를 했던 경험이 있는데 그건 한번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결과가 나온 걸 보고 또 조금 다르게 변수를 집어넣어서 시뮬레이션을 반복하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관련된 변수가 5개나 6개만 되어도 가능한 경우가 너무 많아서 모든 경우를 다 해본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래서 조금씩 수동으로 바꿔가면서 시도해 봐도 너무 오래 걸린다. 시뮬레이션 한번 돌리는 데 1시간쯤 걸리면 간단한 아이디어를 확인 해보기 위해서도 1주일 내내 컴퓨터 앞에서 초조하게 살아야 한다. 이런 작업을 한번하고 나면 정말 피곤하다. 대부분은 아무 결과가 없고 사람이 폐인이 되는 것같다.  

 

말하자면 류드밀라가 한 실험은 한번 하는데 1년짜리 시뮬레이션을 하는 것이다. 여우가 달라졌어요라고 말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여우의 행동과 생리적 특징의 수는 무궁무진하다. 컴퓨터도 디지털 동영상을 촬영해 두는 방법도 없던 시절에 여우를 10년 30년 길러가면서 여우의 행태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모두 기록하고 그 자료를 관리하며 분석하는 작업은 상상하기도 싫을 정도로 싫다. 차라리 도를 닦아서 신선이나 부처가 되는 쪽이 더 매력적이고 가능성있을 것이다. 오늘날이라면 이런 미친 프로젝트에 뛰어들 대학원생은 없을 것이다. 물론 반세기쯤 뒤에는 지금의 대학원생들이 뛰어들고 있는 프로젝트들이 미래인들에게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실험이 성공했다. 왠일인지 은여우는 놀라울 정도로 빨리 변화를 보여서 10년도 안되어서 작지만 확실한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고 1974년에는 은여우 푸신카를 류드밀라가 자기가 사는 집으로 데려와서 키워볼 수 있게 되었다. 류드밀라가 작업을 시작한 이래로 겨우(!) 16년만에 말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가축화된 은여우는 외양에 있어서건 행동에 있어서건 개와 유사해지기 시작했다. 

 

시대가 느끼는 호흡의 길이가 지금과 다르기도 했겠지만 이 프로젝트의 최고책임자인 드미트리는 확실히 보통사람과 달랐던 것같다. 일단 은여우 프로젝트가 성과를 내기 시작하자 그는 아주 대담한 아이디어를 낸다. 그것은 인간이 가축화된 유인원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가축화된 동물은 번식을 더 자주하고 유아기의 특징을 좀 더 길게 유지한다. 인간은 아무 때나 번식하고 이 지구상의 어느 동물보다 유아기가 길다. 그러니까 결국 지금의 인간은 스스로 가축화를 한 결과 만들어 진 결과가 아닌가 하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와 관련해서 해볼 수 있는 프로젝트는 인간과 유전적으로 매우 비슷한 침팬지를 가축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침팬지는 수명이나 임신기간이 은여우보다 몇배나 길다. 은여우 가축화 프로젝트도 말이 안되는데 침팬지 실험은 당시의 연구원들도 기겁을 하며 말했다고 한다. 윤리적 문제는 뒤로하고라도 그건 최소 수백년이 걸릴텐데 그 결과를 우리는 볼 수 없다. 드미트리는 그 실험의 어려움을 인정하면서도 말했다고 한다. 자신들은 당연히 그 결과를 알 수 없지만 미래인들은 그결과를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30년뒤도 아니고 후손들을 위해 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과학프로젝트를 한다는 뜻이다. 정말 대단한 배포라고 하지 않을 수 없고 과학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을 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이 책은 사실 류드밀라가 드미트리에게 헌정하는 책이나 마찬가지다. 드미트리가 쓰고 싶었지만 쓰지 못하고 죽었던 책을 대신 써서 그에게 보답하겠다는 뜻이 책안에 깊이 배여있다. 자연히 이 책은 드미트리가 과학자로서건 인간적으로건 어떤 매력과 장점을 가졌는지를 여러번 강조한다. 그게 때로는 조금 어색해서 드미트리가 살아있었다면 좀 지나친 아부가 아닌가 싶게 느껴질 정도지만 드미트리는 죽은 사람이고 사실 그는 이 불가능한 과학프로젝트를 불가능한 시대에 가능하게 만든 사람인 것이 사실이다. 

 

여기서 책에는 또하나의 중요한 인물을 소개하는데 그건 바로 리센코다. 리센코는 소련의 과학을 망친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는 밀의 종자를 차게 처리하는 방법을 보급해서 밀생산을 늘렸고 이걸 기반으로 출세하는데 이후 소련 유전과학을 수십년간 지배했다. 그 지배란 이런 것이다. 스탈린 치하의 리센코는 유전과학을 그 기초부터 부정했다. 그리고 그에게 도전하는 사람들은 학계에서 쫒아 내는 정도가 아니라 체포하고 사형시켰다. 그렇게 한 사람 중의 하나는 드미트리가 존경해 마지않았던 그의 형 니콜라이가 있다. 드미트리의 은여우 프로젝트는 그 실험 자체도 어려운 것이었지만 유전과학에 대한 실험을 한다는 것이 알려지면 심하면 죽을 수도 있었던 시대에 준비하고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역경을 넘어서 소련의 유전과학을 세계적인 수준까지 끌어올린 사람이 드미트리다. 그는 확실히 과학자로서는 물론 지도자로써도 굉장히 능력있는 사람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 책의 내용을 소개하는 것은 이쯤 하기로 하겠다. 은여우 길들이기는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다. 굉장히 많은 부분들이 놀랍도록 자세히 묘사되어져 있는데 그런 자료가 다 남아있는건지 기억력이 그렇게 좋은건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부분부분 대중서적이라기 보다는 과학논문같은 부분도 있고 저자가 2명이라서 문체가 약간 왔다갔다 하는 면이 있는건가 싶은 느낌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아주 즐겁고 유익하게 읽었다. 과학을 전공하려는 사람은 물론이고 유전과학에 대한 대중서적에 흥미가 있는 사람들에게도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애완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리고 그저 시간을 때우기 위해 재미있는 글을 찾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모두 권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많은 인터뷰와 자료정리를 통해서 이런 책을 써준 두 저자에게 감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