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와 글쓰기/영화 드라마 다큐

영화 말모이를 보고

격암(강국진) 2019. 1. 17. 15:24

유해진 윤계상 주연의 말모이를 봤다. 말모이는 조선어학회가 한글 사전을 만들려는 노력을 그린다. 기본적으로는 심각한 이야기를 가지지만 가벼운 코미디처럼 볼 수도 있는 영화다. 캡틴마블이나 미션 임파서블처럼 화려한 영상이나 특수효과는 없지만 말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흥쾌한 영화였다. 



이 영화는 유해진이라는 캐릭터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자칫 따분한 역사교육이나 문화 교육처럼 될 수 있는 내용을 인간미를 불어 넣는데 성공하고 있다. 유해진은 극중에서 판수라는 문맹의 인물을 연기하고 있는데 그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있는 학부형이기도 하다. 잡범으로 교도소를 드나들던 판수는 아들의 교육비를 위해서 소매치기를 시도하다가 조선어학회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면서 읽는 즐거움을 배우기도 하고 보람있는 일을 하면서 사는 즐거움을 배우기도 한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그를 움직이는 기본 동력은 역시 자식들을 사랑하고 자식들에게 떳떳한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이었다. 


전반적으로 이 영화는 판수의 성장기이자 고통을 그리는 영화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그런 부분을 잔잔하고 코믹한 다른 에피소드로 채워서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다지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 스토리로 만들어 냈다. 이때문에 강한 양념을 원했던 사람에게는 좀 심심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을 수 있을 것인데 나는 그래서 더 좋았다. 즉 영화가 교육영화나 감동을 지나치게 주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약간 힘을 뺀 겸손한 영화이기 때문에 오히려 감상하는 입장에서 더 생각할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달까. 


얼마전에는 나는 한 팟캐스트에서 스스로를 코스모폴리탄이라고 말하는 출연자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은 지나치게 편협하게 사고하는 다른 출연자의 말을 반박하는 가운데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내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보편성에 대한 강조는 결국 시간과 공간을 무시하게 만든다. 그렇게 되면 결국은 한국어로 말하고 있는가 일어로 말하고 있는가 하는 것도 사소한 차이로 생각하게 되며 민족이라던가 역사라던가 우리 국민의 정서같은 것은 그저 무의미한 이야기처럼 들리게 되기 쉽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 스스로를 진보적인 인간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중에는 이런 사람들도 꽤 있는 것같다. 


나는 스스로를 작게만 보고 관습에 얽매이는 것도 나쁘지만 유한한 인간으로써 스스로를 그렇게 무한의 세계에 투영하여 상대적 가치관을 펼치는 것은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동물에 비해 인간이 더 중요하다던가 인간을 죽이면 안된다는 규칙에 대한 과학적이고 절대적인 규칙도 없다. 무한대로 세상을 넓게만 봐서 뭘 할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은 지금의 사회적 정서와 미디어의 발달정도에 따른 적당한 규모가 어디인가 하는 것이다. 거기서 우리는 상식이나 윤리나 가치를 찾게 된다. 즉 보편성도 중요하지만 지금 내가 함께 어울려 살고 있는 사람이나 내가 살아온 지역이라는 지역성도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순간 여전히 민족이나 우리 글이나 우리 역사는 큰 의미를 가진다고 믿는다. 그런 점에 주목하는 행위를 너무 섯불리 국뽕이니 철지난 민족주의따위로 폄하하지는 말아줬으면 좋겠다. 말모이는 우리 말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