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와 글쓰기/영화 드라마 다큐

미국립공원의 모험 (National Park Adventure)를 보고

격암(강국진) 2020. 3. 1. 00:54

20.3.1

넷플릭스를 보다가 운동할 때 우연히 한 다큐를 틀게 되었습니다. 2016년에 나오고 로버트 레드포드가 나레이션을 맡은 이 영화는 사실 아주 흔한 자연다큐라고도 할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화면은 아름다웠고 여러 미국립공원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보여주는 영화였죠. 저는 어릴 때 부터 이런 형태의 영화를 많이 봐왔습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나이가 들어 이 영화를 보니 왠지 전혀 다른 느낌이 들고 서구의 문제가 뭔지가 느껴지는 것같았습니다. 

 

서구의 문제는 서구는 이날 이때까지 붐비는 곳에서 오래 살아 본 경험이 없다는 겁니다. 몇백년전 이전에는 지구의 인구가 이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유럽은 몇백년간 탐험정신 운운하면서 세계에 식민지를 건설하며 살았죠. 이 점은 한 때 식민지였던 미국에도 남아있습니다. 미국은 인구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넓은 미대륙을 마치 그들 이전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던 빈 공터처럼 인식합니다. 그래서 미국 역시도 유럽처럼 개척자정신을 강조해 왔습니다. 즉 가보지 않은 어떤 영역을 탐험하고 그곳을 차지하는 것을 성취로 여기는데 익숙한 겁니다. 가보지 않은 남극을 가고,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에 오르고 바다를 탐험하는 것이죠. 

 

이런 수백년간의 경험은 서구문화속에 "남들이 가보지 않은 곳에 가라"는 메세지를 깊게 새긴 것같습니다. 언뜻 들어 진취성이 넘치기만 해서 좋아보이는 이 메세지에도 이걸 어떻게 흡수하는가에 따라 그림자는 있을 수 있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개척자 정신이란 식민지를 건설하는 제국주의적 정신이 되기 쉽습니다. 그 극단에 원주민들이 오랜간 살아온 미대륙을 유럽인들이 뻔뻔하게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태도가 있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사실 전세계가 같은 취급을 당했습니다. 즉 그들에게 유럽인 이외의 사람들은 보이질 않아서 극동아시아를 발견한 것같은 태도를 취하는 겁니다. 그 태도는 현지의 역사와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그저 정복하고 소유할 대상처럼 여기는 것이죠. 

 

이쯤에서 이것이 상대적으로 긴 역사를 가지고 인구밀도가 훨씬 높았던 극동아시아의 태도와 뭐가 다른가를 생각해 봅시다. 한국같은 나라는 야생이란 개념이 사실 무의미합니다. 한국의 모든 강과 산은 사실 인공입니다. 아주 오랜간 인간이 함께 살아오면서 변화시켜온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인간은 자연을 닮고 자연은 인간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에 익숙합니다. 

 

반면에 서양의 자연다큐를 보면 그 자연다큐가 자연을 보호하자는 메세지를 담고 있을 때 조차 자연은 무한하며 인간이 아직 소비하지 않은 것이 무한하다는 느낌을 줄때가 많습니다.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뤄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보다는 인간없는 자연이고 인간이 무한정 써도 될 것같은 자연입니다. 어릴 적에는 그저 멋지다면서 봤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흔히 천년 아니 몇만년간 어떤 동물도 손대지 않았을 것같은 곳에 인간이 손자국, 발자국, 자전거 바퀴자국같은 것을 남기는 장면입니다. 

 

한국인에게는 산은 신성한 곳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그러니 한국인이 백두산 다큐를 만들면서 그곳을 자동차나 자전거로 마구 달리면서 뭔가 흔적을 남기는 장면을 찍는다면 백두산의 물속에 보트나 잠수복을 입은 사람을 마구 던져넣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불편한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백두산에 대해 궁금해 하는 만큼이나 억지로까지 백두산의 신비를 파헤쳐서 모든 곳에 인간의 흔적을 남기려고 하는 것에 대해 거부하는 태도도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과연 자연을 진짜 보호할 수 있는 태도를 가지는 걸까요. 서구문화를 보면 옆집을 탐험하는 것에는 극도의 조심을 합니다. 즉 남의 소유로 되어 있는 것, 남의 사생활을 파는 것은 나쁜 일이라는 생각이 아주 강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연에게도 사생활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연의 신비를 남김없이 파헤지는 것이 그런 면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저는 과학자출신이기 때문에 서구적인 태도가 어떤 것인지 압니다. 바로 과학자처럼 산과 강을 남김없이 파헤치는 것입니다. 미시시피 강을 좋아했던 마크 트웨인이 미시시피강에 대해 너무 많이 알게 되자 더이상 미시시피강이 전처럼 느껴지지 않았다고 했다지요. 자연의 탐험이란 그런 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세상에는 지구 곳곳을 서양의 관점으로 탐험한 결과인 다큐가 아주 많습니다. 그리고 그런 다큐들이 다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지구가 환경문제를 가지게 되는 것의 뿌리에는 다 서구 문화의 이런 개척자 정신운운하는 태도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우며 이 서양의 자연다큐들은 그런 측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같습니다. 결국 그런 식으로는 자연보호는 어렵다는 것이죠. 자연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같이 살아갈 이웃같은 존재고 우리가 숭고한 것으로 존중해야 할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미신으로 여겨서는 답이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