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와 글쓰기/책 이야기

이민진의 파친코를 읽고

격암(강국진) 2021. 1. 26. 14:53

2021.1.26

최근 미국교포작가 이민진의 파친코를 소개하는 동영상을 여러번 보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재일교포의 삶을 그린 소설 파친코를 읽었는데 결론적으로 말해서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며 의미도 있다. 좋은 책이니 추천할 만하다. 나는 먼저 이 책이 좋은 책이며 재미도 있어서 시간과 돈을 낭비하지 않는 책이라는 말을 강조하고 싶다. 그래야 내가 쓰는 말이 이 책의 비판으로 들려도 결론을 사람들이 잊지 않을테니까 그렇다. 

 

 

이 책의 주인공은 일제시대에 부산에서 태어난 한 여성인 순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즉 순자가 어떻게 태어났고 어떻게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으며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가를 기술하는 책이 이 책 파친코이며 파친코가 이 책의 제목이 된 것은 파친코를 하고 싶지 않아도 결국은 파친코를 하게 되는 사람들의 숙명적 모습이 재일교포들의 삶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해서 결정된 것같다. 

 

이민진은 1968년에 한국의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7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가난하게 성장한 여성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함경남도 원산 출신이고 어머니는 부산출신이라고 하니까 북한 출신의 남자와 한반도 맨끝에서 온 여자가 서울에서 아이를 낳고 뉴욕에서 아이를 키운 셈이다. 게다가 그녀가 일본계 미국인과 결혼한 사실은 그녀를 둘러싼 문화적 배경을 더욱 더 복잡하게 만든다. 이민진은 본래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로스쿨에 들어가서 법조인으로 일하려고 했는데 간염때문에 몸이 약해져서 글쓰기로 진로를 틀었다고 한다. 

 

스스로가 문화적 이방인이었던 이런 그녀의 배경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대학교 시절 일본에서 차별받아 외국인 등록증에 지문날인을 해야 하는 조선인 아이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그 이야기를 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이야기는 단편소설이되고 그것이 다시 커져서 장편인 파친코가 되었다. 이민진은 이 이야기를 무려 30년동안이나 고쳐썼다. 미국에서 자라난 그녀로서는 재일교포의 이야기를 잘 할 수 있을만큼 자신이 충분히 이 소재를 잘 알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공부를 계속했는데 금융계에서 일하는 그녀의 남편덕분에 그녀는 일본에서 2007년부터 4년간 살게 되었고 그 시기 이후에야 소설 파친코의 뼈대는 완성되었다. 그래서 이 책의 말미에 보면 인터뷰에 협조해준 사람의 숫자가 참 많이도 나온다. 파친코는 이렇게 오랜 산고끝에 나온 책이며 작가 이민진에게 있어서 특별한 책이다. 

 

내가 이 책에 관심을 가진 이유 중 하나는 이 책의 저자가 미국에서 성장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미국이라는 먼 곳에서 일본과 한국을 아우르는 역사를 관찰한 이야기는 어쩌면 한국인이나 일본인이 쓰는 역사보다 더 객관적일 수 있지 않을까? 작가가 본래는 역사를 전공했으며 법조인이었다는 사실은 나의 이런 기대를 더욱 더 크게 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나의 기대는 상당히 옳았다고 생각한다.

 

사실 한국인 남성으로서 읽자면 작가가 여성이며 미국에서 자라난 탓에 미국적 시각을 가졌다는 점은 이 책에서 자주 느껴진다. 이 책은 비판적으로 말하자면 통속 연애소설이나 슬픈 여성의 삶을 어설프게 표현한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통속 연애소설이라고 말한 것은 전체의 이야기에서 남녀간의 애정에 관련된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사랑은 물론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그러니까 내 삶을 소개한다고 할 때 거기에서 내가 누구랑 연애를 했고 결혼을 했는가가 중요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아무래도 연애분량이 좀 과한 것같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생각하면 시대와 문화적 배경이 다른데도 이 시대의 청춘연애가 미국의 80년대 청춘연애와 다른 점이 없게 그려졌다는 느낌이다. 이 점은 일제시대와 한국 전쟁시대가 가진 슬픔과 비극으로부터 우리의 눈을 돌리는 효과가 있다. 그 시대에도 비극만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니겠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비극보다 더 큰 비극은 넘쳐났을 것이다. 일본의 손꼽히는 야쿠자가 뒤를 봐준 여성의 삶보다 더 힘든 삶을 산 여성은 당연히 많지 않았겠는가. 

 

여성의 슬픈 삶내지 인간의 슬픈 삶이라는 것도 그렇다. 100년전의 이야기를 할 때는, 특히 문화가 다른 세상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우리는 인간이나 여성이라는 단어로의 일반화를 조심해야 한다. 내가 나의 머릿카락을 아주 소중히 생각한다면 그 머리카락이 잘리는 경험은 목숨을 포기할 정도로 중요한 사건일 수 있다. 슬픈 것과 슬프지 않은 것은 이렇게 당대의 그리고 그 개인의 내적인 가치관에 크게 의존한다. 그러니까 21세기에서 서서 보편적 여성상을 머리속에 그리고 여성의 슬픔을 묘사하기 시작하면 좀 어설프고 부정확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뉴저지에서 사는 미국 여성이 타임슬립을 해서 중세로 돌아간 것처럼 말이다. 

 

이 소설의 장점이자 단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작가는 복잡한 관념과 감정 그리고 이데올로기를 표현하는데 실패하고 있거나 아예 시도하고 있지도 않다. 그녀의 소설은 어떤 의미로 마치 역사책이나 다큐처럼 사건을 무미건조하게 기술해 나간다. 어쩌면 한국인이니 일본인이니 미국인이니 하는 국적을 따지는 태도 자체가 이데올로기이며 일반 소시민들은 그런 것을 상관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글은 그렇게 쓰여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좀 아쉬울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술술 잘읽히고 재미가 있다. 재일교포의 삶이라는 소재가 가지는 자극이 이미 충분히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 블록버스터 영화를 하면서 사람을 떼로 죽이는데 병사 하나 하나의 내적 세계를 그릴 필요나 여유는 없을 수 있다. 이 책이 애플티비에서 드라마화되기로 한 것도 이때문일 것이다. 많은 한국 소설이 그렇듯이 관념적으로 내부세계를 그린 소설은 대개 영상화를 하면 별로 보여줄게 없어서 재미가 없다. 하지만 이 책의 줄거리는 그렇지 않다. 

 

과학자 출신인 나는 한국 작가의 책을 재미있게 읽지 못하는 일이 많다. 생각해 보면 그것은 한국의 작가 특히 순수문학 계열의 작가가 관념적이라서 그런 것같다. 만약 한국 작가가 이민진이 쓴 파친코의 내용을 소설로 쓴다면 그 분량은 열배는 늘어날 것이고 에피소드도 많아질테지만 내적 세계와 문화적 배경의 묘사에 훨씬 더 많은 공을 들였을 것이다. 그 작품은 설사 문학전공자로부터 더 칭찬을 받는 작품이 된다고 해도 읽기는 고역일 것이고 대중성은 더 떨어질 거라는 예감이 든다. 어쩌면 바로 그런 경향때문에 재일교포의 삶을 그린 소설로 베스트셀러가 된 한국 작가의 작품이 없는게 아닐까. 이것은 아쉬운 일이다. 마치 세종대왕의 이야기를 애플티비에서 만든 것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으니까 말이다. 

 

작가가 그것을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왜냐면 딱히 엄청 강조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 전체에서 자연히 우러나고 있는 하나의 가치관이 있다면 그것은 자식에 대한 사랑의 소중함이다. 서구의 개인주의적 관점에서 부모가 자식에게 가지는 애정은 종종 집착이나 부담주기 같은 것으로 비판되기 쉽다. 하지만 부모가 자식이 잘되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 내 인생보다 내 자식의 인생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반드시 그렇게 볼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대안적 가치관이며 간단히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내 인생이란 결국 내 숨이 끊어지면 끝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삶이 내 삶으로 그리고 내 삶이 내 자식의 삶으로 이어지면서 계속된다고 보는 사람들에게 아이들이란 미래이고 따라서 나 자신보다 더 소중한 존재일 수 있다. 그리고 그 가치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면 할수록 그게 꼭 틀린 생각도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다만 모든 다른 가치관들처럼 왜곡되기 쉬울 뿐이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중에는 이 책을 페미니즘적인 시각에서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역사소설로 읽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통속 애정소설처럼 그저 재미나게 읽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도 그 모든 것을 느꼈지만 지금처럼 책을 다읽고 소감을 쓰다보니 이 책의 진정한 핵심은 결국 부모의 사랑이 아닌가 싶고 그것이 한국 혹은 조선 문화의 핵심이 아닌가도 싶다. 그런 의미에서보면 7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평생을 미국인으로 산 작가 이민진의 몸속에도 결국은 조선의 문화가 흐르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