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아탈리의 미래 대예측을 읽고
21.2.1
프랑스의 경제학자이고 유럽부흥은행의 설립에 관여했으며 지금은 컨설팅회사의 대표를 하고 있는 자크 아탈리가 쓴 미래 대예측을 읽었다. 이 책은 한국에는 2018년에 출간되었으나 본래 2016년에 나왔으며 그 이후의 15년 그러니까 2030년까지의 미래를 예측한 짧은 책이다. 출간 이후 이미 4-5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세계적 전염병의 창궐을 미리 경고하기도 한 사람중의 하나로 말할 수 있다. 오늘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을 기록해 두고 싶다.
이 책은 이백페이지가 조금 넘지만 방대한 자료조사를 근거로 미래를 자세히 수치적으로 예측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예측들이 세세히 맞는가 틀린가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그런 예측속에서 아탈리가 본 큰 그림 즉 다가올 미래다. 아탈리는 우리가 뭔가를 강력하게 실천 하지 않으면 인류는 15년안에 그러니까 2020년기준으로는 10년안에 종말전쟁에 가까운 대참사를 겪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종말전쟁의 시나리오중 가장 가능성이 큰 것은 중국주변에서 세계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아탈리는 그렇게 표현하고 있지 않지만 이 책에서 그가 묘사하고 있는 것은 상당부분 국가의 종말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일단 그가 유럽의 프랑스인이라는 점을 잘 기억하면서 그의 예측을 살펴보자. 그는 시장의 세계화가 추진되어져 왔고 점점 더 기업은 국제화되어왔다는 점을 지적한다. 서구의 국가란 사실 자본과 토지를 가진 사람들이 그걸 기반으로 장사를 하고 그 수익을 보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란 상인들과 그 상인에게서 보호비를 받는 조폭조직과 비슷하다. 유럽이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던 시대에 국가는 무력으로 자신의 국가의 장사꾼들을 보호하거나 이익을 확보했고 그 장사꾼들은 당연히 국가와 자신의 이익을 나눴다. 자연히 이런 시대에 기업은 국적을 가지고 있었고 국가는 부유했다. 영국이나 프랑스의 기업은 영국이나 프랑스가 있기에 돈을 벌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돈은 다시 그 국가를 살찌우고 안정화시켰으니 당연히 국가는 번성했다. 어쩌면 서구가 그토록 자랑하는 민주주의라는 것도 이런 제국주의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이제 오래전 과거가 되었다. 이제 기업들은 국제화되었고 온갖 방법을 써서 세금을 내지 않는다. 그래서 국가는 점점 세수가 줄어들고 엄청난 빚을 지게 되었다. 금융계의 큰 손이 국가가 아닌 일이 점점 늘어난다. 실제로 1980년대 이래 그림자 금융이라 불리는 세력이 확대되었는데 이들은 세계 금융의 25%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 그림자 금융은 종합금융회사, 헤지펀드, 통화기금, 연금, 사모펀드같은 세력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들어 확대되고 있는 핀테크관련 부분도 있다. 이 덕분에 국가가 관리하는 금리는 0가 되버렸다. 금리를 올리면 제일 먼저 국가가 파산할 지경이다.
우리는 국민과 국가와 기업을 하나로 생각하는 것이 익숙하다. 하지만 이 틀은 낡은 틀일 수 있다. 이 책은 빛나는 미래예측도 나열하고 있고 그것이 아니라도 우리는 많은 좋은 뉴스를 듣는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그것을 세계의 미래나 국가의 미래로 착각하며 안도감에 빠져들지만 사실 그 좋은 뉴스들은 상당부분 기업의 미래일 수 있다. 즉 기업은 흥하는데 나라는 망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요즘 세계적으로 주가가 오르고 있다. 이것은 기업의 가치는 오르고 국가가 발행한 화폐의 값어치는 떨어지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이것이 우리가 미래 예측을 들을 때 극단적 낙관론과 비관론을 동시에 듣는 이유가 아닐까?
국가의 재정이 고갈되니 교육이 망가지고 국가 인프라가 망가진다. 미국에서 실직하면 제일 걱정하는 것은 의료비다. 회사가 제공하던 의료보험이 없이 개인은 파산하기 쉽다. 공공의료의 파탄이라고 할만하다. 뉴욕의 지하철은 물이 새고 쥐가 뛰어 다닌다. 엄청나게 건설해 둔 고속도로들은 관리가 안되서 때로 스스로 파괴하여 관리하기 좋은 길로 바꾸기도 한다고 들었다. 부자나라라고만 생각했던 나라들은 실제로 가보면 사회적 인프라가 낡은 것을 쉽게 보는데 이는 국가가 더 이상 그걸 관리할 돈이 없어서다. 국가가 돈이 없어지니 민주주의가 붕괴하고 법치가 붕괴한다. 국가라는 공동체가 돈이 될 때는 공동체 정신을 잘 발휘하면서 사회적 구심력을 가졌던 사람들이 점점 더 국가외부로부터의 영향에 의해 혼돈에 빠져든다. 돈은 회사로 빠져나가고 일부 부유층이 가져가 버린다. 법치는 무너지고 자유는 지금의 서구 코로나 대처가 잘 보여주듯이 그저 어리석은 방종이 되고 만다. 민주주의 시스템이란 이제 전혀 합리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것같아 보인다. 아탈리가 세계적 위기를 예견하는 것은 이렇게 국가공동체가 붕괴하고 있어서 이들이 이기심 때문에 충돌하게 되는 것이 불가피해 보이기 때문이다.
서구가 서구 바깥의 세계를 마치 자신들의 농장이나 논밭처럼 여기던 시대에 국가의 바깥은 서구 내부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내부적 단합만이 필요했다. 아시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그들의 민주주의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은 오직 그들의 수입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치 농부에게 땅이 주는 영향력이랄까. 하지만 상황은 최근들어 바뀌고 있다. 서구 사회의 내부적 구심력은 약화되고 외부에서의 영향에 쉽게 더 흔들리는 느낌을 받는다. 파리의 거리는 시위로 불타오르고 트럼프는 연일 이민자들과 다른 나라를 악의 중심으로 지목한다.
내가 자크 아탈리가 유럽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한 이유는 그의 관점은 내내 약소국이었고 심지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적도 있는 한국에서 태어난 나의 관점과는 좀 다르고 그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조선이나 한국은 언제나 외부의 영향에 흔들렸고 침략을 당해도 외부에서 당했지만 뭘 배워도 외부에서 많이 배웠다. 한국의 민주주의도 결국 미국 민주주의를 배운 것이 아닌가. 우리는 때로 지나칠 정도로 내부적 단합보다 외부에 존재한다는 선진문물을 배우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그리고 그런 시기에도 한국의 경제와 민주주의는 발전했다. 적어도 한국만을 보자면 지난 한세기동안 국가나 민주주의나 법치가 붕괴된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런 것이 강화되어 왔다. 나는 이것이 한국에서 훨씬 더 두드러지지만 전보다 형편이 좋아진 아시아의 많은 나라에서도 어느 정도는 사실일거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자크 아탈리의 미래 예측은 상당히 서구 중심적이라는 것 즉 서구가 곧 세계라는 생각에 빠져 있으며 서구의 붕괴는 결국 세계의 붕괴가 되고 말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한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물론 아탈리의 생각은 두 가지 면에서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첫째로 한국은 매우 예외적인 사례다. 한국은 식민지를 가져보지 않은 전 세계 유일의 선진국이라고 할만하다. 둘째로 서구의 역할은 지금도 크고 당분간도 클 것이므로 그 안에 혼돈이 생기면 그것이 단순히 서구 사회안의 작은 혼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코로나때문에 서구가 힘들어 하자 세계 경제가 출렁이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러면 그럴 수록 우리는 한국의 특이함과 희소성을 기억하면서 이 책을 읽어야 오히려 더 이 책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어쩌면 한국이야 말로 자크 아탈리가 소망하던 그 미래의 희망일 수 있다. 자크 아탈리가 말하는 것은 한국을 모르면서 온 세상이 다 한국같아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 수 있다. 서구인들이 한국 드라마나 Kpop을 즐기면서 치유를 받는 것같다고 말하는 것이 생각보다 큰 의미를 가진 현상일 수도 있다.
자크 아탈리가 지구를 종말전쟁에서 구하는 방법이라고 말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윤리적 가치관적 혁명이다. 그는 우리가 계속 이기적으로 굴면 종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며 종말은 그다지 멀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 세상을 살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는 결국 죽는다라는 사실과 직면하는 것이다.
죽음을 직면하는 것이야 말로 가치있는 삶을 살기 위한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 비싼 차를 몰고, 더 큰 아파트를 가지고, 더 많은 돈을 통장에 넣기 위해, 값싼 부러움을 얻기 위해 살고 있지 않다. 그것보다 더 의미있는 삶을 원해야 한다. 거기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삶의 의미와 행복이 나 자신만이 아니라 타인에 의존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즉 이타주의는 결국 나를 위한 것이다. 이런 가치관적 혁명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계의 현실을 보고 분노해야 한다. 그 분노는 체념과 수동적 냉소가 아니라 세계를 구할 행동을 하게 만들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적 규모에서 민주주의와 법치를 회복해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가 살 길이다.
아탈리의 목소리는 비장하고 절박하다. 하지만 나는 책을 읽으면서 이번 코로나 사태중에 한국인은 집단주의적이라 마스크를 잘쓰고 정부의 지시에 잘 순종한다며 한국을 비웃던 일부 유럽사람들의 얼굴이 생각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또한 앞에서도 말했듯이 서구인들이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 영화나 드라마는 단순히 섹스나 폭력이나 마약에 의존하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을 섬세하게 살피는 점이 매력이 있다고 말하는 것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탈리의 메세지는 물론 한국인들에게도 유효하고 중요하지만 상대적으로 한국인들은 죽음을 잊지 않고 살아왔다. 편안하게 백년 이백년을 지내온 서구의 부유한 국가에 비하면 한국은 훨씬 더 역동적인 역사를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역시 상대적인 것이지만 서구에 비하면 한국인들은 가치있는 삶을 조금 더 많이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지금 한류인기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아탈리에게서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뭐든지 답은 서구의 지식인이 안다는 식으로 메세지를 흡수하다보면 빼빼마른 사람이 비만증 환자에게서 다이어트 비법을 배우는 것같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더 잘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더 많이 반성해야하고 더 빨리 망하고 있는 것은 바로 오래된 서구다.
한국을 높이 평가하는 것으로 물론 끝낼 수는 없다. 한국같은 작은 나라는 자기 자신도 잘 구하지 못하고 있는데 한국 혼자서 세계를 구할 수 있을리도 없다. 우리는 이런 특별성을 본 뒤에 다시 일반적 문제도 기억해야 한다. 윤리적 반성을 통해 가치있는 삶을 추구하는 개인은 한국에서도 필요하다. 국가는 쇠퇴하고 기업은 번성하는 시대다. 이것은 결국 민주주의와 법치를 뒤흔든다. 하지만 지구는 하나 밖에 없고 인류가 멸망하면 기업도 끝날 것이다. 주가만 100배 오른다고 세상이 계속되는 게 아니다. 실제로 아탈리가 말한 위기의 징후는 지난 몇년간 현실화되었다. 중국의 위협도 커져만 가고 북한도 위험하다. 국가란 틀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이 혼란한 시대에 질서를 유지하고 확대해야 한다. 나는 우선 개인으로 돌아가고 가치있는 삶에 대해 고민하는 것에서 출발하자는 아탈리의 주장에 공감한다. 하지만 좀 구체성이 없어서 아쉽기도 하다. 차라리 세상 사람들이 모두 BTS를 사랑하는 아미가 되면 세상은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낭만적 생각이 오히려 더 구체성이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우리는 지난 백년간의 추세를 뒤집을 계기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제일 많이 반성해야 하는 것이 서구이며 세계의 지배적 문화가 서구문화라면 세계는 대안적 문화를 발견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야 말로 세상을 바꿀 계기가 되지 않을까?
이런 의미에서 한국 문화는 큰 의미가 있다. 우리는 물론 경제적으로 중국이나 미국의 10분의 1에 지나지 않는 작은 나라다. 게다가 지금 이대로의 한국문화가 충분히 좋은 대안적 문화라고까지 말하는 것은 무리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스스로를 헬조선이라고 부르곤 했다. 우리는 물론 더 반성하고 더 발전해야 한다. 그래도 우리는 어쩌면 미래가 요구하는 문화에 가장 가까운 문화를 가진 사람들일 수도 있다. 우리는 계속 우리가 더 배워야 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하고 우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겸손은 좋은 것이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자신의 책임과 존재의미를 무시하게 될 수도 있다. 한국이여 세계를 구하자고 하는 것은 쑥스런 구호지만 어쩌면 세계에 희망이라고는 한국밖에 없을 수도 있다. 세계가 상상이상으로 엉망진창이기 때문이다. 다가올 10년은 위기이자 기회다. 나는 한국에게 희망을 걸고 싶다.
프랑스의 한 지식인이 세계의 위기를 알리는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런 것들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