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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격암(강국진) 2022. 12. 11. 21:32

22.12.11

최근 예전에 써두 었던 조지오웰의 1984 독후감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유명한 문구를 다시 읽었죠. 그것은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그리고 무지는 힘이라는 문구였습니다. 그런데 유명하기도 하고 어처구니 없어서 기억에는 잘 남지만 왜 전쟁은 평화이고 자유는 예속이며 무지는 힘일까요?

 

그 이유는 한마디로 사는 것은 그냥 존재하는게 아니라 그 자체가 버둥거리기이고 자기를 보존하려는 노력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대개 이상적인 상태에 도달하면 생활이 편안하고 그래서 아무 것도 안하고 있어도 그 상태가 유지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최고로 좋은 상태란, 예를 들어 자유로운 상태란 이미 아무 예속이 없는 상태이고 따라서 그 자체로 자유가 유지될 걸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그 독후감에서 스스로 제가 쓴 문구를 퍼오자면 이렇습니다.

 

자유란 문화적 경계에 서서 자신을 고정시키지 않고 새로운 것을 계속 보려고 하는 사람에게만 가능한 것이다. 자유란 객관적 상황에 관한 것이 아니라 내적인 문제다. 새로운 것을 보려는 노력을 중지할 때, 우리가 작은 일상에 빠져들어 그것에 중독될때 문화적 패러다임은 우리의 눈을 멀게하고 우리를 빠져 나올 수 없는 함정에 빠뜨릴 것이다

 

하루를 살려면 그 만큼의 식량이 필요하듯이 하루를 산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그만큼 우리를 작게 만들고 어떤 습관에 빠지게 만들며 지금의 패러다임에 빠지게 만듭니다. 내가 생선을 파는 것이지 생선장수가 곧 내가 아닌데 생선을 하루 팔면 그만큼 생선파는 것만이 인생에서 중요한 것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자유로운 나도 뭔가를 하게 되고 그러면 그 뭔가가 곧 나의 일부가 되어 굳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깨어있으려면 계속 자유로우려면 마치 우리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운동을 해야 하고 적정량의 영양분을 흡수해야 하듯이 우리는 뭔가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변환경이 바람직 하지 않을 때 계속 자유로운 상태로 있으려는 그 노력은 그 자체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마치 매일 조깅을 해야 한다고 느끼지만 게으름이 들어 그걸 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자유감을 느끼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바로 자유로운 상태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겁니다. 그거 힘들고 귀찮습니다. 주변의 유혹도 많습니다. 때로는 그게 협박이나 강압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럴 때 '아. 힘들어, 난 몰라.'하고 다 내려놓으면 자유로워지는 겁니다. 그리고 당장은 아무 일도 없으니 오히려 좋지요. 그리고 점점 둔감해져서는 그러다가 그냥 죽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정신이 번쩍 나서 주변을 둘러 보면 온몸에 쇠사슬이 걸려도 아주 많이 걸려 있습니다. 불구덩이로 가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 있거나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잔뜩하면서 한탄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유가 사라진 겁니다. 자유가 예속이라는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평화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살다보면 남을 의심하고 미워하지 않고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유혹을 느낍니다. 배신 당하기 전에 내가 배신해야 하지 않을까, 공격당하기 전에 내가 공격해야 하지 않을까. 상대를 공격하지 않고 비난하지 않는 현상태가 불안한 겁니다. 평화로운 상태란 언제나 그런 유혹이 끝없이 이어지는 상태입니다. 그럴 때 상대와 연을 끊어버리고 상대와 싸우면 적어도 처음에는 마음이 평화로워집니다. 계속 참았기 때문입니다. 계속 불안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물론 그 상태는 얼마가지 않습니다. 전쟁과 싸움은 결국 댓가를 요구하기 마련이고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비극속에서 우리는 평화를 다시 갈구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다시 평화가 올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평화 역시 공짜로 저절로 지켜지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다시 살얼음판을 걷듯 유혹에 저항해야 합니다. 

 

무지는 힘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산다는 것은 돌처럼 그냥 존재하는게 아니라 자기를 끝없이 유지하려고 하는 노력을 포함합니다. 생물학에서는 그걸 항상성이라고 하죠. 우리가 권력욕의 화신이 아니더라도 자기를 지키며 사는 것도 다 나름 어떤 힘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마구 휘둘리며 사는 것을 제대로 산다는 거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실에 눈을 돌리면, 바보처럼 살고, 수치스러운 것을 수치스럽지 않은 척하면서 살면 우리는 한동안 편안해 집니다. 개돼지 취급받으면 돼지 흉내를 내며 사는 겁니다. 거기에 익숙해 지면 돼지 취급 받는게 분노스럽지도 않게 됩니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라는 것은 우리의 포기를 말합니다. 무력한 존재로 살라는 유혹을 말합니다. 하지만 인간답게 산다는 것, 나로서 산다는 것은 공짜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불안과 싸워야 하고, 깨어있어야 하고, 두려움과도 싸워야 합니다. 포기함으로서 얻는 에너지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