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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게 취미인 사람들

격암(강국진) 2023. 2. 5. 11:51

23.2.5

한국에는 일중독자가 많다. 그건 꼭 나쁜 것은 아니고 열심히 일하는 것, 부지런한 것이 왜 비판받아야 하는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으며 어쨌거나 이건 내 취향이니 남이 뭐라고 할 일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중독자는 알콜중독자처럼 그런 행위가 과도한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중독이란 단어를 쓰지 않는다. 예를 들어 건강을 해치면서 일하는 사람은 본인의 행복뿐만 아니라 경제적 의미에서도 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푼돈을 아끼고 벌기 위해서 무리하게 일하고는 그로 인해 벌어지는 병원비가 더 큰 것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면 길게 보면 오히려 일을 해서 돈을 잃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중독자들은 대개 자신의 건강에 자신을 보인다. 하지만 사실 일중독은 언제나 건강을 해치고 그들의 노년을 힘들게 한다. 그리고 일중독에는 그 자체의 다른 중대한 문제들이 있다. 

 

한국의 노인 세대에는 일중독자들이 특히 많이 계시는데 그래서 그것이 세대간 갈등의 원인이 된다. 젊은 세대는 종종 나이가 드셔서 뭘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이미 많지 않으신 분들이 그저 조용하고 편안하게 사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일중독 증상이 있는 노인들은 자꾸 몸을 움직여서 몸을 상하고 사고를 치시기 때문이다. 노인들이 취미로 하는 농사를 감당할 수 없게 크게 한다던가 청소를 잘하는 수준을 넘어 결벽증 환자처럼 하신다던가 감당할 수 없는 양의 음식들을 만들어 나눠주는 일을 계속 하신다던가 하는 것은 한국에서 아주 보기 쉬운 일이다. 

 

그런데 사람은 왜 일중독에 빠질까? 가장 흔한 이유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즉 10원 100원이라도 벌어야 인간답게 살 수 있기 때문에 아둥바둥 살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요즘은 워라벨이라고 일과 레저의 균형을 말하기도 하지만 그건 우리가 이미 선진국이 된 한국에 살기 때문이고 그중에서도 비교적 부유하고 한가한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입시생에게 워라벨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은가. 그게 아니라도 아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는데 무서운 세상을 살아야 하고, 거기에 어쩌다 보니 부양해야 할 가족도 줄줄이 있는 경우에는 워라벨같은 소리는 배부른 소리다. 요즘도 그렇지만 과거에는 더더욱 그랬는데 지금의 노인세대는 나이가 차면 즉 20살이 좀 넘으면 직업이 있건 없건, 재산이 있건 없건 결혼하고 애를 낳는 일이 흔했기 때문이다. 요즘도 흔한 말이지만 돈은 결혼해야 모인다라는 말은 옛날에는 정말 확실한 진리처럼 반복되었다. 애들 등록금이 아슬아슬하고 아이들이 신발에 구멍이 나도 신고 다녀야 하는데 워라벨같은 소리를 할 부모가 얼마나 있겠는가.

 

결국 그 노인들은 지나친 책임을 짊어지고 너무 오랜간 그렇게 산 것이다. 그런 생활이 남긴 트라우마가 바로 일중독이다. 이제 더이상 그런 걸 할 필요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하면 안되는 데도 그걸 계속 하는 이유는 대부분 정신적 결핍때문이다. 일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한 것이다. 일하고 있지 않으면 공허한 것이다. 여가시간에 채우고 기를 자기 자신 같은 것은 젊었을 시절 한계를 넘어 일하던 어느 시절부터 이미 사라지고 없다.  이제와서는 여가시간을 보내는 방법도 잘 모른다. 취미나 취향이 단순하다. 외식을 잘 해보지 않았으니 맛집탐방같은 걸 할 줄도 모르고 영화관이나 연극공연같은 걸 보는 취미도 없다.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결국 취향이란게 단순해서 먹고 마시는 것 뿐이다. 아는 만큼 세상이 보인다고 하는데 자신이 아는 것은 일뿐이니 세상이 재미가 없다. 이제는 일을 하고 있을 때만 마음이 편안해 지는 것이다.

 

워라벨을 말하는 시대라고 해서 요즘 젊은 사람들도 한가한 것은 아니다. 그럴 수가 없다. 가진 것은 상대적이라서 옛날 세대에 비하면 훨씬 화려한 삶을 사는게 요즘 청년들이지만 그들도 절박하고 그들도 한계까지 몰린다. 예를 들어 요즘 젊은 세대는 학원중독에 빠져 있다고 한다. 워낙 어릴 때부터 하루 24시간을 잠자는 시간 빼고는 전부 학교와 학원으로 다니는 일을 많이 해서 그런 상황에 너무 익숙하다는 것이다. 그들도 학원에 있을 때 마음이 편안하고 누가 옆에서 뭘 가르쳐주고 시켜야 마음이 편안해 진다. 학원은 평생 그들의 놀이터였다. 그들은 커서도 여가시간을 학원과 비슷한 곳에서 보내려고 한다. 그들은 명령을 듣거나 명령에 저항하는데 너무 익숙하다. 어느 쪽이든 그건 책임자의 입장은 아니다. 그러니까 30이 넘어도 어린애 같은 면이 남아 있다. 어쩌면 요즘 결혼연령이 늦어지는 것은 독립하여 가장이 되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일이 싫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980년대나 그 이전에 어린 시절을 보냈던 세대는 요즘의 젊은 세대에 비하면 마구 풀어놓고 키운 세대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는 자신과 대화하고 친구와 대화하고 몽상에도 빠질 시간이 있었으며 자기 나름대로 클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그때도 삶이 편안하기만 하지는  않았지만 말하자면 어른들은 알아서 크라는 태도를 가졌었다. 아마도 자기가 바빳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요즘 세대는 알아서 클 시간이 없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모든 것을 간섭하는 어른들에게 둘러 싸여 있다. 어른들은 친구들과의 교우관계가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부정한다. 사회성을 기를 필요는 있지만 진짜로 사회관계를 가지지는 말라는 식이다. 엄마 아빠가 시키는 걸 다 하기도 불가능하다.   

 

부양가족에 대한 책임, 남에게 뒤쳐지기 싫다는 생각, 차별받고 무시 받는 것이 분하다는 생각, 성공과 실패에 대한 중독과 공포 그도 아니면 그저 이 크고 무서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우리를 한계에 까지 밀어대고 종종 그 한계를 넘어 버린다. 그리고 그럴 때 일중독자가 탄생한다. 그들은 사는게 너무 무서워서, 사는게 너무 힘들어서 생겨난 병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일중독이 치유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여러개의 세계를 거친다. 그리고 성장함에 따라 달라진 환경에 다시 자기를 적응시킨다. 과거의 작은 세계에서 몸에 생겨난 습관은 이제 조절되거나 완전히 잊혀진다. 그러나 이게 언제나 쉽지는 않고, 얼마나 오랜동안 하나의 세계에 갇혀 있었는가에 따라 상황이 다르다. 

 

자신을 한계에 까지 밀어부치는 일은 종종 필요하다. 그래서 일중독자처럼 일하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문제를 만든다. 전쟁이 끝났는데도 여전히 전쟁터에 있는 것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가지는 트라우마처럼 일중독이라는 병이 그 사람을 어느 정도 망가뜨린 것이다.

 

일중독의 한가지 문제는 무의미한 일을 자꾸 해서 오히려 크게 보면 일의 효율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미친 듯이 일하고 있어 보이지만 그 모습은 마치 꼭 해야 할 일로 부터 등돌리고 별로 급하지 않거나 큰 이유가 없는 일을 하면서 세상으로부터 도피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일중독자는 역설적으로 일을 많이 못한다. 주변을 둘러 볼 여유가 없고 일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여유가 없고 그냥 무의미한 어떤 일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일중독의 다른 문제는 그것이 감옥과 같이 그 사람이 변하는 것을 막는 다는 것에 있다. 요즘 처럼 세상이 빨리 변하는 시대에 변하지 못하는 병은 심각한 결과를 남길 수 있다. 일중독이 병인 이유는 단순히 일을 많이 해서가 아니라 특정한 행위를 반복하는 일에 중독되어 변화를 거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정상과 비정상은 엄밀하게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대부분 인생의 고비고비마다 불운한 상황과 부딪힌다. 그런 상황에 까지 몰리면 사람이 회복할 수 없이 망가지지만 그래도 살다보면 그걸 감수하고도 자기를 던질 수 밖에 없는 때도 있고 그것이 어쩌면 자기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고려해도 일중독은 분명 어느 정도 한계이고 실패다. 우리는 뭔가에 갇혀 버린 것이다. 그것이 죽을 때까지 큰 문제를 만들지 않으면 문제가 없거나 심지어 사회적 존경까지 받겠지만 환경이 조금만 변해도 그토록 괜찮던 사람이 완전히 망가질 수도 있다. 우리가 일중독을 질병으로 여기고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일하느라 꽃따위는 볼 시간이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미 꽃을 봐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을 때 내 안에서 뭔가가 망가졌구나 하는 생각쯤은 해야 한다. 자랑할 일이 아니다. 더구나 그런 문제는 그 열심히 했다는 일에도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