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암(강국진) 2023. 5. 31. 15:19

23.5.31

좋은 세상을 위해서 우리는 좋은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시스템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시스템이 미래를 완전히 결정해 버리는 어떤 것으로 생각한다. 이에 따르면 어떤 잘못된 결과가 나왔을 때 그 이유는 오로지 그 시스템에 존재하는 법규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그걸 사용하는 인간과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지하철 시스템을 생각해 보자. 우리는 쾌적하고 빠른 지하철 시스템을 원한다. 그런데 이게 그걸 사용하는 사람과 상관없이 존재할 수 있을까? 지하철 안에 치안 문제나 성추행 문제가 있다고 해보자. 그럴 때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더 많은 경찰을 배치하고 더 많은 CCTV를 설치했으면 좋았을 텐데 이건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이다. 지하철에 무임승차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그럴 때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러니까 표를 가지고 있는지를 더 철저히 검사하는 절차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건 시스템의 오류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경찰이 득실거리고 CCTV가 넘쳐나며 사람들을 일일이 검표하면서 귀찮게 하는 시스템을 만들면 정말 그것이 이상적인 시스템일까?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축구를 하면서 경기의 규칙만 똑같으면 동네축구나 프로축구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똑같은 시스템도 독일과 한국과 중국에서 시행했을 때 그 결과는 천양지차일 수 있으며 어떤 종류의 규칙이든 규칙을 도입하면 그것은 비용이 들고 무리한 사례가 나타나며 사람들을 귀찮게 하는 일이 되는 면이 있기 마련이다. 

외국 사람들이 비교적 치안이 좋은 우리나라에 와서 초등학생이 혼자서 등교하고, 상점이 길가에 물건을 쌓아놓고 영업을 하는 것을 보고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납치범이 있을 수도 있고 도둑이 있을 수도 있지 않냐고 말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중에 소수이기는 하지만 몇몇은 마치 훔칠 수 있게 만들어 놓으면 훔치는게 당연하니 그렇게 만들어 놓은 사람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표검사를 안하면 누가 표를 사겠는가. 표검사를 안하는 사람이 잘못이 아니겠는가 이렇게만 생각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최종적이고 객관적으로 좋은 시스템이란 없다. 왜냐면 언제나 그 시스템안에는 사용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 사용자가 다를 뿐만 아니라 같은 사용자도 같은 시스템을 쓰다보면 적응이 일어나서 상황이 바뀌는 일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시스템의 개혁에 대해서 말할 때에는 몇가지를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스템은 이왕이면 간단힌게 좋고 되도록 바꾸지 말아야 한다. 복잡한 시스템은 머릿속에서나 좋지 실제로는 시행하면 누군가가 구멍을 찾아내기가 더 쉽다. 물론 위에서 든 예들이 보여주듯이 시스템이 복잡해지는 이유는 있다. 지금 문제가 되는 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이런 법을 만들자, 저런 규칙을 도입하자는 주장을 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차분히 정말 문제의 핵심이 그게 전부인지를 생각하고 사람이 문제라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게다가 일단 하나의 시스템에 익숙해 졌는데 그걸 개선하겠다고 바꾸면 혼란이 인다. 그 혼란이 그렇게 간단한 것도 아니고 비용이 안드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의 도로명 주소는 오랜 준비기간 끝에 2014년에 전면 시행되었다. 그런데도 2023년 현재도 도로명 주소는 완전히 정착하는 것하고는 거리가 멀다. 여기저기에서 이 주소를 썼다가 저 주소를 썼다가하니 주소가 두개가 생긴것같다. 도심에서의 교통사고를 줄이겠다고 도시내에서는 시속 50km로 제한을 가하자 매우 붐비는 곳이나 그렇지 않은 곳이나 다 50km가 되어 비현실적으로 느끼게 되는 경우도 많다. 문재인 정부는 검찰개혁을 위해 공수처법을 실시하고 검수완박 법안을 추진했으나 결과적으로 나라가 광분하는 검찰때문에 살기가 힘든 지경이 되고 말았다. 

개혁이란게 무조건 조금씩 조금씩 해나가는 것은 아닐지 몰라도 한방에 뭐가 될 수 있을거라는 생각만큼 어리석은게 없다. 문제는 법이 아니라 사람인데 사람이 법만 바꾸면 바뀌지 않는다. 사람이 희망이고 사람이 절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