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현실
23.8.11
세상에는 시스템이 있고 법이 있고 조직이 있다. 예를 들어 수사는 형사가 하고, 기소는 검사가 하고, 변호는 변호인이 하며, 판결은 판사가 내린다는 식의 시스템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 경험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 시스템이란게 형식적인 구조대로만 움직인다고 믿지 않는다. 여기에는 몇가지 모순적인 현실이 있다. 형식만 강조하면 세상에 되는 일이 없고, 형식을 무시하면 그것 나름대로 되는 일이 없다.
그 형식이란 건 말하자면 기계의 설계도 같은 것이다. 조직은 수학 정리를 증명하는 논리적인 단계처럼 혹은 기계를 구성하는 부품들처럼 이런 저런 명분과 논리속에서 형식적 구조를 가지며 당연히 이 구조는 매우 뛰어난 사람의 사상을 반영하고, 많은 경험이 누적되어 만들어 진 결과다. 그러니까 언뜻 보면 이 형식을 무시해도 되는 것같지만 그걸 무시하면 전체 시스템이 무너진다. 요즘의 조직들은 거대한 정밀기계와 같아서 부품들이 제자리에서 자기 일을 안하면 엉망이 되기 때문에 형사가 판결을 내리거나 판사가 변호를 하면 특정한 사안에서는 정의가 실현되는 것같아도 결국은 더 큰 피해가 생기기 쉽다. 괜히 조직의 구조를 그렇게 만든게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은 자기 판단이 있겠지만 동시에 겸손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세상일이 그렇게 조직 논리대로 되는게 아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세상의 복잡함은 조직의 복잡성을 능가하기 때문에 형식만 따지다 보면 되는 일이 없거나 니일 내일 따지다가 백만원들여서 할 일을 1억들여서 하게 된다. 모두가 법적인 의무만 다하는 세상이야 말로 지옥이다. 우리가 모두 어딘가에서는 선을 넘고 있기 때문에 세상은 그럭저럭 살만한 곳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공무원이든 회사원이든 아니면 어떤 일을 하든 다 자기 자리에서 어느 정도의 자율권을 가지고 회색지대에서 일하는 부분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 회색지대가 그 사람의 권력이 될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일을 견딜만한 것으로 만들어 준다. 형사는 법을 지키며 수사해야 맞다. 하지만 학부형이 선생님에게 갑질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사람답기만 한게 아니다. 그러니 범죄자를 대하며 수사를 하는 형사들이 정말 100% 법만 지키려고 하면 그건 합법적 태업처럼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자율권을 줘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그 자율권을 가지고 나쁜 일을 하는 형사가 나올 것이다. 검사도 그렇고 판사도 그렇다. 이게 문제다.
이상적 시스템이란 결코 모든 경우를 법으로 다 정해놓아서 사람들이 법대로 하는 시스템이 아니고 대강의 조직만 있는 가운데 사람들이 자기일을 자율권을 어느 정도 가지고 추진하는데 각각의 사람들이 깨어있고 양심있는 사람인 경우다. 이 마지막이 정말 중요한데 아주 자주 잊혀진다. 문제는 조직에만 있는게 아니다. 사람도 그 이상으로 문제다. 음주운전해결책은 강한처벌에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비현실적이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이런 저런 이유로 법들을 잔뜩 엄하게만 만들어서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데 열심이 된다. 사람의 시야는 지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그런 정의는 교통순경이 교통신호만 잘 지켜지면 사람이 죽건 나라가 망하건 상관하지 않겠다는 식의 정의가 되기 쉽다. 결국 깨어있고 양심있는 사람이 다수가 존재하지 않고서는 어떤 조직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일이 되게 만든다. 그 사람들이 본인들의 자유를 이기적이지 않은 목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조직이 돌아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나는 선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의사나 검사들은 자기를 볼 때 당연히 우리는 선하고 깨어있는 사람들이므로 더 많은 자율권이 있어야 하고 우리를 견제하는 것은 악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의사나 검사도 힘들기 때문이다. 기소권 독점 못하는 검사, 수술실 녹화당하는 의사는 살기가 힘들 것같다. 그들만 힘든 건 아니지만 그렇다. 검사되기가 얼마나 어려울까? 그런데 검사의 공식 월급이 얼마일까? 검사에게서 자율권을 빼앗고 결과를 내라고 하면 누가 검사를 하려고 할까? 의사는 몇시간이나 일하고 얼마나 공부해서 되는가. 그런데 의사에게 이런 저런 특권을 빼앗아 가면 누가 의사를 하려고 할 것인가?
그런데 일반 시민들이 보면 의사나 검사들이 가지는 엘리트 의식과 피해의식은 대개 이해가 안된다. 첫째로 그들은 고리타분한 학창시절때 시험성적으로 그 엘리트의식을 출발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의사나 검사는 뭐든지 할 수 있는 천재라는 식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그들만큼 현실을 모르는 사람도 없는 것같다. 교과서나 법전만 파다가 그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많은 것을 아는 엘리트라고 생각하지만 일반 시민들이 보면 착각도 그런 착각이 없다. 그들은 그냥 특정분야의 전문가일 뿐이다. 그러니 그들이 각별히 더 양심적이고 깨어있다는 느낌도 받지 못한다. 누구나 그렇듯 전문 분야를 벗어나면 무식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많다. 의사나 검사가 아니라 공무원이나 선생님이나 자영업자나 건축업자등 모든 종류의 직종을 집어넣어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
이런 현실속에서 어떤 사람들은 법이나 조직이나 명분이란 건 그저 헛소리라고 생각한다. 빽있고 권력있는 사람들은 다 법따위 안 지키고 산다고 생각하며 나도 기회만 된다면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애초에 정의를 믿지를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그래도 세상을 지키는 것은 이 조직이니 비록 세상이 망하는 것같아도 나는 이 조직의 일개 부속품으로서 내 할 일을 다할 것이고 그래도 세상이 망한다면 그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더 큰 세상에 대한 책임감이 없다. 자신은 얽매인 사람이므로 내앞에서 사람이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저런 걸 생각하면 결국 우리는 일종의 신앙심같은 것에 도달하게 되는 것같다. 세상을 법이니 개인이니 하며 나눌 수도 없다. 그냥 우리는 세상에는 이런 저런 문제들이 있지만 이 세상이 그래도 좋은 결과들을 만들어 나가기를 기도하는 마음이 된다. 좋은 이야기는 퍼지고, 벌받아야 할 사람들은 댓가를 받고, 세상을 묵묵히 지키면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결국 정당한 평가가 내려지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달까.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선택과 각자의 지식으로 나름 최선을 다해야 겠지만 결국에는 세상이 그리 해주기를 기원할 수 밖에 없다. 누군가의 논리나 정의감만으로 좋은 세상은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