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의 AI, 기업의 AI
올해의 화두는 인공지능 그중에서도 온디바이스 인공지능이 될거라고 한다. 온디바이스란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기계에서 인터넷연결로의 데이터 흐름없이도 작동하는 인공지능을 말한다. 구글이나 삼성에서는 이미 이런 온디바이스 인공지능 폰을 발표했고 애플도 올해안에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삼성 S24모델을 보고 인공지능 기능에 감탄하는 사람들보다는 여전히 카메라나 모양새에 주목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번역기술같은 것이 신기하기는 하지만 매일같이 쓸 것이 아니라서 아직 소위 말하는 킬러 앱이 없는 느낌이다. 나는 이것이 삼성이나 구글의 인공지능 기술이 아직 챗GPT 수준에 도달 달성하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여전히 AI를 왜 소비자들이 써야 하는가에 대한 개념 확립이 부족한 탓이 크다고 생각한다. 뭔가 대단한 일을 할 수도 있을 것같기는 하지만 그게 뭔지가 확실치 않으니 큰 돈을 써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인터넷 연결 이전의 피씨 시장같은 느낌이다.
인공지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며, 인간의 지능을 확장시키기 위한 기술이다. 이 점을 기억하면서 인간의 얼굴을 한 인공지능에 대해 생각해 보자. 많은 사람들은 신문 방송에서 생각없이 말하듯 인간과 비슷한 행동이나 외양을 가진 로봇을 보면 그것이 대단한 인공지능이라고 생각한다. 인간과 구분할 수 없는 로봇을 만드는 것이 인공지능 분야의 목표라도 되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을 던져 보자. 인공지능은 왜 인간의 얼굴을 해야 할까? 만약 당신이라는 개인이 인공지능을 쓴다면 당신은 이미 한 명의 인간이고 인간같은 목소리와 얼굴과 행동을 하고 있다. 당신은 당신이 인간이라는 점을 인정받고 싶은 생각이 없을 것이다. 너무 당연한 능력이니까 그렇다. 그런데 왜 인공지능이 인간의 얼굴과 목소리와 몸과 행동을 가져야 하는가?
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답들이 존재하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큰 답은 이것이다. 당신이 인간의 얼굴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얼굴이 없으니까 인간의 얼굴이 필요한 것이다. 이쯤 되면 독자분들중에는 어리둥절할 사람들이 있겠지만 여기에 미스테리는 없다. 인간의 얼굴이 없다는 '당신'이란 바로 기업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소비자를 만날 때 접객을 자동화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 접객 서비스는 인간의 얼굴을 할 필요가 있다. 왜냐면 소비자는 인간이고 인간은 인간에게 가장 친근감을 느끼고 신뢰를 주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일하는 로봇이 왜 인간과 같아져야 하는가? 왜냐면 이제까지의 공장에서는 인간이 일해왔고, 기업이 쓰는 공장 로봇은 앞으로도 공장안에서 인간과 함께 일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환경에서는 인간형 로봇이 기업을 대신해서 일하는 것이 여러모로 편리한 것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확장하기 위한 것이며, 인간의 얼굴을 한 인공지능이 기본적으로 얼굴 없는 기업을 위한 것이라는 두 가지 사실을 합치면 우리는 두려운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것은 인간의 얼굴을 한 인공지능을 만드는 것이 인공지능의 목표라고 생각하는 현실은 기업만 똑똑하게 만들어서 소비자인 개인들을 무력하게 만드는 미래를 위한 것이라는 결론이다. 인간의 얼굴을 한 인공지능이 기업 그리고 그 기업의 뒤에 있는 몇몇 경영자들의 능력만을 확장 시켜서 기업이 상대하는 노동자나 소비자인 사람들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그 인간의 얼굴을 한 인공지능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결론은 수없는 예외들을 무시한 결과이기는 하지만 인공지능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는 가운데 자본이나 정보에서 앞서 있는 기업들 중심으로 인공지능 사용이 확장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에 대한 걱정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노동자는 직업을 잃고 소비자는 기업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이다. 나는 다만 인간의 얼굴을 한 인공지능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이 점을 다시 지적했을 뿐이다. 인공지능이란게 원래 그런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다보면 우리는 우리를 실직하게 하고, 우리를 수탈할 무기개발을 응원하는 이상한 상황에 빠지기 쉽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의 발달은 정말 멈춰야 하는 것일까? 그건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올바른 반응은 인공지능을 기업이 아니라 개인들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자아를 가진 로봇이 아니다. 인공지능은 우리의 지능을 확장시키는 헬멧이나 슈트에 가깝다. 지금은 기업들만 그걸 뒤집어 쓰려고 하니까 사방에 인간의 얼굴을 한 인공지능만 보이게 된다. 하지만 개인들도 그걸 뒤집어 써야 한다. 그래서 더 지능적인 존재가 되어서 자신을 지키고 직업을 창출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온디바이스 인공지능이란 건 그곳으로 가기 위한 한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인공지능 안경이나 인공지능 핸드폰을 몸에 지닌다는 것은 인공지능을 뒤집어 쓰는 일이다. 그래서 더 똑똑해 지는 것이다. 이런 말은 추상적이기 때문에 알아듣기가 힘들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바람직한 소비자용 인공지능의 한가지 예를 가지고 있다. 그건 바로 네비다. 네비는 인공지능이다. 다만 매우 제약된 형태일 뿐이다.
이 네비의 예를 통해 인공지능을 뒤집어 쓴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설명해 보자. 요즘 인공지능이 발달하자. 챗GPT같은 것을 써서 그 시연을 보이는 일이 많다. 예를 들면 나는 내일 부산에 가려고 하는데 2일 머물꺼야 이 여행을 계획해줘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인공지능이 이 여행을 계획해서 교통편이나 호텔 예약, 관광일정 같은 것을 잡아 준다. 이건 이미 있는 기술이다.
그렇다면 이런 기술이 네비와 같은 수준일까? 그렇지 않다. 네비를 써서 운전하는 사람입장에서 보면 이건 목적지를 쳤더니 경로를 찾아서 나에게 수원을 거쳐 대전을 지나 부산으로 가라고 말만 해주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네비는 그런 경로를 잠깐 보여준 다음에는 모든 갈림길에서 어느 방향으로 틀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네비를 쓰는 반자율주행 자동차는 아예 네비가 찾는 길을 따라 자동으로 차를 몬다. 그러니까 네비 정도의 인공지능 서비스란 자동차에 타서 부산에 가서 2일 정도 놀다 오고 싶어라고 말하면 자동차가 일정을 만들어 보고 한 후에 알아서 움직이는 것이다. 사람은 그냥 타라고 하면 타고, 내리라고 하면 내리면서 계속 다음 행선지로 가면 된다. 처음에는 일정을 검토했겠지만 그걸 기억 못해도 인공지능이 알아서 계획대로 하고, 계획이 어그러지면 '새로운 경로'를 찾는 것이다.
이것이 만약 구매라는 것을 목적지를 향한 여행이었다면, 인공지능은 내가 원하는 제품을 찾기 위한 여정을 기획하고 그 순서대로 진행해서 제품을 주문하고 받는 일을 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소비자 평가 사이트 같은 곳에서 후보 제품군을 고르고, 후보들을 사람이 구경하면서 설명을 들은 후, 낙점을 하면 가장 싸고 빠르게 주문할 수 있는 방법을 인공지능이 찾아서 구매하는 여정을 인공지능과 함께 진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궁극에는 여행이나 구매같은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하루 일정을 모두 조율해주는 삶의 네비같은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 이 인공지능일 것이다. 이런 인공지능의 활동이 가지는 의미중의 하나는 당연히 기업으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이고, 나아가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은 모든 법적 권리나 소비자 권리를 인지하고 그걸 개인들에게 쓸 것을 권할 수 있다. 여러분의 소비를 조율하고, 금융 투자를 조율할 수 있다. 공부와 일과 연구를 도울 수있다.
이런 날은 그냥 상상이 아니냐고? 다시 자동차 네비로 돌아가보자. 네비는 이미 보편화되었지만 처음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네비보다 내가 더 길을 잘 찾는다면서 네비를 비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네비가 점점 더 좋아지자 요즘은 차에 타면 그냥 네비가 시키는 대로 운전하는 사람들이 많고, 길 외우기를 시도하지 않으며, 어딘가로 떠날 때도 목적지를 모르지만 가면서 네비로 찾겠다는 사람들이 다수다. 네비가 없으면 아무도 찾아올 수 없을 것같은 곳에 존재하는 레스토랑이나 커피숍도 꽤 있다. 이런 현실도 20년전에는 상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네비라는 구체적 예도 있고, 챗GPT같은 뛰어난 거대언어모델이 발표되어 내가 말하는 서비스가 현실화되는 것은 절대 상상이 아니다. 어찌보면 올해부터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물론 처음에는 마찬가지 현상이 있을 것이다. 사람이 직접 하는 것보다 서비스가 나쁜 게 있어서 이걸 어떻게 믿고 쓰냐고 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차차 인공지능을 뒤집어 쓰지 않고는 살기 힘들 것이다. 우리는 이미 스마트폰 중독현상도 보고 있다. 마찬가지다. 인공지능 중독이 있을 것이고 그 폐해를 막기 위해 때때로 우리는 그것에서 벗어나야 하겠지만 인공지능의 사용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미래에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기업도 인공지능을 많이 쓸 것이기 때문에 창과 방패의 싸움이 필요하다. 인공지능으로 무장한 기업앞에 맨 몸으로 서는 건 무모한 짓이 될 것이다. 키오스크 조작을 못해서 주문을 못하는 노인들이 요즘 가끔 있다. 미래에는 인공지능을 쓰지 못하는 사람들은 마찬가지로 사회생활이 무력해 질 수 있다. 사실 노인만 그런게 아니다. 이미 모든 사람이 문제를 겪고 있다. 어딘가에 가서 회원에 가입할 때 기다란 설명서가 뜨면 그걸 다 읽고 동의한다고 누르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인공지능은 순식간에 그걸 읽고 독소조항에 대해 우리에게 경고해 줄 수 있다. 우리는 이런 보호가 필요한 것이다.
인공지능은 처음에는 기업중심으로 발달할 수 밖에 없다. 특히 대중의 이해가 없다면 말이다. 기업중에는 대중에게 인공지능 기능을 팔아서 돈을 벌고 싶은 기업도 있지만 대중이 네비같은 걸 누가 쓰냐며 역시 길은 인간이 찾아야 한다고 계속 주장하면 인공지능화는 기업중심으로만 일어날 것이다. 인공지능이 뭔지 모르는 대중은 자신을 보호해줄 인공지능과 싸우고 그걸 멈추게 하면서 반대로 자신을 수탈할 인공지능을 응원할 수도 있다. 자연히 정부의 지원도 그쪽으로 가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개인을 위한 인공지능과 기업을 위한 인공지능이 어떻게 다른 모습을 가지게 되는지 같은 것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