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글모음/젊고 지친 사람들에게

매국노가 되지 않는 것은 처벌때문인가?

격암(강국진) 2024. 2. 5. 02:50

우리 막내는 내가 미국에서 연구원으로 있던 시절에 태어났다. 그래서 한국 국적은 물론 미국 국적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아이가 군대에 갈 나이가 되어 감에 따라 나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왜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 군대를 가냐는 식의 말을 들었던 것같다. 나는 그들중 대부분이 진지하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즉 남의 일이니까 그렇게 쉽게 말하지 그들도 같은 입장에 있다면 한국국적을 포기하고 외국을 떠도는 삶을 택하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국적을 포기함으로 해서 생기는 불편함이나 법적인 처벌을 떠나 혹은 군대에 간다는 것 자체에 대한 개인적인 가치관의 문제를 떠나서 생각해 보자. 우리가 매국노가 되지 않는 것은 처벌때문인가? 그러니까 예를 들어 외국군이 한국을 침략하면 나가서 싸우다가 죽을 수도 있으니까 나라를 팔아먹고 도망가는 것이 당연하고, 누가 적당한 보상을 해준다면 나라를 팔아먹거나 법을 어기는 것은 당연한 것인가?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처벌이 무서운 것뿐인가? 그러므로 힘든 문제가 생기면 법을 어기고 억지를 부려서 편하게 편하게 살지 않은 것은 '교과서적인 헛소리에 속은 어리석은 행동'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나쁜 짓을 하는 일이 절대 없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독재자를 몰아내기 위해 교통신호를 어기는 일이 있을 수 있고, 자식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절도를 저지르는 일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보다 사소한 일에서도 뭐든지 법적으로 윤리적으로 명분이 절대적으로 확실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다만 나 자신을 싸게 팔아넘기는 일이 싫을 뿐이다. 이것은 결국 스스로의 자존감을 갉아먹는다. 쉽게 법을 어기고 쉽게 나라를 팔아먹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싸게 팔아넘기고 있으며 그것은 결국 내적인 고통이 되어 돌아온다. 자존감이 없는 사람은 그걸 보상하기 위해 값비싼 댓가를 치루게 된다. 

 

사소하지만 구체적인 예에서 생각해 보자. 동네청소를 해야 하는데 나가기가 싫었다. 그래서 나는 아프다는 거짓말을 했다고 하자. 나는 이런 행동을 해서 조금쯤 편해졌을 지 모른다. 그런데 그 댓가는 동네청소를 하러 나가는 일 정도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내 이웃에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 거짓말을 절대 들키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내가 그걸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유혹에 넘어가는 일이 흔해지면 나는 점점 더 거짓말을 안하고 사는 사람은 없다는 둥, 누가 안들키는데도 자진해서 나가냐는 둥 하는 말을 하면서 살게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오히려 사소한 것에 대한 거짓말이 더 치명적이다. 왜냐면 나는 스스로 내가 사소한 것을 위해서도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배우기 때문이다. 이런 나는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믿을 수가 없을 것이다. 자존감이 높을 수가 없다. 사소한 거짓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은 대개 기생충같은 인간이 되고 만다. 즉 그들은 누군가의 명령을 듣고, 누군가에게 기대어 살아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이다. 스스로 자존감이 높지 않으니 진짜로 중요한 일을 결정하자고 하면 자신이 아니라 타인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냥 남따라 하며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기꾼은 누구보다도 사기를 당하기 쉽다. 

 

게다가 거짓말이나 법을 어기는 일은 전략적으로도 불리할 때가 많다. 거짓말이란 행동은 다른 모든 행동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행동의 결과에 대한 하나의 이론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 이론은 그런 선택을 함으로서 우리의 삶이 더 편해질 것이라는 이론이다. 그런데 세상일이란 모르는 것이다. 우리가 이제까지 살아온 일들을 돌아보면 사소한 거짓말들로 일이 끝까지 좋아지는 일은 별로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동네청소는 귀찮지만 사실 그냥 해야 하는 일이라고 여기면서 나가면 별일이 아닐 수 있고, 건강에 좋을지도 모르고, 이웃과 친해져서 뜻밖의 이득이 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우리의 선택 뒤에는 하나의 이론이 있으며 법을 어기거나 나라를 팔아먹거나 거짓말을 하는 선택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윤리를 떠나 이것을 하나의 이론으로 보았을 때 우리는 거짓말을 잘하고, 법을 어기고, 나라를 팔아먹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이론은 매우 매우 복잡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말하자면 남들은 바둑을 두는데 자기는 이따금씩 바둑의 규칙에 없는 속임수를 써서 바둑을 쉽게 두고 이기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 생각은 때로 옳을 수도 있지만 애초부터 바둑을 두는데 집중하지 않고 속임수부터 생각하는 사람들이 과연 바둑을 잘두게 될까? 바둑의 규칙을 받아들이고 그 제약안에서 조금이라도 더 잘두겠다고 노력하는데 집중하지 않고 처음부터 기회만 생기면 속임수를 쓰겠다는 생각에 가득 찬 사람이 과연 바둑에서 이기게 될까? 바둑은 인생보다 간단하고 금방 끝나는 것이다. 한판을 지면 다음판을 시작하면 된다. 인생이 과연 그런가? 

 

인생은 최대한 단순하게 사는 것이 좋다. 왜냐면 그렇게 노력해도 인생은 복잡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생이 복잡해지면 사는 법은 더 복잡해지고 나중에는 내가 뭘 하고 있는 것인지, 그걸 왜 그렇게 선택했는지 알 수가 없어진다. 집을 짓다보면 화장실이 좀 마음에 안든다는 사실에서 출발해서 집 전체를 고치게 되는 일이 일어나기 쉽다. 그러니 인생을 복잡하게 사는 사람들은 짧게 짧게 보면 기발한 생각을 해서 남들보다 더 잘 사는 것같이 보일지 몰라도 결국은 그냥 마구 살 뿐이다. 결국은 허무하고, 무의미하고, 쓸데 없는 고통에 시달릴 뿐이다. 작게 작게 보면 엄청나게 열심히 판단을 하고 있지만 크게 보면 모두 쓸데 없는 일로 인생을 허비한다. 

 

이런 걸 생각하면 쉽게 자신을 거짓말이나 탈법에 팔아넘기는 일이 결코 현명한 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그것이 윤리적인 일이라거나 들킬 가능성이 있다거나 처벌이 무섭다거나 하는 것 이전에 있는 일이다. 그런 일은 우리를 너무 큰 불확실성들에 빠지게 만든다. 나는 어쩌면 단 한번의 거짓말을 하고 그것이 절대 들키지 않으며 그걸로 평생 나와 내 가족을 잘 돌볼 수 있게 된다면 그런 거짓말을 할지도 모른다. 그 거짓말의 결과가 어느 정도인가가 또 문제겠지만 말이다. 나는 어쩌면 어떤 소신에 의해 법을 어기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이 나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그저 절대는 없다는 것때문에 말하는 것이지 그다지 현명하고 매력적인 일은 아니다. 

 

인생은 불확실한 일들의 연속이다. 그리고 우리는 때로 스스로 불확실성속으로 뛰어들 필요도 있다. 하지만 회사에서 일하느니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는게 돈을 더 잘 번다는 생각은 대개, 정말 대부분 옳지 않다. 불확실성으로 뛰어든다는 것은 충분히 지금있는 규칙안에서 최선을 다했을 때 필요에 의해서 생겨나야 하는 것이다. 거짓말이나 탈법이나 나라를 팔아먹는 일에 대해 별일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 태도는 주유소에서 하는 불장난이다. 모든 것을 다 태워먹을 수 있다. 우리는 결코 우리 자신을 싸게 팔아넘겨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