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와 허세
명절이라 여러 친인척을 보다보니 왠지 여유와 허세라는 말이 생각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여러사람이 모이면 허풍섞인 말들이 농담으로 오가고 자연스레 비교가 일어나고 누군가는 초라해지는 일이 있기 쉽기 때문일 것입니다. 누군가는 결혼을 하고 취직을 하고 재산을 모으고 새 차를 사고 비싼 장신구를 차고 오며 해외의 여행지에 오고 간 것을 자랑하게 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진짜로 여유가 많은 사람은 세상에 참 드믑니다. 여유라는 말은 자연히 돈과 관련될 일이 많기 마련인데 돈의 문제만 보더라도 돈이 많다는 것과 여유가 있는 것은 서로 다른 것이라는 점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돈을 더 원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여유가 없습니다. 지금 가진 것은 충분치 못하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생각해서는 발전이 없을 것이니 그래서는 안된다고 까지 생각해서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게 까지 채찍질 합니다. 그러니까 월급 2백만원이면 5백인 사람을 부러워 하며 5백이면 천만원인 사람을 부러워하고, 천만원이면 빌딩가진 사람을 부러워 합니다. 어느 경우에나 여유는 없으며 흔히 남들이 자신보다 더 잘 산다고 생각합니다. 보통의 기준을 한없이 올립니다. 이는 돈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라던가, 유명세라던가, 외모라던가, 누군가로부터의 애정같은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주변을 넓게 둘러보질 못합니다. 나에게 부족한 걸 채우기 바쁘니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내 코가 석자라는 말처럼 내 일만 볼 뿐입니다. 여유라는게 흑백론적으로 있다와 없다로 구분되는게 아니라 자연히 정도의 문제인데 그 정도가 심한 사람들은 그래서 주변에 민폐만 끼칩니다. 나는 자식들이 너무나 성공했다면서 자랑하는 할머니중에서 불쌍하게 사는 분들을 본 적이 몇번이나 있습니다. 그들은 교수가 되고 사장이되고 개업한 의사가 된 자식들을 자랑하지만 정작 그 자식들은 그보다 더 성공하는데 바뻐서 그 할머니는 아주 외롭게 살며, 자식이 이미 그렇게 성공했지만 그 자식들의 덕을 보면서 산다기 보다는 여전히 그 자식들의 잡일을 하고, 그 자식들에게 더 많이 재산을 나눠주는 일만 하며서 살고 있는 것같아 보였습니다. 그 자식들은 여유가 없습니다. 이미 새로운 세상에서 살고 있는 그들은 이제 이정도면 나도 성공했다같은 생각을 하기 보다는 난 망하기 직전이니 살아남겠다는 정신으로 살고 있겠죠. 나의 성공을 나누고 함께 누리겠다는 생각보다는 더 성공하기 위해 주변의 자원과 시간을 더 많이 끌어들여야 한다는 절박함만 있을 겁니다. 그러니 혼자가 되어 나이든 할머니의 사정따위는 들리지 않을 겁니다. 내 코가 석자니까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직장인이나 학생인데 직장인이나 학생으로 살면서 여유있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다들 휴일이나 기다리고 아니면 졸업하거나 진급하면 지금보다 좋아지겠지라는 생각에 바쁜 일상을 참아내고 있을 뿐입니다. 화려한 여행이나 골프 친 일들로 혹은 비싼 옷이나 장신구를 쇼핑하는 일로 자신의 삶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도 반드시 진짜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뒤집어 말하면 그런 일들을 하지 않으면 자신의 삶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런 일에 몰두하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현실도피지요. 이 말은 여행이나 쇼핑이나 골프를 포함한 오락들이 모두 현실도피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런 차이가 있습니다. 맛집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좀 더 여유가 있는 사람은 그 음식을 맛볼 수 있게 천천히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보다 현실도피적으로 여행이나 오락에 매달리는 사람들은 허겁지겁 그렇게 하는데 바쁩니다. 마치 하나라도 더 약을 삼켜야 진통이 멈출 것같고, 여전히 진통이 견딜 수 없는 환자같이 조급합니다. 그러니까 여유있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모두 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정작 직접 보면 그리 여유있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일이 있을 수 있으며 그들의 오락이란 정말로 그걸 즐기는 일에 가깝다기 보다는 현실도피에 좀 더 가까워 보인다는 인상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쯤 되면 그들의 여유란 허세에 불과합니다. 자기 돈으로 1억짜리 시계를 사건 10억짜리 자동차를 사건 그것 자체가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스스로 즐겁기 때문이 아니라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거라면 그건 낮은 자존감과 자신의 심적인 여유없음을 가리기 위한 허세가 되는 것입니다.
여유란 우리의 일상이 주는 체험을 하나 하나 제대로 맛을 보듯이 살 수 있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자기의 삶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태도와 다르지 않거나 그것을 자연스레 포함하게 됩니다.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여유를 가지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애일 때는 그토록이나 중요해 보였던 몇가지 사건들이 어른이 되어서 보면 그게 다 무슨 시시한 일이었나 싶어지는 경우가 생기게 됩니다. 우리의 삶이 확장됨에 따라 우리는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유한한 우리는 흑백론적으로 여유가 있거나 없을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의 시야는 다 유한합니다. 누구나 어떤 의미에서는 여유가 없습니다. 죽을 날이 다가오고 있고, 걱정거리가 있습니다. 그래도 어떤 사람은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긴 시야를 가지고 자신의 삶을 삽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당장 오늘 작은 일이 생기면 내일 죽기라도 할 것처럼 초조합니다. 반대로 작은 좋은 일이 생기면 이제 세상 고민이 다 끝난것처럼 풀어지고 심지어는 오만해지기 까지 합니다. 평정한 마음을 유지하면서 은근한 즐거움과 행복을 누리면서 사는 것이 여유있는 삶입니다. 그렇지 못한 삶은 치명적인 실수와 후회가 있기 쉽습니다. 여유가 없으니 전재산을 투기에 걸기도 합니다. 아무 것도 안했으면 성공했을 삶을 굳이 망치기도 합니다. 그래서 여유란 소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