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과 자존감
사람들은 모두 한가지 비슷한 과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인생이라고 부를만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매순간, 매일 그리고 매주를 보내지만 그것들이 모여서 유년기가 되고 청년기가되고 중년기가 되며 이윽고는 인생이 된다. 우리는 이따금씩 뒤를 돌아보면서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런 평가가 반영되는 것이 바로 자존감이다. 나는 누구인가라고 질문했을 때 다른 사람이 부럽기만 한 사람은 결코 자신의 인생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자존감이 높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특징이 있다. 그들은 무엇보다 남의 의견에 민감하다. 즉 남들에게 비판받기 싫어하고 남들에게 칭찬받고 싶다. 이건 누구나 이렇다고 할 수 있지만 가만히 보면 사람들의 대응은 서로 다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되 그걸 참조할 뿐이며 결국 각자의 인생은 각자 사는 것이므로 자신을 높게 평가하지않는 사람들 사이에 억지로 끼어서 살려고 하지 않는다. 어쩌겠는가 그들이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을. 나를 반성하고 같이 살려고 노력도 해야 하지만 잘 안되면 그냥 각자 살면 된다.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자존감이 없는 사람은 그 대신에 싸우고 집착한다. 타인의 좋은 평가를 받아내야만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자존감의 문제가 발생하는 가장 흔한 예는 아마도 가족일 것이다. 부모라고 해도 결국은 타인이다. 부모가 자식을 모두 이해하는 경우가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그러니 부모의 평가가 절대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 부모가 되고 머리가 희게 되는 나이에 이르러도 가족으로부터의 특히 부모로부터의 평가에 지나치게 민감하다. 가족이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쉽사리 등돌릴 수 없기 때문에 가족이지만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의 행동을 가만히 보면 그들은 마치 부모로부터 인정받거나 형제 자매로부터 인정받는 것인 인생의 목표라도 되는 것인양 그것에 집착한다. 그들은 자기 자신도 그렇기는 하지만 그 가족의 일원이라는 부모와 형제 자매들도 그저 유한한 인간일 뿐이며 그들의 평가와 입장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결국 정말로 홀로 서기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생겨나는 자존감이 높지 못한 사람들이 가지는 또다른 특징은 외로운 것을 못견딘다는 것이다. 즉 그들은 사람들 사이에, 친구나 이웃과 동료들 사이에, 둘러 쌓여 있기를 바란다. 그렇지 못할 때 판단과 평가의 장애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누군가에게 칭찬을 듣고,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고, 누군가를 지배하고 명령하고 누군가에게 잘난체를 할 수 있어야 불안하고 우울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결혼을 했어도 이성으로부터 매력있다는 말을 들어야 한다. 그래야 자존감이 무너지지 않는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흔하고 비극적인 예도 가족일 것이다. 자식을 지배하는 부모의 예는 세상에 많다. 반드시 자식이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하는 경우가 아니라고 해도 부모가 자식을 떼어놓지를 못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누군가의 부모로만 파악하고 자식이 없이는 스스로의 인생이 전혀 의미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릴 때부터 나는 내 인생을 모두 희생해서 너를 키웠으니 너는 그걸 알아야 한다던가하는 식으로 자식에 대해 과도한 집착을 보이는 것이다.
자존감은 삶의 일관성과 큰 관련이 있다. 어른들은 종종 아이들에게 너는 꿈이 뭐냐고 묻는다. 하지만 그에 대해 잘 대답을 할 수 있는 아이는 드물다. 그렇다면 어른은 어떨까?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았을 때 나는 어릴 적부터 꿈이 있었고 그걸 추구하는 삶을 평생 살았으며 지금도 그걸 위해 나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어른들은 얼마나 있는가? 이것은 성취이전에 일관성의 문제다. 인생이란 긴 것이고 살다가 보면 우리의 생각이 바뀔 수도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뒤돌아 보았을 때 의미있을만큼 긴 기간동안 어떤 일관성을 가지고 추구한 것이 하나도 없다면 우리는 도대체 우리의 인생의 의미를 뭐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어떤 철학적이고 객관적인 의미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나는 건축이 좋아서 더 좋은 집을 짓고 싶은 생각에 그걸 공부하고 탐구하는 일을 주로 하면서 살았다고 하자. 그런 삶이 정말 보편적으로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있다. 좋은 집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서 그것이 인생의 궁극의 의미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뭔가를 일관성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은 나는 이러저러한 것을 10년 30년간 쌓아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이 뭐하나 없이 그저 주변사람들이 말하는 유행만을 쫒아서 살아온 사람은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해야 할 것인가? 그런데 자신이 자신의 꿈을 위해, 자신의 취향을 위해 자기 인생을 살았다고 말할만한 어른은 얼마나 되는가?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누군가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존감이라는 것은 자기 정체성이나 취향과 관련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 이다. 소수의 행운아를 제외하고는 우리는 모두 그저 먹고 살기에 바빠서 자기 취향이고 뭐고 세상에 휘둘리면서 산다. 매일 매일 일터에서 바쁘게 살고 얼마 벌지 못한 돈을 그저 먹고 사는데 쓰는 것이 전부인데 나를 찾는다던가 하는 일을 할 시간따위는 찾기 힘들다.
하지만 그 어떤 변명을 해도 결국 짐승처럼 먹는 것에만 신경쓰며 살았던 사람은 자존감의 문제를 겪기 마련이다. 어쩔 수 없이만 보냈던 시간은 우리를 조금씩 작게 만든다. 나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라는 변명을 누구에게 하겠는가? 다른 사람이 그걸 받아들여도 우리 스스로가 자존감에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사실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극한으로 몰려서 살지 않는다. 우리는 조금 더 부지런하고, 조금 더 욕망을 절제할 수 있었다. 조금 더 느리게 살 수 있었다. 술먹고 고기먹고 비싼 백을 사거나 비싼 차를 사는 대신에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때도 있었다. 무의미한 시간을 타인들과 웃고 떠들며 보내는 대신에 자기 자신과 좀 더 대화를 많이 나눴더라면 그 작은 차이가 우리의 인생을 크게 바꿨을 수도 있었다. 우리는 그 대신에 그냥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현실에 안주하고, 인기에 흔들리고, 스스로에게 변명을 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살지 않고 나름대로 자기 인생을 찾아서 자존감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해야할까? 그렇지는 않다. 타인들이 자존감이 있건 없건 그걸 나와 비교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그게 누구이건 결국 인간은 유한하다. 다시말해 누구나 앞에서 말한 자존감과 관련된 문제를 가진다.
중요한 것은 이런 것을 잊지 않고 너무 게으름을 부리지도 않지만 너무 서두르지도 않는 것이다. 행복과 자존감은 같은 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깊은 관련이 있다. 중요한 건 나의 행복이다. 그걸 위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자존감을 잘 보살펴줄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동의해주지 않을 때 그런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게 해서는 안된다. 결국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인생이다. 남의 기준따위 중요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