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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격암(강국진) 2024. 3. 27. 14:03

정치의 계절입니다.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오늘은 정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뭘까라는 것을 주제로 몇마디 써보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정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용의 경계라고 생각합니다.

 

정치는 결국 여러 사람들이 함께 사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 서로 조금씩 다릅니다. 심지어 같은 사람도 생각을 바꿉니다. 그러니 나와 뜻이 같다던가 다르다라는 2분법으로는 정치라는 것은 애초에 가능하질 않습니다. 정치는 어디까지나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공통의 목적을 위해 일하는 것에 대한 것이니까요. 서로 다른 것은 타협하고 관용을 베푸는 것으로 해결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모든 걸 용서하고 관용할 것같으면 애초에 정치를 할게 없겠죠. 그럴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여기 저기에 선을 긋습니다. 나는 이 선바깥에 있는 사람과는 절대 정치를 논할 수 없으며 그런 사람들이 권력을 가지게 되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관용의 경계이며 이 경계가 정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합니다. 왜냐면 자연히 우리는 우리의 관용의 경계 안쪽에 있는 사람들과 힘을 합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치는 집단적 행동이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힘을 합칠 수 있는가 하는 것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교과서적으로 말하자면 이 관용의 경계는 패거리주의로 들리고 차별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있어서는 안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즉 한국인이라면 어떤 다른 한국인이라도 배격하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관용의 경계를 말할 때 우리는 이것이 정치적 믿음의 경계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은 그 바깥에 있는 사람을 미워하고 적으로 여기며 차별하겠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우리나라에서 보통 보수당으로 말하는 국민의 힘에서는 절대 대통령을 배출해서는 안된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제 관용의 경계입니다. 하지만 불행히 저와 같은 경계를 공유하는 분들이 충분히 많지 않기 때문에 이 땅에는 자꾸 이명박, 박근혜, 윤석렬같은 대통령이 탄생하는 군요.

 

중요한 것은 제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보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모두 나쁜 사람으로 말을 하거나 그들에게 어떤 법적인 차별을 두고자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 경상도가 보수 정권의 지지율이 높으니 민주정권이 서면 경상도는 경제적으로 차별받아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죠.

 

그보다는 이건 이런 겁니다. 나는 지금 대한민국이 공화정을 해야 한다고 믿는데 어떤 사람들은 대한민국이 봉건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봉건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에서 정치적 권력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것이죠. 그리고 공화제를 하되 정치적 믿음과는 상관없이 모두가 공화국의 시민으로서 평등한 취급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 것이죠. 이건 이웃의 가난한 나라를 침략해서 식민지로 삼아 차별하고 착취해서 우리만 잘먹고 잘살자는 식의 제국주의적 발상도 아니고 패거리주의적 발상도 아닙니다.

 

제가 이 관용의 경계를 말하는 이유는 굳이 지금의 보수정당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지금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조국혁신당과 이번 선거로 가라앉을 것같은 정의당에 대해서 말하기 위한 것입니다. 저는 윤석렬정권을 매우 싫어하기 때문에 윤정권 퇴진론을 강하게 말하는 조국혁신당을 좋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의당을 비롯한 많은 진보정당은 기본적으로 싫어합니다. 그러니까 조국혁신당은 저에게 있어서 관용의 경계 안에 있는 사람들이고 진보정당은 바깥에 있는 사람들인 셈이죠.

 

진보정당이 저의 관용의 경계 바깥에 있게 된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들 스스로가 저같은 사람들을 자신의 관용의 경계 바깥에 세워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타협과 협동의 대상이 아니라 교화의 대상정도로만 둔 것이고 저같은 사람이나 보수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나 다 똑같다고 여긴 겁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이 국가의 권력에 접근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진보라는 개념 자체가 나쁘다고는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당을 세우고 정치활동을 하는 진보주의자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관용의 경계를 아주 좁게 삼았습니다. 즉 민주당 지지자들은 범민주진영이라는 개념속에서 진보정당도 성장하면 좋겠다는 식으로 생각했지만 진보정당들은 노무현과 이명박을 구분하질 않습니다. 박근혜와 문재인을 구분하질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결국 자신들만 자신의 관용의 경계 안에 있고 자신들을 제외하면 민주당이건 국민의 힘이건 모두 관용의 경계 바깥에 있는 겁니다. 이러니 결국 진보정당은 저같은 사람의 관용의 경계 바깥에 있게 된 것이죠. 그들은 권력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말만 그럴듯한 뿐 노무현과 문재인과 박원순도 포용하지 못합니다.

 

저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은 물론이고 박원순같은 분들에게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정치를 해서는 안된다고 믿습니다. 사람에게 공과 과가 있다고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럼 같은 논리로 이승만이나 박정희도 인정해야 하냐고 말할 지 모릅니다. 바로 거기에서 우리는 다시 관용의 경계라는 것을 기억해 내야 합니다.

 

가치와 신용의 문제는 쉽게 몇마디 말로 바뀌지 않습니다. 내륙국가인 몽고사람들은 새우를 먹지 못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낯선 새우라는 음식은 마치 바퀴벌레처럼 보일 수 있겠지요. 여기에 대해 새우와 바퀴벌레가 과학적으로 얼마나 다른가를 설명하려고 하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일이 못됩니다. 가치와 취향의 문제는 안받아들이려고 하면 얼마든지 변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인터넷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정의로운 사람인 것처럼 말하면서 무참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로 단정짓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들은 사실여부도 불분명한 의혹을 사실로 단정짓고 그게 옳은거냐 틀린거냐고만 묻습니다. 그들과 관용을 말하다 보면 이번에는 몇천억을 해먹은 사기범이며 파렴치한 폭력을 휘두른 살인범도 관용을 받는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계속 이번 재판에서는 이런 저런 사소한 일로 누군가가 어떤 대단한 벌을 받았는데 저번에는 엄청난 죄를 짓고도 용서받았다더라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게 됩니다. 좋은 예가 조국집안이었죠. 나라를 뒤흔든 동양대 자원봉사표창장 위조사건에 흥분한 사람들 그리고 4년씩이나 감옥에 갇힌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게 뭔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관용의 경계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그것을 어디에 둘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옳습니다. 선악으로 세상을 나누지 말고 그저 각자의 관용의 경계를 확인하는 것이 옳습니다. 설득을 위해 과학이니 윤리니 하는 말들을 꺼내 봐야 겉만 번지르르할 뿐 아무 것도 증명하지 못하는 혼동만 만들어 또다른 피해자만 만들 뿐이니까요. 사람들과 대화는 계속해야 겠지만 나와 관용의 경계가 확실히 다른 사람들과는 그렇게 대화를 많이 할 필요도 없습니다. 대화할 준비가 안된거니까요. 적당한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죠.

 

지금 돌풍을 불러 일으키는 조국혁신당은 이런 면에서 저에게 한가지 걱정거리이기도 합니다. 한국 정치판을 보면 필연적으로 다음 대선에서는 또 보수후보대 민주후보의 경쟁이 되겠지요. 조국혁신당도 크고 나면 집권의 욕심이 날 것입니다. 그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할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어느 쪽이든 크게 걱정하지는 않지만 그런 과정에서 민주진영 내부의 싸움이 벌어지기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그 싸움은 다시 다음 대선을 불안케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정권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저로서는 사람들이 한가지를 계속 기억했으면 합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 정권은 마치 외계인이나 외적이 우리나라를 침공한 상태와 같다는 겁니다. 외계인이 처들어와 인류를 위협하면 일본과도 손을 잡고 싸워야지요. 관용의 경계를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또 정의당 꼴이 나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