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아테네의 배신자
칼 포퍼가 쓴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고대 그리스에서 일어났던 펠레폰네소스 전쟁을 개인주의와 민주주의의 역사에 있어서 혁명적 사건으로 말한다. 이 전쟁은 기본적으로 아테네와 스파르타간의 전쟁이었는데 그 전쟁이 일어났던 근원적 원인은 해상무역의 증가와 인구증가로 인해 생겨난 민주주의 때문이었다. 스파르타가 대표하던 질서를 포퍼는 부족주의라고 불렀는데 이는 계급적 질서를 포함한 전통적 삶의 방식이 의심받지 않던 질서였다. 즉 이는 지배자는 지배자니까 지배하고 노예나 일반 시민으로 태어나면 태어난 대로 사는게 당연한 질서를 말한다. 이 질서속에서는 귀족으로 태어난 인간은 귀족으로 살아야 하는게 당연하다. 이것은 마치 태양이 동쪽에서 뜨는 것같은 당연한 자연질서다. 이것에 도전하는 것은 불경한 짓이다.
그런데도 이 부족주의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인구가 늘고 경제가 커지고 특히 해상무역이 활발해 졌기 때문이다. 무역같은 다른 도시와의 교역으로 이익을 내기 시작하자 그것은 전통적 부족질서와는 맞지 않게 된 것이다. 귀족은 귀족으로 태어났기에 지배하는게 당연한데 무역같은 일로 해서 돈을 번 사람들이 능력을 인정받으면 그게 전통질서와 안맞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전통질서란 능력제가 아니다. 그래서 해상무역이 강했던 아테네는 민주주의가 강했다.
문제는 아테네에도 특권의식을 가진 교육받은 귀족층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아테네와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그들도 아테네의 시민들이었지만 스파르타와 내통했다는 것이다. 그들로서는 전통적 질서라고는 하지만 결국 위 아래의 사람은 분명히 서로 다르다는 신념이 공동체 의식보다 더 소중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아테네는 전쟁에 지게 된다. 배신자가 있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해상무역으로 인한 민주주의의 번성과 부족질서의 몰락은 역사적 대세라서 결국은 민주주의는 승리하게 된다. 이 민주주의의 승리가 곧 개인주의의 승리이며 그 이후 개인주의를 달성하려는 혁명은 현대에까지 이어졌다고 포퍼는 말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열린 사회란 부족주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각각의 개인이 평등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회를 말한다.
포퍼는 인간의 이성을 믿었던 소크라테스는 스스로 민주주의 국가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릴 정도로 민주주의를 지지한 반면에 그의 우수한 학생인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배반했다고 말한다. 그는 옛것으로 돌아가자는 엘리트 주의 정치를 주장하고 진리를 아는 철학왕의 지배를 주장했다. 그래서 플라톤은 역사적으로 열린 사회에 반대했던 사람들의 사상적 원천이 되었던 것이다. 사회는 사람들의 뜻에 의해서 그 미래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법칙에 따라서 변하고 따라서 그 법칙을 이해하는 엘리트만이 사회를 지배할 자격이 있다는 사상은 그다지 많이 변화되지 않고서도 마르크스의 공산주의가 되었다고 그는 비판하고 있다. 단지 플라톤은 완벽하지 않은 사회는 완벽하지 않아서 쇠퇴한다고 말한 반면 마르크스는 사회는 진화하여 완벽한 상태인 공산사회로 수렴해 간다고 주장을 뒤집었을 뿐이다. 세상에는 변화할 필요가 없는 사회적 상태가 있으며 그것이 완벽한 상태라고 말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 공산주의를 비판한다는 이유로 한국의 보수세력을 옹호하는 책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이 책은 한국의 보수세력이야 말로 아테네를 배신한 아테네의 귀족세력같은 존재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국 보수의 특징은 공동체 의식이 없고 친일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들은 보수에 반대하는 한국인들보다 외세를 더 좋아한다. 필요하다면 한국의 국적따위를 버리는 것에 전혀 미련이 없다. 그게 지나쳐서 일제시대에 자신이 태어났다면 자기딸을 위안부로 보내겠다는 사람이 스스로를 보수로 이야기한다. 한사코 건국절 논란을 만들어서 대한민국의 역사가 조선과는 상관없다고 주장하려는 것도 한국 보수의 특징이고 독립군을 미워하는 것이 보수인가 싶을 정도로 한국 독립군에 대한 미움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한국 보수다. 이스라엘의 수도에 있는 공항의 이름은 벤 구리온이다. 이대로 한국 공항이름을 짓자면 한국의 인천공항이나 김포공항의 이름은 김구공항이 되어야 한다. 그게 벤 구리온이 이스라엘 독립에서 가지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5만원권도 신사임당이 차지하고 있다. 홍범도 장군은 대한민국의 육사에서 쫒겨난다.
한국 보수의 모습을 아주 잘 들어내는 주제가 보편복지다. 예전에 학교 무상 급식 문제에서도 그렇고, 최근에 여러번 나온 국민 모두에게 주는 지원금 문제도 그렇다. 이 문제들이 왜 이렇게 첨예한 문제가 될까? 사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학교 무상 급식이란건 학생들 밥먹는 문제다. 출산률이 전세계 꼴찌라서 나라가 망한다는 말이 나오는 나라에서 아이들 밥값을 가지고 이런 걸 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반대했던 것이 한국 보수다. 전국민 지원금 문제에 있어서도 받을 사람과 아닌 사람을 나누면 이재용같은 부자도 돈을 받으니까 안된다고 말하는 것이 한국 보수다. 그런데 그게 뭐가 그렇게 문제인가? 이재용이 10만원이나 100만원 받으면 나라가 망할까봐? 무상급식하면 한국이 망할까봐?
그 핵심은 위아래를 분리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구분되어서 다른 취급을 받아야 한다는 신념이 무너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노비와 양반은 겸상을 못한다는 식의 예절이 그 핵심이다. 돈과는 상관없다. 그래서 아무리 선별과정이 느리고 돈이 들어서 전국민 지원이 더 좋다는 말을 해도 설득되지 않는다. 그게 핵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일전에 공항에서 자기 아파트의 관리소 직원을 만나서는 관리소 직원이 감히 해외여행을 가냐고 말하는 아파트 주민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의 발상에서는 자신은 아파트 관리인보다 윗사람이니 사는게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아파트 관리소의 에어컨 문제를 가지고 반대 포스터까지 붙이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이런 사람들의 심리는 이 사회는 아랫것들이 문란해 지면 망한다는 귀족 논리에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빨갱이나 좌파정신이란 사실상 인간 평등을 말한다. 인간이 어떻게 평등하냐는 것이다. 이게 보수의 정신이다.
부자들이 3백억을 사기치고 별 벌을 받지 않아도 충격받지 않지만 가난한 사람이 3천원때문에 회사에서 잘렸다고 하면 원칙은 원칙이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보수의 심리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포퍼가 말하는 부족질서다. 있는 놈은 계속 있어야 하고 없는 놈은 수그리고 살아야 사회가 안정한데 인간이 평등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해서 세상을 위기에 빠뜨리는 파퓰리즘이라는 것이다. 계급질서는 너무 소중한 세상의 기초질서이며 그것에 도전하는 것은 불경하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 난리가 나고 있는 의사와 검사는 모두 보수성향을 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기들 끼리 싸워서 의대정원을 한번에 2천명을 늘리는 무리수를 둬도 의사들은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다시 보수 정당을 지지할 것이다. 그것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 그들은 자신들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특권의식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법이든 경제논리든 그들은 자기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는 질서를 지켜라, 그것이 경제논리고 법이다같은 이야기를 하기 좋아하지만 자신들은 그런 걸 말할 수 없는 존재로 여긴다. 그리고 자기들이 무너지는 것이 이 나라가 무너지는 것이라고 여긴다. 검사의 권한을 줄이거나 의사의 특권을 줄이면 나라가 망하는 것이다.
애초에 멀쩡했을 사람들이 이 꼴이 되는 것은 기득권들이 이렇게 사람들을 세뇌하고 학습시키기 때문이다. 사람을 뽑아서 너희들은 다르다, 너희들은 특별하다같은 말로 엘리트 의식을 한없이 키운다. 이렇게 해서 나는 서울대생이니 군대 안가고 세금안내고 이 나라 보통 시민이 하는 의무같은 건 안져도 되는 사람이다같은 식의 귀족 정신이 탄생한다. 이 들이 바로 과학 발전은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으면 모든 자원을 퍼부어서 노벨상 수상자같은 몇몇 사람들을 불러 오면 과학이 발전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특권층인 우두머리가 모든 걸 다했다는 생각을 가진다. 그런 우두머리 말고 나머지는 오히려 더 강력하게 경쟁구도를 만들어서 배고프게 만들어야 결과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배부르게 R&D 예산같은 게 너무 많아서는 안되는 것이고 해외직구같은 것으로 너무 자유로워서는 안되는 것이며 부자들의 세금은 너무 많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종부세같은 것은 빨갱이 정책이며 부자가 아닌 사람들, 특권층이 아닌 사람들의 복지따위는 오히려 너무 좋으면 나라가 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정신의 뿌리는 물론 한국의 역사에 있다. 그러나 길게 되돌아가지 않으면 그 뿌리는 한국의 재벌들에게 있다. 그들이 이나라에서 특권을 유지하고 싶기에 한국의 정신이 썩어가는 것이다. 지금도 공중파 방송에서 매일 같이 해대는 막장 드라마에는 한가지 일관된 주제가 있다. 그것은 회장의 잊혀진 손자나 손녀가 나타나면 그 회장의 회사가 그 손녀나 손자에게 넘어가는 것이 당연한 정의라는 것이다. 주식회사가 뭔지 안다면 그리고 그런 일은 이제 선진국에서는 어디에서도 없다는 것을 안다면 이것이 이토록이나 반복될 이유가 없다. 미국같은 회사 기준으로는 지금의 재벌 3세며 4세들이 회사경영을 할 수도 없고 엄격히 따지면 다 배임으로 감옥에 가야 할 것이다. 왜냐면 회사돈인데 자기돈처럼 쓰기 때문이고 혈연에 따라서 승진시키기 때문이다. 한국 주식의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원적 원인은 이것이다. 주주가 회사주인이 아닌데 주식의 가치가 왜 올라야 하겠는가? 능력제로 하면 뭘로 봐서 재벌가문의 사람들이 회사경영을 하는가? 서울대 교수직을 그 자식에게 세습하겠다고 하면 사람들은 그게 무슨 헛소리냐고 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대기업회장이 겨우 일개 대학교수보다도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이게 무슨 헛소리인지 모르겠다. 그 대학을 사버릴 정도의 돈이 움직이는 곳이 대기업인데 말이다.
능력으로 치면 지금의 대통령이나 이명박이나 박근혜같은 보수 정치인들이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과 비교될 수 있는가? 윤석렬은 출근시간도 안지킨다. 그는 늘상 술먹는 이야기만 하지만 노무현은 대통령은 취해서는 안된다고 해서 임기중에는 술을 한번도 안먹은 것으로 유명하다. 같은 기준으로 하면 윤석렬대통령은 진작에 탄핵절차에 들어가서 직무정지가 되고도 남는다. 그가 선거에 개입안했다면 노무현이 선거에 개입했다는말은 무슨 헛소리인가. 이런 무능력은 비단 서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서 현기차, 삼성, LG 등 대기업도 다 문제다. 지금 보수 대통령 등장 이후 전세계에서 경제가 가장 추락하고 있는 것이 한국이다. 다시 말해 부자들도 가난해 지고 있다. 돈으로 보면 그들이 더 피해다.
이래도 부족질서는 지켜야겠다는 것이 한국 보수의 정신이다. 나라가 망해도, 나라를 팔아먹어도 보수정당을 찍는다는 말이 농담만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애초에 국가 공동체 의식 자체가 거의 없다. 보수 내각이 들어서면 그 안에서 본인이나 자식을 군대 보낸 사람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 병장 제대한 노무현에게 안보의식 운운하는 것이 보수들이다. 이 나라의 국방예산은 노무현 문재인이 더 올렸다. 자주국방을 위해서다. 그런데 당장 최근에는 군대에서도 임금이 체불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며 채상병의 사망 문제는 무시하는 것이 보수다. 그러면서 국방 이야기에는 열을 올리며 안보는 보수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핵심은 미국과 일본에게 더 수그려야 한다는 것이다. 전세계 무력순위가 10등안에 든다는 한국이 전시작전권을 아직도 가져오지 못하고 있는 것도 보수가 반대해서 그러는 것이다.
나라 꼴이 엉망이다. 화를 내봐야 바뀌는 것은 없기에 자주 생각은 안하지만 아테네의 배신자 이야기를 다시 읽다보니 이 나라 보수 생각이 안 날수가 없었다. 21세기에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을 한사코 받아들이기 거부하는 사람들이 정권까지 잡을 정도로 지지를 받는다는 사실이, 애국심이라고는 전혀 없는 인간들이 나라를 팔아먹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화나게 한다.